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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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민주당의 로고
노무현, 김정길, 이기택, 김광일, 장석화 의원 등 민주자유당으로의 3당 합당을 반대한 통일민주당 정치인들이 탈당하여 1990년 6월 15일 창당한 정당. 이철, 박찬종 등 무소속 의원들[1]이 합류하고 1990년 4월 진천군-음성군 보궐선거에서 꼬마 민주당의 내천으로 당선된 허탁 의원까지 합류하면서 국회 의석 수는 8석이었다.
통일민주당의 직계를 자처하며 민주당으로 불러달라고 강조했다. 반년 후인 1991년 지방선거에서 득표 14.3%, 양당의 세가 강했던 호남, 대구직할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광역의원 21명을 당선시키며 나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2]이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통일민주당의 지지도(23.8%)의 절반 이상이었다.[3] 최동원도 이때 부산직할시의원으로 출마했다. 다만 낙선.
이후 평화민주당이 이름을 바꾼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으로 등장했다.
1년도 안 되는 독자 정당 시기와 도로 민주당 밑으로 들어간 약력, 활동 당시 약한 당세로 꼬마 민주당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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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분열될 당시 야권의 통합을 주장하며 무소속을 택한 이들이었다. 흔히 꼬마민주당 의원 8명을 가리킬때, 허탁 의원 대신에 홍사덕 의원을 끼워넣는 경우가 많은데, 홍사덕 의원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서 낙선해 현역 의원이 아니었다.
홍사덕, 박찬종의 리즈 시절 - ↑ 이 때 당선된 광역의원 중에 훗날 한나라당 창당에 합류해 장장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권오을이 있다.
- ↑ 무소속이 22.4%를 득표했고, 김대중의 신민주연합당이 불과 21.9%(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19.3%)를 득표한 것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적은 득표가 아니다. 여당인 민자당은 40.6%로 34.6%에서 불과 6% 증가했다. (이는 전체 정당 득표의 52.3%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