路粹
(? ~ 215)
진류 사람으로 어려서 채옹에게 학문을 배웠고 초평 연간[1]에 거가를 따라서 삼보[2]에 이르렀으며, 196년에 높은 재주로 엄상과 함께 상서랑이 되었다. 이후 승상군모좨주로 있었는데, 진림, 완우와 함께 기실의 업무를 전달했다.
이 때 공융은 조조를 비판하면서 풍자해 비웃었기 때문에 조조의 미움을 샀는데, 공융과 사이가 나빴던 치려를 공융보다 높은 관직에 임명했고 치려가 조조에게 영합하기 위해 관직을 이용해 공융의 죄를 날조해 고발했다.
이 때 노수는 조조의 명을 받들어 공융의 죄상을 상주했는데, 그 내용에는 "공융이 자기는 대성인의 후예인데,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묘금도[3]란 말인가?"라고 날조한다. 공융이 죽은 후에 사람들이 노수의 글을 보고 그 재주를 가상히 여기면서 두려워했으며, 215년에 비서령을 옮겨 대군을 따라 한중에 이르렀다가 나귀를 요구해 싼 값에 당나귀를 사서 금령을 어긴 것으로 인해 처형되었다.
조비는 원래부터 그와 친했지만 그의 죽음에 탄식하면서 애석했는데, 위나라가 세워지자 노수의 아들이 장사로 임명되었다.
한단순, 번흠, 정의, 양수, 순위 등과 함께 문체가 있었지만 건안칠자와는 함께 논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