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7 프랑스 리그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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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강 (Guingamp) | 낭시 (Nancy) | 낭트 (Nantes) | 니스 (N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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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종 (Dijon) | 렌 (Rennais) | 로리앙 (Lorient) | 리옹 (Lyon) |
35px | 45px | 40px | 30px |
릴 (Lille) | 마르세유 (Marseille) | 메스 (Metz) | 모나코 (Mona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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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펠리에 (Montpellier) | 바스티아 (Bastia) | 보르도 (Bordeaux) | 생테티엔 (Saint-Étienne) |
35px | 50px | 50px | |
앙제 (Angers) | 캉 (Caen) | 툴루즈 (Toulouse) | 파리 (Paris) |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A조 | |||||||||||
50px | 파리 (Paris) | 50px | 아스날 (Arsenal) | 50px | 바젤 (Basel) | 50px | 라즈그라드 (Razgrad) |
파리 생제르맹[1][2] FC | |
Paris Saint-Germain FC | |
정식 명칭 | Paris Saint-Germain Football Club |
창단 | 1970년 8월 12일 |
소속 리그 | 리그 1 (Ligue 1) |
연고지 | 파리 (Paris) |
홈 구장 | 파르크 데 프랭스 (Parc des Princes)[3] (48,713명 수용) |
라이벌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Olympique de Marseille) - 르 클라시크 |
구단주 | 셰이흐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4] (Sheikh Tamim bin Hamad Al-Thani) |
회장 | 나세르 알 켈라이피 (Nasser Al-Khelaifi) |
단장 |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Patrick Kluivert) |
감독 | 우나이 에메리 (Unai Emery) |
주장 | 치아구 시우바 (Thiago Silva) |
애칭 | Les Parisiens (파리지앵) |
공식 홈페이지 | [1] |
우승 기록 | |
리그 1 (6회) | 1985-86, 1993-94, 2012-13, 2013-14, 2014-15[5], 2015-16 |
리그 2 (1회) | 1970-71 |
쿠프 드 프랑스[6] (10회) | 1981-82, 1982-83, 1992-93, 1994-95, 1997-98, 2003-04, 2005-06, 2009-10, 2014-15, 2015-16 |
쿠프 드 라 리그 (6회) | 1994-95, 1997-98, 2007-08, 2013-14, 2014-15, 2015-16 |
트로페 데 샹피옹 (5회) | 1995, 1998, 2013, 2014, 2015 |
쿠프 강바르델라 (1회) | 1990-91 |
UEFA 컵 위너스컵 (1회) | 1995-96 |
UEFA 인터토토컵 (1회) | 2001 |
클럽 기록 | |
최다 출장 | 장 마르크 필로제 (Jean-Marc Piorget) - 371경기(1942~1958) |
최다 득점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bić), 113골(2012~2016) |
파리 생제르맹 산하 스포츠단 | ||||
남자 축구 | 여자 축구 | 핸드볼 | e스포츠 |
춘추전국시대 싸움을 종식시키고 유일한 1인자로 떠오르는 패왕[7]
카타르 왕조의 인수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성장을 이뤄낸 유럽의 신흥 강호.
목차
1 개요
프랑스 리그앙에 소속되어 있는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수도 파리이고 홈 구장으로는 파르크 데 프랭스를 사용하고 있다. 애칭으로 페에스제(PSG), 파리지앵 등이 있다.
1974년 이후 한 번도 강등을 겪지 않고 리그앙에 잔류하고 있으며, 리그 5회 우승, 6회 준우승과 프랑스의 FA컵인 쿠페 드 프랑스 8회 우승을 차지한 전통적인 강팀이다. 특히 1991년부터 카날 플뤼스(CANAL+)[8]가 인수하면서 1990년대 내내 전성기를 누렸고, 2011년부터는 카타르 국왕이 구단주가 되면서 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왼쪽 경기장이 홈 구장인 파르크 데 프랭스. 오른쪽 경기장은 스타드 장-부앵으로 럭비 팀인 스타드 프랑세의 홈 구장.
2 역사
PSG의 40년 역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2010)
창단 연도는 1970년으로 리그 내의 다른 유명 클럽들에 비해 늦게 창단되었다. 리그앙이 출범한 시기인 1970년에 덩달아 창단된 것인데 이전부터 파리를 연고로 하고 있던 여러 소규모 구단들의 연합체로 시작되었다.[9] 프랑스의 수도를 연고지로 한 덕분에 창단 후 팬들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곧바로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승격하고, 1978년에 취임한 프란시스 보렐리 회장에 의해 팀은 빠르게 성장하여 루이 페르낭데, 도미니크 바라텔리, 도미니크 로슈토 등을 축으로 1981/82 시즌에 팀은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었고, 1985/86 시즌에는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취임하고 옥세르로부터 조엘 바츠를 영입하여 창단 16년 만에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앙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다만 파리의 첫 유러피언 컵에선 체코슬로바키아의 FK 비트코비체한테 패하면서 1라운드 만에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90년대가 되자 파리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1991년에 카날 플러스 방송사가 클럽을 인수한 뒤, 공격적인 투자로 강팀이 되어 1992-93 시즌 UEFA 컵과 1993-94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잡고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특히 1994년에 파리는 통산 두 번째 리그앙 우승을 달성하였는데, 파리의 최대 라이벌인 마르세유가 전 시즌에 벌인 승부 조작으로 인해, 우승팀인 파리에 이어 마르세유가 준우승을 했음에도 전 시즌 리그앙 우승 타이틀 박탈과 함께 강등을 당하면서 파리 입장에선 겹경사를 치렀다. 그리고 대망의 1994-95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PSG는 8년 전 첫 출전 때와는 180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조별 리그에서 같은 조였던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홈, 원정 안 가리고 모두 이겼고, 뮌헨전 2승을 포함하여 6전 전승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8강에 진출, 바르샤까지 쓸어버리며 준결승 진출을 달성하였다. 준결승전에선 밀란에게 완패를 당했지만, UEFA 컵, 컵 위너스 컵, 챔피언스 리그에서 연속으로 준결승 진출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996, 1997년에는 2연속 컵 위너스 컵 결승 진출에 힘입어[10] UEFA 공인 클럽 랭킹 1위를 차지했다.[11] 그러나 1998년에 미셸 드니소 회장이 떠난 뒤 팀은 재정과 성적면에서 하락세로 접어드는 국면을 맞이했다. 이에 따라 팀을 주름잡던 스타 선수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빚은 122억 유로로 뛰어올랐다. 이후 2006년 카날+가 콜로니 캐피털, 버틀러 캐피털 파트너스, 모건 스탠리에 각각 지분을 매각하면서 재정 문제는 겨우 해결했다. 2000년대 내내 쿠프 드 프랑스에선 세 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정작 리그에서는 이름값에 걸맞는 포스를 보이지 못했다.
한동안 그저 그런 성적을 낸 팀은 2010-11 시즌을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클로드 마켈렐레나 그레고리 쿠페, 루도빅 지울리 같은 노장 선수들을 참 잘 활용하면서 마마두 사코, 클레망 샹톰과 같은 재능 있는 유스 출신 선수들도 동시에 1군으로 올라와서 주전 확보를 하였으며, 특히 AS 모나코에서 이적해 온 안데르손 네네의 사기적인 활약이 부흥에 큰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10-11 시즌 네네가 윙어 자리에서 엄청난 활약을 뽐내던 전반기의 PSG는 거의 우승 후보 1순위급 경기력을 선보였다. 다만 스쿼드 뎁스가 얇은 관계로 후반기에 들어 거의 전 경기 풀타임을 뛰던 네네의 과부하로 인하여 팀 전체의 경기력도 현저히 감소하여 끝내 4위로 추락했다.
2.1 무한의 파워 오일 머니
2011년 6월, 하마드 알 타니가 QSI를 통해 돈을 투자하여 전 구단주인 미국 콜로니 캐피탈로부터 PSG 지분의 70%를 소유하고 대주주 겸 PSG의 구단주가 된다. 이로 인해 파리 생제르망은 엄청난 재력을 확보하였고,[12] 실제로 그 재력을 유감없이 쏟아붓고 있다. 알 타니가 QSI를 통해 PSG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600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라고 하며 EPL의 리얼부와 함께 쇼 미 더 머니를 치고 있다.
그리고 2011-12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슈퍼 스타들을 영입하기 시작, 2012-13 시즌을 전후로 화려한 전력을 구성했다. 공격진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에제키엘 라베치, 제레미 메네즈, 하비에르 파스토레, 안데르손 네네, 중원에 제2의 피를로라 불리는 마르코 베라티, 이탈리아 국가 대표 중앙 미드필더 티아구 모타, 마티유 보드메, 블레즈 마투이디, 모하메드 시소코, 그리고 수비진에 막스웰, 치아구 시우바, 알렉스, 크리스토프 잘레,[13] FM 국민 수비수 마마두 사코 등이 포진했다. 네임 밸류만 따지자면 어느 빅 리그에서든 우승에 도전해볼 수 있으며 라 리가는 많이 어려워 보인다만 챔스도 4강 정도는 족히 노려볼 만한 수준으로 팀이 탈바꿈되었다. 다만 한꺼번에 포풍 영입을 해댄지라 조직력이 바닥을 기었고, 그 때문에 한동안 공격은 즐라탄, 수비는 시리구가 다 하는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때 레오나르두 단장이 레알 마드리드의 카카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었지만, 카카가 끝내 마드리드에서 큰 활약을 보이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질 뿐더러 주급도 어마어마한 수준인지라 결국 영입을 포기했다. 카카 본인도 마드리드를 떠난다면 다른 곳은 거의 생각치 않고 자신의 친정 클럽인 AC 밀란만을 원하는 상황이었다. 근데 카카가 주급 반토막을 내도 밀란에게는 부담스러운 주급이라는 게 함정[14]
한편, PSG는 인테르의 전 감독이자 세리에 짬밥이 꽤 있는 레오나르두 단장의 취향 때문인지 세리에 A 출신 선수들을 많이 노리는 편인데, 콰밥만훈 이후로 또 다른 대괄호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마우로 사라테,[15] 유벤투스의 아마우리,[16] 쩌리엘로란 별명을 가진 AS 로마의 마르코 보리엘로 영입을 노린다는 기사가 나오자, 세리에매니아 같은 세리에 관련 커뮤니티들에게 '잉여들을 수거해 주시는 레오님'으로서 찬양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다 옛말이 되었고, 현재 한국의 세리에 커뮤니티들의 일반적인 여론은 레오나르두와 PSG를 매우 싫어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AC 밀란의 에이스 센터백이자 현 유럽 최고의 센터백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치아구 시우바를 한화 620억에 달하는 거액에 영입해 갔고, AC 밀란을 먹여살렸던 '세리에 킹'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약 320억 가량에 영입해 갔으며, 나폴리의 그 유명한 '삼각 편대'의 일원인 에세키엘 라베시까지[17] 데려가면서 쩌리 수거자는커녕 에이스 수집자로서 세리에를 말려 죽이려 든다고 신나게 까는 중. 다만 PSG가 무슨 세리에에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며 그저 단장이 레오나르두에 감독이 안첼로티라서 세리에 위주로 선수를 수급했던 것뿐이다. 레오나르두가 인테르 감독하면서 못 사본 선수들 다 사려는 듯 만약 PSG 감독이 벵거였다면 베... 벤트너를
2.1.1 2011-2012 시즌
2011-2012 시즌부터 파리 생제르망은 본격적인 전력 강화돈지랄를 시작했는데 인터 밀란의 감독이었다가 사임한 레오나르두를 거의 영입 전권을 가진 단장으로 영입한 뒤, 수많은 선수들을 영입했다.[18]
먼저 스타드 렌 FC의 주전 골리였던 니콜라 두셰가 프리로 풀린 것을 가볍게 자유 계약으로 영입한 것을 기점으로, FC 로리앙에서 10-11 시즌 22골을 넣으며 리그앙 득점 2위를 한 케빈 가메이로를 1100만 유로에 영입했다. 7월에는 세르비아 출신 수비수이자 리그앙 짬밥이 높은 밀란 비세바치를 발랑시엔 FC으로부터 400만 유로 정도에 영입했고, 유벤투스의 수비형 미드필더 모하메드 시소코를 700만 유로에 영입, 팔레르모의 주전 골리이자 제 2의 부폰 소리를 듣던 살바토레 시리구를 350만 유로에 영입,[19] 거기에 AS 로마의 윙어 겸 포워드였던 제레미 메네즈도 800만 유로에 영입하였다.[20]
그리고 역시 FM 사기캐 11-12 시즌 여름 이적 시장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던 하비에르 파스토레 사가에서 첼시, 인터 밀란, 맨체스터 시티를 제치고 4500만 유로에 영입했다.[21] FM에서 고를 만한 팀이 또 늘어났다!
11-12 시즌 초반부에 파스토레와 마찬가지로 큰 화두였던 나폴리의 주전 스트라이커 에딘손 카바니를 7500만 유로에 사겠다는 루머도 돌았고 그보다도 더 강하게 나폴리의 에이스 공격형 미드필더인 마렉 함식을 영입한다는 링크도 떴으나 두 선수 모두 나폴리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며 재계약을 맺어 이 루머들은 금방 사그러들었다.
11-12 시즌 유로파 리그 48강전에선 아틀레틱 빌바오와 1승 1패, FC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와 1승 1패를 주고받았으나 조 꼴찌인 슬로반 프라하(체코)에게 1승 1무를 당한(?) 게 화근이 되어 승점 1점 차로 밀려 빌바오와 잘츠부르크 다음인 3위로 탈락했다. 일단 이 부분은 유로파 리그는 거의 포기하고 리그에 더 신경쓴 부분이 컸다. 유로파 리그 경기에는 대부분 1.5군으로 경기에 나섰는데 특히 파울레타의 은퇴 이후, PSG의 고질적인 문제가 돼 버린 미약한 스트라이커진 화력이 유로파 리그에서도 파리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 할머니도 넣을 상황에서 날려먹으니... 그렇게 어찌어찌 전반기 리그 1위에 올라섰지만(리그 19라운드) 콩부아레 감독이 잘렸다.[22]
그 후임으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부임하여 리그 1위를 계속해서 유지했으나 후반기에 들어서 연이은 무재배로 인하여 열심히 뒤를 추격하던 몽펠리에 HSC에게 리그 1위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32라운드까지는 2점차로 그 뒤를 따라붙을 수 있었으나 이후, 3점차까지 승점이 벌어졌고 37라운드에서는 여전히 몽펠리에에게 3점차로 뒤진 2위를 기록하였다. 마지막 38라운드에서 몽펠리에는 비기기만 해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반면, PSG는 38라운드에서 로리앙을 상대로 크게 이기고 몽펠리에가 38차전 AJ 옥세르 원정에서 반드시 져야만 PSG가 우승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 경우 승점은 동률이 되지만 득실차에서 PSG가 우위였기에 마지막 로리앙 원정을 이기고 몽펠리에가 옥세르에게 패한다면 역전의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옥세르는 이미 강등이 확정되어서 마지막 경기에 총력을 다할 동기가 떨어져 있었던 반면, 리그 테이블 14위였던 로리앙은 다른 클럽들의 마지막 경기 여부에 따라 최악의 경우, 18위로 강등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안방에서 목숨 걸고 PSG를 상대해야 할 동기 부여가 단단히 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처음부터 파리 생제르망이 상당히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애당초 리그 개막전에서 파리가 로리앙에게 홈에서 어이없게 패배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듯 결국 마지막 38라운드에서 둘 다 2:1로 이기는 바람에 몽펠리에가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프랑스 1부 리그 우승을 거뒀고 PSG는 리그 2위 자리에 머무르며 타이틀 하나 얻지 못하고 그저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1.2 2012-2013 시즌
12-13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식에서는 A 조에 들어갔는데 포르투갈의 FC 포르투, 우크라이나의 디나모 키예프, 크로아티아의 디나모 자그레브와 한 조에 들어갔다. 그나마 할 만한 조이기는 하지만, 리그앙에서는 8월까지 기대 이하의 3무라는 무 재배 성적이나 내놓고 있어서 챔스에서 잘할 거라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리그앙 4라운드에서, 09-10 시즌 미카엘 랑드로의 릴 OSC 이적 이후 릴 원정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던 파리 생제르망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살바토레 시리구의 활약에 힘입어 간신히 승리하면서[23] 어느 정도 분위기 반등에는 성공하며 7차전까지 리그 2위로 1위인 마르세유를 승점 3점차로 추격 중이다.
1차전 챔피언스 리그 홈 경기에서는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뒀다. 그렇지만 2차전 FC 포르투 원정에서 0:1로 패배하면서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다. 3차전 디나모 자그레브 원정에선 2:0으로 승리했다. 4차전 디나모 자그레브전 홈 경기에서는 즐라탄의 4어시스트 활약으로 4:0으로 승리하여 최소 3위를 확보, 설령 16강 진출이 좌절되더라도 유로파 리그로는 나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5차전 디나모 키예프 원정을 2-0으로 이기면서 승점 12점으로 최소 조 2위를 확정지으며 16강에 진출했고 마지막 6차전 예선인 포르투전을 이기면서 조 1위로 역전하며 마무리했다. 16강전 상대는 발렌시아 C.F..
1차전 원정에서 전반에 2골을 넣으면서 2:1로 이겨 2차전인 안방 경기에서 한층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2차전에서는 1:1로 비기면서 무난하게 8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8강 대진 추첨 결과 FC 바르셀로나와 격돌하게 되었다. 1차전 안방 경기에선 2:2로 비겼다. 메시에게 1골을 실점한 뒤 후반전에 이브라모비치의 골로 동점을 만들었고[24] 94분쯤에 터진 마튀디의 골발데스의 삽질로 겨우 비긴 셈이다. 그리고 원정 2차전에서 패스 미스와 결정력 부족으로 흔들리는 바르사를 상대로 파스토레가 선취골을 뽑아내었다. 그러나 후반 61분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 있던 메시가 들어오자 갑자기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페드로에게 동점 골을 허용하였다. 1:1로 비기면서 2무를 거뒀지만 결국 원정 다득점 우위로 팀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로 만족하며 바르셀로나에게 4강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하지만 리그 36라운드 올랭피크 리옹 상대로 후반 8분 제레미 메네스의 선제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 2위 마르세유와의 승점차를 7점차로 벌려 남은 두 경기의 결과와 관계없이 리그 정상에 올랐다. 통산 3번째 우승이자 무려 19년 만에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우승해서 그런 건지 우승 퍼레이드에서 PSG 팬들이 무질서한 모습을 보이다 못해 결국 폭동을 일으켰다. 이 내용은 당당히(?) 해외 토픽으로 소개되며 국제적인 망신을 일으켰다. 이걸 보고 파리지앵이 낭만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인 안첼로티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갈 예정이라서 감독이 비었다. 파리 생제르망 측은 거스 히딩크를 새로운 감독으로 노리고 있지만 히딩크가 감독으로 있는 FC 안지 마하치칼라 측이 1년 계약이 남았다며 반대하고 있으며 안지도 재정적으로 튼튼하기에 생제르망으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덕분에 안첼로티 영입도 미뤄져서 레알 마드리드도 난감해하고 있다. 결국 히딩크가 안지에 남기로 하면서 로랑 블랑 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했다.
2.1.3 2013-2014 시즌
시즌 개막을 한 달여 앞둔 2013년 6월 25일, 아버지인 하마드의 양위 선언에 따라 구단주인 타밈 왕세자는 카타르의 왕(!)이 됐다. 이제는 돈 무한
로랑 블랑 감독을 새로 영입한 PSG는 프리 시즌부터 팀 내 핵심 수비수이자 주장인 치아구 시우바의 엄청난 이적설에 휘말렸다. FC 바르셀로나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기 때문인데 결국 본인과 에이전트, 그리고 구단 모두 NFS을 때리면서 일단락되었다.[25] 자금줄이 엄청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오버 페이에 가까운 가격으로 여러 선수들과의 링크가 났다. 가장 유력했던 것은 다비드 루이즈와 AS 로마의 어린 수비수 마르퀴뇨스 등이 있었다. 거기에 공격수는 즐라탄의 노쇠화 및 여러 클럽들에 대한 이적설 등을 대비하기 위한 공격수 영입에 물독을 들였고, 가장 물망에 오른 것은 SSC 나폴리의 에딘손 카바니였는데 나폴리가 카바니의 바이아웃만을 고수하는 바람에 이적 시장의 다른 큰 손인 맨시티나 첼시도 쉬이 지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PSG는 거리낌 없이 바이아웃을 질러 버렸다. 흠좀무. 바이아웃은 무려 6400만 유로인데 그것을 지불해 버렸으며, 결국 7월 17일 공식적으로 에딘손 카바니의 영입을 확정이었다. FFP?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챔피언스 리그에서 올림피아코스, 벤피카, RSC 안더레흐트와 C조가 되었는데, 4연승으로 당연히 손쉽게 16강을 확정지었다. 남은 1경기 여부랑 상관없이 조 1위 확정. 16강전에선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맞붙어 1차전 원정에서 망폭격을 가해 4:0 대승을 거둬 8강 진출에 유리하게 되었다. 2차전 홈에서 시드니 샘에게 빠른시간에 선제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2:1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리그에서도 34경기 25승 7무 2패로 현재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AS 모나코랑 10점이나 승점이 벌어져서 차츰 리그 2연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패는 에비앙 원정에서 0-2, 올랭피크 리옹 원정에서 당한 0-1패.남은 4경기는 강등권인 18위 소쇼,하위권인 14위 몽펠리에,13위 스타드렌 경기, 그리고 딱 1경기 고비라고 해야할 3위 릴과의 원정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36차전 안방경기, 스타드 렌 경기에서 1-2로 역전패하면서 3패를 당했지만 모나코가 갱강에게 1-1로 비기면서 승점 7점차를 남겼기에 남은 2경기 여부와 상관없이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4번째 리그 우승이자 팀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2연패 우승.
컵대회에선 FA컵인 쿠페 드 프랑스에선 8강에서 몽펠리에에게 1-2로 져서 탈락했으며 리그컵인 쿠페 드 라 리그에서 결승에 진출하여 올랭피크 리옹과 맞붙어 2-1로 이겨 5년만에 4번째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며 처음으로 리그와 컵대회 우승, 2관왕에 올랐다. 팀 역사상으로도 94-95시즌 컵더블 2관왕 우승 이후로 역대 2번째 2관왕 우승 기록.
챔스 8강 상대는 첼시 FC로 결정되었다. 두 팀 모두 신흥 강호 팀이고, 주제 무리뉴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재회도 흥미로운 부분. 1차전에서는 다수의 예상을 깨고 3:1로 첼시를 아주 박살냈다.
그러나 2차전에서 즐라탄의 결장 상태에서 0-2로 패배하면서 이번에도 8강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후반 몇 분 남겨두고 0-1로 지고 있었는데 이대로 경기 끝나면 생제르망이 2번째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라갔다. 하지만 생제르망은 공돌리기를 하며 공격하지 않고 시간 끌기로만 경기를 진행하다가 후반 87분, 총력전을 벌이던 첼시 선수 뎀바 바에게 통한의 골을 허용하며 3:3 동률이 되었지만 원정득점 우위로 첼시에게 4강행을 넘겨줘야 했다. 여담으로 경기 전 라베찌가 '즐라탄 없이도 이길 수 있다'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는데 경기 후 블랑 감독은 '즐라탄 공백이 아쉽다'는 인터뷰를 했다.(..)역시 입은 아무나 털 수 있는게 아닌 듯하다. 2년 전 카바니와 같이 극장 관전하더니 이번에도 역관광
그렇긴 해도 2시즌 연속 8강이었고 2시즌 연속 원정다득점에 망한 건 안자랑 그리고 PSG를 이긴 팀이 2년 연속 결승 못간것도 안자랑올 시즌 4강까지 갈뻔한 걸 스스로 망쳐 아쉽긴 해도 다음 시즌 4강은 기대해볼만하던 걸 생각하면 나쁜 시즌은 아니었다. 한동안 챔피언스리그 구경도 못하던 팀이 2시즌 8강이라는 점도 그 나름 만족할 성과이고 돈다발로 같이 무장한 맨시티가 16강조차 연이어 못가던 걸 생각해보자,그러다가 맨시티는 이번 시즌에서야 겨우 16강에 올라갔네. 리그컵 우승을 이뤘고 리그 우승도 확정그런데 우습게도(?) 같은 시즌 맨시티도 리그컵과 리그 우승, 2관왕을 차지하며 파리 생제르망과 같다지었으니 올 시즌은 그럭저럭 꽤 좋았던 성과인 셈. 대신 다음 시즌도 또 챔피언스 8강이라면?
2.1.4 2014-2015 시즌
여름 이적 시장부터 FFP 룰 징계로 이적 자금 제한 등의 경고를 받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거 없고(...) 다비드 루이스를 첼시로부터 50m 파운드에 영입하면서 이적 자금 제한 한도치를 한 선수에게 다 써버리는 패기를 시전했다(...). 그리고 다비드 루이스는 월드컵 4강전과 3/4위전에서 엄청난 삽질을 했다.
이후 잠잠하더니 레알의 앙헬 디 마리아에게 60m 유로로 근접했다는 기사들이 나오는 중. 아직 루머 수준이지만 징계를 받고도 두 선수에 120m 유로 가까이 쓸 수도 있는 행보 때문에 타 클럽들에게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다. 일단 파리에 카타르 자본이 투입된 이후로 플라티니 UEFA 회장이 편애하는게 눈에 띄게(...) 보이는지라...
14-15시즌 챔피언스리그 32강 조추첨에서 FC 바르셀로나,아약스, 아포엘과 맞붙게 되었다. 보통 분석으로는 아무래도 바르셀로나와 1,2위를 다툴 전망.
그리고 1차전 아약스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2차전 바르셀로나 홈 경기에서 즐라탄과 치아구 시우바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난타전끝에 3-2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아포엘 원정은 1-0으로 이기면서 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5차전까지 4승 1무를 기록하며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1위로 챔피언스리그 16강을 확정지었다. 다만 마지막 6차전이 바르셀로나 원정이라 고전이 예상된다. 역시 16강이 확정되었지만 16강전 조추첨을 위하여 조1위가 유리하니 바르셀로나가 필사적으로 나올게 뻔하다. 결국 1-3으로 패하면서 조 2위로 16강에 진출, 16강전에서 첼시 FC랑 맞붙게 되었다.
리그에서는 무승부를 좀 많이 내면서 리그 2위를 기록 중이다.11차전까지 성적은 5승 6무. 1위인 올랭피크 마르세유에게 4점차로 뒤쳐져 있다가 안방경기에서 승점 31점인 마르세유를 2-0으로 이기면서 14차전까지 8승 6무 승점 30점으로 1점차로 바싹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중하위권인 갱강 원정에서 0-1로 패하고 무승부가 많아서 3위로 떨어진채로 2014년을 끝냈다. 19차전까지 10승 8무 1패를 기록 중인데 리그앙 팀에서 가장 무승부가 많다. 1위 마르세유와 3점차, 2위 리옹과 1점차이니 추격 가능성은 많지만 2점차로 추격중인 생테티엔도 있다. 하지만 그 뒤 상승세를 타며 마르세유를 3위로 밀어냈고 28차전에서는 1위 리옹과 단 1점차로 바싹 추격하며 리그 3연패 우승을 노리고도 남을 상황이다. 결국 36차전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며 처음으로 리그 3연패 우승을 거뒀다.
컵대회에서는 리그컵인 쿠페 드 라 리그에서 바스티야를 4-0으로 제치고 우승했으며 쿠페 드 프랑스에서도 결승에 올라 옥세르랑 경기를 가지게 된다. 우승하면 리그 트레블을 달성하는 셈. 그리고 1-0으로 이기고 우승하면서 트레블을 달성했다.
더불어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홈에서 첼시랑 1-1로 비기며 불리한 입장에 처했고, 2차전 원정에서 즐라탄이 전반전에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퇴장당하며 매우 큰 위기에 직면했었다. 그러나 10명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첼시에게 앞서가는 경기력을 보였고, 후반전에 게리 케이힐에게 선제골을 실점했으나 첼시에서 이적해온 다비드 루이스의 동점골로 연장까지 끌고갔다. 그리고 연장 전반에 치아구 시우바의 핸들링으로 에당 아자르에게 페널티킥을 실점했지만, 연장 후반 치아구 시우바의 속죄 헤딩골로 스코어는 동점이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앞서나갔다. 결국 그 점수를 지켜내면서 극적으로 2-2로 비겨 8강에 진출했다. 비록 즐라탄의 퇴장과 베라티의 경고누적으로 8강 1차전에 두명이 나올 수 없는 뼈아픈 전력손실이 있지만 매우 짜릿한 무승부였다. 게다가 전시즌 다득점으로 밀려 패배를 안겨준 첼시에게 제대로 똑같이 설욕했다. 이로서 3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라가며 팀 역사상 최고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연속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다만 이번에는 4강 이상 고지를 넘어설지 관심사.[26] 같은 돈다발 구단인 맨시티가 챔스리그 16강에서 연이어 멈춰서고 고전하는 거랑 훨씬 분위기가 좋긴 하지만
그렇게 8강에 갔더니 만난 상대가 FC 바르셀로나다. 한때 바르셀로나와 지겹게 챔스에서 맞붙었던 AC 밀란에 이어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형제 구단이 될 기세다. 결국 홈에서 1-3,원정에서 0-2로 지며 이번 시즌도 8강을 넘지못했다. 이전까지 파리는 역대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샤와 2승 3무 2패였지만 이 패배로 2승 3무 4패가 되었다.
올시즌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여전히 8강을 넘지 못해 아쉽긴 했어도 리그와 쿠프 드 라 리그, 쿠프 드 프랑스에서 모두 우승을 이뤄내면서 2014-15 시즌 리그 트레블을 완성하였다. 더불어 팀 역사상 처음으로 거두는 트레블 우승이다.
2.1.5 2015-2016 시즌
패왕
무시무시한 선수층으로 리그 앙의 모든 팀을 압살하다.[27]
챔스 조 추첨에서 레알 마드리드, 샤흐타르 도네츠크, 말뫼 FF와 한 조를 이뤘다. 상대들이 만만치 않은지라 16강은 장담 못하는 상황, 다만 레알을 제외하면 다른 팀 들과는 전력상 우위이기에 진출 가능성은 높다.
예상대로 파리가 말뫼에 2-0, 샤흐타르에 3-0으로 손쉽게 승리를 거두면서 레알과 조 1위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레알과의 2연전에서 1무 1패를 당하면서 조 2위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결국 5차전까지 3승 1무 1패로 거의 2위 확정으로 16강에 나가게 되었다. 뭐 6차전에서 레알이 홈경기인 말뫼전을 진다면 역전이 되겠지만 가능성이 없다보니. 결국 2위 확정. 그리고 16강에서 첼시랑 또 만났다.
리그에선 현재 적수가 없어서 리그 4연패가 예상된다. 14차전까지 12승 2무 무패로 1위를 달리고 있는데 2위인 올랭피크 리옹과 승점차가 13점이나 벌어졌기 때문. 18라운드까지 15승 3무 무패행진이며 2위로 새롭게 추격중인 앙제도 17점이나 승점차가 벌어져있다. 리그 1위가 무패행진 중인 경우는 유럽 리그 랭킹 10위권에서 현재 포르투와 파리다. 19라운드가 끝난 결과 2위 모나코와 승점 19점차로 압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겨울 휴식기가 끝나고 열린 후반기 첫경기에서도 바스티아를 상큼하게 2-0으로 이기면서 리그앙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압도적인 수비력으로 경기당 실점률이 0.5도 안되는데다가 산술적으로 승점 100이상까지 가능한 상황.
21라운드에서는 즐라탄의 골로 툴루즈 FC를 1-0으로 제압했다. 22라운드 역시 리그 3위인 앙제를 상대로 5-1 대승.
23라운드엔 즐라탄이 2골을 득점하며 생테티엔에게 2-0으로 승리했다. 현재 20승 3무, 58득 10실. 2위 모나코와 승점 24점차. 모나코와 파리 모두 전승을 해도 31라운드에 우승이 확정된다(...). 물론 모나코가 미끄러지면 더 빨리 확정을 짓게 된다. 아마 유럽 축구 약사상 최단기로 리그 우승을 하지 않을까 싶다.
24라운드에서도 로리앙을 3-1로 잡았다. 25라운드 마르세유 원정에서는 상당히 고전했으나 찬스를 잘 살리며 결국 2-1로 승리.
26라운드 릴전에서는 3일 뒤의 챔피언스리그를 대비하여 후보 선수들을 많이 내보냈고, 0-0 무승부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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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니가 또
28라운드에서 리옹에게 1:2로 패배하며 무패 행진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2위와는 20점이 넘는 어마어마한 승점차를 유지하고 있다.
30라운드 트루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이브라히모비치의 4골 1도움 대활약에 힘입어 9:0으로 압승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통산 6번째 리그 우승이자 4시즌 연속 우승.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에선 카바니의 교체카드가 적중하며 첼시 FC를 2-1로 이기고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원정골을 내줬기에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었지만 2차전 원정경기도 2-1로 이기며 8강에 진출했다.
컵대회인 쿠프 드 프랑스에서는 16강에 진출하여 리옹과 맞붙게 되었다.
쿠프 드 라 리그에서는 결승전까지 진출, 릴과 만난다. 참고로, 올해도 우승한다면 3년 연속 우승.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와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리얼 돈지랄 매치 맨시티보다 아무래도 유리하다고 분석되었으나 홈에서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는 골까지 더해 2:2로 비겼다. 그리고 원정에서 0:1로 패하면서 구단 역사상 두 번째 UCL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오히려 맨시티의 사상 첫 4강 진출 제물이 되어버렸다.
쿠프 드 라 리그 결승전에선 릴 OSC를 제압하며 3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는 라이벌 마르세유와의 르 클라시크 경기에서 4:2로 승리하면서 2년 연속 자국 리그 3관왕을 차지했다.
2.1.6 2016-2017 시즌
시즌 종료 직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팀을 떠날 것으로 예상됐고, 결국 더블을 기록하여 화려하게 PSG를 떠나게 되었다.
한편, 로랑 블랑 감독이 다음 시즌 PSG와 결별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위약금도 위약금이지만 차기 감독으로 디에고 시메오네, 안드레 빌라스-보아스가 거론되었는데 세비야 FC의 유로파 리그 3연패를 달성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급부상하기 시작한다. 이후 에메리 감독과 개인 협상을 완료하고 600만 유로의 연봉과 세비야에게 지불한 200만 유로의 위약금으로 차기 감독으로 사실상 확정적이다. 결국 6월 27일, 블랑 감독이 PSG 감독직에서 공식 사임하면서 에메리의 PSG 부임이 임박하였고 29일 에메리 감독의 선임을 발표하였다.
7월 2일, 에메리와 함께 세비야에서 뛰던 그제고슈 크리호비악의 영입 오피셜이 떴다. 충공깽 수준의 뜬금포. 같은날 벨기에산 오른쪽 풀백인 토마 뫼니에 영입도 발표되었다. 페네르바체로 이적한 흐레호리 판 데르 빌의 대체자로 보인다.
8월 7일, 올랭피크 리옹과 가진 슈퍼컵에서는 4-1로 압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는 아스날 FC, FC 바젤, 루도고레츠와 한 조가 되어 비교적 쉬운 대진을 받게 되었다. 지난 시즌 조별리그에서의 레알 마드리드와의 1위 경쟁과 비슷하게 이번엔 아스날과 1위 경쟁을 할 것이 예상된다.
리그에서는 초반에 약간 부진하다. 4라운드 밖에 안했으니 속단은 이르지만, 2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리그 4위로 처졌다. 모나코가 3승 1무를 거두고 있는데 작년 시즌에 연승을 달리던 거랑 다른 모습이다.
챔스 조별리그 1차전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는 카바니의 엄청난 삽질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카바니는 골키퍼와의 1:1 찬스를 무려 네 번이나 날려먹으면서 다른 의미로 경기를 지배했고, 특히 빈 골대에 못 넣은 것과 골대 앞 헛발질은 대단한 수준. 이로서 파리는 최소 2-1 이상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비기게 되면서 아쉬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리그 5라운드 캉 원정경기에서는 카바니가 4골을 퍼부으며 6:0 승에 기여했고 팀은 같은 승점 10점에서 골득실차가 확 벌어져 단번에 2위로 뛰어올랐다.
이어진 디종전에서도 3-0 승리를 거뒀다. 2연승에 힘입어 1위로 치고 올라가나 했으나...
툴루즈 원정경기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며 0-2로 완패했다(...) 오리에의 퇴장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모타의 패스미스로 한골을 더 헌납하며 리그 7경기만에 벌써 2패째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정도의 무기력한 무득점 패배는 14-15 시즌 갱강전, 15-16시즌 모나코전 빼고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3 르 클라시크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이를 가는 라이벌 관계이다. PSG와 마르세유의 경기는 프랑스 최고, 최대 매치로서 르 클라시크라고 불린다. 원래부터 PSG와 마르세유 서포터들이 상당히 난동을 잘 부리는 것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특히나 르 클라시크 시기에는 두 서포터 집단이 그야말로 광기를 발산한다. 일례로 양 팀 서포터즈의 충돌로 인하여 PSG팬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르 클라시크 때는 아예 원정 서포터즈를 경기장에 출입시키는 게 금지되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28]
자세한 내용은 르 클라시크 문서 참고.
4 역대 스폰서
4.1 메인 스폰서
1986~1995년까지는 한 유니폼에 두 개의 스폰서를 박은 바 있었다.
- 몬트리올[29] (1972~1973)
- 캐나다 드라이 (1973~1974)
- RTL (1974~2001[30])
- CANAL+ (1986~1988)
- 라 생크[31] (1988~1989)
- TDK (1989~1990)
- 알랭 아플루[32] (1990~1991)
- 코모도어 (1991~1994)
- 뮐러[33] (1991~1992)
- 튀르텔[34] (1992~1995)
- 세아트 (1994~1995)
- 립토닉 (1994~1995, 챔피언스리그 한정.)
- 오펠 (1995~2002)
- SFP (1995~2010[35])
- exity (2001~2002, 쿠프 드 프랑스 한정.)
- 보이뉴 텔레콤 (2001~2006, 쿠프 드 라 리그 한정.)
- 톰슨 멀티미디어[36] (2002~2006)
- 에미레이트 항공 (2006~ )
- Caisse D'Epargne (2006~2008, 쿠프 드 프랑스 한정.)
- PMU (2010~ , 쿠프 드 프랑스 본선 한정.)
- CAF (2014~2015,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 한정.)
4.2 키트 스폰서
- 르꼬끄 스포르티브 (1970~1975/1976~1977/1978~1986)
- 코파 (1975~1976)
- 포니 (1977~1978)
- 아디다스 (1986~2006[37])
- 나이키 (1989~ )
5 주요 출신 선수
꽤 유명한 선수들이 많이 거쳐간 팀으로 1980년대에는 사페트 수시치, 도미니크 로슈토, 조엘 바츠, 루이 페르낭데 등이, 1990년대에는 다비드 지놀라, 조지 웨아, 베르나르 라마, 폴 르갱 등이 활약했다. 이후 첼시 FC, 리버풀 FC, 아스날 FC, 레알 마드리드를 거친 희대의 저니맨 니콜라 아넬카가 뛰었으며,[38] 호나우지뉴도 이 클럽에서 뛰면서 2002 월드컵 활약을 바탕으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당시 호나우지뉴는 PSG의 에이스긴 했지만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 탓에 당시 PSG 감독과 마찰을 빚었으며, 그러한 불화로 인해 생각보다는 적은 값에 바르셀로나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외계인이 되었다.[39]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의 원조 마지우개 클로드 마켈렐레도 말년을 이 곳에서 보냈으며, 그 외에도 포르투갈 출신 스트라이커 파울레타,[40]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가브리엘 에인세, 나이지리아의 플레이 메이커 제이제이 오코차 등이 있다.
2013년에는 은퇴를 앞둔 데이비드 베컴이 한시즌 동안 팀에서 뛰기도 했다. 2012년에 AC밀란에서 뛰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프랑스 리그에 등장해 PSG를 리그 초강팀으로 만들고 불과 4시즌만에 PSG구단 전설이 되어 떠났다.
2016년 현재 파리 생제르망의 대표적인 선수들로는 치아구 시우바, 마르코 베라티, 하비에르 파스토레, 티아구 모타 등등을 꼽을 수 있다.
6 선수 명단
파리 생제르망 FC 2016-17시즌 스쿼드 | ||||||
등번호 | 이름 | 영문이름 | 포지션 | 국적 | 생년월일 | 신체 조건 |
1 | 케빈 트라프 | Kevin Trapp | GK | 30px | 1990년 7월 8일 | 189cm |
2 | 치아구 시우바(주장) | Thiago Silva | DF | 30px | 1984년 9월 22일 | 182cm |
3 | 프레스넬 킴펨베 | Presnel Kimpembe | DF | 30px | 1995년 8월 13일 | 188cm |
4 |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 | Grzegorz Krychowiak | MF | 30px | 1990년 1월 29일 | 186cm |
5 | 마르키뉴스 | Marquinhos | DF | 30px | 1994년 5월 14일 | 181cm |
6 | 마르코 베라티 | Marco Verratti | MF | 30px | 1992년 11월 5일 | 168cm |
7 | 루카스 모라 | Lucas Moura | MF | 30px | 1992년 8월 13일 | 170cm |
8 | 티아고 모타(부주장) | Thiago Motta | MF | 30px | 1982년 8월 28일 | 187cm |
9 | 에딘손 카바니 | Edinson Cavani | FW | 30px | 1987년 2월 14일 | 184cm |
10 | 하비에르 파스토레 | Javier Pastore | MF | 30px | 1989년 6월 20일 | 187cm |
11 | 앙헬 디 마리아 | Angel Di Maria | MF | 30px | 1988년 2월 14일 | 180cm |
12 | 토마 뫼니에 | Thomas Meunier | DF | 30px | 1991년 9월 12일 | 190cm |
14 | 블레즈 마튀이디 | Blaise Matuidi | MF | 30px | 1987년 4월 9일 | 175cm |
15 | 곤살루 게드스 | Goncalo Guedes | FW | 30px | 1996년 11월 29일 | 179cm |
16 | 알퐁스 아레올라 | Alphonse Areola | GK | 30px | 1993년 2월 27일 | 191cm |
17 | 막스웨우 | Maxwell | DF | 30px | 1981년 8월 27일 | 176cm |
18 | 지오바니 로 셀소 | Giovani Lo Celso | MF | 30px | 1996년 4월 9일 | 177cm |
19 | 세르주 오리에 | Serge Aurier | DF | 30px | 1992년 12월 24일 | 173cm |
20 | 레뱅 퀴르자와 | Layvin Kurzawa | DF | 30px | 1992년 9월 4일 | 181cm |
21 | 아템 벤 아르파 | Hatem Ben Arfa | MF | 30px | 1987년 3월 7일 | 178cm |
23 | 율리안 드락슬러 | Julian Draxler | FW | 30px | 1993년 9월 20일 | 187cm |
24 | 크리스토퍼 은쿤쿠 | Christopher Nkunku | MF | 30px | 1997년 11월 14일 | 174cm |
25 | 아드리앙 라비오 | Adrien Rabiot | MF | 30px | 1995년 3월 4일 | 191cm |
29 | 장케빈 오귀스탱 | Jean-Kévin Augustin | FW | 30px | 1997년 6월 17일 | 179cm |
40 | 레미 데캉 | Rémy Descamps | GK | 30px | 1996년 6월 25일 | 194cm |
7 여담
-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마르세유 유니폼을 입고 파리 시내를 활보하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 프랑스는 이탈리아나 독일보다는 좀 더 다인종적인 국가로 유명하고 극우 성향 인물들이 활개치는 경우도 적은 편이긴 하지만 어쨌든 극우 순혈주의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서포터 규모가 상당한 파리 생제르망 역시[41] 극우 성향 서포터들 수가 적지 않은데 SS 라치오와 비견될 정도. 2006년에는 이스라엘 축구 클럽인 하포엘 텔아비브와의 경기 도중 파리 생제르망의 어느 극우 서포터가 하포엘의 유대인 원정 서포터에게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려다 흑인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죽는
자업자득사건(그 경관은 정당방위 무죄)이 있었으며, 극우와는 관련이 없는 사건이긴 하지만 2008년에는 RC 랑스와의 리그 컵 경기 도중 어느 서포터가 랑스가 위치한 북부 지역을 비하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까지 나서서 서포터즈의 해산을 명령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극우 서포터들이 많은 구단으로 유명한 파리 생제르망이 극우 종자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슬람 계열의 카타르 자본에게 팔렸기에 라이벌이며 반면 극좌 계열에 가까운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서포터들에겐 비웃음그리고 질투을 받고 있다.[42] 파리 생제르망 서포터들도 참으로 난감해하기도 하지만, 극우고 뭐고 팀이 그런 구단주 덕분에 리그 우승 후보급 강호로 발돋움한 것에 좋아하는 이들도 많다. 처음으로 리그 2연패에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 같은 성과를 봐도 적어도 리그앙 최강급 팀이 되었으니.
- 김태륭 해설위원이 과거 이 팀의 유스 출신이었다. 덕분에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차두리처럼 찰진 불어로 선수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파리 유스출신이지만 PSG경기를 중계할 때는 장지현 해설위원처럼 오히려 PSG를 까는 경우가 많다.
특히 라비오를 많이 깐다.
- 현지에서 파리 생제르'맹'이 아닌 생제르'망'이라고 발음한다는 포포투 홍재민 편집장의 제보가 있었다. 문서 제목 수정 바람
- ↑ /paʁi sɛ̃ ʒɛʁmɛ̃/
- ↑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르면, 인명, 지명에서는 줄표(-)를 무시하고 상표명에서는 살린다. 단, 줄표의 앞뒤를 별개의 단어로 보아 띄어 쓰지는 않되, 연음 등은 고려하지 않고 표기한다.
-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한국 v. 벨기에 경기가 열렸던 구장이다.
- ↑ 전 카타르 아미르(국왕)인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의 넷째 아들로 2013년 6월 25일 카타르의 아미르로 전격 등극했다! 카타르의 국영 투자청(QSI)을 통해 PSG를 인수. 흔히 파리 생제르망의 회장인 나세르 알 켈라이피를 구단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PSG에서 켈라이피의 위치는 맨체스터 시티의 칼둔 알 무바라크 회장 정도 위치다.
- ↑ 2002년에 리그 1이 출범하기 전까지, 프랑스 축구 1부 리그는 디비시옹 1로 불리었다.
- ↑ 최다우승
- ↑ 파리 생제르망이 19년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하기 전까지 올랭피크 리옹의 7연패를 제외하면 우승팀이 항상 바뀌어왔다.
- ↑ 프랑스의 유명 위성 방송 채널.
- ↑ AS 로마의 창단 형태와 비슷하다.
- ↑ 1996년 우승, 1997년 준우승.
- ↑ 당시 레알 마드리드가 19위(!), 유벤투스가 2위.
- ↑ 카타르는 매장된 석유도 상당하지만 가스 자원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더 엄청나다.
- ↑ 네임 밸류가 달리는 점 때문에 저평가되는 대표적인 선수로 프랑스 축구 전문가들은 잘레도 프랑스 국대에 충분히 뽑힐 만한 실력이라고 다들 말한다. 실제로 블랑이 프랑스 국가 대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로이 국가 대표 감독으로 선임된 디디에 데샹은 바로 잘레를 국가 대표로 선발했다. 이후에도 바카리 사냐, 마티외 드뷔시와 함께 프랑스 국대 오른쪽 풀백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며, 파리를 떠나 리옹으로 간 14-15 시즌부터는 31살 나이에 폼이 더욱 올라와서 국대 주전으로도 간혹 나왔다. 드뷔시와 사냐가 각각 부상과 폼 저하로 고생하다 보니 더 많은 기회를 받았다.
- ↑ PSG에게 주급이 무슨 상관이냐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PSG는 즐라탄을 제외하고서는 주급을 그리 비싸게 주면서 데리고 있는 선수가 없다. 이적료는 어마어마한 오버 페이였던 하비에르 파스토레조차도 연봉은 세후 470만 유로 정도로 한화로는 67억 원 가량이다. 주급으로 환산하면 1억 4천만 원 정도. 첼시로 이적했어도 이 정도는 받고도 남을 수준의 급여이다. 그런데 파스토레보다 잘할 거라는 기대치 자체가 줄어들어 버린 카카에게 거의 준 4억에 달하는 막대한 주급을 줄 정도로 PSG가 카카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 ↑ 거액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SS 라치오로 이적한 이후, 사태웅이라 불리울 정도의 극도로 이기적인 플레이에 저조한 득점력으로 라치오의 응원 단장이란 비아냥이나 들었으며 인테르로 임대 가서도 전반기에만 잠깐 반짝하고 그대로 후반기를 말아먹은 선수다. QPR 시절 아델 타랍을 생각하면 된다.
- ↑ 주급을 자그마치 한화 2억 5천이나 받으면서 최전방 공격수 포지션에서 뛰는 주제에 2년간 5골도 못 넣은 그야말로 주급 도적.
- ↑ 다른 두 명은 에딘손 카바니, 마렉 함식.
- ↑ 11-12 시즌에 사실 오버 페이라 할 만한 것은 하비에르 파스토레 영입 건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죄다 헐값이거나 적정가에 영입. 다만 파스토레 오버 페이 임팩트가 워낙 커서...
- ↑ 팔레르모에서 점차 에이스 골리화된 데다가 국대 승선까지 맛보면서 시리구의 이적할 시의 예상 이적료는 이것보다 훨씬 높았으나 몸값이 올라가면서 시리구 본인이 주급 인상을 원하게 돼서 구단 측에 재계약 요청을 했지만 팔레르모 구단 측에서는 재계약 요청을 거부했고, 그 때문에 화가 난 시리구는 마침 PSG에서 연락이 오자 팔레르모 측에는 알리지도 않고 대뜸 혼자 파리로 가서 개인 협상을 끝마쳐 버렸다. 결국 팔레르모는 울며 겨자 먹기로 헐값에 팔았는데 이 때문에 시리구는 팔레르모 팬들에게는 꽤나 밉상 이미지가 돼 버렸다.
- ↑ 메네즈도 적응하는데 2시즌이나 걸리면서 한동안 로마의 애물단지였지만 3번째 시즌부터는 상당히 준수한 활약을 선보여 팔린다면 꽤나 비싼 값이었을 텐데 메네즈 본인이 향수병을 호소하며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어하여 결국 헐값에 PSG로 갔다.
- ↑ 사실 파스토레는 이적 조항 중에 팔레르모 측이 파스토레를 팔고 이적료를 받을 시, 그 이적료의 거의 절반이나 파스토레 소속사 에이전트 측과 파스토레의 전 소속 구단인 우라칸에게 넘겨줘야 해서 그렇게까지 대단한 이득을 보지는 못했다. 애당초 팔레르모의 마우리시오 잠파리니 회장이 파스토레 이적료를 무조건 비싸게 받으려고 했던 이유 자체가 적정가에 팔아서는 자신들에게 이득이 거의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300억에 팔았다치면 팔레르모 구단 측은 그 절반인 150억밖에 수령하지 못하기 때문. 이 때문에 나중에 잠파리니 회장은 빡쳐서 파스토레의 에이전트를 고소하기도 했다. 파스토레는 그 때문에 증인으로 법정에 참석하느라고 시즌 중에 팔레르모에 다녀와야 했다.
- ↑ 앙투완 콩부아레 감독은 선수 시절, 전성기를 파리 생제르망에서 보냈고 10-11 시즌의 파리 생제르망 부활의 서곡을 알리며 잘 나갔지만 구단을 인수하고 들어온 파리 생제르망의 새로운 보드진들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콩부아레 감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또한 442 포메이션 덕후였던 콩부아레 감독은 엄청난 거액으로 영입된 공격형 미드필더 하비에르 파스토레를 어떻게든 활용해야 할 입장에 빠져 주 포메이션을 442에서 4231로 바꿨으나 자신에게 익숙치 못한 전술을 써야 하다 보니 경기력 측면에서 큰 혹평을 받으며 지지율을 많이 잃고 말았다. 결국 르 클라시코 스타드 벨로드롬 원정전에서 마르세유에게 3:0으로 대패하면서 그 기점으로 경질되고 말았다.
- ↑ 그런데 릴 항목을 참조하면 릴이 리그 15위로 추락하면서 고전 중이다. 승격 팀들에게도 안방에서도 비겼고 챔피언스 리그에선 최약체라고 평가되던 벨라루스의 바테 보리소프의 역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승리 제물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안방 경기에서! 그만큼 릴이(7차전 현재까지) 엉망이기에 파리로선 이겼으나 좀 아리송한 느낌을 주었다.
- ↑ 오프사이드 골 오심이다.
- ↑ 반농담 삼아 바르셀로나에서 계속해서 시우바를 노린다면 바르샤 전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선수이자 공격진의 핵심인 리오넬 메시를 사버리겠다(!)고 했다(...).
이것이 자금왕의 패기 - ↑ 만약 챔스 8강에서 승리한다면 딱 20년만에 준결승으로 진출하게 된다
- ↑ 어느 정도인고 하니 2위 팀의 승점차와 2위-19위의 승점차가 비슷하다. 시즌이 끝나고 난 뒤 2위와의 격차가 31점에 달했다. 또한 유럽에서 바르샤 다음으로 자국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한 1위 팀이다.(102득점) 실점도 38경기 동안 19실점 한 게 전부이다.
- ↑ 즉, 마르세유 원정 팬들은 파리 홈 구장인 파르크 데 프랭스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고 파리 원정 팬들은 마르세유 홈 구장인 스타드 벨로드롬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 ↑ 캐나다의 유통업체 스트라스버그(1991년 해체)가 프랑스에 사업할 당시 사용한 명칭.
- ↑ 1991년까지는 리그, 2001년까지는 쿠프 드 프랑스 참가시에 각각 사용.
- ↑ 프랑스의 정치인 제롬 세두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1986년에 세운 프랑스의 민영 방송사. 1992년 폐국.
- ↑ 프랑스의 유명 안경 체인점.
- ↑ 독일의 냉동식품 업체. 1993~1995년까지 아스톤 빌라의 스폰서이기도 했다.
- ↑ 프랑스의 주류 브랜드.
- ↑ 2001년까지는 쿠프 드 라 리그 때만 스폰서를 했다가 이후 쿠프 드 프랑스 때만 스폰서함. 단, 2006~2008년까지는 유니폼 뒷면에 마킹됨.
- ↑ 현 테크니컬러 SA
- ↑ 1989년까지는 리그, 2006년까지는 국내 컵 대회에 각각 사용.
- ↑ 아넬카는 본디 PSG 유스 출신이었다. 그러다
로리콘아르센 벵거 감독의 눈에 띄어 아스날로 이적했고 아스날에서 활약하다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부진과 적응이 늦는 점으로 인하여 결국 상당한 거액에 PSG로 리턴했다. PSG는 잉글랜드의 리즈처럼 생각 없이 돈 쓰다가 2000년대 중반기 이후 암흑기를 맞이하였는데, 아넬카를 엄청난 헐값에 아스날에 넘기고 엄청나게 비싼 값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다시 데려온 것도 이에 한 몫했다. - ↑ 물론 그 죽돌이 기질은 어디 가지 않아서, 2006년 이후로 폼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1년간 훈련 불참 및 문란한 사생활 등으로 막장이 되어 버렸고 바르셀로나는 당시 검은 양 사건의 주축으로 지목된 호나우지뉴를 팀 분위기를 저해시킨다는 이유로 2008년 AC 밀란으로 방출시켰다.
- ↑ 즐라탄 이전 PSG 최고의 공격수. 비교적 말년임에도 파리에서 2연속 득점왕을 기록했는데, 05-06 시즌에는 21골을 넣었으며 06-07 시즌에는 15골 밖에 넣지 못했음에도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사실 이 때문에 리그앙은 스트라이커가 살아남기 힘들다느니 박주영이 12골 넣은 것은 리그를 씹어먹는 활약이었다느니 하는 뻘소리가 나온 것.
12골이 리그를 씹어먹은 거면 25골 넣은 무사 소우는 리그를 녹여먹었나? - ↑ 사실 외곽 인구를 포함해서 100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구 밀도를 보이는 대도시인 파리를 연고로 하는 1부 리그 유일의 클럽이 서포터 규모가 적다면 그게 이상한 노릇이다.
- ↑ 실제로 비교적 최근에 파리 생제르망 팬들과 릴 올랭피크 팬들 간에 벌어진 집단 싸움질의 이유도
의자가 날아다니는 것이 인상적이다릴 서포터 중 한 명이 파리 생제르망 서포터들에게 '오일 머니로 먹고 사느라 카타르 놈들한테 머리나 굽실대는 멍청이들' 운운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라...근데 이건 릴이 나쁜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