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사키 하지메

육상자위대의 역대 육상막료장
27대 나카타니 마사히로28대 맛사키 하지메29대 모리 쓰토무
자위대의 역대 통합막료회의의장자위대의 역대 통합막료장
25대 이시카와 도루26대 맛사키 하지메초대 맛사키 하지메2대 사이토 다카시#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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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崎一

1 개요

일본의 육상자위관.

2 생애

1944년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 태어났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전전(戰前)에 태어난 육상막료장이다. 그의 후임자였던 모리 쓰토무부터는 전후 세대이다.

1963년에 가고시마현 이즈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재수를 해서 1964년에 방위대학교 12기로 입학하였다. 1968년에 졸업했고 병과보통과였다. 소령 시절인 1979년에 제25보통과연대 2중대장을 지냈고 1988년에는 중령으로 육상막료감부 교육훈련부 훈련과 훈련반장을 지냈다. 1991년 대령으로 진급하면서 제39보통과연대 연대장을 지냈다. 육상막료감부 방위부[1] 방위과장을 지냈고 1993년에 장보로 쾌속 진급했다.

장관급 장교 시절엔 1994년 북부방면대 총감부 막료부장(부참모장), 1996년 육상막료감부 인사부장[2] 등을 지냈고 1998년에 육장으로 승진했다. 제3사단장을 지냈고 육상막료부장북부방면대 총감 등을 거쳐 2002년에 나카타니 마사히로의 뒤를 이어 29대 육상막료장에 올랐다. 육상막료장 시절인 2004년 4월 1일에 이라크에 파견된 자위대 격려차 출국하면서 출국 사실을 숨겨 구설수에 올랐다. 막료장이 사무실에 있는 것처럼 사무실 앞 패널을 재실, 통화 중 등으로 표시 해놓고 출국했다고. 관련기사 육막장 후임자는 모리 쓰토무이다.

2004년에는 마지막 통합막료회의의장에 올랐다. 왜냐면 2006년에 해당 직위의 명칭이 통합막료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초대 통합막료장을 지내기도 했다.[3] 5개월 동안 짧게 통합막료장으로 근무했고 퇴임했다. 후임자는 해상자위대 출신의 사이토 다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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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에 방위대신 보좌관 등을 지내다가 2012년 3월에 퇴임했다. 일본지뢰처리를지원하는모임(日本地雷処理を支援する会)[4] 회장으로 재직했고 캄보디아 등에서 지뢰 제거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1. 육군본부의 기획관리참모부에 상당.
  2. 한국의 인사참모부장에 상당.
  3. 통합막료회의의장 시절엔 1990년대 이전의 한국 합참의장처럼 명예직에 가까웠다. 그냥 3군의 의견을 조율해주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합동성 강화과 중시되면서 기능이 확대되었고 명칭도 통합막료장으로 바뀌었다.
  4. NGO이지만 지뢰 제거가 민간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직 자위관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