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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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 | ← | 제럴드 포드 | → | 지미 카터 |
공식 초상화 | |
풀네임 | Gerald Rudolph Ford Jr. |
출신 정당 | 공화당 |
생몰년 | 1913년 7월 14일 ~ 2006년 12월 26일 |
재임기간 | 1974년 8월 9일 ~ 1977년 1월 20일 |
서명 | |
키 | 183cm |
1 개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전임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으로 인해 승계로 대통령이 된 인물
이런 이유로, 20세기 미국 대통령 가운데 두번째로 짧게 재임(2년 165일 = 896일)한 대통령[1] 그리고 2015년 현재까지는 미국의 마지막 승계 대통령이다.
2 생애
원래 이름은 레슬리 킹 주니어(Leslie King Jr). 네브래스카의 오마하[2]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신혼 초부터 부인에게 폭력을 일삼아온 부친이 갓 태어난 아들까지 위협하자 부친을 피해 어머니가 생후 16일된 포드를 데리고 가출, 이혼했다. 후에 모친이 제럴드 루돌프 포드(Gerald R. Ford)와 재혼하고 계부가 자신의 이름을 포드에게 주면서 제럴드 루돌프 포드 주니어가 되었다. 계부와 이부동생들과의 사이도 각별했다고 전해진다. 17살까지 계부가 친부인줄 알았다고...
폭풍간지 휘날리던 그 시절. 미시간대학 미식축구 선수 때.
참고로 젊은 시절에는 잘 나가던 미식축구선수였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미식축구로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 포지션은 센터. 하지만 프로 미식축구팀의 스카웃 제안은 거절했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고 최종 계급은 소령으로 전역했다.[3]
3 정치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4] 미시간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16선을 기록하며 공화당의 지도자급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원래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던[5] 그는 닉슨의 부통령인 스피로 애그뉴가 뇌물수수문제로 사임하면서 닉슨의 지명으로 부통령이 되었고[6], 그 후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대통령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7][8]
그가 재임하던 시절 한 일들의 대부분은 전임자 닉슨이 한 일들을 정리하는 것이였다. 또한 당시 미국 경제는 베트남전에 의해 개발살이 나 어려운 시기였다. 게다가 아직 국민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은 상태에서 닉슨을 사면시켜 줘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말았다. 노태우?
결국 유가 파동으로 경제는 나락으로 빠졌고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무진장 평범한 대통령인 포드의 지지도는 계속 악화되었다. 경선에서 레이건을 간신히 꺾었지만, 결국 지미 카터에게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약 2년 남짓의 짧은 임기로 대통령직을 물러나게 되었다.
퇴임 후 자선활동 등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다가 2006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지금까지의 미국 대통령 중 제일 장수한 대통령이다. 후임자들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어 적어도 한동안은 깨지지 않을 듯. 2004년 사망한 레이건 대통령도 93세로 사망했지만 개월수까지 치면 포드가 레이건보다 1개월 정도 더 오래 살았다. 전임자들이나 후임자들이 너무 개성이 강한 인물들인 데다 이렇다 할 업적도 없었기 때문인지 존재감이 극히 적은 대통령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대한 평가로는 "마음은 착하지만 머리는 나빴던 대통령." 등이 있다. 포드에 대해 평가한 유명한 말로 린든 존슨의 "방귀 뀌는 것과 껌 씹는 것을 동시에 할 줄 모르는 유일한 양반"(...)[10] 이 있다.
자신도 그렇게 능력있는 대통령이 아니었다는것을 인정하는 투로 센스있게 말한적이 있다.
"나는 포드 (Ford) 이지, 링컨 (Lincoln) 이 아니오."
그 위대한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비교한것도 있지만, 이름들이 이름들인만큼 자동차를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 포드는 그냥 시민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브랜드이고, 링컨은 포드 회사 계열의 고급차 브랜드. 결론적으로 자신은 다른 대통령들에 비하면 그저그런 대통령이라는 발언이다. 물론 제럴드 포드 자신도 차덕후 기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항공모함 후속 함급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제럴드 R. 포드급으로 명명되면서 약간 다른 형태로 인지도가 올라가게 됐다(…).
4 일화
- 심슨에 조지 부시(아들 부시가 아닌 아버지 부시임)와 함께 출연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서민적이고 평범한 이미지 덕분인지, 조지 부시가 심슨 부자의 등쌀에 못 이겨 쫓기듯 마을을 떠나버린 자리에 이사를 와서는 즉시 호머와 친구가 된다. 호머를 보자마자 "Do you like football?" "Do you like nacho?" 두 마디를 하고 호머가 그렇다고 하자 갑자기 절친이 되어 호머와 어깨동무를 하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또 넘어진다. (...)그리고 D'oh를 동시에 외친다.
- 미식축구선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대통령으로써의 체면을 구긴 적이 많은데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진 적이 많았고 이 장면이 자주 언론에 노출되어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오스트리아 방문 도중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서 내리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버린 사건. 이 당시 백악관 사진가 데이비드 케널리가 동행하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넘어지자 케널리는 이렇게 말했다.
"착지하셔서 정말 반갑습니다.(So nice you could drop in)[11]"
- 2년의 짧은 재임 와중에서도 2번의 암살위기를 겪었다. 그것도 둘다 여성의 손에 죽을 뻔 했다. 첫번째 범인 리넷 프롬은 살인마이자 사이비 교주인 찰스 맨슨의 추종자였고, 두번째 사라 무어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고. 사라 무어로부터 그를 구한 것은 올리버 시플(Oliver Sipple) 시민이었는데 후에 동성애자임이 알려져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언론사에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하면서 파산하고, 후에 정신분열에 알콜중독자가 되어 가족에게도 외면당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그 시신은 2주 후에 발견되었다. 간략한 서신으로 감사를 표한 것이 다였던 포드 대통령의 처신이 잠시 도마에 올랐다. 이 일화는 2016년 8월 28일 서프라이즈에 소개되었다.
- 사실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한 것은 그의 아내인 베티 포드(1918년~2011년)다. 무용을 전공했으며, 첫 남편과는 이혼했다. 즉 그 다음해(1948년) 결혼한 포드는 두번째 남편. 이혼녀와의 결혼이라는 딱지에도 불구하고 포드는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이후 부통령이 될때까지 지속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 베티 여사는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 유방암 투병 사실을 공개해 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했다. 그러나 암 투병 사실 공개가 이후 남편의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지적에 충격을 받아 백악관을 나온 후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의 알코올 중독 사실을 공개하면서 치료를 받아 중독에서 빠져나왔고, 급기야는 1982년 캘리포니아 랜초 미라지에 알코올/약물 중독 재활치료를 위한 '베티 포드 센터'를 세웠다(미국 최고의 재활센터 중 하나로, 이 공로로 1991년 자유의 메달 수상). 2011년 베티 포드 센터 근교의 아이젠하워 진료실에서 사망해 남편 옆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