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平王
1 형남 무신왕 고계흥
907년 주전충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을 건국하자, 고계흥은 형남절도사(荊南節度使)가 되었다. 부임한 고계흥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이땅의 부흥에 힘을 기울였다. 그 후 주전충이 사망하자 형주[1], 귀주(歸州), 협주(峽州, 의창(宜昌))의 3주를 차지하여 독립했다. 형남 항목 참조. 그 후 후량이 후당에게 멸망당하자 후당에게 신하를 자청해 925년 남평왕(南平王)에 봉해졌다. 그러나 후당이 전촉을 공격하려 할 때 고계흥은 자신이 촉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구상을 막아버리는 일이었기에 후당과 연을 끊고 동쪽의 오의 신하를 자청했다.
2 남한 열조 양황제 유은
유은(劉隱)은 당나라 말기에 청해군(淸海軍) 절도사(節度使)를 지냈고 후량 때에는 남평왕(南平王)에 봉해졌다. 동생 유엄(劉龑)이 917년 남한을 세우고 그를 양황제(襄皇帝)로 추존하였다. 남한 항목 참조.
3 다이비엣(大越, 대월국) 왕의 칭호
전 레 왕조에서는 997년[2]에 리 왕조에서는 1087년에 남평왕[3]에 책봉되었다. 송사에 따르면, 송나라는 새 황제가 즉위하면 교지군왕(交趾郡王)의 칭호를 부여하였고, 추후 남평왕으로 격상해 주었고, 사후에는 시중남월왕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4 서하 남평왕 이현
서하의 역대 황제 | |||||
9대 헌종 효애제 이덕왕 | ← | 10대 말제 남평왕 이현 | → | 서하 멸망 |
묘호 | 없음 | |
시호 | 없음 | |
작위 | 남평왕(南平王) | |
호칭 | 말주(末主) | |
연호 | 보의(寶義, 1226년 ~ 1227년) | |
성 | 이(李) | |
휘 | 현(晛) | |
생몰기간 | 1226년 ~ 1227년 | |
재위기간 | 1226년 ~ 122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