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2006

류현진의 2006년 경기 기록

경기이닝ERA세이브탈삼진 QS(QS+) 완투(완봉)
30201 ⅔2.23186120418(16)5(1)
  • 등판시 개별성적
등판 일자상대팀경기결과이닝탈삼진실점자책점결과승패여부비고
4/12LG4:07.11000QS+첫 선발/첫 승
4/18삼성5:16.2711QS
4/23두산6:191111QS+완투승
4/29롯데6:55.2833--
5/04LG6:19811QS+완투승
5/11현대3:104.1377-첫 선발패
5/16SK5:45.2533-
5/21두산3:171011QS+
5/28롯데7:27.2811QS+
6/02현대3:081200QS+
6/08SK4:19911QS+완투승
6/13삼성9:115665--
6/18두산5:37722QS+통산 100탈삼진
6/23기아2:18.2710QS+전구단상대 승리/통산 10승
6/28SK0:11111-마무리로 등판[1]
7/02현대2:45.2232
7/07삼성5:09900QS+완봉승
7/14SK5:05400-
7/25롯데11:36333QS
8/01롯데5:37911QS+
8/06삼성7:37.2832QS+
8/12LG3:48.1744-
8/18LG5:45.2722--
8/26삼성1:08.2800QS+
9/01두산3:66.1864-
9/08LG6:28721QS+-
9/14SK0:18911QS+완투패
8/06삼성2:07.1300QS+
9/26SK7:35.1633--통산 200탈삼진
10/02두산6:03200-마무리로 등판/데뷔 첫 세이브
  • 출처 : 아이스탯 2006시즌 기록실[1]

스프링캠프가 진행되면서 토미존 수술의 효능이 나타나기 시작해 괄목상대로 성장을 하였고[2] 그 소식은 당시 WBC 감독으로 있었던 김인식 감독에게 전해지면서 감독의 눈에 들게된다.

하지만 정작 시범경기때에는 기대와는 다르게 부진하여 개막전 당일에는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고, 첫 선발기회는 2006년 시즌 당시 투수코치였던 故 최동원(1958~2011)의 강력한 요청으로 간신히 주어지게되었다.

물론 그 무렵 언론에서 띄워주던 일명 "빅3(한기주,나승현,유원상)"에 가려져 있어 데뷔전에선 일부 한화팬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관심을 못받았다. 게다가 그 당시 한화와 엘지의 경기를 중계할 중계차도 고장(...)이 나 버려 YTN에서 뉴스를 위해 찍어둔 영상이 데뷔전의 유일한 영상자료가 되어버렸다.
해당 영상을 보고 싶으면 여기로 (2006년 4월 12일 첫 등판 영상, YTN)

그러나 첫 선발에서 7이닝 무실점 10K(데뷔전 10K는 선동열, 박동희이후 3번째)를 기록하고 3번째 등판만에 완투를 선보이는등 한기주 마저도 묻어버릴 정도의,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데뷔전 이후 현대전 까지 승승장구 하였지만, 그동안의 투구 패턴이 읽혀 현대 유니콘스에게 4이닝동안 7실점을 하는등 제대로 털리게 되었고 사람들은 여타 신인들처럼 그저 반짝하고 마는 신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곧 구대성에게 서클 체인지업을 배워 그것을 무기로 현대에게 설욕하면서 세간의 의문들을 종식시켰다. [3] 이후 더욱 성장하면서 그해의 최고의 신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이후 괴물이라는 영화가 대 흥행하게 되면서, 당시 마치 '괴물'같은 페이스를 보여주는 류현진 에게 '괴물' 이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붙게 되었다.

시즌중반에 들어서며 중간계투들이 부상으로 많이 이탈하게 되면서 6월28일 경기에서는 SK와의 10회까지 이어지는 연장혈투로 인해 내보낼 투수가 없자 마무리투수로 나오게 되었다. 첫 이닝은 안영명이 남긴 주자를 막아내면서 성공한 듯 했지만 그다음이닝에서 박경완에게 역전솔로포를 맞고 결국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의 선발은 송진우였는데 9이닝 무실점을 하고도 결국 승을 챙기지 못했다.)

시즌 마지막 두산과의 경기에서도 준플레이오프 선발을 대비하여 마무리로 등판하여 3이닝동안 무실점, 데뷔이후 첫 세이브를 기록하게 된다. 이런 신인답지 않은 무서운 활약으로 류현진은 신인을 넘어선 한팀의 에이스로 성장하였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류현진도 그에 걸맞게 괴물같은 모습을 시즌내내 보여주었고 201이닝 204K (신인이 200이닝-200삼진을 넘긴 것은 처음),18승(신인으로서는 김건우와 타이기록, 고졸 신인으로서는 최다승), 평균 자책점 2.23 이라는 성적을 거두면서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당시 같은 년도에 데뷔하여 신인 투수로서 역대급 성적을 찍은 장원삼과, 고교 시절부터 주목받았고 또한 무난한 성적을 찍었던 한기주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성적이어서 더욱 빛이 났다.

이와 같은 성적이었으니 신인왕 수상은 당연지사고, 더 나아가 신인왕 투표 결과가 만장일치가 아닌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을 정도. 투수 골든글러브와 함께 타격 트리플 크라운이었던 이대호를 제치고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 할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그간 신인에게 MVP까지 몰아주지 않는 것이 그간의 관습 아닌 관습이었으나, 류현진의 경우는 임팩트가 워낙 거대했다. 이에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 수상. 사실 어렵기로는 투수 트리플보다 타자 트리플인데 이대호는 묻힌거에 모자라 30도 아니고 20대 홈런왕이라고 까였다... 지못미

그러나 고졸신인으로서 풀타임 선발로 무리를 한 탓에 정작 포스트시즌에선 부진하였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이현곤에게 데뷔 후 첫 만루홈런을 맞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채 5이닝을 못채우고 강판 당했다.

시즌 종료 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일본전 선발로 나와 1이닝 만에 무너져버려 팀의 패배에 일조하였다. 상대였던 일본팀선수들이 사회인야구 선수들을 주축으로 참가했던 터라, 홈런을 때린 일본측선수가 택배기사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때 '류택배'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류현진의 부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류현진에게 '큰 경기에 약한 투수' 라는 딱지를 붙였고, 이는 2007년 준플레이오프와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의 맹활약이 있을때까지 계속 붙어다니게 되었다.

  1. 11회까지 간 장기전 +그당시 마무리였던 구대성의 부상이 이유였다. 결국 이 경기에서의 패전으로 인해서 승률왕을 놓치게 되었다.
  2. 이 시기에 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해서 구속이 증가한 것은 맞는데, 그것이 토미 존 서저리의 순기능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인지는 의견이 갈린다. 일단 류현진 본인은 故 최동원 코치에게 투구폼을 교정받았은 것의 영향으로 구속이 증가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출처
  3. 이후 이 서클 체인지업은, 원래 결정구였던 커브를 제치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서클 체인지업을 배우기 위해 구대성을 조르다시피 해서 배운 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