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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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浩一
1942년 12월 12일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자산(子山)이다.

1942년 경상남도 마산부(현 창원시)에서 태어났다. 마산고등학교 3학년 때 4.19 혁명을 직접 경험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인 196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6.3 항쟁에 참여하였다.

1981년 민주한국당에서 당료로 근무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마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강삼재 후보와 민주정의당 우병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백찬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합류하지 않고 꼬마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마산시 합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한나라당 원내수석부총무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만기와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배우자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02년 당선 무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