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사

본 문서는 삼민주의역행사,중화민족부흥사로도 들어올 수 있다.

중국어: 蓝衣社(Lán yī shè)[1]
영어: Blue Shirts Society, BSS

CC단과 함께 중화민국 장제스의 사설 특무 기관.

1 어떤 조직?

남의사 그러던가 말던가
성별이 남자인 의사나,성이 남씨인 의사가 아니다

1930년대 중국 파시즘의 상징으로 장제스 1인독재를 위해 조직된 비밀조직으로 1970년대까지 중화민국 정부는 이들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부정했다.

중국 국민당의 특무조직이자 준군사조직. 정식 명칭은 삼민주의역행사[2]였으나 회원들은 스스로를 구망사(救亡社), 도존사(圖存社)라고 불렀다. 외부에 남의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이 이유는 '남의를 입음으로서 온 국민속에 섞여있자.'라는 한 회원의 논문이 유명해지면서 이 조직이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의 검은셔츠단을 본떠 만든 조직이라는 오해를 샀기 때문이다. 정보기관 역할을 하면서 국민당의 정적에 대한 테러도 일삼았다. 혹자는 단순히 홍위병과 쌍둥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른 조직이다. 우선 남의사는 철저한 비밀조직이며 개개인의 능력을 국가에 봉사하기를 요구한반면[3] 홍위병은 절대적인 대중동원으로 국가를 스스로 개혁하기위한 운동이었다.

1932년경에 신설되었으며 형식적으로는 1938년 6월 다른 국민당 소조직과 더불어 삼민주의 청년단에 흡수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중일전쟁 종결까지 이어진듯하다. 그 이후로는 중화민국 국방부 군사정보국인수인계했다. 이쪽은 대만에 가서도 계속 존속하고 있다. 주요 임무는 장제스 및 국민당에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거나 국민당을 위한 첩보 조직망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극단적인 배일파벌을 제거했으나 그와 동시에 친일적인 행보를 걷는자들을 죽이기도 했다. 아니 뭐 어쩌라고.

조선의 독립에도 큰영향을 주었는데, 이육사(신문조서에서는 이활)도 남의사의 학교에서 훈련받았다고... 홍가륵도 마찬가지다. 독립유공자들중에는 남의사 출신이 많다. 김광석, 대립(이름이 대립.남의사 수장.), 조인식등이 남의사에서 활동한 공적으로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았다. 일제하의 잡지들은 이들을 백색테러 조직이라 했다. 사실 공산당에게 테러한걸 보면 백색테러다. 백색테러라는게 극우 테러를 의미한다.비밀조직이지만 장제스의 조직이란건 널리알려진듯 일본과 내통했다고 중국 신문기자도 총살했다 만주국 전복계획도 있다. 대륙의 스케일이다... 백의사의 염동진이 모델로 삼았다. 그는 사실 남의사에서 활동한적이 있는데, 남경의 군관학교에서 훈련받았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입학을 심사했다.


장제스의 측근인 천리푸, 천궈푸 형제의 CC단과는 경쟁관계였다. 천씨 형제는 다이리와 장제스의 총애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라 다이리와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2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관계, 한국의 독립운동 지원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국민당장제스와도 협력했으며, 남의사의 지원도 받았다. 또한, 남의사는 임시정부뿐만 아닌 김원봉의 조선민족혁명당-조선의용대에도 재정적 지원,무기 지원 및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국 광복군들중 일부가 남의사 출신이었다. 여담으로 이 남의사는 장제스의 백색테러 조직으로, 반공반일을 내세웠다.(...)

1962년 기사에 의하면, 재북중인 한국독립당,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들은 중경파로 불리었다. 임시상무위원회에서는 과거 해외에서 망명중이었던 노인네들이라 지칭되었다.(노구를 이끌고 통일을 위해 일을 했던것이다.) 임정 요인들(조소앙, 엄항섭 등등)은 중국 국민당의 남의사원 노릇을 했다고 한다. 즉 장개석의 정보기관원 노릇을 했다고...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을 박해했다며 까이기도 했다.

1970년 신문에 의하면 진과부(백범일지에도 나온다),진입부 박사형제가 임시정부를 지원했다고 한다. 일본경찰 비밀보고에는 진입부 형제 그룹을 CC파(Central Club)으로 지칭,임시정부가 이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밖에 남의사로 통칭되는 정부기관 루트를 통해서도 지원받고 있다고 한다. 남의사 항목보면 알겠지만,이범석도 남의사 출신.

1974년 기사에 의하면, 1959년 김일성의 피의 숙청을 단행하는데 조소앙, 윤기섭, 원세훈, 송호성, 엄항섭을 중국 망명생활 당시 장개석의 정보원으로 남의사에 재직하면서 국제간첩이 되어 지금도 반공, 간첩행위를 감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물론 지금도 반공간첩행위한거야 김일성 마음에 안드니 그런 누명을 쓴것이다.(...)

중국의 극우들은 상하이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남의사의 하부조직에 불과했다고 깐다...하지만 일제의 남의사 관련 자료에 이범석의 이름이 있긴하지만... #그래도 장제스김구에게 돈을 보내줬으니 하부조직은 아니다. 남의사 행동강령 상하이 조폭두목 두월생이 창설에 관여했다.

손문(쑨원시대에도 승인과 격려는 받았지만 5백만원 차관요구는 후일을 기약해야한다. 하지만 1975년 신문에 의하면, 장제스 시절(신문에는 장중정시대)에는 남의사 계통으로 한국의 각당파벌 임시정부등에 공작금,생활비,군수물자 명목으로 후년에 갈수록 많은 원조(당시에는 적다고 함)가 있었다고 한다.

3 남의사 출신 유명인물

국부군에서 일한 조선인들은 대부분 남의사에 소속되어 특무공작을 많이 했다.

  • 이성가 - 중국 남경군관학교졸업. 중국군 소령출신. 해방뒤 귀국하여 8사단장까지 오른다. 참고로 본명은 이정일
  • 이범석 - 남의사 출신. 운남강무당 기병과 수석졸업. 남경 중앙군관학교 낙양 분교 생도 대장였기도 했다.
  • 염동진 - 백의사수장. 이범석의 동창생.
  • 김재호 - 중경임정요인. 남의사 출신(뉴스에는 남이사라 발음). 귀국후 학교 교사를 했는데 1955년 이승만 암살미수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뤘다.
  • 이활(이육사) - 의열단 단원으로 남의사에서 훈련받았다.
  1. 간혹 감의사라고 칭하는 실수가 종종 보이는데, 이는 색깔의 남색과 감색이 서로 비슷한 색이기 때문이다.
  2. 중화민족부흥사를 정식명칭으로 적는 문헌도 있으나 중화민족부흥사는 삼민주의역행사의 가장 거대한 조직중 하나였다.
  3. 즉 파시즘 조직임에도 대중동원에 매우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파시즘이 보통 국가에 대한 결속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매우 독특한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