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문서 : 류현진
목차
1 프로 이전
1.1 고등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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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혹시나 싶어서 덧붙이자면 오른쪽
왼쪽은 인천고 출신 돼지.
자질을 일찍 인정받아, 동산고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열린 미추홀기에서 준결승전까지 4경기에 연속출전하여 모두 승리를 거두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이후 결승전에서는 4연속 등판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던 터라 휴식을 위해 등판하지 않았고, 이때 동산고 감독은 류현진 대신 금민철을 선발로 등판시켰다. 자세한 사항은 류현진/청룡기를 참조.
1.2 프로 지명
사실은, SK가 류현진 선수를 그때 지명하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도 그 이전에 SK가 동산고 출신들 계속 뽑았잖아요. 정상호 선수라든지 송은범 선수라든지. 그때만 해도 그 선수들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윗선에서..그때 사장님이 좀 약간 다혈질이셨는데 "앞으로 동산고 뽑지마!" 이런식으로 나와가지고 동산고와 인연이 조금 안좋았어요. 류현진 선수가 물론 수술도 한 전력도 있고 이러겠지만, 동산고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스카우터들이) 또 잘못 뽑았다가 (구단 고위직에게) 또 혼날 수도 있으니까 그랬던 부분이 사실 있었거든요.
소속 학교와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했던 류현진이었지만 고향 팀 SK에서는 인천고등학교 포수 이재원을 1차 지명하였다. 1차 지명 직전 대회에서 부진했던 점, 동산고등학교 2학년 때 토미존 수술을 받은 점이 류현진의 평가를 낮췄기 때문이다. 또, 당시 SK 와이번스는 투수 자원이 상당히 많았고, 다음 해 드래프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던 김광현을 1차 지명할 수 있었다. 주전 포수 박경완의 후계자가 필요했던 점도 대형 포수 유망주였던 이재원을 선택한 요인이 되었다. 스카우터들 사이에서 류현진의 아버지가 '조폭'이다는 루머가 돈 것도 영향을 미쳤다. 류거이 류현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
프로 지명 과정에서 고향 팀 SK 와이번스에 버림받은 뒤 롯데 자이언츠도 류현진을 거르고 2차 1순위로 광주제일고의 사이드암 투수 나승현을 지명하자, 결국 턴이 넘어온 한화 이글스가 2차 1순위로 류현진을 지명하여 계약금 2억 5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하였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류현진이 자기들 차례까지 넘어온 한화 이글스는 축제 분위기였다. 당시 고교 빅 3(한기주, 유원상, 나승현)중 한 명으로 평가되던 북일고 유원상을 1라운드에 지명했던 한화는 그에 못지않은 인천 동산고 류현진까지 2차 1라운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화 이글스의 코치진은 류현진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전지훈련 때부터 선발 자원으로 낙점한다. 당시 한화 이글스는 얇은 불펜진에 비해 선발 자원은 상당히 풍족한 편[2]이었으며, 계투진에 기대할만한 좌완 투수가 차명주를 빼곤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일찌감치 1군 선수단에 합류한 류현진은 KBO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투수들인 구대성과 송진우, 그리고 정민철에게 투수로서의 배짱과 마음가짐, 제구력 관리와 변화구(써클 체인지업) 등을 전수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애리조나 캠프를 통해 팀에 새로 합류한 박찬호가 류현진에게 미국 리그에 대한 조언과 동시에 몸 관리 방법 등을 전수했다. 박찬호는 오래전부터 류현진에게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비하여)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 무협지로 치면, 내상 경력 때문에 모두에게 경원시당한 무림 유망주가 후계자가 없는 노쇠한 문파 고수들의 공동 전인이 된 느낌. 물론 여기에는 본인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거, 이를 두고 김인식 감독과 최동원 코치 중 어느 쪽이 더 류현진의 개화(開花)에 기여했는가를 두고 수정과 반박이 격하게 오고갔었다.
현재 남아있는 공신력 있는 기록들, 그러니까 공식으로 보도된 기사들에 따르면 최동원 코치는 2005년 10월 25일에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으며, 2006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기긴 하지만 그건 이미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7월 25일의 일이다. 그러니까 코치진이 신인 투수의 보직을 결정할 시기(전훈 ~ 시범경기)에 최동원 코치는 1군 투수코치였다는 얘기다. KBO에서 1군 투수코치면 신인 투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큰 발언권을 가진 자리이고, 최동원 코치가 투구폼 교정 등 프로 초년생 시절의 류현진에게 이래저래 신경을 썼던 것 또한 사실이므로 최동원 코치가 류현진을 선발자원으로 추천했다는 소문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인식 감독의 역할 또한 결코 낮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최동원 코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시범경기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고졸 신인을 시즌 선발 로테이션에 넣는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은 김인식 감독이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은 킬인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재임 기간 동안 다른 투수들을 신나게 갈아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류현진만큼은 불펜 알바를 거의 시키지 않았고 로테이션도 최대한 지켜 줬다.[3]
요약하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고졸신인을 과감히 선발 로테이션에 올린 것은 두 사람의 합의에 따른 결단이므로, 양쪽 모두의 공이라 할 수 있다.
2 프로 시절
2.1 KBO 리그
2.1.1 2006년 시즌
부상 전력 때문에 드래프트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정규시즌에서 그동안 쌓아뒀던 잠재력을 순식간에 터뜨리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한화는 물론 대한민국의 차세대 에이스로 급부상하기에 이른다. 당시 리그 최고의 투수였던 롯데 손민한의 맞춰잡는 타입과 달리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였으며, 직구 부분에서는 제구, 구위, 구속을 모두 최고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신인왕과 MVP를 동시 석권한 대한민국의 첫 야구선수[4]로 등극. 직구, 커브, 슬라이더 등[5]으로 리그를 정복하지만 정규시즌에서 지나치게 무리했던 탓인지 포스트시즌에서는 KIA 타이거즈와의 준 플레이오프에서 이현곤에게 만루홈런을 맞기도 하고,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다. 이후 새로운 구종을 찾기에 나선다. 자세한 것은 류현진/2006 참조.
2.1.2 2007년 시즌
작년 포스트시즌과 아시안 게임의 부진 때문에 2년차 징크스 내지는 혹사에 대한 후유증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그런 세간의 의혹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여전히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두산의 리오스가 다승, 평균자책점에서 1위를 하였으나 리오스의 일본진출 이후 약물사태에 더불어 07년 다승 2위 탈삼진 1위 평균자책점 4위인 류현진이 골든글러브를 타야한다는 여론이 후에 급부상하기도 하였다.
포스트 시즌 또한 그동안 우려를 불식시키는 기량으로 강팀 삼성을 상대로 무사만루에서 삼진 3개를 성공시키는 괴력을 보여줬다. 준플옵 MVP로 선정. 당시 혹사우려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류현진 투구수 조절을 주장하던 최동원 , 한용덕 투수코치가 2군 감독과 2군 투수코치로 이동. 이상군 2군 감독이 1군 투수코치로 승격하게 되어 상군매직의 암흑기와 투구수 우려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한다.[6]
자세한 것은 류현진/2007 참조.
2.1.3 2008년 시즌
2006, 2007 두 시즌 동안의 무리로 생긴 팔꿈치 부상과 신구종장착 과 투구요령의 변경 과정의 시행착오로 인해 시즌 초반엔 부진하였으나 이를 극복해내면서 전반기에 10승 달성.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에도 당연히 선발된다. 그동안 국제전에서 부진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걱정을 받기도 했지만,년초 참가했던 베이징올림픽 예선에서 패전을 안겨주었던 캐나다전에서 1-0 완봉승을 거두면서 그런 의혹을 한 방에 종식시켰다. 그리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8⅓ 2실점으로 호투하며 대한민국의 우승에 큰 도움이 되었고,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다. 07년 기대주였던 김광현의 기량이 08년 만개하여 류-김 라이벌 구도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자세한 것은 류현진/2008 참조.
2.1.4 2009년 시즌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예상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일본전에서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왔을때 최고구속 140km대 중후반의 직구를 연신 뿌려대면서 구속감소에 대한 의혹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었다. 신구종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당시의 김인식감독은 "어린 선수가 맞춰잡는 투구를 한다"며 비판했다. 시즌성적이 부진했지만, 내년에 나타날 투구요령의 완성으로 성장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년초에 탈삼진왕을 다시 찾겠다라고 선언, 김광현과의 대결에 주목했으나, 당시 트리플 크라운, 리그 mvp 2연패를 달려가던 김광현의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탈삼진왕을 탈환하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류현진/2009 참조.
2.1.5 2010년 시즌
선발 1점대 방어율, 본격 9이닝 2실점해도 평균자책점이 오르는 투수.
팀의 고독한 에이스, 2010년 최강팀은 SK가 아닌 류현진 선발 한화.
파일:I8VIFka.jpg 2010년 6월 12일 자막
김태균과 이범호가 한꺼번에 빠져버리면서 안 그래도 안습이었던 득점지원이 더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시즌 개막시에는 그나마 중심 타선 비스무리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김태완과 이도형도 개막 한 달도 안 되서 부상. 하지만 오히려 류현진은 겨울에 푹 쉰 힘과 감독의 철저한 관리, 그리고 지난 2년간 성장통으로 앓아왔던 써클 체인지업의 가세 및 투구요령의 등극으로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선발투수 전무후무한 승계주자 0명을 달성 2006년의 전성기 모드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이건 뭐 꼴지팀에서 MVP 나올 기세.
하지만 정규시즌 MVP는 역대 3번째이자 개인 2번째 트리플 크라운, 9경기 연속홈런, KBO 최초 타격 7관왕 및 장종훈, 박경완, 이승엽, 심정수 이후 실로 오랜만에 40홈런의 고지를 밟은 이대호가 차지하였고, 대신 활약에 걸맞게 2010시즌 골든글러브 투수 부분의 수상자가 되었다.
연초에 본인이 15승, 2점대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하여 많은 사람들이 긴가민가 했으나 결국 시즌끝나자 16승 1점대를 달성, 투수분업화 이후 최고의 투수 시즌을 보냈다. 자세한 것은 류현진/2010 참조.
2.1.6 2011년 시즌
크보의 흔한 C급 좌완으로 전락(?)한 시즌
지난 해에 괴물같은 성적을 내고,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으로 인해 겨울에 푹 쉬지 못해서였는지 견갑골 통증으로 시즌 중 재활군으로 내려가기도 하는 등 커리어 로우 시즌이 되고 말았다. 본인 말로는 평균자책점 2점대가 목표라고 했지만……. 현실은 야왕의 5선발 규정이닝 미만으로 탈삼진 6위, 윤석민 또한 다른것은 다해내도 "탈삼진은 현진이 때문에 힘들것 같다"라고 인터뷰하여 윤석민 트리플 크라운당시의 가장 강력한 저지 요소로 예상되었으나 박빙일 듯한 싸움이 류현진의 부상으로 인하여 안정적인 윤석민 트리플 크라운 달성으로 변화하였다. 당시에 자세한 것은 류현진/2011 참조.
2.1.7 2012년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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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대첩에서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에 좌절하는 모습.
2012년의 현진이는 웃을 날이 없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영원히 고통받는 류현진
1:17의 전설
아오 이 심해 트롤#팀은 캐리를 하려고 해도 할수가 없어
제발 1점만 내라고 이 시발들아[7]
내가 고자라니
이 병신족밥꼴칰ㅔ끼들아!!
국제 대회가 없었기에 스프링캠프를 끝까지 소화하였고, 본인과 코치진 모두 몸 상태가 최고조라고 하였다.
원래 슬로우 스타터인 류현진이 초반 광속으로 달려가니 2012 시즌에야말로 2010년의 모습을 재현해 보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현실은 2010 류크라이보다도 심한 상황으로 7년 연속 10승 기록에 실패하는, 류현진과 한화의 사정을 아는 야빠라면 눈물을 머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나마 탈삼진 부문 210개로 1위를 했으니 망정이지. 니미 삼진 210개 했는데, 9승밖에 못할거면. 수비는 왜 돈주고 세워놔...
자세한 것은 류현진/2012 참조.
당시 시즌 중반 예상 성적이 180이닝 6승 9패 평균자책점 2.33 탈삼진 270개일 정도였으니 나름대로 타선이 애썼다고도 할 수 있다. 규정이닝 미만인 2011년조차 11승인데 정작 타선보다도 어이없는 수비 삽질이 더 문제였지만
2.2 메이저리그 진출
류현진이 포스팅 시스템에 의한 해외진출에 필요한 프로 연차 7년을 채움에 따라 본인이나 야구팬들이나 메이저리그로 탈출진출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2012년을 시즌 도중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 경질되고 차기 감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잔류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10월 8일 김응룡이 한화의 차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류현진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김응룡 부임 이후 인터뷰 내용("구단 전체적인 틀에서 생각해야 한다.")이나 주루코치로 영입된 이종범의 인터뷰("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아 FA 자격 취득 후 해외로 나가는게 낫다.")를 보아 구단이 류현진의 포스팅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다.[8] 애시당초 초거물급 감독을 신임감독으로 초빙하면서 어느 정도의 전력은 보존시켜야하는 입장인데다가 김응룡 본인부터가 소문난 좌완 애호가라서……. 거기다 덩치까지 크고 내구성도 좋다! 게다가 김응룡 감독이 팀 상황 등을 들어 류현진을 해외로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이 힘들어질 것으로 보였으나# 류현진 본인의 의지가 매우 강했고, 구단과 코치진도 류현진의 미래를 위해 통 크게 결단을 내리면서 포스팅 추진을 결정하였다. 11월 1일 포스팅을 신청했고 11월 2일부터 4일간 포스팅이 진행되었다.
몇몇 라이트 팬층은 이와쿠마 히사시의 1700만 달러[9]을 거울삼아 1000만 달러 이상의 거액의 포스팅 이적료를 기대했지만, 많은 MLB 팬이라 자처하는 좆문가들은 그 의견에 대해 폭소를 터트렸다.[10] 일본프로야구 통산 타율 3할 3푼에 빛나는 아오키 노리치카가 500만 불도 안되는 이적료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진출했음을 감안하면 그저 안습하다며 조롱했다. 천웨이인의 수준에서 몸값이 책정될 거란 의견도 있지만 천웨이인은 3년간 1140만불의 FA 계약이라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야구인들과 언론들이 이적료만 1000만~2000만불이라는 장밋빛 전망만을 쏟아내고 있다고 까댔다. 20-80 스케일에서 모든 구종이 평균 내외[11]인 평균구속 89마일의 의사소통 되지 않는 4~5선발감 좌완에게 잭 그레인키를 영입할 수 있는 평균 연봉에 버금가는 이적료[12]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영입 의사를 타진할 메이저리그 구단이 쉽게 나타날지는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과거 국내 포스팅 잔혹사를 상기시키는 기사가 많이 뜨면서 많은 팬들도 상황이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러나 2012-13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 괜찮은 좌완 선발이 얼마 없기에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또 한편으로 보면 (한화가 적은 이적료를 감수한다는 전제 하에) 이적료와 연봉총액을 합쳐서 1000만불 전후라면 쉽게 수긍이 가는 금액이기도 했다. 상대해야 하는 에이전트가 그 분이라 앞길이 험난하다
2012년 11월 9일 스포츠조선 기사에 따르면 류현진이 정한 MLB 진출을 위한 포스팅비 하한선은 무려 1000만 달러라고 한다. 류현진의 MLB 진출을 기원하던 팬들은 일제히 멘붕. 해야갤에서는 띠오신의 시카고 컵스가 9,999,999.99달러[13]를 질렀다가 1센트가 부족해서[14] MLB 진출 실패라는 등의 드립을 뿜어냈다. 엠엘비파크 엠엘비/한국야구타운은 국내기사에 대해 절대 신뢰하지 않았으면서도 정작 이 기사가 나오자 많은 이들이 멘붕을 일으켰다. 이런 혼란이 일어날 만도 했던 것이, 포스팅이 끝나고 결과가 MLB에서 KBO로 전달된 마당에도 관련 기사가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없었다. 심지어 팬들은 물론이고 일부 기자들조차 Ryu Hyun-Jin[15]에서 -기호를 잘못 써서 Ryu-Hyun Jin이라 하며 결과적으로 진류현(…)이란 괴상한 이름을 창시하는가 하면, 트위터에서 외국인들의 질문이 쏟아져 한국인들이 답해줄 정도. 팬들은 이런 사태가 빚어지는 꼴을 보며 불안감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포스팅 이적료로 2573만 7737달러 33센트[16]라는 위엄돋는 금액이 나왔다. 포스팅에 성공한 팀으로 대다수가 시카고 컵스 또는 텍사스 레인저스를 점쳤다. 띠오가 또? 여러분 최고의 투수를 영입했습니다 하지만 밝혀진 당첨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17][18]. 이제 류현진의 타격을 볼 수 있다! 류현진 曰, "만세! 한화 탈출이다!"[19] 그래도 요즘은 살기 좋아졌다.앞서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고 비난받던 언론들은 역으로 고작 예상 금액 천만 달러 정도의 비관론만 늘어놓았다며 까이는 신세가 됐다. 여담으로,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2000만 이상 배팅한 팀이 2~3팀이었고 그 중 컵스는 당연히 자기 팀에 오는 줄 알았다고 한다.
포스팅 이후 사이닝 데드라인까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를 위시한 양측의 이견차가 좁혀지지 못했고, 다저스는 그 사이에 FA 최대어인 선발투수 잭 그레인키를 영입하며 클레이튼 커쇼-잭 그레인키-조시 베켓-채드 빌링슬리로 이어지는 로테이션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남은 5선발 자원만 해도 테드 릴리, 크리스 카푸아노, 애런 하랑이 남는 포화상태가 되었고 이로 인해 협상의 주도권은 사실상 다저스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시각으로 12월 9일, 스포츠동아의 이재국 기자에 따르면 다저스가 류현진에게 6년 3000만달러를 최종 제시했다고 한다.
12월 10일, 다저스와 6년 3600만달러 계약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KBO 최초 메이저리그 직행자 탄생.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동안 총 750이닝 이상을 소화할 경우, 그 다음 해에 옵트아웃을 선언할 수 있다. 또한 매년 이닝 소화에 따른 최대 백만 달러의 인센티브가 걸려있고[20], 사이 영 상 투표 순위에 따라 연봉이 상승된다. 다저스는 통역비용을 부담하고 양측의 서면합의 없이 류현진을 마이너리그로 내릴 수 없다.[21]
한 가지 흥미로운 조항이 있는데 다름아니라 다저스가 류현진을 트레이드 할 경우, 류현진은 트레이드 된 시즌만 뛰고난 뒤 다시 FA 로 풀릴 수 있다! 이 조항은 사실상 다저스의 안전장치였는데, 류현진이 좋지 않은 성적을 찍을 경우 트레이드를 하고 싶어도 6년에 달하는 장기 계약 때문에 다른 팀들이 부담스러워 할 경우를 대비해 혹시나 아니다 싶으면 싼 값에라도 팔아버릴 수 있게 (...) 삽입한 조항이다. [22] 반대로 말하면 이 조항 덕분에 류현진의 트레이드 가치는 본인의 활약 대비 상당히 낮아졌기 때문에 류현진이 2013 시즌같은 활약을 계속 해 나간다면 계약 말미가 아니라면 트레이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
포스팅에 관한 국내 메이저리그 팬사이트들에서는 당시 메이저리그 언론과 각 구단들이 매우 조용했기에 그냥 국내에서만 요란하지 현지에서는 시큰둥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느 정도 파악이 된 것이지만 포스팅 당시 현지가 너무나도 조용했던 건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선례가 없었고, 이웃인 일본이야 꾸준히 그곳에서 포스팅이나 FA를 통해 메이저로 건너온 일본 선수들이 있었다지만 한국은 그런 선수들이 지금까지 없었기에 류현진에 대해 알려진 것이 사실상 없는 만큼 현지 언론이 조용한 것이 당연했다. 그의 이적이 확정되고, 스프링캠프는 물론 시즌 초만 하더라도 그에 대한 현지 평가가 조심스럽거나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도 일본과 비교해 야구변방국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직행한 최초의 선수였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협상 비화로 '마이너 조항있으면 나 그냥 한국감'이라고 류현진이 버티는 바람한화보다는 2군이 나을텐데?에 마감 1분 전이 되어서야 다저스가 마이너 조항을 빼겠다고 물러서면서 '마이너 조항 빼줄테니까 빨리 계약고고'라고 말했지만 스캇 보라스가 '님 뭔소리? 아직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음'이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20초 남긴 상황에서 보라스가 6년 $42M을 불렀고 똥줄이 탄 다저스가 몸값을 $6M이나 올려주면서 $36M에 합의를 봤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은 협상마감기한 1초를 남긴 상황에서 전부 종결이 되었다고. 물론 이건 예능에서의 발언이니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있다.
한편 류현진의 등번호는 한화 시절과 똑같이 99번이 되었다. 매니 라미레즈가 다저스로 왔을 때의 등번호를 물려받은 셈인데, 하필 번호의 이전 주인이 주인이기에 현지 언론 중 일부에선 이걸 두고 류현진을 트집씹어대기도 했다. 류딸 Being 류딸
그리고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가면서 한화에 남긴 돈들은 1년 뒤 유용하게 쓰였다.오버페이 느낌이 좀 났다는 건 넘어가고 그리고 이들 역시 그 혜택을 받았다.
한편, 후에 류현진의 성공에 고무된 선수들이 2014 시즌 종료 후 포스팅을 신청했으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해외의 미적지근한 반응만을 받아 결국 꿈을 접는 모습을 잇달아 보였다. 사실 메이저 입장에서는 그들이 류현진과 같은 급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류현진급의 대우(높은 합의금, 마이너 금지 조항 등)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인데, 류현진의 성공으로 인해 자신들도 반은 가겠지라며 안일하게 생각한 점이 크다. 결과적으로 자기들이 바라는 대우는 안 해줄것 같고 국내 FA시장이 미친듯한 인플레를 보여주자 국내에 남는 편이 돈을 더 받을 것 같으니까 메이저 행을 접은, 결국에는 돈 문제로 인한 결과인데 국내 기레기들은 한국의 자존심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애초에 진짜로 도전할 생각이었다면 포스팅 금액이나 마이너 금지 조항같은 배부른 조건을 걸지는 말았어야 정상이다. 철저하게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메이저에서 한국선수를 위한 특별대우를 해줄 이유가 전혀 없으니 정 메이저로 가고 싶으면 악조건을 감수하던가 실력을 더 키워야 하는데 류현진의 사례를 보고는 자기도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자만한 선수들과 이를 부추긴 언론의 문제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거나 뱁새가 황새 걸음을 걸으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상황
2.2.1 2013년 시즌
메이저리그 커리어 하이 시즌.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시즌 전 온갖 우려를 불식시키며 훌륭하게 메이저리그에 안착했다. 보통 때였다면 신인왕도 노려볼 수 있을 만큼 모두의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한 해.
자세한 성적 및 일정은 항목 참조.2013-2014 경기 영상
2.2.2 2014년 시즌
메이저리그 데뷔 2년차를 맞이하는 시즌. 2년차 징크스의 극복과 작년보다 더 발전한 성적을 보여줄 수 있을지 관건인 해. 작년 성적과 비교했을때 조금 아쉽지만 어쨌든 2년차 징크스는 무사히 넘어간 것 같다. 사실 류현진이 아쉬운 부분은 잦은 부상이었고, 기실 피칭의 퀄리티 자체는 늘었다. 내려간 볼넷 비율과 홈런, 올라간 삼진비율이 그를 증명한다. 대신 타격은 명백한 2년차 징크스를 겪었다
2.2.3 2015년 시즌
작년의 다소 아쉬웠던 모습을 떨쳐내고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는 시즌이었지만, 어깨 부상 때문에 결국 정규시즌 등판을 한번도 하지 못한 채 시즌아웃되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으로.
2.2.4 2016년 시즌
기나긴 재활 끝에 트리플A에서 재활등판을 하였으나 구속이 80마일 대로 떨어져서 주변의 우려를 샀고, 7월 8일[23] 복귀전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4.2이닝동안 8피안타 6실점하면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특히 8개의 피안타 중 5개가 장타[24]였다.
워싱턴 내셔널스전 등판에 대비해 불펜 투구를 소화하던 도중 팔꿈치 건염이 발견되어서 7월 20일에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8월 2일에는 60일 명단으로 이동했다.
사실 상 시즌아웃 되었다.기사
2.3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6 | 한화 이글스 | 30 | 201⅔ (2위) | 18 (1위) | 6 | 1 | 0 | 0.750 (2위) | 2.23 (1위) | 159 | 11 | 54 | 204 (1위) | 57 | 50 | 1.046 |
2007 | 30 | 211 (2위) | 17 (2위) | 7 | 0 | 0 | 0.708 (3위) | 2.94 (4위) | 195 | 15 | 71 | 178 (1위) | 74 | 69 | 1.246 | |
2008 | 26 | 165⅔ | 14 (2위) | 7 | 0 | 0 | 0.667 | 3.31 | 144 | 12 | 68 | 143 (2위) | 66 | 61 | 1.274 | |
2009 | 28 | 189⅓ (2위) | 13 (4위) | 12 | 0 | 0 | 0.520 | 3.57 | 180 | 19 | 69 | 188 (1위) | 80 | 75 | 1.305 | |
2010 | 25 | 192⅔ (2위) | 16 (2위) | 4 | 0 | 0 | 0.800 (2위) | 1.82 (1위) | 149 | 11 | 54 | 187 (1위) | 42 | 39 | 1.007 | |
2011 | 24 | 126 | 11 | 7 | 0 | 0 | 0.611 | 3.36 | 101 | 12 | 39 | 128 | 54 | 47 | 1.103 | |
2012 | 27 | 182⅔ (3위) | 9 | 9 | 0 | 0 | 0.500 | 2.66 (5위) | 153 | 12 | 51 | 210 (1위) | 58 | 54 | 1.089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3 | LA 다저스 | 30 | 192 | 14 (NL 10위) | 8 | 0 | 0 | 0.636 | 3.00 (NL 8위) | 182 | 15 | 54 | 154 | 67 | 64 | 1.203 |
2014 | 26 | 152 | 14 | 7 | 0 | 0 | 0.667 | 3.38 | 152 | 8 | 34 | 139 | 60 | 57 | 1.191 | |
2015 | 기록 없음 (수술 후 재활) | |||||||||||||||
2016 | 1 | 4⅔ | 0 | 1 | 0 | 0 | 0.00 | 11.57 | 8 | 1 | 2 | 4 | 6 | 6 | 2.142 | |
KBO 통산(7시즌) | 190 | 1269 | 98 | 52 | 1 | 0 | 0.653 | 2.80 (4위) | 1081 | 92 | 406 | 1238 | 431 | 395 | 1.172 | |
MLB 통산(4시즌) | 57 | 348⅔ | 28 | 16 | 0 | 0 | 0.636 | 3.28 | 342 | 24 | 90 | 297 | 133 | 127 | 1.239 |
완투, 완봉기록 | ||
년도 | 완투 | 완봉 |
2006년 | 6완투 (1위) | 1완봉 (2위) |
2007년 | 6완투 (1위) | 1완봉 (2위) |
2008년 | 2완투 (2위) | 1완봉 (2위) |
2009년 | 4완투 (1위) | 2완봉 (2위) |
2010년 | 5완투 (1위) | 3완봉 (1위) |
2011년 | 3완투 (1위) | 0완봉 |
2012년 | 1완투 | 0완봉 |
KBO 통산 | 27완투 | 8완봉 |
2013년 | 2완투 | 1완봉 |
MLB 통산 | 2완투 | 1완봉 |
전체 통산 | 29완투 | 9완봉 |
- 타격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병살타 | 출루율 | 장타율 |
2013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30 | 58 | 0.207 | 12 | 3 | 1 | 0 | 5 | 5 | 0 | 2 | 23 | 1 | 0.233 | 0.293 |
2014 | 26 | 47 | 0.149 | 7 | 2 | 0 | 0 | 2 | 4 | 0 | 1 | 17 | 0 | 0.167 | 0.191 | |
2015 | 기록 없음 (수술 후 재활) | |||||||||||||||
2016 | 1 | 1 | 0.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0 | 0. 000 | |
MLB 통산(4시즌) | 57 | 106 | 0.179 | 19 | 5 | 1 | 0 | 7 | 9 | 0 | 3 | 40 | 1 | 0.204 | 0.248 |
역대수상 | |
년도 | 수상내용 |
2006년 | 최우수 신인상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정규시즌 MVP |
2010년 |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
2.3.1 평가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류현진의 시즌 성적 순위는 다음과 같다. 커리어 하이는 파란색, 로우는 빨간색으로 표시.
2013 > 2014 > 2010 > 2006 > 2007 > 2012 > 2009 > 2008 > 2011
메이저리그 시즌을 제외한 순수 한국야구 시절만 놓고 평가하면 커리어 하이가 2010시즌, 커리어 로우가 2011시즌이며, 2012시즌은 단지 승수가 적을 뿐 류현진 커리어 평균에 가장 가까운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커리어 로우 시즌과 하이 시즌은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당장 기초 성적만 놓고 보자면 2006년이나 2007년이 그 이후보다 압도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피칭 내용상 변화구의 완성도·피칭 스터프 등은 오히려 성적 자체는 나빴던 2009년 이후로 눈에 띄게 발전했다.
또한 2010 커리어를 세이버메트릭스 성적으로 파고들자면, 류현진이 엄청나게 잘 던진 건 맞지만, 그 이상으로 운도 엄청나게 따라줬다는 결과가 나온다. 실제로 FIP와 ERA의 차이가 1 가까이 난다. 크보에 흔한 천재투수 어느 정도 BABIP가 낮아지게끔 좋은 볼을 던졌다고 하더라도 운이 나쁜 피칭은 결코 아니었다는 얘기. 오히려 세이버메트릭스 성적상으론 2012년 성적이 정말로 압도적인 성적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성적이 삼진을 잘 잡는 투수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평가가 좋다고 할 수도 있는데, 2012년 류현진의 성적에서 삼진이 워낙 화려하기에 간과하기 쉬운 기록 중 하나가 사사구이다. 2012년 류현진은 182.2이닝 동안의 사사구(볼넷+몸에 맞는 공)가 51개로, 9이닝당 평균 사사구는 2006년을 제외하면 그 어떤 시즌보다 적었다. 타자들이 투수의 공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데뷔 시즌에 실제보다 약간 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구가 꾸준히 발전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2011년은 제외 제구는 계속 좋아졌다치면 구위는? 보통 구위를 가장 직관적으로 말해주는 스탯은 탈삼진으로 통한다. 그럼 K/9가 가장 좋았던 시즌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지면, 류현진은 시즌 스탯의 결과에 보이지 않게끔 계속해서 성장해왔다는 얘기다. 지명타자제도 없었으면 타자로서의 성적도 좋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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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국 기자는 당시 스포츠동아의 SK 와이번스 담당 기자였다.
- ↑ 문동환, 송진우, 정민철, 최영필, 김해님, 양훈 등
- ↑ 물론 투구수 관리 면에서는 혹사가 맞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이들의 의견에 일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관리를 해준것도 남들이 빡세게 굴리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문제삼을수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인식 감독이 류현진을 다른 투수들보다 신경써서 관리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 ↑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는 아니다. 2002년에 한국프로농구에서 김승현이 신인왕-MVP 동시 수상을 이뤄낸 적이 있었다.
- ↑ 이 때 아직 써클 체인지업은 부각되기 전이었다.
- ↑ 다만, 최동원 씨의 경우에는 진작부터 지병 때문에 코치 업무를 정상적으로 보기 힘든 상태였고, 또한 한용덕 씨는 정작 투수마다 투구수 조절이 다르다는 게 지론인 분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
- ↑ 오죽하면
시도때도 없는빈번한 한화의 막장 수비를 매번 겪고 나서도 매 경기 꾸준히 제 역할을 하는 그의 멘탈을 LAD 구단주가 아주 마음에 들어해 영입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어디까지나 카더라에 농담성이지만 아주 틀린 말처럼 여겨지지 않는 건 실제로 다저스 스카우터를 포함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꾸준히 그의 경기를 챙겨봤기 때문에 당연히 막장수비도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모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터는 "올 시즌 한화 이글스의 경기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웃었다. 어이없는 실책이 많았다. 하지만 류현진에게서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찾지 못했다. 그 부분에서는 분명히 크게 점수를 주고 싶다"는 평가를 내렸다.대니얼 김 - 류현진이 천만 달러의 남자가 될 수 있는 이유 - 기사 출처 - ↑ 류현진의 팀동료는 아니지만 이대호도 비슷하게 FA 자격을 얻고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의견을 내기도 하였다. 반대로 1살이라도 더 젊을 때 메이저에서 불러준다면 빨리 가는 것이 나을 거라는 의견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메이저리그 선배들이라 할 수 있는 박찬호, 김병현, 봉중근이고, 의외로 홍성흔도 지지했다. 홍성흔은 앞의 세 사람과 다르게 신중히 팀과 의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지만.
- ↑ 이는 빌리 빈의
흑마법계략으로, 서부지구 팀들로의 이적을 막기 위해 실제 가치에 비해 높게 불렀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이후 이와쿠마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이적료를 돌려받았다. - ↑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메이저 기사를 주로 다루는 김형준 기자도 300만~500만을 예상하며 좆문가로 전락, 박동희만이 갓동희로 찬양되었다. 단, 이 때는 유례가 없던 상황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 ↑ 이는 2012년 어느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른 것으로, 2010년의 한 리포트에는 체인지업에 대한 평가가 조금 더 높았다. 다만, 2012년 체인지업 평가 점수로 알려진 55점은 구속인 77마일을 잘못 읽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점수를 적는 칸이 아닌 밑에 적혀 있었기 때문.
- ↑ 다르빗슈 유가 웬만한 최고수준 FA 투수들의 연봉총액인 1억 불을 넘는 이적료+연봉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하였다는 사례를 들 수도 있지만, 일본야구와 한국야구의 전체적인 수준차와 스카우팅 리포트에 나온 것처럼 다르빗슈와 류현진 사이의 객관적인 기량차를 생각해야 하고 다르빗슈의 경우는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다르빗슈는 사실상 텍사스에서 프런트라인 선발로 쓰고자 데려온 선수다. 그나마도 오버페이라고 아직까지 까는 의견이 존재하고.
- ↑ 컵스 엡스타인 사장은 레드삭스 단장 시절 마쓰자카 다이스케 포스팅에서 51,111,111.11달러라는 황당한 금액을 써낸 바 있다.
- ↑ 류현진은 MVP 시상식 때 1센트라도 부족하면 안 간다고 말한 바 있다.
- ↑ 위키백과 영어판에서도 Yu Darvish 등으로 표기된 일본인 선수들과 달리 성-이름 순으로 표기되어 있어 이런 혼란이 더 가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 ↑ 한국인들이 3과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저렇게 써넣었다고 한다.(...)
- ↑ 계약 성사 후 비화에 따르면 다저스는 류현진을 고교 시절 때부터 줄곧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텍사스 레인저스도 마찬가지였고.
- ↑ 다저스를 예측한 팬들이 어느 정도 있었고, 보라스 코퍼레이션 본사가 로스앤젤레스에 있어서 류현진이 로스앤젤레스로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말로 다저스 아니냐고 확신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저 보라스 만나러 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2012년 당시 다저스 선발진은 소위 포화상태라 자리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
- ↑ 국내의 경우, 포스팅 시스템으로 이적할 경우 원소속 구단이 해당 선수에 대해 임의탈퇴를 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만약 국내로 복귀할 경우에는 한화 외의 타 구단으로 갈 수 없다.
- ↑ 170이닝부터 10이닝당 25만불이 추가된다고 한다. 200이닝을 소화하면 100만 불을 추가로 버는 셈.
- ↑ 현실적으로는 마이너 강등 거부권이 있다고 해서 류현진이 절대 마이너로 안 내려간다는 건 아니다. 만일 성적이 폭망하면 자발적 강등이라는 형식을 거칠 뿐이지 마이너행을 거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저 옵션의 의의는 어중간한 성적을 내고 있을 때 구단이 로스터 정리 등등의 구단 사정으로 일시적으로 마이너로 강등시키는 짓 등을 막아준다는 것.
- ↑ 스탠 카스텐 사장의 '고효율은 포기하더라도 고효과는 포기 못한다' 는 매우 합리적인 빅마켓 운영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절대 계약에 트레이드 거부권을 넣지 않기로 유명하고 본인 역시 죽을 때 까지 No Trade 계약은 안 할 거라고.
- ↑ 한국시각
- ↑ 2루타 3개, 3루타 1개, 홈런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