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수 나카모리 아키나의 싱글을 찾는다면 Tokyo Rose 항목으로. |
Tokyo Rose
1 개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라디오 프로파간다 자학성 네타 개그 선전방송인 '라디오 도쿄'의 여성 진행자들, 혹은 방송의 별칭이다.
라디오 도쿄에서는 적군인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용 영어방송을 송신하였는데, 이 방송의 여성 진행자들은 특유의 나긋나긋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미군 병사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대략 '방송은 병신같지만 여자 목소리는 좋네' 느낌. 방송의 내용은 미군 병사들에겐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설득력이 떨어졌지만, 이를 방송하는 여성 진행자 자체에 대해서는 애증에 가까운 호의를 나타내는게 보통이었다. 당시 도쿄 로즈를 생포해서 본 모습을 보기 위해 일본을 떄려잡으려는 병사들도 많았다고.
도쿄 로즈의 유명한 방송들론 윌리엄 홀시 제독의 함대를 침몰시켰다가 윌리엄 홀시 제독이 그 함대는 바다 속에서 인양되어 적을 향해 후퇴 중이라고 맞받아친 전설적인 사례가 있으며 그외에 스틸웰의 후임으로 중국에온 미국 참모장 앨버트 웨드마이어에게 이제 웨드마이어는 크리스마스 만찬을 인도에서 즐기게 될 것이라고 조롱한 방송 등이 있다.
2 아이바 토구리
Iva Toguri D'Aquino (영어)
アイバ・戸栗・ダキノ (일본어)
도쿄 로즈는 진행자가 14명에 이르지만,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1916년생인 아이바 토구리라는 일본계 미국인 여성이었다. 일본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41년 7월에 친척의 간병을 위하여 일본을 방문했다가 곧바로 발발한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귀국이 불가능해졌고, 일본군에 의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라는 협박과 심한 감시를 받았으며, 결과적으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마지막의 마지막 선택지로 연합군 포로로 구성된 '라디오 도쿄'의 영어방송 진행자로 일하게 되었다.
종전 직후 미군에게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당시 공산당 때려잡기의 기수로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방송인 월터 윈첼의 압력 때문에[1] 1948년에 다시 체포되어 반역죄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고, 갓 결혼했던 남편과도 강제로 이혼당한 채 6년 동안 형기를 살다가 1956년에 석방되었다. 반역죄가 들어간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이 아이바 토구리는 미국 시민권자이므로 적국인 일본의 선전방송을 했다는 것 자체가 반역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바의 반역 혐의에 대한 증인들이 거짓 진술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1977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사면 및 복권조치를 내렸다. 석방 후 본인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41년의 일본 방문은 아버지의 강권(사실상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고, 자신은 절대로 일본에 가기 싫다고 했으나 아버지의 강요를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41년 당시 미일관계가 심히 험악해져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애비가 원수다. 이후 평온하게 살다가 2006년 90세로 사망했다.
3 계승자
프로파간다를 운영하는 측에서는 선전방송을 적군이 듣도록 하려면 도쿄 로즈처럼 적군의 말에 능숙한 여성 진행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에 많은 계승자와 아류가 전쟁때마다 나타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트남전당시 월맹에서 선전방송을 맡은 하노이 한나와 걸프전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에서 선전방송을 맡은 바그다드 베티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도 있다. 피양 할매꽃?
- ↑ 선전방송으로 미군의 사기를 떨어뜨린 대표적인 존재에게 아무런 형벌을 가하지 않는 것은 연합군의 최고 공헌자인 미국이 해서는 안 될 짓이라며 전방위로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