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사

東國寺

600px
절대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다.[1]

1 개요

전라북도 군산시에 위치한 사찰. 등록문화재 제64호.
이동국과는 상관없다.[2]
동국대학교와도 상관없다. 아니다 동국대도 불교 학교이니 상관 있을지도?
주소도 전라북도 군산시 동국사길 16[3]으로, 길 이름이 되기도 했다.

동국사(東國寺)란 이름은 해동(海東)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줄인 것으로, 일본의 절이 아니라 이제 한국의 절이란 의미라고 한다.[4]

일제강점기 당시 500여 개가 있었다고 알려진 국내의 일본식 사찰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건물들 중 하나로, 그 중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 중 유일하게 사찰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5] 적산사찰

흔히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링크. 정확하게 말하면, 동국사는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건축 당시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일본식 사찰 건물이다. 국내에 남아있는 다른 일본식 사찰 건물들은 위 각주의 사례처럼 더 이상 사찰은 아니지만 건물이 온전히 남은 경우도 있으며, 반면 계속 사찰로서 기능하더라도 건물의 형태가 많이 변형되었거나, 절을 구성하던 기존 건물들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물론 건물의 용도 자체는 해방 이후 한국식 로 바뀌었다. 불행했던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이색적인 근대의 모습을 즐기는 군산 관광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2 역사

경술국치 1년 전인 1909년(융희 3), 우치다(內田佛觀)을 위시한 일본 조동종(曹洞宗) 소속 승려들이 금강선사(錦江禪寺)란 이름으로 포교소로 개창하면서 시작되었다. 1913년에 현위치로 이전하면서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은 조동종 소속 사찰로서 이름을 금강사(錦江寺 긴코지)라 하였다.[6] 군산시에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으므로, 이들 일본인 신자들을 위한 사찰로 기능하였다.

파일:Attachment/DGtemple02.jpg
1920년 후반의 모습.

하지만 광복 이후 승려들을 포함하여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사찰은 미군정에 의해 압수되었다. 곧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되었다가 1955년에 전라북도 종무원에서 매입하였다. 1970년에 당시 주지였던 승려 남곡(南谷)이 이름을 동국사로 개명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로 증여하였다.

그 후 1990년대 조선총독부 건물을 식민지 잔재 청산을 위해 철거한 김영삼 정부는 일본식으로 건축된 사찰들이 아직 국내에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중 하나였던 동국사의 철거를 검토하였다. 그러나 이 절은 조계종의 사유재산이라서 철거보상을 해줘야 했는데 그 비용 3억원 때문에 하지 못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철거 여론도 잠잠해졌다.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3 건축물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건물로, 정방형 단층팔자지붕 홑처마 형식의 에도시대(江戶時代)양식이다. 외관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색이 차분해서 정갈한 느낌을 준다. 지붕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룬다. 지붕의 각도가 75도라서 기와는 못질을 해서 고정시킨다.

건물 외벽에 미서기(미닫이)문이 많은데 이는 습한 일본기후의 특성이 반영된 일본 건축기술로 건축되었기 때문이고,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전통 한옥과는 구조나 외형에 있서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처마 밑만 보더라도 서까래는 그저 평행하고, 공포가 매우 단순하여 밋밋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에도시대의 건물은 서까래와 공포는 거의 장식이고 실제 구조와는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구조는 법당 천장위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

공간 구조 역시 다른데, 요사채는 한국 사찰과 달리 복도를 통해 법당과 요사가 연결되어 있다. 법당에 들어갈 때는 대웅전의 문이 아니라 복도의 문을 통해 들어간다. 법당 내부는 신발을 신고 들어올 수 있는 정면의 현관과 절을 할 수 있는 외진, 부처상이 놓이는 내진으로 구분되는 일본식 절의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진과 내진 사이에는 란마(欄間)라는 통풍창이 있고, 그 아래에는 미닫이문틀이 남아 있는 것을 봐서는 원래 미닫이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사 대웅전을 수리하면서 일본식 기와가 필요했기에 수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수입은 안된다면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에 결국 한국에서 일본식 기와를 만들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다가 전남 강진에서 만들게 되었다. 비용은 수입의 두배가 들었다고 한다. 무역 필요성의 예 쯤 되려나…. 국세지출이 2배로 늘었다는 이야기인데..정신이 있는건지..

참고로 원래 지붕 용마루 양 끝에 있던 것으로 보이는 샤치호코상[7]이 지금은 동국사 현관 옆 밖에 놓여져 있다. 언제 내려졌는지는 추가바람.

법당 옆에는 종각이 하나 있는데, 종각을 둘러싼 석불들[8] 역시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다. 종 역시 전형적인 일본식 종이다. 교토에서 주조되었다. 종에서 금강선사라고 씌어진 글을 확인할 수 있다.[9]

4 기타

  •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대나무 숲과 요사채 안쪽의 아주 작은 정원 등을 볼 수 있다.
  • 대웅전 뒤에는 눈이 허연 개도 한마리 있는데, 이름은 동백이라고.
  • 동국사 진입로에는 돌을 쌓아서 만든 석축이 있는데, 지그재그형으로 쌓여져 있다. 이는 일본식의 석축 쌓기로, 군산 시내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
  •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 조계종에서 이 절을 인수할 때 이 절에는 한국에서 살던 일본인들이 조상들의 뼈를 모신 납골당이 있었다. 그런데 이를 철거하면서 그곳에 있던 수많은 일본인들의 유골가루를 죄다 강에 뿌려버렸고,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들이 울면서 찾아와 절 마당의 흙을 유골가루 대신 퍼간 실화가 있다....)
  1. 대웅전 보수 이전의 사진으로 보이며, 지금과는 대웅전 문 등이 조금 다르다.
  2. 재밌게도 이동국의 소속팀은 전북 현대 모터스, 동국사는 전북 군산시 소재. 게다가 이동국 본인도 불교 신자라고 한다... 상관이 아주 없진 않은.... 가?
  3. 지번 주소는 금광동 135-1이다.
  4. 동국대학교의 교명 역시 1946년에 양주동 박사의 의견에 따라 '우리나라'란 뜻에서, 한자까지 똑같은 동국(東國)이라고 정하였다.
  5.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일본식 사찰 건물로는 목포의 구 동본원사 목포별원과 경주시의 구 서경사가 있다. 전자는 해방 후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지자체의 문화센터로, 후자는 정리가 힘들 정도로 이래저래 다용도로 쓰이다가 현재는 정가 전수관으로 사용 중.
  6. 지금도 동국사 입구 석주에 금강사(錦江寺)라는 명문이 한자로 남아 있다. 이외에도 ○○ 9년이라는 연호 표기와 시주자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일본과 관련된 부분은 모두 끌로 깎아 파내서 지워버렸다. 시기상 연도는 쇼와 9년으로 1934년이고, 시주자도 한국인 노 아무개의 이름만 남아 있고 일본인 이름은 지워진 상태다.
  7. 몸은 물고기, 머리는 호랑이 모양의 상상의 동물. 화재를 제압한다는 의미. 한국의 치미와 비슷하다.
  8. 32면 관세음보살상과 12지 수본존 석불상이다. 맨 앞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자안 관세음 수본존불상이 있으며, 그 뒤로 중생 교화를 위해 근기에 따라 서른 두가지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밀교에 기반한 풍습이라고 한다.
  9. 여담으로 이 절에 새겨진 명문에는 일제와 시주자들을 찬양하는 씁쓸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