김경희(북한)

파일:김경희.jpg

이름김경희(金敬姬)
출생1946년 5월 30일, 평양
본관전주 김씨
가족아버지 김일성, 어머니 김정숙, 오빠 김정일
종교없음

1 소개

북한의 정치인. 북한의 1대 지도자인 김일성의 딸, 2대 지도자인 김정일의 친여동생. 또 3대 지도자인 김정은고모이자 장성택의 부인이다. 러시아식 이름은 타티아나였지만, 김정일이 김유라에서 김정일로 고쳤듯이 그녀도 김타티아나에서 김경희로 고쳤다.

조선노동당의 경공업부 부장 겸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인민군 대장이다. 오빠인 김정일 사후 김정은고모이자 유일한 혈족이자 후견인으로서 사실상 북한의 실세로 군림 중이다.

NHK가 제작한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는 김정일의 건강 악화 이후 열린 가족회의에서 김정은의 후계자 자리 확정을 반대했다고 한다. 이유는 저런 어린애에게 나라를 맡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김정은은 당시 밥 먹다가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대안도 없었던 만큼 김정은의 후계를 인정하고 현재는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2 장성택과의 관계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 중이던 장성택에게 반해서, 아버지 김일성에게 그와의 결혼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김일성은 장성택의 신분이 미천한 것과 그의 아버지가 김일성이 싫어하던 함경도 공산주의자라는 점 때문에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둘의 사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김영주를 시켜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전학시키는 꼼수까지 부렸다. 하지만 김경희는 자기 아버지 차를 탈취해서 원산까지 장성택을 찾아다니며 원거리 연애에 빨래 등 뒷바라지까지 했다. 결국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오빠 김정일이 장성택과 김경희의 사이를 인정하면서 김일성을 설득하여 둘의 관계가 인정된다. 1972년 김경희와 장성택은 결혼하여 슬하에 딸 장금송을 둔다.

그러나 정작 결혼한 후에는, 김일성의 딸이자 김정일의 친누이라는 위세를 등에 업고 남편인 장성택에게 매우 거친 행동을 일삼는 등 불손하게 대했다고 한다. 사이가 틀어진 후인 90년대부터 심했는데 남편인 장성택에게 야, 너라고 호칭하며 공개적 망신을 자주 주었다고 한다. 그 혈통이 어디 가겠냐만은...[1] 술에 취해서 남편에게 폭언을 퍼붓고 물건을 던지는 등의 행패를 부리는데, 장성택이 이에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했다고. 역시 경희대장공주[2]

그 이전에 장성택이 김정일을 흉내내어 기쁨조 파티를 벌이는 등 여성편력이 심해 남편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3] . 천하의 김씨 조선태조부마가 되어놓고는 그런 짓을 하다니 간도 크다 김경희가 자꾸만 여자들과 놀아나는 남편에게 열받은 나머지 북한의 매우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김성호와 맞바람을 피게 이른다. 김성호는 김경희의 음악개인교사였으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까지 할 정도로 실력파였다. 이에 꼭지가 돈 장성택은 심화조 사건때 김성호를 반동으로 몰아 총살형을 선고해버렸다. 김경희는 오빠 김정일을 찾아가 난리를 쳐서 총살 명령을 철회했지만, 이미 집행된 후였다고.[4] 그 사건으로 남편과는 아예 별거했다고 한다.

아내와의 사이가 틀어진 장성택의 여성편력은 더욱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에는 고명딸인 장금송이 사랑하는 남자와의 사이를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처지를 비관하여 유학 중이던 프랑스 파리에서 자살하면서 부부를 엮던 최후의 구심점도 사라져버렸다. 그나저나 지들도 인정받지 못한 연애로 결혼해놓고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장성택의 숙청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상당히 고생했는데 김경희가 찾아오지도 않아서 관계가 완전히 파탄났다는 말도 있다.

3 장성택 사후

3.1 2013년

김경희가 장성택의 숙청을 막아달라고 했다는 주장도 있고 반면에 김경희가 장성택 숙청에 앞장섰다는 주장도 있어 앞으로가 주목된다. 김경희가 장성택의 죽음에 관여했건 아니건 김경희 본인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각에서는 김경희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장성택의 숙청이 빠르게 이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장성택이 처형된 며칠 뒤 친오빠 김정일의 기일에 열린 중앙추도대회에 참석하지 않아 건강 이상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 외에 장성택 처형에 분노해서 참석하지 않았다는 설이나 북한 지도부에서 참석을 막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다만 백두혈통이라 불리는 김씨 일가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에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 저 북쪽 왕조는 공산주의를 자칭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저치들 하는 짓이 제대로 된 게 뭐 있겠냐마는 혈통을 따지는데 김정일과 김경희가 첩의 소생이 아닌 김일성의 정실부인의 자식이기 때문에, 만약 김정은이 김경희마저 건드리면 백두혈통이고 뭐고 다 끝이기 때문. 백두혈통을 부정해 버리면 김정은이 3대 권력 세습을 해야 될 정당성이 없어져 버리는 상황이 된다. 즉, 김정은으로서는 김경희를 숙청하는 것은 굳이 번거로운 방법으로 자살하는 셈.

4달 동안 공개활동을 하지 않아 사망설이 대두되고 있는데 한국 정보기관에서는 한때 김경희가 진짜로 죽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으며 치료를 위해 외국에 있거나 장성택 처형으로 자숙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3.2 2014년

  • 2014년 1월에 파악된 김경희의 근황에 의하면 희귀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다고 한다. 나이스샷 안 그래도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김씨 가문의 구성원들은 심근경색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인데 김경희는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이 때문에 잦은 음주로 인하여 건강을 망치고 발이 휘어지는 병까지 걸렸다고. 현재 김경희는 폴란드에 체류중이라고 한다. 기사.
  • 2014년 4월 16일 방송된 북한 기록영화/대민선전물 중에서 김경희가 노출된 부분이 삭제되고 편집됨으로써 장성택의 처우와 관련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으나, 4월 30일 방송된 기록영화에 김경희 모습이 다시 등장했다.
  • 5월 19일 기록영화에도 등장했다.
  • 10월 12일 기록영화에도 등장했다.
  • 심장병 때문에 미국의 의료진이 방북했다고 한다. 기사
  • NK지식연대는 김경희가 음독자살 했다고 주장했다. 기사
  • 강명도교수는 김경희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3.3 2015년 이후

그런데 아예 김정은이 독살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만약 사실이라면 고모부-고모를 동시에 보낸 희대의 패륜왕으로 자리매김할듯. 뭐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나오는 강명도 교수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으니, 고모고모부 총살타에 이어서 고모고모 독살타?

2016년 1월에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직도 상실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2014년 3월 선거에서 선출된 김경희는 동명이인이었다고.

2016년 2월 뉴스에 따르면 생존이 확인되긴 했는데, 건강상태가 나빠서 얼마안가 자연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편 최근 CNN 인터뷰에서도 제기된 피살설 등의 진위 여부는 아직도 파악되지 않았다.

4 기타

  • 실제로 알콜중독자라는 증언이 새터민들에게서 제기되었으며 자유북한방송에 따르면 중증 치매에 걸려있다고 한다.
  • 장성택과의 사이에서 외동딸 금송(75, 76년생으로 추정)이 있었는데 2006년에 수면제로 자살했다고 한다. 모 탈북자는 탈북자 매체인 데일리 엔케이 기고문에서 장금송은 혼외자녀이며 타살당했다고 주장했다. 기고문 입양한 딸이라는 설도 있다.
  • 오빠인 김정일불륜으로 김정남을 낳은 성혜림모스크바로 추방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김경희는 성혜림을 '김정일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 과 '김정일과 정상적인 교제가 아닌 불륜으로 결혼한 사이' 라는 것을 내세워서 북한에서 내쫓았다.
  • 75년도에 교통사고로 자궁을 적출해냈기 때문에 불임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경희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김일성서부터 살아생전에는 이오시프 스탈린 이외의 모든 인물에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저 개망나니 김일성을 쫄게 하는 대원수의 위엄...보다는 개망나니 위에 더 심한 망나니가 있기에 그럴지도
  2. 참고로 충렬왕의 왕비인 제국대장공주는, 아버지(쿠빌라이 칸)와 조카(성종)의 위세를 업고 충렬왕을 막대하곤 했었다.
  3. 여담으로 이것으로 인해 김정일과도 심하게 다투었다고 한다. 장성택이 바람을 핀 원인을 제공한 원흉이 자신의 오빠인 김정일이었다는 이유로.
  4. 출처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