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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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鍾民
1964년 5월 12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교육자, 정치인이다.

2 경력

2.1 운동권 출신 기자

1964년 충청남도 논산군(현 논산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당곡초등학교, 한강중학교, 장훈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 83학번으로 1986년 구국학생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후, 1988년 2월까지 옥고를 치룬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젊은 시절에는 NL 계열에서 활동했던 인물로 안희정과는 같은 학생 운동 조직에서 활동한 오랜 친구이자 동지 사이다.

1993년 내일신문 기자로 취직하여 정치부에서 활동하였다. 이 당시 노무현이 만든 지방자치연구소에서 출입하다가 노무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잠시 기자 생활을 접고 논술 강사로 활동하다가 1999년 시사저널의 정치부 기자로 다시 취직하여 한나라당과 노무현 캠프를 출입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2002년 다시 투자회사의 기획실장으로 이직했지만, 결국 친한 친구가 노무현 캠프의 주축이고, 그 자신도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과 인연을 맺으면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되자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로 스카우트되었다.

2.2 청와대 시절부터 정치 입문까지

기자 시절에 노무현이 이미 김종민의 기사에 대 해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게 흔치 않은데 김 기자의 기사는 정확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신뢰가 두터워서 노무현 정부 내내 청와대에서 홍보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역임, 2004년 부대변인을 거쳐 6월 역대 청와대 최연소 대변인 임명, 2005년 7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정홍보비서관 등을 역임하면서 참여정부 종료까지 내내 청와대에서 노무현과 함께 했다.

정권이 바뀐 후에는 2008년 민주주의 2.0이라는 토론 사이트를 운영했지만, 이 사이트가 노무현의 정치 활동 재개라는 시선으로 비춰지고, 특히 박연차 관련 수사로 2009년 노무현이 자살하자 사실상 흐지부지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2010년 그의 친구인 안희정이 충남지사 선거에서 승리하자, 충청남도 정무부지사로 임명하면서 공직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2012년까지 충청남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하였다.

2.3 선거 출마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충청남도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선진당 이인제 후보에 밀려 석패하였다. 이후 건양대학교 교수를 잠깐 역임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새정치민주연합 안희정 충남도지사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하였고,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의 피닉스 이인제 후보를 꺾고 설욕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19대 총선 때 패배했던 논산에서 승리하면서 표 차이를 벌리고, 금산과 계룡에서 비교적 대등하게 표를 얻은 것이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3 선거 경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 여부비고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충남 논산-계룡-금산)민주통합당37,701 (39.9%)낙선 (2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충남 논산-계룡-금산)더불어민주당45,203 (43.6%)당선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