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크로???
전체 이름 | 크리스티안 비에리 (Christian Vieri) |
생년월일 | 1973년 7월 12일 |
국적 | 이탈리아 |
출생지 | 볼로냐 |
신체 조건 | 186cm, 91kg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소속 클럽 | 토리노 FC (1991-1992) A.C. 피사 (1992-1993) 라베나 (1993-1994) 베네치아 (1994-1995) 아탈란타 BC (1995-1996) 유벤투스 FC (1996-199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7-1998) SS 라치오 (1998-1999) 인테르나치오날레 (1999-2005) AC 밀란 (2005-2006) AS 모나코 (2006) UC 삼프도리아 (2006) 아탈란타 BC (2006-2007) ACF 피오렌티나 (2007-2008) 아탈란타 BC (2008-2009) |
국가 대표 | 49경기 23골 |
정복자
1 소개
비에리·호나우두 때문에 잠을 못 이뤘다-지안루이지 부폰
황소(BOBO)
공포의 돌격수
공중의 지배자
무시무시한 공격수들 중에서도 비교해도 강력한 스트라이커
평가와 실력이 하늘과 땅 차이였던 스트라이커[1]
이탈리아의 전 축구무에타이선수. 포지션은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이탈리아 대표팀 역사상 손꼽히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중 한명이지만 상대적으로 판타지스타 타입의 공격수가 더 주목받는 당시의 아주리군단 특성상 과소평가를 받는 편.
그런데.. 2016년 7월 30일 갑자기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2 경력
1991년 토리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터프하다 못해 지랄맞은 성질때문에 매년 팀을 갈아 치웠다. 처음으로 주목받은 것은 1993년 세리에 B소속 라베나에서 32경기 12골로 주목받으면서였다. 이때부터 세리에 빅클럽에 관심을 받은 비에리는 1996년 유벤투스에 입단해 알란 복시치와 투톱을 짜면서 주목을 받았고 유벤투스에서 23경기 8골을 넣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비에리는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97-98시즌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임대 시절에 드디어 대폭발하여 24경기 24골을 기록하여 한시즌만에 피피치를 기록했다. 뤼트 판 니스텔로이또한 25골로 한시즌만에 피치치를 차지하였지만, 출장수로 보면 니스텔로이는 더 많은 경기에 출장했다. 98-99시즌에 라치오 이적을 통해 세리에 A에 돌아온 비에리의 전성기는 인테르 시절로 1999년 이적했는데 99년 당시 이적료가 무려 5000만 달러였다(...).[2]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데뷔경기였던 베로나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화려한 출발을 했지만, 불행하게도 시즌 후반기에 또다시 부상을 당하며 20경기 출장(13골)에 그쳤다. 유로2000에도 참가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 기나긴 부상 끝에 2000-2001시즌 초반에 그라운드로 복귀해 시즌 중반에 또한번 경미한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별탈없이 27경기에 출장해 18골을 성공시켜 자신의 세리에 A 한시즌 최다출장과 최다골 기록을 세우며 부활을 시위를 당겼다.
아니나다를까, 다가온 2001-2002시즌. 부상을 완전히 떨쳐버린 것은 아니지만 어느때보다도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온 비에리는 25경기에 무려 22골을 퍼부어 세리에 A 득점 3위에 올랐다. 적어도 5경기만 더 뛰었더라면 누가보나 득점왕에 올랐을 놀라운 활약이었다. 이 시기 팀동료인 호나우두와 함께 우주를 정복할 투톱으로 평가 받았으나 동시에 부상을 당하면서 꿈으로...
2002년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며, 이탈리아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크게 활약했지만 한국팀에게 패하는 바람에 8강 진출에 실패했다.
05-06시즌 아드리아누에게 밀려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나, 역시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에게 밀려, 반년만에 AS 모나코행, 모나코에서는 잘했으나 부상으로 2006 FIFA 월드컵에 불참.[3] 자국의 월드컵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다.
06-07시즌 아탈란타 BC와 계약하면서 주급 100만원+ 옵션으로 1골당 1억보너스 지급이라는 해괴망측한 계약을 체결하지만, 역시나 부진하였다.
07-08시즌에 또다시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여, 부활의 날개짓을 펴는듯 하였으나...결과적으로는 콰밥만훈의 수장인 히카르두 콰레스마가 없었다면 2009년 황금 쓰레기통 상을 수상할 뻔한 실패한 시즌[4].
08-09시즌 또다시 아탈란타로 이적(...)한지 몇개월 후 방출되어 겨울 이적시장때, 여러 브라질 클럽,토트넘 핫스퍼의 제의를 모두 물리치고 은퇴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2016년! 중국 슈퍼리그를 통해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네티즌들은 뎀바 바를 생각하며 만류중.물론 그런다고 들을 리는 없지만 이 행님은 때리면 때렸지 맞을 행님은 아니라 복귀를 선언한 그의 나이는 43세 집에서 손주볼나이되가는데? 존나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
3 플레이 스타일
대표적인 저니맨 중 하나다. 그러나 일반적인 저니맨에 대한 생각과는 달리 다른 스트라이커들과 비교해도 막강함을 자랑하고 있으며 저니맨들 중에서는 단연 최강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185cm에 82kg라는 당시 이탈리아 공격수치고는 체격이 아주 좋았는데, 거기에 스피드도 최상급이고 몸빵을 이용한 피지컬 플레이와 제공권 장악에 대단히 능했다. 특히나 골대를 찢어버릴듯한 강한 슛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스페셜 영상등을 보면 볼을 그냥 사정없이 찬다. 전성기때의 퍼포먼스는 드록신디디에 드록바도 한수접고 물러날정도. 전성기때의 기록으로 보면 한경기당 약 0.8골로 호나우두를 능가하는 득점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발재간도 과소평가 받지만 상당해서 절친인 필리포 인자기나 마리오 고메즈등 발재간은 개나 줘버리는 비슷한 타입의 선수들과 달리 볼 운반도 잘 했다. 단점으로 꼽힌건 불같은 성질과 떡대에 맞지 않는 유리몸(...).[5]
국제대회에서도 그 존재감이 탁월했다. 90년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파올로 로시 이후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존재감이 취약해서 항상 로베르토 바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등의 판타지스타들이 주목받았으며 지안루카 비알리 정도를 제외하면 살바토레 스킬라치, 피에르루이지 카시라기, 주세페 시뇨리, 엔리코 키에사 등의 스트라이커들은 국제 무대 기준으로는 별로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나 이들 스트라이커들이 당시 세계 최고의 무대였던 세리에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으므로 단순히 존재감이 없다고 함부로 폄훼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결정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는 동시기에 활약했던 필리포 인자기와 비에리였다. 인자기는 57경기 25골, 비에리는 49경기 23골이다.
다만, 생긴거 답게 성질이 좋지 않아서 매년 팀을 갈아치운 저니맨이고, 거기다 몸관리도 열심히 하지 않아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이때문에 전성기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인테르 시절 연습도 열심히 안하고 호나우두와 클럽만 찾아다녔다고.(그렇지만 즐길만큼 즐기면서 클럽이든 국가대표든 맹활약하며 돈도 명예도 다 가졌으니 진정한 승리자...)
이색기록으로는 월드컵에서 9경기 9골을 기록한 것. 한경기에 한골 꼴로 넣은 것으로, 98 월드컵 카메룬전 2골, 2002 월드컵 에콰도르전 2골 빼면 멀티골도 없다. 우리나라의 최고기록이 안정환, 박지성의 3골인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거다. 반면 또다른 큰 대회인 유로 시리즈에는 2000년엔 부상으로 불참했고, 2004년엔 한골도 넣지 못하고 이탈리아가 조별리그 탈락하는 수모를 지켜봐야 했다. 또한 90년대에 흔히 말하던 '세리에 7공주' 팀들 중 AS 로마를 제외한 모든 팀에서 뛴 진기록을 갖고 있다.
4 한국에서의 이미지
사진 한가운데.[6]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전에서 한국과 격돌, 어마어마한 포스를 선보였다.
비에리하면 가장 악명높은 이 장면. 전반 10분에 김태영의 코뼈를 부러뜨린 그 장면이다.[7]
전반 18분에 최진철, 홍명보, 김태영이란 대한민국 역대 최강급 3백이 쌓은 수비벽을 뚫고 선제골을 성공시켰으며, 그 이후에도 팔꿈치도 많이 휘두르면서 한국 수비진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몇 번이나 한국 골문을 유린할 뻔했고, 김태영은 부상을 이기지 못해서 교체되었으며 마지막까지 비에리를 막은 최진철은 경기 종료 후 탈진해서 링거를 맞아야 했을 정도였다[8]. 홍명보는 차두리와 교체되었기에 마지막까지 비에리를 막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막판에 골문 바로 앞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면서 승리의 기회도 같이 날아갔고, 결국 한국팀이 승리하면서 운동장에 뻗는다. 괴수 사냥 성공
이때 골문과의 거리가 5m도 안 되는데 공을 하늘로 날렸다는 이유로 오른발이 의족이라는 편견의 희생물이 되었지만, 사실 오른발도 잘 쓴다. 98년 월드컵 카메룬전에서의 첫번째 골은 고난도 오른발 칩샷으로 넣었을 정도다! 다만 앞서 언급한 16강 경기처럼 워낙 결정적인 순간에 없느니만 못한 물건이 되어버려서 의족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이 경기에서 비에리는 한국인들에게 격투기선수로큰 인상을 남겼다.
5 기타
특이 경력(?)으로는 축구 선수하기 전에 아마추어 복싱 선수였다고 하나 이건 경력이라고 내세우기도 뭐한 게 몇 개월 취미 수준으로 잠깐 했던 수준이고 당시 인터넷을 통해 돌던 복싱 선수 폼의 사진들은 이전에 복싱 선수 역으로 출연했던 영화의 스틸 컷이었다.
니콜라 아넬카 이전의 희대의 저니맨으로 1억유로가 넘는 총합이적료를 기록하였다. 이적료를 클럽에 안겨준 금액으로는 아넬카를 오히려 능가한다. 한번 이적에 약 2000만 유로 이상이 기본이였으니.
태어나기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까지 호주에서 살았다고 한다.
은퇴한 후 친구와 함께 헬스 용품, 전동 공구, 주방 용품 등을 판매하는 BFC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에 모든 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파ㅋ산ㅋ역시 계란은 한바구니에 넣는게 아니다 결국 1600만 유로에 상당하는 빚까지 지게 되었고, 결국 코칭 라이센스를 따기 위한 공부를 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6 커리어
6.1 업적
- 토리노 FC (1991/92 - 1992/93)
- 코파 이탈리아 (1) : 1992/93
- SS 라치오 (1998/99)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1) : 1998
- UEFA 컵 위너스 컵 (1) : 1998/99
- 인테르나치오날레 (1999/00 - 2004/05)
- 코파 이탈리아 (1) : 2004/05
6.2 스탯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 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1/92 | 토리노 FC | 이탈리아 세리에 A | 6 | 1 | 1 | 1 | 0 | 0 |
1992/93 | 토리노 FC | 이탈리아 세리에 A | 1 | 0 | 1 | 0 | 0 | 0 |
1992/93 | A.C. 피사 | 이탈리아 세리에 B | 18 | 2 | 0 | 0 | - | - |
1993/94 | 라벤나 | 이탈리아 세리에 B | 32 | 11 | 0 | 0 | - | - |
1994/95 | 베네치아 | 이탈리아 세리에 B | 28 | 11 | 0 | 0 | - | - |
1995/96 | 아탈란타 BC | 이탈리아 세리에 A | 19 | 7 | 2 | 2 | 0 | 0 |
1996/97 | 유벤투스 FC | 이탈리아 세리에 A | 23 | 8 | 5 | 1 | 8 | 4 |
1997/98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스페인 라 리가 | 24 | 24 | 1 | 0 | 7 | 5 |
1998/99 | SS 라치오 | 이탈리아 세리에 A | 22 | 12 | 2 | 1 | 4 | 1 |
1999/00 | 인테르나치오날레 | 이탈리아 세리에 A | 20 | 13 | 5 | 5 | - | - |
2000/01 | 인테르나치오날레 | 이탈리아 세리에 A | 27 | 18 | 0 | 0 | 5 | 1 |
2001/02 | 인테르나치오날레 | 이탈리아 세리에 A | 25 | 22 | 1 | 0 | 2 | 3 |
2002/03 | 인테르나치오날레 | 이탈리아 세리에 A | 23 | 24 | 0 | 0 | 14 | 3 |
2003/04 | 인테르나치오날레 | 이탈리아 세리에 A | 22 | 13 | 1 | 0 | 9 | 4 |
2004/05 | 인테르나치오날레 | 이탈리아 세리에 A | 27 | 13 | 3 | 3 | 6 | 1 |
2005/06 | AC 밀란 | 이탈리아 세리에 A | 8 | 1 | 1 | 1 | 5 | 0 |
2005/06 | AS 모나코 | 프랑스 리그앙 | 7 | 3 | 0 | 0 | 2 | 1 |
2006/07 | 아탈란타 BC | 이탈리아 세리에 A | 7 | 2 | 0 | 0 | - | - |
2007/08 | AFC 피오렌티나 | 이탈리아 세리에 A | 26 | 6 | 1 | 0 | 12 | 3 |
2008/09 | 아탈란타 BC | 이탈리아 세리에 A | 9 | 2 | 0 | 0 | - | - |
6.3 주요 개인 수상
- 세리에 A 득점왕 : 2002-03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 : 1999
-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 1997-98
- ESM 올해의 팀 : 1997-98, 2002-03
- 피치치 : 1997-98
- FIFA 100 : 2004
- FIFA 월드컵 실버슈 : 1998
- FIFA 월드컵 브론즈슈 : 2002
- 2002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에콰도르 (조별리그)
- 올해의 이탈리아 축구선수 : 1999, 2002
- ↑ 실력이 하늘이었다면 평가는 땅이었다.
- ↑ 이 기록은 후에 에르난 크레스포, 지안루이지 부폰,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 등에 의해 깨졌다.
- ↑ 마르첼로 리피가 비에리를 매우 아껴서 폼이 떨어졌음에도 월드컵 엔트리에 무조건 넣으려 했다는 건 꽤 유명한 일화이다.
- ↑ 1위가 콰레스마, 3위가 이전 2년연속 수상의 아드리아누. 그 사이에 끼어있는 크리스티안 비에리(피오렌티나)를 보는 느낌이란 그야말로 세월무상.
- ↑ 근육이 과도하게 붙으면 하체에 무리가 가서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긴하다. 비에리를 능가하는 근육떡대 마이카 리차즈나 오구치 오니우가 괜히 유리몸이 아니다. 비에리는 이 둘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편.
- ↑ 유니폼을 잡아당겨 체격이 대강 드러났음에도 떡대가 장난아니다. 드록바가 한수 밀릴거라는 평가가 괜히 나오는것이 아니다. 사진의 장면은 전반 18분에 득점을 하는 모습. 왼쪽부터 최진철,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비에리, 김태영, 김남일.
그리고 얼굴도 못나온 홍명보와 코코 - ↑ 웃긴건 비에리는 경기내내 단 한 번의 경고도 없었다!
- ↑ 경기 끝나고 인터뷰로 밝히기에 "비에리가 힘이 장사더라"며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