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아노 토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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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부주장이었던 토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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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서의 토마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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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킬리 곤살레스의 태클을 버티는 토마시

이름다미아노 토마시 (Damiano Tommasi)
생년월일1974년 5월 17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네그라르, 베네토 주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177cm
유소년팀헬라스 베로나 FC
소속팀헬라스 베로나 FC (1991~1996)
AS 로마 (1996~2006)
레반테 UD (2006~2008)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08~2009)
톈진 터다 (2009)
산타나 달프레도 (2009~2011)
국가대표32경기 2골

로마를 너무나 사랑한 선수

1 선수시절

91년 당시 세리에 B 소속이었던 헬라스 베로나 FC에서 프로데뷔를 한 토마시는 꾸준한 활약을 보이면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소집된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로마로 이적하게 되었다. 로마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펼쳐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발돋움한 토마시는 2000년에 이적해온 에메르손과 함께 강력한 미드필더 라인을 구축하여 로마의 00-01시즌 스쿠데토에 기여한다. 이 당시 활약상으로 T-T라인이라는 말이 생겼으며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도 참여하게 된다.

대표팀에 차출되어서도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2002년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한 모든 경기에 출장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월드컵에서 16강에서 한국에게 패해 탈락할때까지 전 경기에 출장했다. 이 경기에서 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골이 취소되었다.

월드컵 이후 잔부상에 시달리며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고, 팀에서도 주전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잔부상으로 경기 출장횟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국가대표팀과의 인연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04-05시즌 시작을 앞두고 파트너였던 에메르손의 유벤투스 이적으로 팀에서는 토마시의 부활이 시급한 상황이었는데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장기부상을 당하여 시즌아웃되었다. 토마시의 부진에 따라 로마 또한 04-05시즌을 엄청나게 부진했다.[1]

이 당시 부상으로 1년 넘게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하고 있던 토마시가 계약기간이 끝날때까지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팀의 공헌도가 높은 선수에 대해 예우를 해주던 프랑코 구단주와는 달리 개떡같이 구단을 운영하고 있던 로젤라 센시가 재계약을 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이 때 토마시가 선수로서 구단에 대단히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데 세리에 A 계약최저한도액[2]으로 재계약 제의를 한 것이다. 재계약이 성사되고 05-06시즌까지 뛰게 된 토마시는 시즌 초반에도 회복중이라 나오지 못하다가 세리에 A 13라운드인 피오렌티나 전에서 선발출장하는데 2분만에 복귀골을 신고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05-06시즌에 팀의 주포였던 빈첸조 몬텔라의 부상, 전 시즌에 토티와의 듀오로 매지컬 듀오라 불린 안토니오 카사노의 이적으로 공격진의 공백이 생기자 왼쪽 윙포워드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2006년까지 로마에서만 314경기를 뛰었으며 이는 경기수로 10위에 해당한다.

05-06 시즌이 끝난 후 레반테, QPR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2009년 톈진 터다에서 은퇴한...줄 알았으나 2011년까지 이탈리아의 산타나 달프레도라는 팀에서 뛴 것이 확인되었으며, 최근에는 산마리노의 클럽인 SP 라 피오리타에서 뛰는 것이 확인되었다. 15-16시즌 현재 유로파리그 예선에서 상대팀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의 FC 파두츠와 유로파리그 1차 예선에서 맞붙었고 거기서 라 피오리타 소속으로 경기를 뛰었다. 경기 결과는 1차전 5:1, 2차전 5:0으로 대패...

여담으로, 토마시가 레반테로 이적할 때 베로나의 또다른 클럽인 AC 키에보 베로나에서 이적 제의를 하지만 로마 말고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팀은 없다. 로마가 아닌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로마와 싸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하며 제의를 거절한다. 뼛속까지 로마니스타

2 플레이스타일

생김새가 뽀글머리에 텁수룩한 수염, 단단해보이는 체구로 인해 거친 남자의 이미지가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답게 강력한 태클과 중거리슈팅을 갖추고 있었으며 체력도 좋은 편이라 활동량이 뛰어난 미드필더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거친 선수, 터프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토마시의 플레이스타일은 터프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테크니션이었다. 실제로 드리블 실력도 상당하며 미드필더로서의 패스 센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05-06시즌에는 윙포워드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3 프로선수로서의 태도

일반적으로, 프로선수는 돈을 따라 움직인다. 최근 중국의 가 그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돈 많이 주는 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토마시처럼 돈 대신 명예를 택하기도 쉽지가 않은데 앞서 서술한 세리에 A 계약최저한도액으로 로마와 재계약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그렇게 기회를 달라면서 뛴 05-06시즌엔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뛰면서도 팀에 헌신하는 최고참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였다. 이밖에도 이탈리아인들이 불길한 숫자로 여기는 17번을 자기 등번호로 삼는 등 멘탈도 건전한 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축구외적으로도 사회적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시에라리온의 기아들을 돕고 코소보에 축구장을 건립하는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이어왔다. 그로 인해 로마에 상주하는 외국인 기자들이 선정한 2001년 올해의 스포츠인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에 이탈리아 축구협회로부터 인종차별운동에 대항한 공로로 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미국의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였을 때, 이를 강력히 비난하여 신문 헤드라인에 실린 적도 있다.

05-06시즌 후반기에 로마는 팀의 단결력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선수들이 돌아가며 저녁식사 식사비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월급을 다 털어서 180만원 버는 분이 저녁식사를 산 일도 있다. 월급 사정으로 절대 만만치 않은 금액인데 말이다.
  1. 코파 이탈리아 16강 탈락, 유에파컵 32강 탈락, 리그 4위(4위도 초반 부진하여 강등권을 헤메다가 겨울 이적시장 이후 살아나서 4위를 수성)
  2. 월봉 1500유로,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180만원, 그 다음 시즌에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아탈란타 BC와의 계약을 토마시처럼 계약최저한도액으로 체결했다. 단, 비에리는 골을 넣을때마다 보너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