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2008 베이징 올림픽, 리즈 시절/야구
40px 역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4대 메이저 대회(올림픽, 아시안 게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만 기술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3 | 2014 | 2015 | 2017 | |
역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 ||||
김인식호 / 김재박호 | ← | 김경문호 | → | 김인식호 |
"Nine starting players. Nine games. Nine wins. Perfect.""9명의 선발 선수. 9번의 경기. 9번의 승리. 완벽하다."
MLB.com 소속 기자 마크 뉴먼#
한국야구사 최고의 순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의 금메달 이후 16년 만의 단체 구기 종목 금메달
목차
1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획득까지의 과정
2007년 야구계에는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의 참담함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WBC 때 같은 최고의 팀은 아니었지만, 정예 대표팀이 나가서 대만과 일본 사회인 팀에게 처참히 패한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실패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때의 삿포로 참사에 대한 우울한 기억도 떠올라서 1회 WBC 4강의 영광이 오히려 먼 옛적의 일인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도하의 굴욕을 만회할 기회가 다가왔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해 진출권 한 장을 두고 펼쳐지는 2007 타이중 아시아선수권대회(07/11/30 - 12/02)가 그것이었는데, 이 대회를 대비하기 위해 대표팀 감독을 새로 선임해야 했다. 전임 감독제 도입부터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 선임설까지 말이 많았지만, 2007년 3월 5일 최종적으로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이 선임되었다.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선동열 삼성 감독은 수석 및 투수 코치로 선임되었고, 여기에 김광수, 김기태 코치가 추가로 선임되었다. 이처럼 감독과 수석 코치가 리그 감독이었기에 리그가 끝나기 전까지는 준비가 사실상 어려웠다.
결국,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직행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베이징 올림픽부터 신설된 대륙별 플레이오프 덕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 대륙별 플레이오프 대표팀을 새로 꾸리는 과정 중에는 선동열 수석 코치가 사퇴하여 조계현 코치가 투수 코치로, 두산의 김광수 수석 코치가 수석 코치로 대신 들어오게 되었다.
어찌 됐든 최종적으로 대륙별 예선에서 2위를 거두면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1.1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2007 타이중 아시아선수권대회(대만 타이중)의 멤버는 다음과 같다.
투수 | 박찬호(뉴욕 메츠), 오승환(삼성), 권혁(삼성), 전병호(삼성), 한기주(KIA), 류제국(탬파베이), 류현진(한화), 류택현(LG), 정대현(SK), 장원삼(현대) |
포수 | 박경완(SK), 진갑용(삼성), 조인성(LG) |
내야수 | 이대호(롯데), 정근우(SK), 김동주(두산), 고영민(두산), 이현곤(KIA), 박진만(삼성), 김민재(한화) |
외야수 | 이병규(주니치), 장성호(KIA), 이택근(현대), 이대형(LG), 이종욱(두산), 민병헌(두산) |
선수명단에 노장인 전병호, 류택현이 포함된 것이 특이한 점인데, 이는 투수 코치인 선동열 코치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07 아시아 선수권 대회는 참가국을 A레벨, B레벨로 분류하였다. A레벨에는 한국, 일본, 대만이, B레벨에는 파키스탄, 필리핀, 홍콩, 태국이 편성되었다. 중국은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자동 출전권이 주어져 예선전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B레벨팀끼리의 경기를 리그전으로 진행한 후에, B레벨 1위팀이 A레벨 3개 팀과 다시 리그전을 진행하여 전체 1위 팀에게 베이징 올림픽 출전 티켓이 부여되는 방식. 예선을 거쳐 B레벨에서의 진출국은 필리핀으로 정해졌고, 베이징 올림픽 직행 티켓은 전승을 거둔 팀이 가져가는 구조였다. 한국의 경기 일정은, 첫날(12월 1일) 대만 - 2일째(12월 2일) 일본 - 3일째(12월 3일) 필리핀으로 짜여졌다.
12월 1일 대만전, 한국 선발은 류현진, 대만 선발은 린언위(라쿠텐)였다. 양팀 모두 에이스 대결이라 할 만한 매치. 선취점은 대만이 먼저 올렸고, 린언위의 구위에 눌려서 10삼진을 내주면서 빈타에 시달렸다. 하지만 5회 이종욱이 쓰리런 홈런을 날리면서 한국이 앞서기 시작하였다. 6회에 류현진 대신 박찬호가 투입되었고, 기출루자가 득점하긴 했지만 8회까지 잘 막았고, 9회 장원삼과 정대현의 투입으로 대만에게 스코어 5:2로 승리를 거두었다.
12월 2일 일본전, 전광판에 뜬 한국 선발은 류제국, 일본 선발은 나루세 요시히사(치바롯데)였다. 하지만 마운드에 선 한국 선발은 전병호였다. 일본의 호시노 감독은 이것을 보고 '위장 오더'라면서 주심에게 항의하였고 주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경기는 진행되었고, 1회말 고영민이 선제 솔로홈런을 치면서 한국이 앞서나갔다. 하지만 바로 2회초에 아이러니컬하게도 고영민의 실책이 빌미가 되어서 2점을 내주었고, 3회초에 1점을 추가로 내주어 1:3으로 역전을 허용하였다. 4회말에 이택근의 2루타로 1점을 만회하였고, 6회말에 2사 만루의 찬스를 맞이하였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8회초에 다시 1점을 내주었지만 8회말 이종욱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따라붙는데 성공하였고, 마지막 2사 1,3루의 찬스를 맞이하였지만 무산되고 말았고, 경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스코어 3:4 패배.
12월 3일 필리핀전에서 13:1로 7회 콜드게임 승을 거두었지만 이미 대회의 성패는 갈린 상황이었다. 같은 날 일본이 대만을 10:2로 이김으로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선 직행 티켓'은 일본의 차지가 되었다. 한국과 대만은 아시아 예선 2, 3위 자격으로 세계예선에서 다시금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음은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의 순위표이다. 파란 글씨는 본선 리그 직행 팀, 노란 글씨는 대륙간 플레이오프 진출 팀, 회색 글씨는 탈락 팀.
팀 | 경기 | 승 | 패 | 승률 | 승차 | 승자승 |
일본 | 3 | 3 | 0 | 1.000 | ― | ― |
대한민국 | 3 | 2 | 1 | 0.667 | 1 | ― |
대만 | 3 | 1 | 2 | 0.333 | 2 | ― |
필리핀 | 3 | 0 | 3 | 0.000 | 3 | ― |
도하와는 다르게 대만에게 승리를 거두긴 하였지만, 어쨌든 목표했던 직행 티켓의 쟁취는 실패한 대회였기에 코칭스탭에 대한 갖가지 비난이 쏟아졌다.
대만전에서 박찬호와 류현진을 한번에 소진함으로서 일본전에 선발투수로 전병호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본을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 국가대표 베테랑인 박재홍이나 이진영 대신에 민병헌을 합류시킨 것이 자기 식구 챙기기라는 주장, 일본전에서 일어난 '위장 오더'관련 일이 얄팍한 속임수라는 등등. 이병규의 수비 자세에 대한 비난도 있었고, 사실상 이때의 일로 인해 이병규는 이후 대표팀 선발에서 배제되었다. 일례로 2회 WBC때 김인식 감독이 이병규를 선발하려고 하자 기술위원회에서 이때의 일을 들어 반대하기도 하였다.
위장 오더 관련 문제는 당시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일이었지만, 나중에 IBAF에 의해 벌금이 정해짐으로서 규칙상으로 부적당한 일이 되었다. 이 위장 오더 문제는 호시노 일본대표팀 감독에 의해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까지 지속적으로 떡밥으로 돌게 된다.
1.2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로서, 각 지역별 예선에서 직행티켓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뛰어난 성적을 거둔 8개의 팀을 대상으로 3장의 티켓을 가지고 3월초에 풀리그를 치렀다.
이때까지 올림픽에 참가가 결정된 팀은 다음과 같다.
중국 | 주최국 자격 |
미국 | 미주 예선 1위 |
쿠바 | 미주 예선 2위 |
네덜란드 | 유럽 예선 1위 |
일본 | 아시아 예선 1위 |
다음 팀들이 대륙별 플레이오프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
멕시코 | 미주 예선 3위 |
캐나다 | 미주 예선 4위 |
스페인 | 유럽 예선 3위 |
독일 | 유럽 예선 4위[1] |
한국 | 아시아 예선 2위 |
대만 | 아시아 예선 3위 |
호주 | 오세아니아 예선 1위 |
남아공 | 아프리카 예선 1위 |
대륙별 플레이오프에 출전한 대표팀 명단은 다음과 같다.[2]
- 투수 : 한기주(KIA), 손민한(롯데), 김선우(두산), 황두성(히어로즈), 류현진(한화), 장원삼(히어로즈), 권혁(삼성), 김광현(SK), 정대현(SK), 우규민(LG)
- 포수 : 조인성(LG), 진갑용(삼성)
- 내야수 : 이대호(롯데), 고영민(두산), 박진만(삼성), 김동주(두산), 정성훈(히어로즈), 손시헌(상무), 이승엽(요미우리)
- 외야수 : 이종욱(두산), 이택근(히어로즈), 이진영(SK), 이용규(KIA), 김주찬(롯데)
한국팀 일정은 3월 7일 남아공 - 3월 8일 호주 - 3월 9일 멕시코 - 3월 10일 스페인 - 3월 12일 독일 - 3월 13일 캐나다 - 3월 14일 대만으로서, 휴식일의 배치와 강호인 캐나다-대만-멕시코와의 대진이 골고루 섞여 있는 무난한 대진표였다.
3월 7일 남아공과의 경기는 선발 손민한이 6이닝 동안 쾌투하면서, 타선의 부진과는 상관없이 5: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3월 8일 호주와의 경기는 선발 류현진이 선취점을 내주었음에도 큰 실점 없이 잘 막아내었고, 이승엽의 3점홈런 등을 묶어 16:2, 7회 콜드게임 승을 거두었다.
3월 9일 멕시코와의 경기에는 김광현이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홈런 하나를 내주면서 1실점을 하는 동안 이택근의 결승타로 6:1 승리를 거두었다.
3월 10일 스페인과의 경기는 4회까지 7점을 내면서 일찌감치 앞서갔으나, 5회 선발 김선우가 4실점하면서 경기가 길어졌다. 최종적으로 14:5로 승리하였다.
3월 12일 독일과의 경기는 선발 손민한이 1실점만을 하면서 12:1로 여유롭게 콜드게임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의 승리로서 베이징 올림픽 진출은 확정되었다.
3월 13일 캐나다의 경기는 선발 류현진이 컨디션 난조 속에 1⅔이닝 만에 2실점 하면서 강판하는 등, 결국 3:4로 첫 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때 류현진은 도하 아시안 게임 일본전-중국전, 아시아 예선 대만전, 최종 예선 호주전-캐나다전의 부진으로 '국내용 투수'라는 불명예 오명을 얻었다. 하지만 8월의 두 경기에서의 실력으로 완벽하게 해명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와서 류현진이 국내에서만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후에 류현진의 컨디션 난조의 원인이 배탈로 밝혀졌다. 대표팀이 삼겹살로 회식을 했는데, 하필 류현진이 이대호 앞자리에 앉는 바람에 익지도 않은 삼겹살을 허겁지겁 먹어서라는 뒷 얘기.
3월 14일 대만과의 경기는 1위가 캐나다로 정해진 상황에서 2, 3위 결정전의 성격을 띄었지만, 그것과 상관없는 자존심 대결이었다. 한국은 선발로 김광현을 내세웠다. 일방적이고 한국에 대한 모욕 섞인 대만 홈팬들의 응원 속에서 야수진의 실책으로 어려운 경기를 했으나(김광현 5이닝 3실점 1자책점) 황두성, 한기주, 정대현으로 이어진 불펜진이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결국 스코어 4:3으로 승리했다.
-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배기완 캐스터는 3회말 2사 2,3루 상황에서 심판이 김광현의 공을 스트라이크를 안 잡아주고 볼로 선언하자"심판 맞나요?"라고 일갈. 결국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자 "스윙!! 스트락아웃!! 스트락아웃~~!!"을 힘차게 외쳤다. 한편 배기완 캐스터는 5회에 이대호가 가랑이 사이로 타구를 빠트리자 "이대호가 터널~"이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세계예선의 순위는 아래와 같다. 파란 글씨는 본선 리그 진출 팀, 회색 글씨는 탈락 팀.
팀 | 경기 | 승 | 패 | 승률 | 승차 | 승자승 |
캐나다 | 7 | 6 | 1 | 0.857 | ― | 1승 0패 |
대한민국 | 7 | 6 | 1 | 0.857 | ― | 0승 1패 |
대만 | 7 | 5 | 2 | 0.714 | 1 | ― |
멕시코 | 7 | 4 | 3 | 0.571 | 2 | 1승 0패 |
호주 | 7 | 4 | 3 | 0.571 | 2 | 0승 1패 |
독일 | 7 | 2 | 5 | 0.286 | 4 | ― |
스페인 | 7 | 1 | 6 | 0.143 | 5 | ― |
남아공 | 7 | 0 | 7 | 0.000 | 6 | ― |
총 3개국(캐나다, 한국, 대만)이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을 추가로 획득하게 되었다.
2 베이징 올림픽 이전의 일들
8년 만에 올림픽으로 대표팀을 이끈 김경문 감독은 귀국한 후에 사임의사를 표명하였다. 사임의사 직후에 KBO는 김경문 감독에게 선수 선발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김경문 감독의 말과 이후 KBO에서 행한 조처를 본다면 선수 선발에 있어서 전권을 부여받지 못했던 것이 사퇴 의사 표명의 일차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외에도 대륙별 플레이오프 대표팀 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돌아가서 부상 등의 문제로 인해 각 소속팀의 감독들이 선수 관리를 문제로 들어 김경문 감독을 비난하기도 하였고, 김경문 감독 자신이 소속 팀과의 계약이 마지막 해였기에 좀 더 소속팀에 집중하기 위한 것 등등의 요소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어찌하였건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 때까지 계속 대표팀을 맡게 되었고, KBO는 2008년 시즌을 올림픽 기간 동안 중단하는 일정을 짜고 포상금 액수를 결정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또한 네덜란드 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의 올림픽 대비 훈련지를 한국으로 정하게끔 협상하고 평가전 일정을 합의하였다.
2.1 엔트리 발표와 잡음
엔트리 발표는 총 5차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4월 28일, 5월 26일, 6월 25일 정식예비엔트리 60인 선정, 7월 7일. 그리고 7월 14일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었다. 엔트리 발표가 여러번 이루어진 것은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이에 대해 불필요한 전시행정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무엇보다 최종 엔트리 발표는 팬들 각자의 최고선수들에 대한 생각 차이와, '병역 특례'라는 문제가 걸려 있었기에 극심한 논란을 불러왔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선발은 당시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하던 송승준, 임태훈, 이대호의 발탁과 손민한, 윤석민, 김태균의 탈락이었다. 이 중에서도 김경문 감독의 소속팀 선수인 임태훈의 선발과 당시 선발로서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던 윤석민의 탈락에 대해서 숱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 손민한[3]과 김태균[4]의 탈락이 아쉬움의 선에 그친 것과 달리, 임태훈과 윤석민의 선발에 관한 논쟁이 과열된 것은 다른 요인이 많지만, '병역필'과 '미필'의 차이란 점에 근본 원인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최종 엔트리 발표 후 김경문 감독이 '윤석민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인터뷰가 있었고, 발표 다음날인 7월 15일 윤석민과 임태훈의 맞대결에서 임태훈이 부진하고 윤석민이 호투 끝에 10승을 거두면서 논쟁의 불꽃은 더욱 크게 타올랐다. 결국 이 논란은 쿠바와의 평가전 1차전에서 임태훈이 크게 부진하자 절정에 달했고, 결국 임태훈을 탈락시키고 윤석민을 발탁하고 나서야 논란이 종식되었다.
7월 31일 KBO 시즌은 중단되었고, 8월 3일 올스타전이 열렸다. 이후 대표팀은 4일 네덜란드, 5일 쿠바 1차전, 6일 쿠바 2차전 등 올림픽을 대비하여 3번의 평가전을 가졌다. 그리고 8월 10일, 베이징을 향해 출국하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직전의 일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마지막 최종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소속팀은 2008년 당시 기준. 굵은 글씨는 당시 군대 미필.
실상 군필자라고 해도.... 외야수 이종욱(상무 전역) 빼면 죄다 면제이거나 병역특례다...... 아마추어는 단 한명도 없다.
투수 | 윤석민(KIA), 오승환(삼성), 송승준(롯데), 한기주(KIA), 김광현(SK), 류현진(한화), 권혁(삼성), 봉중근(LG), 장원삼(히어로즈), 정대현(SK) |
포수 | 진갑용(삼성), 강민호(롯데) |
내야수 | 정근우(SK), 김동주(두산), 고영민(두산), 김민재(한화), 박진만(삼성), 이대호(롯데), 이승엽(요미우리) |
외야수 | 이진영(SK), 김현수(두산), 이종욱(두산), 이용규(KIA), 이택근(히어로즈) |
이때, 일본은 애당초에 목표를 금메달로 잡고서 그러한 목표를 만방에 퍼뜨리고 다녔다.
3 베이징 올림픽 본선
3.1 예선 리그
총 8개의 국가가 참가하였으며, 풀리그로 예선이 진행되었다.
핵심 경기는 나라 이름에 굵게 표시.
10회까지 승부를 정하지 못한 경우 아마추어 경기에 적용해오던 승부치기에 돌입하는 룰이 생겼다. 한국과 일본은 반발했으나 결국 확정.
3.1.1 8월 13일 : 한국 VS 미국
조별예선 8월 13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1 | 0 | 0 | 0 | 2 | 1 | 0 | 0 | 3 | 7 | 12 | 1 |
40px | 0 | 2 | 1 | 0 | 3 | 0 | 0 | 0 | 2X | 8 | 9 | 1 |
- 승 : 윤석민(1승), 패: 제프 스티븐(1패)
- 봉중근(4⅓이닝 3실점) - 정대현(2⅔이닝 1실점) - 김광현(1이닝 무실점) - 한기주(0이닝 3실점) - 윤석민(1이닝 무실점)
봉중근, 정대현, 김광현까지는 미국의 막강한 타선을 상대로 예상했던 실점 범위 내에서 막아주고, 이대호의 연습구장 마운드까지 날아가는 큼지막한 투런 홈런을 포함하여 타자들이 미국 선발 브랜든 나이트를 상대로 6점을 뽑아주면서 첫 승을 거의 이룬 것으로 보였다.[5] 그리고 4년 후, 이 미국 선발투수는 한국 리그를 씹어먹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9회초. 대표팀의 마무리로 내정된 한기주가 올라왔지만, 홈런으로 바로 실점하더니[6] 계속 얻어맞아서 무사 2, 3루에서 아웃카운트 하나 못잡고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바로 이어 올라온 윤석민은 2사까지는 잘 버텼으나 적시타를 맞아 결국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7]
하지만 9회말, 대타로 나온 정근우의 2루타와 김현수의 진루타, 이택근의 2루수 땅볼 때 대쓰요 대쓰요 슬라이딩 슬라이딩!! 네 대쓰요야수 선택으로 정근우가 홈으로 들어와서 동점을 이루어내었다. 야수 선택으로 1루로 진루한 이택근은 투수의 견제 실수로 아 대쓰요!! 3루 가야돼 3루 3루 가야돼요 3루 3루!! 3루까지 질주하였고 이종욱의 역전 희생플라이로 들어와 들어와 쎄입!! 한국은 첫승을 거두었다.
미국은 'KBO에서 뛰었으니 한국을 잘 알겠지'라는 생각으로 롯데의 외국인 선수였던 존 갈을 선발 1번타자로 출전시켰는데 아니나다를까 찬스를 번번히 끊어줬다. 이때 허구연은 고마워요 존 갈이라는 멘트를 날렸으며 이것이 베이징에서의 허구연 어록의 출발점이 되었다.
3.1.2 8월 14일 : 한국 VS 중국
조별예선 8월 14일 11: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0 | 0 | 0 | 0 | 0 | 0 | X | X | X | 0 | 2 | 0 |
40px | 0 | 0 | 0 | 0 | 0 | X | X | X | X | 0 | 3 | 0 |
- 송승준 (6이닝 무실점)
경기 중에 비가 왔었고, 6회초가 끝나자 경기가 진행이 되지 못할 정도로 비가 쏟아졌기 때문에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어서 3일 뒤인 17일에 경기가 재개되었다. 프로야구의 시간대에 익숙해져 있는 선수들이 11:30이라는 이른 시간대에 경기가 이뤄져서 그런지 시종일관 빈타에 그쳤다.
3.1.3 8월 15일 : 한국 VS 캐나다
조별예선 8월 15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0 | 0 | 1 | 0 | 0 | 0 | 0 | 0 | 0 | 1 | 3 | 0 |
40px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5 | 1 |
3회초 정근우의 솔로홈런 말고는 안타가 2개에 그칠 정도로 연신 빈타였다. 또 3루에서 주루 중 아웃 당하고, 와일드 피치 상황에서 홈에 들어오다 주루사 당하는 등 운도 좋지 않았다. 캐나다에도 무수한 기회를 허용했다. 특히 9회말에는 구위가 떨어진 류현진이 출루를 허용하고 주자가 3루에 있는 상황에서 우익수 플라이 때 3루로 송구하면서 공이 뒤로 빠져 동점을 내줄뻔 했으나 류현진의 커버로 위기를 모면하는 등.. 마지막에는 2사 만루의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다행히도 중견수 플라이로 류현진의 완봉승으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이틀 정도 어깨를 못 쓸 정도로 류현진은 모든 힘을 쏟아내서 9회까지 던졌고 그 덕에 한국은 투수들을 아껴서 일본전에 대비할 수 있었다.
3.1.4 8월 16일 : 한국 VS 일본
조별예선 8월 16일 19: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0 | 0 | 0 | 0 | 0 | 0 | 2 | 0 | 3 | 5 | 9 | 1 |
40px | 0 | 0 | 0 | 0 | 0 | 2 | 0 | 0 | 1 | 3 | 7 | 1 |
- 승 : 윤석민(2승), 패 : 이와세 히토키(1패), 세 : 정대현(1세이브)
- 김광현(5⅓이닝 1실점) - 윤석민(2⅔이닝 1실점) - 한기주(0이닝 1실점) - 권혁(⅓이닝 무실점) - 정대현(⅔이닝 무실점)
6회말, 총 2피안타 만을 기록한 김광현이 주자를 하나 두고 내려간 후 올라온 윤석민이 아라이 타카히로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면서 선취점을 내주었다. 하지만 7회초에 이대호가 삿포로 참사의 주역이자 한국 킬러 와다 츠요시를 상대로 관중석 상단에 꽂히는 큼지막한 투런홈런에 힘입어 동점을 만들었다.
9회초 2사 1,2루 상황에서 일본의 특급 마무리 투수이자 좌타 킬러로 소문난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김경문 감독은 좌타자 김현수를 대타로 기용했다. 좌타 킬러를 상대로 좌타를 기용하는 모험수에 팬들은 걱정이 많았으나 김현수는 적시타를 때려내며 3:2로 역전에 성공했다. 당시 대표팀에서는 "이와세 공이 공략하기 쉬워보인다"라고 타자들이 말했다는 후문.
곧이어 이종욱이 기습번트를 시도, 3루수였던 무라타 슈이치가 공을 더듬으며 1점 더 추가, 주자는 1,3루가 되었다. 곧이어 1루에 출루한 이종욱이 포수 아베 신노스케가 공을 잡고 난 뒤에 뛰는 딜레이드 스틸을 시도하였고, 당황한 아베가 중전안타 2루수 키를 넘기는 송구실책을 범하며 김현수가 홈인, 9회에만 3점을 내면서 5:2가 되었다.
하지만 9회말 불기주한기주가 올라오자마자 아라이 타카히로에게 3루타를 맞고, 3루수 김동주의 실책과 2루타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1실점을 한 채 무사 2, 3루 상황에서 내려왔다. 위기 상황에서 권혁이 올라와 아베를 얕은 외야플라이로 아웃카운트를 하나 잡고, 정대현이 삼진과 땅볼로 경기를 마무리. 대표팀으로서는 연승은 했지만 9회말을 참 힘들게 마무리했던 세 경기였다. 이 경기 이후부터 김경문 감독은 한기주를 포기하고 정대현을 마무리로 내세우게 되었다.한편 일본은 대회 첫날 대 쿠바전에서 패배한 바 있었기 때문에 2승 2패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경기의 재미 포인트는 9회초 전타석에서 홈런 친 이대호의 번트. 이대호의 인터뷰에 따르면, 시합에서 번트를 대 본 건 갓 데뷔해서 뛸 때 이후 4년만에 처음이라고. 번트 대는 모습이 꽤 깜찍하다.
3.1.5 8월 17일 : 한국 VS 중국
조별예선 8월 17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6 | 7 | 8 | 9 | 10 | 11 | R | H | E |
40px | X | 0 | 0 | 0 | 0 | 0 | 0 | 4 | 2 |
40px | 0 | 0 | 0 | 0 | 0 | 1X | 1 | 7 | 0 |
- 승 : 오승환(1승), 패 : 루 지엔강(1승 1패)
- 장원삼(4⅓이닝 무실점) - 오승환(⅔이닝 무실점)
원래 이 날은 휴식날이었으나 8월 14일 중국전이 서스펜디드 게임 선언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8월 17일에 경기가 재개되게 되었다. 이날 한국의 경기 내용을 쉽게 정리하면 못했다. 게다가 중국은 16일 승부치기 끝에 대만을 8:7로 이기면서 상승세였다(이후 밝혀진 바에는 대만 대표팀이 승부조작을 한 의혹이 있다는 대만 검찰의 발표가 있긴 했지만). 원래 휴식일에 경기를 하게 되어서인지 타자들은 연신 빈타에 허덕여 결국 승부치기까지 가게 되었다. 승부치기에서 11회초 희생플라이때 3루주자 순린펑이 외야수가 공을 잡기 전에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지는 실수로 득점 무효 및 아웃이 선언되면서 1점도 내주지 않고 끝났고, 11회말에 무사만루 상황[8]에서 이승엽이 무난한 적시타로 1점을 얻음으로서 이기게 된다.
3.1.6 8월 18일 : 한국 VS 대만
조별예선 8월 18일 11: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7 | 1 | 0 | 0 | 0 | 0 | 1 | 0 | 0 | 9 | 16 | 2 |
40px | 0 | 2 | 0 | 0 | 4 | 2 | 0 | 0 | 0 | 8 | 12 | 2 |
- 승 :
불의 신한기주(1승), 패 : 니 푸더(2패), 세: 윤석민(1세이브) - 봉중근(4⅓이닝 6실점) - 한기주(2⅓이닝 2실점) - 권혁(⅔이닝 무실점) - 윤석민(1⅔이닝 무실점)
3회까지만 해도 콜드게임 룰을 검색했던 경기. 하지만 경기 중반에 봉중근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대량실점을 하게 되고, 그 뒤에 등판한 불의 신께서 상황을 막장으로 만들어 버리셔서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어졌고 동점까지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한기주는 아웃카운트를 잡아서 방어율 무한대 신세를 면했다. 당시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은 한기주의 방어율은 108.00으로 일각에서는 108번뇌 드립도 나왔다. 다행히 7회에 1점을 뽑아서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었고 한기주는 승리투수가 되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대만전의 아쉬움이 크게 남았을 경기였다. 애당초에 윤석민은 전천후 불펜으로 기용될 계획이었지만, 1회초에 7점이나 낸 유리한 상황에서 중반의 실수로 인해 또 기용될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다. 또 낮경기여서 수비진들이 낯설었다고는 하지만 수비에도 문제가 있었다. 거기에 가장 큰 불안요인은 1회초에 주전포수인 진갑용이 주루 중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서 사실상 출전이 힘들게 된 것이었다. 어이없는 실점과 수비, 주전 포수의 낙마 등으로 야구팬들에게는 걱정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지만 어찌됐든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한국팀의 4강 매직넘버가 -2가 되었다. 즉, 4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게다가 5전 전승의 한국이 남은 두 경기를 모두 패하고 3승 2패의 미국이나 일본 중 한 팀이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하여 동률이 되더라도 승자승 원칙에서 이미 한국이 앞서있기 때문에 최소 2위도 확정했다.
여담으로 이 경기때 MBC에서 방송사고가 나왔다. 경기가 끝난 직후, 대한민국의 탁구경기로 넘어가야하는데 화면은 탁구로 넘어왔으나 오디오가 야구 중계석에 남아있어서 허구연과 한광섭의 사설이 그대로 흘러들어갔다. 대략 "이야, 드라마네 드라마. 감독 김경문, 주연 한기주." 이런 내용이었다. 허구연이 무릎팍도사에서 회고하길 그 상황에서 욕설이라도 나왔으면 어쨌을까 하고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하다고 한다. 그 뒤로 여러 후배 해설들에게 입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했다고.
3.1.7 8월 19일 : 한국 VS 쿠바
조별예선 8월 19일 11: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0 | 3 | 0 | 0 | 0 | 0 | 0 | 1 | 0 | 4 | 7 | 2 | |
40px | 0 | 0 | 0 | 5 | 0 | 1 | 1 | 0 | X | 7 | 9 | 0 |
- 승 : 송승준(1승), 패 : 비쇼안드리 오델린 (1승 1패), 세 : 오승환(1세이브)
- 송승준(6⅓이닝 3실점) - 권혁(⅓이닝 무실점) - 윤석민(1⅓이닝 1실점) - 오승환(1이닝 무실점)
이 경기 전, 김경문 감독은 쿠바전에 내세울 선발이 없다고 밝혔다. 원래는 윤석민이 나갈 예정이었으나 대만전에 뜻하지 않게 던지게 되면서 투수 운용이 헝클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네덜란드전에 내세울 예정이었던 송승준이 그래서 쿠바전에 나오게 되었다. 이미 4강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기에 버리는 경기에 가까웠고, 2회초에 3실점을 하면서 그대로 흘러가나 했으나, 의외로 송승준이 호투를 해주었고 4회에 점수가 폭발하면서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오승환도 이날 대회 첫 세이브를 기록. 여담으로 진갑용은 이번 승리가 자신의 대표팀 경력 가운데 유일한 대 쿠바전 승리라고 감격했다.
이 경기 전 한국은 5전 전승이었고 리그 우승 매직넘버는 2였지만, 똑같이 5전 전승인 쿠바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경기의 승자는 바로 매직넘버가 0이 되고 승자승 원칙에 의해 리그 우승을 확정하게 되는 경기였다. 한국이 쿠바를 이기면서 마지막 남은 네덜란드전에 관계없이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3.1.8 8월 20일 : 한국 VS 네덜란드
조별예선 8월 20일 11: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2 | 0 | 0 | 0 | 4 | 2 | 0 | 2 | X | 10 | 16 | 1 |
40px | 0 | 0 | 0 | 0 | 0 | 0 | 0 | 0 | X | 0 | 4 | 1 |
한국 입장에서는 당연스럽게 했던 경기. 그 결과는 들어 맞아 무난하게 8회 콜드게임으로 승리하였다. 게다가 장원삼이 완봉승을 해줬기 때문에 불펜진의 휴식도 겸으로 얻게 되었다.
이 경기가 끝난 뒤 어느 정도 결선 대진이 짜여진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의 예선 경기가 열렸다. 당시 상황은 이기는 팀이 쿠바와, 지는 팀이 한국과 4강전을 치르게 되었다. 즉 아마야구 최강을 만나느냐 컨디션이 많이 올라와있는 동아시아의 반도 국가를 만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을 만나는 게 조금은 더 편했을 것. 그래서 일본은 쿠바를 피하기 위해서 미국과 연장 승부치기까지 가는 작전을 씀으로서 억지로 지는 경기를 진행했다. 호시노 센이치는 이날 경기가 끝나고 ' 미국을 만나 힘든 경기를 하였다'곤 하지만, 얼굴은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고 5년 뒤 한국은 다른 대회 에서 네덜란드를 또 만났는데......
3.1.9 예선 뒷이야기
파란 글씨는 준결승 진출 팀, 회색 글씨는 탈락 팀.
팀 | 경기 | 승 | 패 | 득점 | 실점 | 승률 | 승차 | 승자승 |
대한민국 | 7 | 7 | 0 | 41 | 22 | 1.000 | ― | ― |
쿠바 | 7 | 6 | 1 | 52 | 23 | 0.857 | 1 | ― |
미국 | 7 | 5 | 2 | 40 | 22 | 0.714 | 2 | ― |
일본 | 7 | 4 | 3 | 30 | 14 | 0.571 | 3 | ― |
대만 | 7 | 2 | 5 | 29 | 33 | 0.286 | 5 | 1승 0패 |
캐나다 | 7 | 2 | 5 | 29 | 20 | 0.286 | 5 | 0승 1패 |
네덜란드 | 7 | 1 | 6 | 9 | 50 | 0.143 | 6 | 1승 0패 |
중국 | 7 | 1 | 6 | 14 | 60 | 0.143 | 6 | 0승 1패 |
예선 리그 최고의 이변은 초약체이자 아시아 야구 동네북 신세였던 중국이 한국과 승부치기까지 간 것과 대만을 꺾은 것이었다. 전자는 낮경기에다 서스펜디드 게임의 영향으로 경기 템포가 끊기게 된 것을 원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충격 그 자체. 심지어 12회 연장전까지 가고 대만을 8 : 7로 꺾었다!(7 : 8이 아니다!) 대륙을 빼앗긴 이후로 다른건 몰라도 국기인 야구 만큼은 본토에 우위라고 생각했던 대만인들에게는 치욕에 가까운 패배였다. 그 날 야구를 생중계로 보던 1명의 대만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정도로 대충격이었다. 사실 그날 경기 내용을 보면 그럴 만도 한게, 대만 팀은 12회초 4점을 득점해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충공그깽하게도 이걸 불을 질러서 12회말 폭풍실점하면서 역전을 허용했다. 심지어 승부조작 의혹이 있다는 대만 검찰의 발표까지 있었을 정도.(출처 확인필요) 비록 결과적으로는 중국이 이 대회에서 꼴찌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전까지는 눈에 띄지 않았던 중국의 실력이 점점 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국은 이듬해 2회 WBC에서 일본에게 불과 4실점만을 허용했고, 패자전에서 또 한번 대만을 잡으며 광탈의 나락으로 밀어넣는다. 정말 무시 못 할 정도까지 실력이 올라간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편, 중국에게 그것도 승리를 코 앞에 두고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대만은 분위기가 급격히 다운되며 4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낮아졌고 그 다음 경기인 쿠바전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듯 하다가 7회말 통한의 실점을 당하며 패배, 그 다음 한국전에서는 2:8로 뒤지던 상황에서 5회말과 6외말에 각각 4점과 2점을 올리며 동점까지 만들었다가 더 이상의 추가점수를 내지 못하고 7회초에 한 점을 더 실점하며 아깝게 패배, 그 다음 미국전에서는 5회까지 1:1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 6회말 2점 실점 후 7회초에 1점을 만회하며 역전의 희망을 살렸으나 점수를 더 내지 못하고 8회말에 1점을 더 실점하며 2:4 패배. 1승 5패로 4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캐내다전에선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6:5로 신승하며 체면치레는 했다.
한국은 전승을 거두면서 결선리그에 진출했다. 매 경기 아슬아슬한 승부와 수비실책으로 인해 야구 팬들의 눈에는 이번 대표팀의 성적을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으나, 의외로 SBS 특별 해설위원으로 위촉된 김성근 감독은 전승에 금메달을 예상하였다.
네이버에서는 문자중계에 유명 야구인사들을 초빙하여 문자중계에 해설을 맡겼다. 김인식 한화 감독, 이만수 SK 코치, 서용빈 LG 코치, SK 박재홍 선수, 김동수 히어로즈 선수, 송재우 해설위원, 최훈 작가 등.
TV중계의 경우는 예선전에는 낮에 열린 중국전을 제외하고는 3사가 돌아가면서 중계하였으며, 준결승 이후부터는 3사가 동시중계하였다. 시청률의 승자는 허구연의 MBC.
3.2 결선 토너먼트
예선에서 1위를 거둔 한국(7승 무패)과 4위를 한 일본(4승 3패)의 매치, 예선 2위 쿠바(6승 1패)와 3위 미국(5승 2패)의 매치. WBC 1차대회 준결승전의 악몽과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의 승리의 추억이 함께 맴도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예선까지 전승이었지만 져주기 게임을 하는 미국과 일본을 보면서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일본은 져주기 경기가 아니라고는 했지만, 예선전 때 악몽을 씻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국을 택한 티가 팍팍 나는데다가 한국팀의 예선 전반 3경기가 참 안습이었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점차 커져만 갔다.
하지만 이 결선 토너먼트를 간단히 정리하면 일본과 미국은 3, 4위전에서 다시 만났고, 3, 4위전에서 미국에게 8:4로 져버려서 아무런 메달도 따지 못한 일본쪽은 경기가 끝난 뒤 분위기가 완전 개판이 되었다. 결국 금메달을 외치던 일본팀은 불명예스러운 목메달을 획득하고 베이징을 떠났다.
3.2.1 4강 1경기 : 한국 VS 일본
4강전 8월 22일 10: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1 | 0 | 1 | 0 | 0 | 0 | 0 | 0 | 0 | 2 | 6 | 2 |
40px | 0 | 0 | 0 | 1 | 0 | 0 | 1 | 4 | X | 6 | 10 | 1 |
한국은 예선전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주전 포수 진갑용이 부상으로 결장하였고, 대신 마스크를 쓴 강민호는 훗날 인터뷰에서 "덕아웃에서 조계현 코치님이 계속 '민호야 침착하게 천천히 가자'라고 지시를 하셨다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며 그 날의 긴장감이 얼마나 컸는지 밝혔다.
경기 시작전, 일본 대표팀 감독 호시노 센이치는 "이승엽?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4번에 계속 두고 있다니 대단하다" 라든지, "이대호도 약점은 있다. 투수들이 실투만 하지 않으면 된다", "김광현은 슬라이더만 참으면 된다. 어찌됐든 왼손투수 김광현은 두 번 연속인데 지난번처럼 호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라고 대표팀에 대해 폄하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서는 이승엽에게 무모한 몸쪽 인코스 승부를 하다 투런 홈런을, 이대호에게는 명백히 경계하는 투구 끝에 3타석 연속 볼넷 출루를, 김광현에게는 8이닝 2실점 선발승을 헌납하였다. 역레발
한국의 선발은 예선에서 호투한 김광현. 일본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좌완 에이스 스기우치 토시야. 스기우치는 전 시즌에 15승 6패에 평균자책점 2.46을 거둔 선수였다. 김광현의 2007년 성적은 3승 7패에 평균자책 3.62.
김광현은 초반 안타와 수비실책으로 맞은 위기를 투수땅볼로 병살타를 유도하면서 넘기는가 했으나, 2루에 던진 공이 빗나가 병살을 만드는데 실패하면서 1회부터 실점하였다. 폭투 등이 동반된 3회 실점 또한 아쉬운 점. 당시만 해도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배터리의 긴장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하지만 점차 긴장이 풀리며 이후 더 이상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무려 8이닝이나 소화하며 예상했던것 이상의 호투를 펼치면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강민호 역시도 초반에는 쉬운 포구를 놓치거나 하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공격에서도 3연속 폭삼으로 구멍이 되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4회말에 무사 1, 3루의 기회를 잡았으나 이승엽이 병살타를 치는 통에 한 점 밖에 만회하지 못하였다. 이 때까지 이승엽은 정말로 미친듯이 까였다. 심지어는 관중석에서도 이승엽에 대한 우리나라 관중들의 야유가 나왔을 정도.
일본은 스기우치를 바로 4회를 끝으로 내리고 5회 가와카미 켄신, 6회 나루세 요시히사 등을 등판시키면서 우세를 이어갔다. 7회말에는 철벽 마무리 후지카와 큐지를 올리면서 승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7회말 1사에서 이대호가 볼넷을 골랐고, 김경문 감독은 바로 대주자 정근우를 기용하였다. 이어 고영민의 안타로 1사 1, 2루가 되었다. 강민호가 삼진을 당했으나, WBC 때부터 일본전에 강했던 대타 이진영의 적시타 때 정근우가 포수의 블로킹을 피해 왼발이 살짝 홈플레이트를 스치는 최고 수준의 홈슬라이딩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당장 MBC의 경기중계에서 허구연해설위원이 언급한대로 한국이 후지카와를 공략, 동점을 이뤄낸 이후부터 일본의 불펜운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불펜에서 그나마 필승조로 내세울 수 있는 투수가 후지카와였기 때문. 후지카와가 동점을 허용한 이후, 일본은 불펜진이 급격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끝까지 이승엽을 기용했던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는 보답을 받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23타수 3안타로 부진하던 이승엽이 시즌 중에 단 한 번도 안타를 때려내지 못한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투런홈런을 치고 말았다. 약속의 8회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김경문 감독은 "감독이 욕을 안 먹으려고 하면 경기를 망친다. 승엽이 너 못치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이런 심정이었다"라고 밝혔다. 여담으로 김경문은 삼성에서 이승엽과 한솥밥을 먹은적이 있다.
MBC의 한광섭 캐스터는 우측에 떴다면서 처음엔 잡힐 것처럼 말했지만[9], 허구연 해설은 커요를 외치더니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며 우익수가 어? 어? 하다 넘어갔다. 이어 허구연은 "지금 타구는 독도를 넘긴 것 같다"는 개드립 어록을 남겼다. 한편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은 후 일본측 중계를 보면 무려 11초간 말이 없었다.[10]
이 날 선발로 나왔던 김광현이 이승엽의 방졸이었는데 이승엽이 치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다. 이승엽은 경기 종료 후 기자가 소감을 묻자 눈물을 잠시 보이다, 진정한 후 "선배로서 후배들 보기에 너무 미안했는데 마음의 빚을 갚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후 김동주가 안타를 때려내며 이와세가 결국 강판, 와쿠이가 올라왔다. 정근우가 2016년 현재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 진출해 있는 중견수 아오키 노리치카의 머리를 넘기는 큰 타구를 쳤으나 아오키가 담장까지 따라가 점프해서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아쉽게 아웃되었다. 그러나 이어 타석에 들어선 고영민의 타구를 좌익수 G.G.사토가 어이없는 실책을 보여주며 아~ 대쓰요! 노쳐쓰요! 노쳐쓰요! 1루에 있던 김동주가 홈인. 이어 3타수 3삼진으로 고생하던 강민호마저 2루타를 때려내 점수차를 4점으로 벌렸다. 사토의 실책 때부터 이미 일본 중계방송은 멘붕의 집합체.[11]
이때 허구연은 "지지사또 고마워요. 아~ 지금은 글러브에 들어갔던 공이 나왔어요. 고마워요 사또"라고, 아마 베이징 기간 중에 허구연이 남긴 어록 중 가장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허구연은 이후 인터뷰에서 "사실은 아리가또라고 하고 싶었다"고 농담. 그리고 wbc에서 아리가또 아오키를 시전했다[12] 당시 일웹에서는 물론 사토가 나노단위로 까였지만, 원래 우익수였던 사토를 무리해서 좌익수로 기용한 호시노 역시 까임거리를 하나 추가했다.
9회초는 선발 김광현에 이어 윤석민이 나와 3자범퇴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날 한국 대표팀은 투수를 고작 두 명만 쓴데다, 선발 김광현이 무려 8이닝을 소화하면서 결승전을 대비해 다른 투수들을 총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순리를 어기고 져주기 게임을 한 것에 대한 승부의 여신의 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1984 LA 올림픽 당시 시범종목이었던 야구에서 우승한 이래 금메달을 따 본 적 없는 일본으로서는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한국을 잡고 처음이자 마지막 금메달을 따고자 했으나, 이 패배로 결국 좌절. 야! 신난다~ 여기에 프로들의 대결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이 또다른 수치로 다가왔다. 후에 서술할 대목이지만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된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일본이 올린 최고의 성적이란게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의 동메달이었다. 더구나 이 아테네 동메달 역시 미국도 참가하지 못한 대회에서 얻은 성적이란 점에서 일본측에겐 원통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일본에게 있어선 자신들의 최대의 강적 둘이 나오지 못한 대회에서, 거기에다 프로선수들을 총출동시키면서까지 금메달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예상치 못한 호주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동메달에 그쳐야 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호시노 센이치의 막장운영이 일본 탈락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13] 이 경기에서 호시노의 삽질을 정리해보면
- 1사 1루에서 희생번트를 대고(한번은 득점에 성공하긴 했지만)
- 아직 결승 진출이 확실하지도 않은데 결승전을 대비한답시고 우에하라 고지, 다르빗슈 유를 불펜에 쌓아두고
- 심지어 후지카와 큐지조차 제대로 된 타이밍에 내지를 못했으며[14]
- 승부처가 올 때마다 당시 컨디션이 막장이었던 이와세 히토키를 내서 역전을 허용[15]
- 이와세의 기용은 일본에서도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물론 좌타자가 연달아 나와서 정상급 좌완 마무리를 올린게 뭐가 잘못이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면 끝인 토너먼트에서 대회 내내 최악의 모습인 투수를 기용한 건 무리수였다는 의견이 더 우세였다. 추가로 실책으로 8회에 대량득점을 도와준 G.G.사토는 그저 고마울 뿐. 일웹에서는 호시노 센이치, 이와세 히토키, G.G.사토를 삼대 역적으로 까댔으며 재일 드립도 성행했다.
- 이 G.G.사토의 실책도 경기 운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자초한 부분이 있는게 주로 우익수로 기용되던 선수였고 공격력 강화를 위해 좌익수로 별로 뛰어본적 없는 선수를 억지로 좌익수로 낸것이다. 고영민의 타구가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쉽지 않은 타구라는걸 생각해보면 사토의 실책역시 호시노의 억지스러운 선수기용에서 시작된 것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올림픽 병역 특례 특성상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만 확보되어도 병역이 해결되기 때문에, 경기를 이기는 순간 병역 특례가 확정되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플라이를 잡고 바로 무릎꿇고 기도하는 이용규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16]. 여튼 이 경기로 대표팀 선수 중 송승준, 이택근, 이대호, 정근우, 고영민, 권혁, 장원삼, 강민호, 이용규, 윤석민, 김현수, 류현진, 한기주, 김광현 등 총 14명이 군대 등으로 손실될 2년의 시간을 프로에서 뛰면서 벌 수 있게 되었다.
7년 후, 한국과 일본은 어느 한 대회의 준결승에서 또다시 격돌하게 되는데...
- 일본전 하이라이트
3.2.2 4강 2경기 : 미국 VS 쿠바
4강 8월 22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0 | 0 | 0 | 1 | 1 | 0 | 0 | 0 | 0 | 2 | 6 | 2 |
0 | 0 | 2 | 1 | 0 | 1 | 0 | 6 | X | 10 | 14 | 2 |
- 승 : 노르헤 베라, 패 :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 미국 선발은 유일한 대학생이었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쿠바는 에이스인 노르헤 베라였다.
3회말, 1사 1루에서 헥토르 올리베라가 3루타를 쳤는데 미국 2루수 브라이언 바든이 실책을 하는 사이 올리베라가 홈까지 파고들어 2점을 먼저 냈다. 4회초, 곧바로 미국은 1사 2,3루를 만들었지만 매튜 브라운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는데 그쳤다. 4회말 쿠바의 알프레도 데스파이그네가 솔로 홈런으로 1점 달아나자 5회초에 미국은 제이슨 도날드의 적시타로 곧바로 1점 따라붙는다.
6회말, 프레데릭 세페다가 솔로 홈런을 치며 4-2로 2점차로 점수가 벌어지자 쿠바는 불펜 에이스 루이스 페드로 라조를 7회부터 투입했다. 그리고 8회, 알렉세이 벨과 아리엘 페스타노의 연속 쓰리런 홈런이 터지며 단숨에 스코어는 10-2, 라조는 3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내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대학생이면서도 에이스 대접을 받았던 스트라스버그는 홈런 2방을 맞으며 4이닝 3실점 2자책을 기록했다. 쿠바의 선발 베라는 6이닝 2실점 1자책. 쿠바 타선은 홈런을 4개나 때려내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결승전 패배를 완벽하게 설욕했다.
이날 쿠바는 단 2명의 투수만 소모했다. 하지만 그 2명이 한국 대표팀으로 치면 류현진과 윤석민에 해당할 정도로 투수진의 기둥이었던 투수였고, 이는 결승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다. 특히 라조는 이날 30개 넘게 던진 여파로, 결승전에 나왔지만 투구내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반면에 한국은 전날 일본전 선발투수인 김광현 말고는 총동원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윤석민도 전날 등판했지만 1이닝을 깔끔하게 막으며 짧게 던진터라 구원등판에는 문제없는 상황이었다.
3.2.3 동메달목메달결정전 : 일본 VS 미국
동메달 결정전, 8월 23일 10: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1 | 0 | 3 | 0 | 0 | 0 | 0 | 0 | 0 | 4 | 6 | 1 |
40px | 0 | 1 | 3 | 0 | 4 | 0 | 0 | 0 | 0 | 8 | 9 | 0 |
1회, 일본은 아라키 마사히로가 선제 솔로홈런을 때렸지만 미국도 2회에 맷 라포타가 솔로홈런을 때리며 응수했다. 4회초, 무라타 슈이치와 니시오카 츠요시의 연속볼넷 이후 이번대회 일본의 유일한 까방권 보유자 아오키 노리치카[17]의 쓰리런 홈런이 터지며 4-1로 달아난다.
하지만 일본에는 낙구의 신G.G.사토가 있었다.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를 또 떨어뜨렸고 사토가 또!,[18] 결국 1사 1,2루에서 맷 브라운이 용규놀이를 시전하며 9구 승부까지 간 끝에 동점 쓰리런을 날리면서 경기는 원점. 어처구니없게 동점을 허용한 일본은 흔들렸고 설상가상 4회초 무사 1루에서 어떻게든 리드를 다시 잡겠다고 시도한 번트까지 실패하며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결국 5회말 가와카미 켄신이 2사 1,2루에서 타일러 티가든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은데 이어 곧바로 제이슨 도날드에게 투런홈런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8:4로 4점차까지 벌어진다.
8회초 1사에 모처럼 주자가 출루했지만 곧바로 귀신같이 병살타를 치며 그대로 공격 종료. 8회말 구원등판한 다르빗슈마저 폭투로 주자를 3루까지 보내며 실점위기에 몰렸다가 간신히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마쳤다. 9회초 2사 2,3루까지 갔지만 역시나 득점에 실패하며 결국 예선 순위대로 동메달은 미국, 목메달은 일본이 차지하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때는 운이 없었다며 대표팀에게 박수를 보냈던[19] 일본은 베이징 올림픽때는 팬이고 언론이고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대폭발[20].
예선리그에서 졸전을 거듭한데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져주기 의혹까지 있었다. 토너먼트 2경기에서는 선취점 내고도 자멸하다시피 역전패한데다 대회내내 최악이었던 이와세를 주구장창 올리고 에이스 다르빗슈를 쿠바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선발등판 시키고는 내내 놀리다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4점이나 점수가 벌어진 다음에나 등판시키는 등 쉴드를 쳐줄래야 쳐줄 건덕지가 없었다. 대회 후 장훈은 일본선수들의 정신상태가 글러먹었으니 당연한 결과라며 TV 방송에서 일갈했다. 떽!
거기에 한국 대표팀은 선수촌의 2인 1실을 사용한데 비해서 일본대표팀은 최고급 호텔에서 1인 1실을 사용했다는 것이 보도되자 팬들은 더욱 분기탱천.[21] 심지어 일본 올림픽위원회에서까지 야구대표팀에게 지급한 선수단 강화비를 되돌려 받고 싶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2년 후 유럽의 어느 축구 국가같이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들 모두 가축수송 신세로 귀국했다 카더라.[22]
무엇보다 일본을 당혹하게 만든 것은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된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의 일본 야구팀의 성적이 막장급이라는 점인데 시드니 대회땐 한국에 패한 4위였고,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는 동메달, 그리고 2008년 이 베이징 대회에서 또 다시 4위에 머물고 만다. 여기에 대한민국이 참가하지 못한 2004년 대회를 제외한 다른 대회에서는 아예 메달은 획득도 못한 사실에 치를 떨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회때는 미국도 참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본측에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이 대회 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했었는데 오히려 한국이 그 위업을 달성함으로서 일본의 자존심이 더 상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야구에서의 올림픽 금메달은 아시아 국가가 획득한 금메달 중 처음이자 마지막(야구가 다시 정식종목으로 복귀할 때 까지는)이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일본을 확실하게 멘붕시킨 대 사건이었다[23].
3.2.4 결승전: 한국 VS 쿠바
결승전, 8월 23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40px | 2 | 0 | 0 | 0 | 0 | 0 | 1 | 0 | 0 | 3 | 4 | 0 |
1 | 0 | 0 | 0 | 0 | 0 | 1 | 0 | 0 | 2 | 5 | 1 |
결승전 전 과정
야구는 9회 말 2아웃 부터라는 격언을 절실히 느낀 경기,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더블 플레이
쿠바는 전통적인 야구 종목에서의 강국이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1992년 이래 3번의 금메달과 1번의 은메달[24]을 거두고 있었다. 야구월드컵[25]에서 25번 우승했을 정도로 아마추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그다지 빛을 못보고 있는데, 쿠바가 공산주의 성향이 강한것도 있지만, 2009년에도 2회 WBC 일본전에서 던진 아롤디스 채프먼이 망명해서 신시내티 레즈 소속으로 데뷔하는 등 잇단 주축 선수들의 망명으로 인해 옛날만은 못했던 상황. 게다가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한동안 쿠바의 마운드를 지켜온 베라(6이닝)와 라조(3이닝)를 소모해버린 터라 막상 결승전에서 노베르토 곤살레스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선수도 좌완이면서 사이드암에 가까운 투구폼이라 여전히 공략하기는 까다로웠다. 한국팀의 선발은 류현진으로, 캐나다전 126구 등판 이후 계속 등판하지 않으며 어깨를 보존한 상태였다.
1회초에 이승엽이 투런홈런을 치면서 기분좋은 출발을 하였으나, 바로 1회말에 쿠바가 솔로홈런을 치면서 점수를 만회했다. 이후 류현진과 노베르토의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다. 양팀 다 멋진 수비를 보여주면서 기회를 용납치 않는 모습이었다.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은 7회초. 연투로 지쳐있는 라소가 6회초에 올라왔고, 7회초에 2사 상황에서의 박진만의 안타와 이종욱의 볼넷으로 만든 2사 1, 2루의 기회에서 이용규의 2루타로 1점을 얻으며 3:1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바로 7회말에 쿠바도 솔로홈런을 치면서 다시금 한국의 3:2 박빙 리드가 계속되었다.
이용규의 2루타때 1루 주자인 이종욱이 리그와 같은 상황이었으면 충분히 들어왔을 상황이었으나 들어오지 못한 것은, 나중에 본인이 밝혔지만 아웃카운트를 1아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그때 나중에 위기가 한 번은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운명의 9회말. 하지만 많은 공을 뿌린 류현진은 완연히 지쳤다.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결승전 승리를 마무리 짓는 공을 던지는 영광을 주기 위해서 계속 류현진을 던지게 했다. 그러나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고, 바로 희생번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타자와 다다음 타자 타석에서 분명한 스트라이크조차 볼로 선언하면서 1사 만루의 위기가 빚어졌다. 포수 강민호가 주심에게 항의하자, 주심은 강민호를 퇴장시켰다.
이날 주심은 이용규가 히트 바이 피치를 맞았음에도 아픈 내색을 안했다고 볼로 판정하기도 했었다. 또 강민호의 말에 따르면, 주심이 스페인어로 쿠바 선수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26]
퇴장당한 강민호 대신 올라갈 수 있는 포수는 몇 년째 포수미트를 잡지 않은 이택근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출전도 하기 힘들었던 진갑용 뿐이었다. 이택근이 '올라가야 하나...'하는 순간 진갑용이 스스로 장비를 챙겨입었다고 한다. 불펜에서 같이 공을 받아주고 있던 이택근은 '그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 한편 진갑용은 "나는 한번은 '괜찮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 순간이 되니 그런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장비를 입고 있더라"고 회고. 김경문 감독은 원래는 윤석민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불펜에서 공을 받아보던 진갑용이 정대현을 추천했고, 평소 그런 충고를 잘 안들음에도 그날은 왠지 진갑용의 말대로 정대현을 등판시켰다. 정대현이 요만큼도 긴장이 없는 걸 보고 그때서야 확신을 했다고 한다. 반면 윤석민은 '가장 긴장되던 순간'이라고 회고.[27]
시청자들 모두의 눈앞에서 은메달이 아른거리면서 연장전이라도...라는 소망이 들던, 문자 그대로 공 하나가 모든 것을 가르는 시점이었다. 초구는 가운데 약간 높은 스트라이크. 2구째는 완전히 한가운데 들어가는 스트라이크. 정대현은 후일담에서 실투였는데 이 공을 치지 못하자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3구째, 타석에 있던, 쿠바 타선의 핵심 타자인 율리에스키 구리엘은 공을 받아쳤다. 그런데 구리엘이 친 공은 맥없는 땅볼이 되어 유격수 박진만에게 갔고 아 떠블플레이! 떠블플레이! 박진만은 2루에 있는 2루수 고영민에게 토스. 2루수 고영민은 특유의 송구로 1루에 뿌렸고, 고앵민! 고앵민!1루수 이승엽은 공을 받고 환호하였다.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 아니 드라마를 이렇게 쓰면 판타지 쓰고 있다고 욕먹을 만큼 드라마틱한 경기. 금메달이었다.
허구연 : 궁내 채고의 싱카볼 투순데...(한광섭 : 네!)한광섭 : 자 오다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 주면 좋은데요. (투수 투구동작) 자, 투나씽!
(타자 타격)
한광섭(허구연) : 유격수! (아앍!) 잡았어요! (따불푸레이! 따불푸레이!) 어! 1루로-!!(고엥민! 고엥민-!!) 아앍-!![28]
허구연 : 아아앍-!! 우승이에요~! 증대여~~!
허구연 : 하으아아아아앍!!! (샤우팅이라기보다는 비명거의 혼절하셨다)
한광섭(허구연) : 대한민국~! (예~!) 우승입니다~! (예~! 우승이에요!)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 대한민국!!
박진만은 1사 만루 상황이 되자 제발 이쪽으로만 오지 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연히 정면으로 와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고 후에 밝혔다. 당시 박진만은 정대현의 변화구를 믿고 병살타에 대비해서 2루쪽으로 약간 시프트한 상태였다.
당시 고영민의 송구는 러닝 점프 역동작 터닝 스로우였다. 2008년 겨울 방송된 특집프로그램에서 공을 고영민에게 토스했던 박진만은 뒤에서 고영민이 던진 공이 1루로 뽈뽈거리며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미치는 줄 알았다고 회상. 당시 마스크를 쓰고 있던 진갑용 역시도 아니 고영민이는 그 상황에서 러닝 스로를 하냐고…라고 미치는 줄 알았다고 푸념. 고영민 본인도 같은 프로그램에서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후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너 때문에 금메달 못 따는 줄 알았다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 고영민은 2루로 들어오다 스텝을 잘못 밟아서 불안한 자세로 송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영상을 보면 2루 베이스를 왼발로 밟았다. 그래서 한발 더 내딛는다고 터닝 스로가 된 것.
여담으로 이승엽은 환호하다 말고 잡은 공을 바로 주머니에 넣어서 챙겼다. 당시 하이라이트를 보면 이승엽이 점프하다 말고 뒷주머니로 공을 집어넣는 장면이 보인다.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바로 들어갈만한 역사성있는 야구공이니...
이때의 장면은 스포츠채널에서 심심하면 리플레이 되었고, 한광섭 캐스터의 "자 오다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 주면 좋은데요"라는 말은 정대현에게 직각갑이라는 별명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병살을 칠 때 이 장면이 패러디가 되었는데 김현수[29]나 차일목 항목에는 이때 음성을 그대로 덮은 패러디 영상이 있다.
시청률은 MBC 29.5%, KBS2 13.4%, SBS 9.9%. 순간시청률은 71.7%였다. 토요일 오후라는 황금시간 대에 펼쳐진 덕도 있지만 그만큼 경기가 재미있었다는 얘기. 대표팀이 금메달을 딸 때 태권도에서도 차동민 선수가 금메달을 따며 니콜라이디스 선수를 콩라인에 가입시켰지만 철저하게 묻혔다.
- 쿠바전 하이라이트
결국 우리나라는 9전 전승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금메달[30]을 땄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프로야구의 원년을 찬란하게 빛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26년만에 이뤄진 세계대회 우승인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프로야구의 중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4 베이징 올림픽 이후
- 베이징 올림픽 2년 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을 따면서 우울했던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치욕 또한 저 멀리로 잊혀졌다.
하지만 3회 WBC 타이중 참사로 치욕이 또 이어지고 말았다.타이중 참사가 있었지만 그나마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간신히 금메달을 따 체면치례를 하고 프리미어 12에서 일본을 기적적으로 꺾고 초대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여러 국제대회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
- 2008년부터 현재까지 마지막 올림픽 야구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딴 날을 기념하며 KBO는 올림픽 우승일인 8월 23일을 야구의 날로 지정했다. 그리고 매해 사인회 등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 2005년 메이저리거의 올림픽 차출을 요구하는 IOC와 거부하는 MLB와의 알력 다툼으로 인해 야구종목이 올림픽에서 퇴출되어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당분간 올림픽에서 야구를 볼수없게 되었다. 일단 IBAF에서는 여자 소프트볼의 올림픽 재입성을 노리는 국제 소프트볼 연맹(ISF)와 손을 잡고 세계야구소프트볼 총연맹(WBSC)를 창설했다. 그리고 남자 야구와 여자 소프트볼을 하나의 종목으로 묶어 양성 평등을 강조하면서 올림픽 복귀를 노리고 있다.[31] 다만 소프트볼이 야구보다 듣보잡이라는 게 문제. 거기에 야구·소프트볼의 경쟁상대인 크리켓도 올림픽 재입성을 노리고 있었으며 새로 들어가려면 이전 종목이 빠져야 하기에 쉽지 않을 전망이었다. 그래도 2013년에 2020년 올림픽 개최지가 일본 도쿄로 결정됨에 따라 개최국 일본의 입김에 따라 야구가 부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섞인 보도가 2014년에 나오기도 했다.#
- 그러다가 결국 IOC가 올림픽 어젠다 2020라는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개최지에서 정식 종목을 직접 추가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었다. 일본의 로비가 통한 셈. 야구가 영구적으로 올림픽에 복귀하는 건 아니더라도, 2020년 올림픽을 비롯하여 야구가 인기 있는 국가에서 치러지는 대회에서는 경기가 정식 종목으로서 치러질 수 있게 되었다.
- 이때 활약했던 한국야구 선수들 중 류현진, 김현수, 이대호,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윤석민도 해외진출을 하였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매우 부진해 지명할당을 당하고, 스프링캠프에서도 불러주지 않는 등 안습한 상태를 겪다가 국내로 복귀했다. 김광현도 진출을 도모했지만 처참한 몸값과 계약조건을 제시받으며 무산.
- 이외에 강민호, 권혁, 윤석민, 이용규, 이택근, 정근우 등이 FA 대박을 치기도 했다.
- 이때 꼼수를 부리다 미국에게 패배한 일본은 2015년 또다시 실수를 한다.
5 대한민국 대표팀 선전 의의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는 집에서 TV로 경기를 봤다. 그때는 2002한일월드컵 이후라 야구가 침체돼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야구를 살리느냐를 놓고 고민했을 때다. 동네엔 온통 축구만 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선전을 하자 금방 분위기가 바뀌었다. 야구경기를 하는 날이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동네 주차장에서도 아이들이 야구를 했다. 좋은 기회다 싶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작은 아이가 동네 클럽에서 축구를 했다. 축구하는 학부모들에게 '내가 야구를 가르쳐도 되겠나'라고 물어봤는데 모두 좋다고 했다. (중략) 잘 하는 아이들은 리틀 야구 보냈다. 이후 야구붐이 일어났고, 동네에 축구 클럽이 없어졌다. 2009, 2010년 학교 운동장에는 거의 대부분 야구를 했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 인터뷰 中
리그에서 젊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제 대한민국 야구계 스스로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이는 다음해 열린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연결되었고, 대한민국에 야구 붐이 더욱더 일어나는 계기로서 작용되었다. 유소년 야구도 대폭 증가하게 되었는데, 초·중·고·대 선수들은 2006년 6,400명에서 2015년 16,000명으로 늘어났다. 팀은 282팀에서 455팀으로 173개팀이나 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침체되어 있던 야구계가 다시금 재도약 하게 되었고,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를 필두로 여성 관객들의 대거 유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지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관심도가 올라가면서 자금의 유입 규모가 커졌고 이는 야구계 인프라 산업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는데 2008년의 선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일.
당시 프로야구와 대등한 싸움을 하던 K리그에도 타격이 있었는데, 축구기자간의 대담에서도 이때의 충격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
참고로 이때 처음 야구본 사람을 일컬어 베이징 뉴비라 부른다.
반대로 씁쓸한 일이 있는데 이 당시 한국야구대표팀 단장이 바로 하일성이었다. 2016년 자살로 삶을 끝내던 그가 살아생전, 묘비명을 올림픽 야구단장 하일성이라고 적어달라고 강조했던 걸 보면 그도 이 올림픽 금메달이 가장 인생에서 좋았던 일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결승전 이후 대표팀 선수들과 웃으며 사진찍은 게 하일성을 기억한다면 씁쓸하게 남게되었다.
- ↑ 유럽 예선 2위인 영국은 소요경비 1억을 마련하지 못하여 참가할 수 없게 된 관계로, 4위인 독일에게 플레이오프 출전권이 승계되었다.
- ↑ 예비엔트리에 속해있지 않았기에 아시아예선에는 참여할수 없었던, 그래서 2007년 한국시리즈와 코나미컵에서 대호투를 보고 김경문 감독이 줄곧 아쉬워 했던 김광현과 손가락 부상에 시달리던 요미우리의 이승엽을 포함한 엔트리가 짜여졌다.
- ↑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 특례
-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으로 병역 특례
- ↑ 그래서 나이트가 2009년에 삼성 라이온즈로 영입될 때 항상 붙었던 말이 '베이징 올림픽 한국전 선발'이었다.
- ↑ 진갑용은 공이 나빴다기보다는 타자가 잘 쳤다고 표현. 이후로 맞은 안타는 이때의 홈런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 ↑ 후에 윤석민과 진갑용의 회고에 따르면 같은 구종을 선택했던 것이 실수였다고 한다.
- ↑ 번트를 대자 3루로 공을 던졌는데 세이프
- ↑ 실제로 보면 타구음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던데다가 카메라 앵글도 처음엔 외야에 머무는 플라이볼 같이 잡혔기때문에 홈런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허구연 해설도 처음엔 먹힌 (외야로 뜬 공)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
- ↑ 이 영상의 4:55 지점을 보면 이승엽의 타격 때 중계진이 "큽니다! 큽니다! 큽니다아!!!!!"라고 외친 뒤 홈런임이 확인되자 침묵한다.
- ↑ 이 영상의 6:17 지점부터 보면 나온다. 사토의 실책이 벌어지자 캐스터는 제대로 멘붕에 빠지고, 해설자는 힘없는 목소리로 "이 1점은 정말 크네요. 이건 정말 큽니다."라는 말만 되뇌인다.
- ↑ 2009년 wbc 결승전에서 5회초, 1사 1, 3루에서 1루 주자였던 아오키 노리치카는 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투수 정현욱을 상대로 3구째 삼진으로 물러날 때 2루 도루를 감행했는데, 타이밍은 세이프였지만 오버런으로 인해 손이 베이스에서 떨어지며 박기혁에게 태그 아웃되며 순식간에 3아웃으로 한국의 위기를 종결시켜 주었다. 이에 허구연 해설위원은 이를 "아리가또 아오키"라고 표현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 ↑ 일본 현지방송 특집에서 거의 '그것이 알고싶다'급으로 깠다.
- ↑ 당장 준결승 한국전만 보더라도 너무 성급하게 이른 타이밍에 등판시켰다는 점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스기우치가 비교적 호투하고 있었고 후에 마운드를 물려받은 나머지 투수들이 선전하고 있었던 점을 보더라도 가와카미나 나루세 중 한명을 1이닝 더 던지게 한 후 8회말에 후지카와를 투입시켰더라면 오히려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성급한 투수기용이었다.
- ↑ 더구나 일본리그에서 앞의 후지카와보다 더 많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는 MBC 허구연 해설의 코멘트를 상기해 보더라도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기용이라는 점은 면하기 어렵다.
- ↑ 특히 당시 일본대표로 출장한 미야모토 신야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서 밝혔다.
- ↑ 여담으로 당시 일본 타자들 가운데 김광현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던 유일한 타자였다. 참고로 일본에서 김광현을 공략하는 특집 프로에서 김광현의 제구력 결여를 먼저 간파해내기도 했다.
- ↑ 이것은 G.G.사토의 명백한 삽질이나 다름없는 플레이었다. 이미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포구준비에 들어간 뒤라 사토는 천천히 접근해 실책에 대비한 백업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도리어 자기가 잡겠다고 달려들었다가 파토낸상황이었기 때문. 이 어처구니가 없는 플레이 직후 와다가 "뭐 저런 ㅁㅊ!!"이라는 듯 노려보는 리액션과 호시노 감독이 좌절하는 장면이 압권.
- ↑ 쿠바도 이기면서 예선 1위(6승 1패)로 토너먼트에 올라갔다가 4강에서 호주에게 덜미를 잡혀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재미있는 건 예선에서 기록한 1패가 호주에게 패한 것이었다. 결국 일본은 호주에게만 2패를 한 셈. 반면 호주는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을 이기며 4승 3패 예선 4위로 가까스로 토너먼트 막차를 탔고 4강에서 다시 일본을 꺾으며 은메달을 획득한다. 일본을 격파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투수들인 애드리안 번사이드, 크리스 옥스프링, 제프 윌리엄스는 이를 계기로 NPB에 진출하게 된다.
- ↑ 일본 현지에서 방송된 특집에 의하면 미국전을 패한 뒤 관중에 대한 인사 중 한 팬이 "죄다 바다에 빠져 뒈져버려!!!"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 ↑ 일본 야구대표팀 수준의 환경에서 지낸 건 몇몇 국가의 축구대표팀과 미국 농구대표팀 정도였다. 게다가 다르빗슈 유와 와쿠이 히데키가 경기 전날에 밤새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다는 썰까지 나왔으니 말 다한 셈이다.
- ↑ 실제로 저 축구 대표팀은 남아공에서 전부 이코노미를 타고 귀국해야만 했고, 심지어 청문회까지 열렸다.
- ↑ 따지고보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야구를 다시 정식종목으로 올린건 일본의 자존심 회복용이라고 보는게 맞다.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이후 일본은 금메달을 획득, {아시아 야구의 적자 + 최강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했었는데 오히려 반대의 결과로 귀결됬고 그나마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선 한국과 미국이 나오지도 않았음에도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으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다음대회에서 한국이 토너먼트 전승 우승이란 대기록을 아시아 최초로 찍어버리자 그야말로 충공깽 멘붕을 해버린 것. 일본의 입장에서는 2020년 대회가 유일한 희망인지라 만약 2020년 대회에서 마저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다면 진짜로 우스운 모양새가 되버린다.
- ↑ 2000년 시드니에서는 미국이 우승하였다.
- ↑ 1982년 김재박의 개구리번트와 한대화의 쓰리런 홈런으로 일본을 꺾고 우승한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이름이 바뀐 대회. 그러나 아마추어 대회가 월드컵이란 이름을 쓰는 게 초라하다는 지적이 생기면서 2011년 파나마 대회를 마지막으로 프리미어 12라는 이름으로 아마추어 대회로 개편되면서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명칭이다.
- ↑ 강민호는 퇴장당하면서 분노의 미트던지기를 시전한다. 관련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강민호 항목에서 참조.
- ↑ 진갑용은 정대현을 추천하고는 아차 싶었다고 한다. '내가 미쳤지, 실점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냐'라고 생각했단다.
- ↑ 사실 이 부분은 허구연의 샤우팅이 워낙 커서 한광섭의 중계는 잘 들리지 않는다...
- ↑ 그의 별명 중 하나가 김구리엘이다.
- ↑ 남자 단체 구기 첫 금메달이다. 참고로 여자는 1988 서울 올림픽 핸드볼에서 이미 금을 획득했다.
- ↑ 극소수이긴 하지만 엄연히 여자 야구 선수와 남자 소프트볼 선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아예 여자프로야구도 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