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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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고종 갑오개혁 이후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축물, 교량, 물품, 시설, 기록, 장비 등을 보존을 위해 문화재청장이 지정하는 문화재를 말한다. 원칙적으로는 50년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요즘은 굳이 그렇지도 않다. 2014년 7월 1일 현재 594개 항목에 대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어떻게 보면 고물에다 관심도 없는 오래된 물건, 건물들이 어느날 갑자기 등록문화재가 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는데, 특히 특이한 구조를 지닌 건물이나 오래된 간이역,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차량(자동차, 전차, 기관차 등) 및 장비 중 하나가 주로 지정된다. 최근에는 스포츠 분야나 세탁기, 원자로, 회계 장부, 아래아 한글 등 다양한 분야로 등재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등록문화재는 국보, 보물 등 다른 문화재와는 달리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이나 지정 이후에 과감하게 밀어붙여서 없애 버리거나 일부만 남기는 병크를 터뜨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왜냐하면 등록문화재에는 보존, 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예를 들어 스카라 극장이라든가, 경매에 넘어간 뒤 아무런 제재도 못하고 철거되어 버린 명동 구 증권 거래소 건물이라든가.

충북 제천에서는 제천역 구내에 1930년대에 지어진 기관차 검수고가 2003년 등록문화재 57호로 지정 예고되기 무섭게 제천기관차 승무사업소에서 잽싸게 헐어버렸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흠좀무 또한 대구광역시에 있는 반야월역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후 역사 자리에 도로 깐다고 밀어버린 후 원 위치서 50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역사를 이전 복원했는데 이전 과정서 역명판이 없어지고 지붕이 새로 씌워지는 등 해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간이역 지붕은 리모델링 한 역들도 많고 하니 용서는 되지만 어처구니 없는 이전 이유가 주 문제였다. 시흥 소래 염전의 목재 소금창고도 등록문화재로 심사가 시작되자마자 건물주의 기습 철거로 사라졌다.

그런가 하면 서울특별시청 본관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도 서울시가 기습 해체 하던 도중 문화재청에 딱 걸려서 둘이서 한참동안 싸우다가 결국은 서울시가 "안전등급이 낮다며 중앙과 외관만 남기고 해체 후 다시 짓는다." 왜? 파사드 방식으로 보존하시게?[1] 로 하고선 문화재 관리를 엉망으로 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경의선 신촌역의 경우는 훗날 망했어요의 평가를 받을 민자역사를 건설하느라고 좌우를 바꾸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청량리역 구내에 있는 기관차 검수고는 원형으로 제작되어 있다는 특성 때문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그나마 남아 있던 17칸 중 3칸만 현재 남아있다. 대부분을 헐고 일부분을 남긴 이유가 승무사업소 확장 공사라고 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문화재에 관한 인식은 기관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무관심도 문제인데 등록문화재 294호인 경의선 일산역의 경우 2006년 12월에 문화재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경의선 전철이 개통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철거 예정으로 알고 있거나 이미 헐린줄로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 쯤 되면 무관심도 문제다.

이 문서가 리그베다 위키에 등록된 후 이미 등록문화재 제377호로 지정된 대전 대흥동 소재 뾰족집이 무단 철거되었는데, 알고 보니 대흥1지구 재개발조합이 이 건물을 매입한 후 2010년 10월 초부터 철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강아지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문화재인데도 재개발이랍시고 철거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물론 관할 구청인 대전 중구청이 대흥동 37-5번지에 이를 복원하기로 했지만... 2011년 6월 25일그것도 하필이면 6. 25전쟁이 터졌던 날이냐에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낙동강 철교가 태풍 메아리의 북상에 의한 집중 호우로 부분 붕괴되는 일도 있었다.

2 잦은 파괴의 원인

등록문화재가 이렇게 다른 문화재에 비해 수모를 많이 겪는 이유는 보통 아래와 같다.

  • 대다수의 등록문화재가 일제강점기시절 일제에 의해 조선 통치의 기반으로 삼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부선등 일부 철도는 일본이 남긴 정식 문서에서도 당당하게 주변 주민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하였다라고 기록될 정도였으며, 그 반발로 철도에 돌을 던지는 것이 풍습이 될 정도니 당연하게도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정감이 가지 않는다. 일단 당장 돈이 없고, 실사용에 문제는 없으니까 쓰는 것이지 좋아서 쓰는 것이 아닌 셈이다. 따라서 파괴의 명분만 주어진다면 다른 문화재와는 달리 시원하게 파괴해버린다.
  • 일부의 경우 민간인에 의해 건립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그 민간인이란 것이 일제시대 친일파의 거두가 돈 좀 벌어보겠다고 상업용 시설을 지은 경우가 많고, 설령 민족자본이 건립한 경우라도 얼마 안가 친일파 손안에 떨어진 경우가 상당수다. 결국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일제가 직접 지은 시설만큼 적의의 대상은 아니지만 영구히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이기에는 역부족이다.
  • 건축학적이나 미적 가치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대다수의 건축물이 그 당시 세계적인 건축학 조류에 뒤떨어진 복고적 건축물인데다가, 전통성도 따르지 않고 서양것을 일본인이 베껴서 만든 것이라 창조성도 떨어진다. 사실 한국이란 곳에 있지 않았다면 그냥 듣보잡 건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본건축사라는 면에서는 중요성이 있다고 하지만 한국인이 그런 것까지 배려할 필요는 없다.
  • 일단 등록문화재가 되면 지원에 비해 의무만 많아진다. 일단 등록문화재로 등재될 경우 유지.관리를 위한 수리비용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고, 건축물이 있는 대지의 건폐율용적률 규제를 당해 기준 150% 이내에서 완화.적용받는 한편 재산세 50% 감면 등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다만 동국사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단 증개축이나 사소한 개조도 불가능해지며, 원형을 유지하기 위한 수리임에도 일제 부품이 필요한 상황에 문화재청이 자재는 무조건 국산을 써야 한다며 수입을 거부하는 막장사태까지 일어나서 일개 개인이나 회사의 입장에서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다. 덤으로 문화재 관리실태를 본다고 공무원이 뻔질나게 드나드니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냥 꽝. 이런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지정 전에 파괴해야하므로 등록문화재법이 등록문화재 대상을 파괴하는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
  • 가장 중요한 요인인데, 한 마디로 돈이 안 된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위와 같이 지원이 들어오긴 하지만 의무가 더 많을 뿐더러, 등록문화재가 있을 만한 곳은 보통 번화가라 건물주들은 언제나 재건축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물론 해당 건물을 남겨둠으로서 관광 자원으로 써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겠지만... 경복궁이나 창경궁 입장료도 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냥 서양식 건물이네 하는 곳에 돈 내고 보러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며, 설령 그런다고 해도 그런 돈은 관리도 힘든 구식 건물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지음으로써 얻는 개발 이익에 비해서는 조족지혈이다. 잊지 말자. 대한민국 등록문화재의 대부분은 사유재산이다.[2]

물론 일제강점기도 역사고, 근대문화의 산 증인이 될 등록문화재가 에 미친 몇몇 높으신 분들로 인해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정도로 문화재가 훼손되고 님비현상 혹은 핌피현상 때문에 근대 건축물로 오래토록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건물들이 헐리거나 일부 잔존되는 등, 혹은 오랜 기간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 은둔 아닌 은둔을 해야 하는 상황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3 불교계에는 인색한 등록문화재?

등록문화재의 가치가 있는 문화재들이 수난을 당하는 이유는 위와 같다. 그런데 전체 국가문화재의 60%를 차지하며, 덕분에 문화재 등록으로 인한 제한과 의무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불교계 관련 등록문화재는 이상하리만치 그 숫자가 매우 적다.

현재까지 등재된 등록문화재 중 불교계 문화재의 숫자는 고작 4건, 그러니까 전체 등록문화재 중 0.8%의 비율이다(...). 현재 불교와 관련없는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들까지 모두 합쳐도 6건에 불과하다. 종교 관련 등록문화재만 따로 추려서 이를 종교별 비율로 나누면 5.5%로 가장 적은 숫자. 참고로 근대에 등장한 민족종교들까지 포함한 비율이다(...). 근대기에 세워진 사찰이나 관련 건축물은 물론, 기타 불교 관련 문화재들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근대 불교 몽땅 부정할 기세

일반 국가문화재들 중에서 불교문화재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근대 문화재에서의 심사를 더욱 엄격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설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저 비율은...[3] 게다가, 그나마 지정된 등록문화재들을 보면 동시기에 지어진 일체형의 건물인데도 반쪽만 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던지, 반대로 별개의 건물인데도 세트로 묶어서 지정한다던지 하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 등록문화재 목록

5 등록 가치가 있는 건물

오래된 대학교와 일제강점기 때 발전한 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지속적인 추가바람(...)

5.1 현존하는 건물

5.1.1 수도권

  •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명품관) : 1930년에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으로 건설되었다. 이상이 소설 날개에서 "날자, 날자꾸나."라고 한 대목이 있는 곳도 이곳이다. 6.25때는 미군 PX(...)였던 흑역사가 있고,이후 설립된 동화백화점을 삼성이 인수하여 신세계백화점이 되었다. 애초에 4층 ㄱ자형 건물이었던걸 5층 ㅁ자형으로 증축을 했다.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어 2000년문화재청에서 등록 건의를 했으나 신세계측에서 거부했다고. 이게 성사되었으면 남대문 한국전력공사 사옥 대신 신세계 본관이 등록문화재 1호가 되었을 것이다. 2007년 2월 리모델링으로 외장재가 또 다시 교체되었는데 이게 본래 타일에 가까운 소재라고. 덧붙여 신세계 측에서는 비록 등록문화재는 아니지만 역사가 있는 곳이니만큼 등록문화재만큼 잘 유지하겠다고. 오오... 참고
  • 한국은행 소공별관 : 한국은행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참고로 한국은행 앞 사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묘하게도 용도나 건축 둘 중 하나는 옛날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위의 신세계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리고 해당 건물은 원래는 상업은행(우리은행의 전신 중 하나)의 본점이었다. 참고로 문화재청이 밝힌 바로는 골조는 그대로일지 모르나 밑의 구 미도파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외형이 상당히 많이 변형되어 등록 검토를 꺼리는 상황이라고(...)
  • 명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 1939년 9월 조지야(丁字屋Georgia?)백화점으로 건설되어 해방 후인 1946년 중앙백화점, 1954년 미도파백화점으로 바뀌어 운영되었...으나 1977년과 1994년의 개보수와 중축으로 이미 옛 모습은 찾기 어렵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2003년 이 건물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해 롯데백화점 영플라자가 되었다. 1994년 이후 등록문화재 얘기는 못듣게 되었다. 그저 안습. 뭐 그래도 이미 생을 마감한 다른 건물들에 비하면 비교적 운이 좋다고도 할 수 있겠다.
  • 소공동 한일빌딩 : 위 3개의 건물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건물. 1937년 조선토지경영회사로 지어졌으며 바로 옆 소공동 112-9번지에 부영그룹이 호텔을 짓겠다고 하자 보존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 서대문 충정아파트 : 1937년에 지어진, 한국에 현존하는 아파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이다. 건축주는 일본인인 도요타 다네오였고, 이 때문에 일제시대에는 도요타 아파트, 풍전아파트 등으로 불렸다. 원래 4층이었으나 한국전쟁 후 5층으로 증축, 코리아관광호텔로 사용되다가 다시 아파트가 되었다. 1979년 충정로 확장 공사 때 아파트 일부가 잘려나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보존 논의는 별로 없는 상황이다.
  • 딜쿠샤 : 무역상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하였던 앨버트 테일러는 1923년 독립문 인근의 언덕배기에 붉은 벽돌로 2층 양옥을 짓고 딜쿠샤(Dilkusha)라는 이름을 붙였다. 딜쿠샤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지내며 가난한 피난민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등록문화재 추진 중이나 소유권이 꼬인 관계로(...)어려운 상황이었으나, 2016년 복원을 한다는 기사가 떴으며 2019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기사
  • 남대문로 지하상가 앞 한옥상가 : 남대문시장 건너 북창동 메리어트 호텔 앞에 위치한 건물로 1910년대 지어진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원래 옆에 흡사한 형태의 건물이 두 채가 더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2000년대에 헐리고 이것만 남았다고. 안전 문제로 출입금지 딱지가 붙는 등 언제 헐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였으나 흥국생명에서 매입해 관광안내소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 인천역 : 경인선에 일반열차가 다니던 시절인 1960년에 지어진 건물을 아직까지 쓰고 있어서, 전철역답지 않게 간이역 분위기가 나는 몇 안 되는 역. 2015년에 종합 편의 시설화를 목표로 재개발할 예정이라 어수선했던 가운데, 2016년 현재는 다행히 철거 소문은 쏙 들어간 상황.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촬영 한옥 : 국내의 대표적 고전 영화 중 하나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촬영했던 한옥. 50여년 전의 작품이지만 수원화성 내 마을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아직 남아있다. 현 소유주가 등록문화재 관련해서는 다소 소극적이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몇 년 내로 등록문화재 예고에 올라올지도? 기대해보자. 자세한 사항은 이 글을 참조바람.

5.1.2 대구광역시

5.1.3 군산시

5.1.4 창원시 진해구

5.2 역사 속으로 사라진 건물

  • 화신백화점 : 1937년 11월 건설된 당시 경성부에서 제일 큰 백화점. 해방 후에도 계속 운영되다가 1987년 철거되어버렸다. 지금 그 자리엔 삼성그룹 소유의 종로타워가 들어서있다. 삼성 이 자식들
  • 내자호텔 : 1935년 일본 산고쿠(三國)석탄회사가 직원 숙소로 지은 건물. 광복 이후 미군에 접수되어 한동안 장교 숙소 등으로 이용되다 1972년 대대적인 보수로 "내자호텔"이란 이름의 호텔로 개조되었다. 1990년 4월 서울시가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사직로 확장을 명목으로 그해 8월에 철거해 버렸다(...)
  • 동양극장 : 1935년 충정로에 건립된 극장. 이 극장을 배경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도 있다.[4] 1980년대 후반에 현대건설이 소유하게 되면서 서울시와 협상을 벌였으나 1990년 2월 28일에 현대측이 기습 철거해버렸다(...) 이 때문에 한동안 연극인들이 현대측에 찾아가 항의하는 등의 일을 벌였으나 현대측은 묵살해버린다. 현재는 문화일보 사옥이 들어서 있다.
  • 구 경기도청사 : 지금의 서울 광화문 시민마당 자리에 있던 건물. 대한제국 내부(內部: 내무부) 청사로 쓰려고 계획되어 1910년 9월에 완공 예정이었으나, 완공 한 달 전에 국권 피탈(경술국치)되어 경기도청이 되어버린 흑역사가 있다. 1970년대에 경기도청이 수원시로 이전한 이후에는 치안본부 등으로 쓰이다가 1990년경 해당 건물부지를 주차장으로 쓴다고(...) 철거. 이럴 거면 철거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
  • 명동 구 대한증권거래소 : 1922년 조선주식현물시장으로 건설되어 해방 후 대한증권거래소로 사용되다가 1979년 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이전한 뒤 빌딩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2005년 초에 경매에 넘어가더니 그 해 10월에 철거되었다(...)
  • 스카라 극장 : 1935년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인 토호사의 투자아래 약초극장(若草劇場;일본어 발음으로는 와카쿠사게키조우)으로 건설되어 해방후 수도극장, 스카라 극장으로 바뀌어 운영되다가 수십년이 지난 2006년 소유주에 의해 철거되었다(...). 영화 상영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부터 대한민국 가수들의 연예활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곳이었다. 나름대로 서울의 랜드마크였으며 은평구, 관악구, 송파구, 강서구 등 서울 온갖 곳에서 이곳으로 향하는 시내버스가 있었다. 현재는 아시아경제신문 본사 건물이 들어서있다.
  • 동대문운동장 : 1985년 잠실에 종합운동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서울을 대표하는 운동장이었다. 축구장과 야구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축구장이 1926년,야구장이 1925년에 개장하였다. 운동경기와 함께 대규모 집회 등 현대사에 큰 일들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역사가 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지에 디자인플라자와 공원을 짓기 위해 2007년 12월부터 철거, 2008년 3월에 완전 철거되었다. 다행히(?) 조명탑과 봉화대는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철거 반대론은 당연히(?) 있었는데 그 자리에 성곽 흔적 등등의 유적이 나오면서 바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여담으로 저 건물이 해체되고 나서 동대문운동장역도 당연히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결과로 서울 지하철 역사 중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역사가 되어 버렸다(...)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구)다빈치관 :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철거 직전에는 서울과학기술대 조형대에서 사용했었다. 조형대가 창학관 등 다른 건물에서도 수업하는 등 장소 부족에 시달리자 뒷쪽에 (신)다빈치관을 완공하고, 기존 다빈치관은 주차장과 공원으로 활용하고자 철거하였다.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문화재 보전에 관해 별 논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움을 주는 건물이다. 전쟁 때 국군병원으로 쓰여서인지 귀신 목격담이 잦았던 탓에, 문화재 지정되기 전에 일부러 얼른 철거하고 새로 지은 게 아니냐는 썰도 있지만... 조형대 학생들은 기숙사 살면 이득, 정문 통학하면 망했어요 공대도 마찬가지다
  • 조선총독부 : 1926년 건설되어 해방 후 중앙청(정부청사),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다가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김영삼정부에 의해 그 해 광복절부터 철거가 시작되어 대회의실 해체를 마지막으로 1996년 11월 13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는 경복궁 흥례문이 복원되었다. 사실 해체 후 이전 계획도 있었으나 2000억원으로 예상되는 비용 문제로 인해[5] 마침내 철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당시 이전을 위해 마련한 부지가 바로 지금의 독립기념관 내 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당시 일본이 총독부 건물을 자국으로 이전하겠다고 요청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묵살함과 동시에 건물을 폭파해버렸다는 루머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가좌역 구 역사(지상역사) : 위의 인천역과 같은 사유. 197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고 한다. 서울내에서 보기 드문 70년대 이전 양식의 중규모 역사. 그리고 경의선 전철 2단계 개통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건널목을 건너 승강장으로 통하는 전철역이었다.[6] 2단계 개통 이후에는 역사를 지하화하여 지상역사는 버려진 상황. 현재 생사(?)가 그야말로 위태로운 상황이었는데 2013년 중 철거된다고 알려졌었다. 결국 2013년 3월, 철거되고 말았다(...) 지못미
  • 오천역 : 국내에서 딱 두 곳만 남아있는 협궤철도 역사 중에 가장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역사였다. 민간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지 30년째라고. 이천 마장택지지구 개발에 의해, 역사가 아예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는데, 구 청평역, 수색역처럼 빨간벽돌의 건물로서, 한국전쟁 이후로 꽤 오랫동안 보존되어 있는 듯 하다. 오천리에 거주하는 주민 분 말씀에 따르면, 이천시에게 지속적으로 건의를 하면 보존이 가능하다고 해서 건의를 넣었으나 토지보상이 이미 완료된 지역이라 2015년 안으로 철거 할 예정이고 보존계획은 없다.라고 못박았다. 결국 오천역은 재개발로 인해 2015년 11월 30일에 철거되었다.
  • 구 경성성서학원 : 1921년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이 지금의 서울 북아현동(아현성결교회 자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었던 5층짜리 벽돌 건물. 1974년 서울신학대학교가 부천으로 이전한 후 명지병원에 매각되었다가 1997년 인근의 아현성결교회가 매입하여 부속 건물로 사용하였으나, 2010년 예배당을 신축하면서 보존을 위해 건물 안전 진단을 실시한 결과 심한 노후화로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건물 이전 및 복원에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결국 2010년 10월 20일 철거되고 말았다. 사실 아현성결교회가 사용할 당시에 이미 바닥이 기우는 등의 문제로 4~5층은 사용하지 못하고 비워둔 상태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전복원이 가능한 수준이었고, 아현성결교회 측도 서울신대에 이 건물의 이전복원을 제안한 바 있었기에 성결교단 내에서도 이 건물의 철거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고 한다.
  • 회덕역 : 1940년에 준공되어 대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일제강점기 역사.[7] 화물 수송의 비중이 크고 정차하는 여객열차가 몇 안되어서였는지 지역 주민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2004년경 소리소문없이 철거되고 말았다. 현재 화물역으로서의 기능을 감안해도 현재의 회덕역사는 너무 크고 화려한데다, 가뜩이나 근대문화유산 보존에 소극적인 대전시의 행정과 관련하여 중도일보에서도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 말살 사례로 지목할 정도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례.

6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 제도

일본에도 '등록유형문화재'라고 우리나라의 등록문화재와 매우 유사한 게 있다. 사실 이쪽의 도입이 더 빨랐다(등록유형문화재: 1996년 // 등록문화재: 2001년). 애당초 우리나라의 문화재 지정 분류 자체가 일본의 것을 많이 따온 거긴 하지만... 근대문화유산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등록문화재와 같으며, 메이지 시대를 시작으로 해서 다이쇼 · 쇼와 시대에 조성된 문화유산들이 등록유형문화재의 등록 대상들이다. 이 제도의 도입 배경 또한 우리나라와 유사한데, 급격한 도시화에 휩쓸려 근대에 조성된 수많은 건축물들이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우수수 헐려 나가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던 것. 규제 정도도 일반 지정문화재보다 느슨하며, 심지어 문화재에다가 등록 사실을 알리는 동판을 부착하는 것 또한 양자가 같다. 이쯤 되면 한국 등록문화재와의 구분이 무의미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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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 일본 등록유형문화재의 수는 우리나라 등록문화재보다 월등히 많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 사실 이는 당연한 게, 아시아 국가들 중 근대화가 가장 잘 이루어졌던 곳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이다. 땅덩이 또한 일본이 더 크고... 2015년 12월 기준 등록유형문화재의 수는 10,392개로, 현재 663개가 등록되어 있는 등록문화재의 15배를 상회한다. 특히 이 '10,392개'는 건조물만이 포함된 수치여서, 건조물만을 대상으로 비교했을 경우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이렇게 숫자가 많다 보니, 등록 번호도 나라 전체가 아닌 도도부현별로 구분해서 부여한다. 오늘날 일본에는 47개의 도도부현이 있으며 각 도도부현마다 번호가 부여되어 있는데, 이 도도부현의 번호를 앞에 둔 채 등록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가는 것. 예를 들어 도도부현 번호 '1'이 부여되어 있는 홋카이도의 등록유형문화재들에는 제01-0001호, 제01-0002호, 제01-0003호 식의 번호가, 도도부현 번호 '40'이 부여되어 있는 후쿠오카 현의 등록유형문화재들에는 제40-0001호, 제40-0002호, 제40-0003호 식의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지자체 구분 없이 총괄해서 제1호, 제2호, 제3호 식으로 부여하면 '등록유형문화재 제9923호' · '등록유형문화재 제10211호'처럼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도도부현별로 구분해서 번호를 매기는 것이다.

등록유형문화재의 하위 분류로 산업1차 · 산업2차 · 산업3차 · 교통 · 정부청사 · 학교 · 생활 관련 · 문화복지 · 주택 · 종교 · 치산/치수 · 기타가 있다. 이 중 '교통' 분류에 속한 등록유형문화재들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철도 관련 문화재. 19세기 말 ~ 20세기 초중반에 조성된 역사, 플랫폼, 기관차 차고지, 급수탑, 철교, 터널 등이 현재 등록유형문화재 목록에 올라 있으며, 조모 전기철도의 조모선, 텐류하마나코 철도텐류하마나코선, 와카사 철도의 와카사선, 쿠마가와 철도의 유노마에선 등 노선 전체가 등록유형문화재로 가득한 로컬 철도도 존재한다. 해당 노선을 가진 철도 회사들은 이를 미끼로 관광객들을 적극 끌어모으고 있는 중.
  1. 파사드란 건물의 앞부분(전면)만 남기고 안쪽은 새롭게 건설하는 방식. 구 대법원 청사인 서울시립미술관이 대표적이다. 그런데...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서울시청 항목 참조
  2.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있어서 문화재 보존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 다른 곳에 법에서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크게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권리를 반대급부로 주는 것. 예를 들어 종로에 있는 등록문화재 소유주가 이 권리를 가지고 강남에 있는 법적으로 5층밖에 못 짓는 땅에 10층을 지을 수 있다. 이 권리는 매매도 가능하여 자기 소유의 다른 땅이 없는 경우는 팔면 된다. 그린벨트 이축권을 생각하면 된다. 국내에서도 이렇게 하는지는 확인바람.
  3. 일부에서는 친 개신교적인 이명박 정부의 성향 때문이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등록문화재의 첫 지정은 02년부터였고 그때부터 일관성 있게(...) 심사정책이 지속되었으므로 신빙성이 없다. 허허 여러분 오해입니다 오해
  4.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 유명한 심영.
  5. 차라리 똑같은 모습으로 새로 짓는 비용이 더 쌌으며, 정부는 그 정도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복원할 가치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다른 건물과 달리 취소선이 그어진 이유. 참고로 철거에 들어간 비용은 총 117억원.
  6. 일반 여객철도에는 이런역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 전철역중에 저런역은 없다. 가좌역을 지하화하면서 지상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폐쇄했기 때문. 현재 지상 승강장으로 가려면 지하역을 거쳐가야 한다.
  7. 호남선상의 간이역사들은 1977년 복선화 당시 모두 凸자 역사로 재건축되었고, 같은 시기에 지어진 신탄진역도 정차열차가 늘어나면서 역사를 재건축했기 때문에 회덕역사가 대전에서는 마지막 일제강점기 역사였다. 참고로 폐역 후에도 현존하는 원정역 건물은 1970년 보통역 승격 당시 건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