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족

滅族
옛날 왕조에서 전해 내려져오는 처형법으로 말 그대로 해당 죄인이 속한 모든 일가들을 몰살시키는 형법이다. 즉 연좌제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대역죄에 해당하는 집안들이 대상이며 이 중에는 자기 세력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집안들의 보복방지차원에서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집안과 관련된 사람들도 미비하지만 예외가 아니다. 혈족이 아니더라도 고용인들이나 노비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흔히 아주 괴악한 대역죄를 저지른 자의 일가족, 사촌은 물론 육촌 팔촌까지 죽이는 형법으로 지금까지의 처형법들 중에서도 매우 잔인하다. 이 대역죄는 주로 나라를 뒤엎으려는 역모죄가 대부분이며, 꼭 육촌 팔촌일 필요는 없고 좀 순화시켜서 나머지 일가들을 귀양보내거나 천민, 노비로 강등시키는 케이스가 있다. 본래 사마씨의 진나라 시절까지는 남녀노소 가릴것없이 모두 참형에 처했는데[1] 북위 연간에 여자들과 16세 이하의 소년들은 죽이지 않고 관비로 만드는걸로 변경되어 이후의 왕조에도 법전에 적용되었다. 다만 전근대사회에는 지도자가 법전을 무시하고 멋대로 처벌을 결정하는 경우가 흔했고 특히 반역은 정치적 사건인 만큼 연좌제의 범위가 매번 달라져 연산군이나 수나라수양제, 명나라 홍무제의 경우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여 버렸다. 여기에 더해 희대의 학살자 징기스칸 같은 경우는 아예 지역 주민들을 모조리 몰살시켜 자신의 복수심을 충족하고 자신에게 복수하려고 마음 품을만한 사람들을 씨까지 말려버렸다. 그나마 연좌제의 범위가 중국보다 좁았던 조선에서도 규모가 큰 반란의 주동자의 경우 여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조항을 무시하고 그 아내까지 처형하기도 했기에 이괄의 아내와 며느리는 참형에 효수까지 당했고 이인좌의 난 주동자의 아내들은 교수형으로 처결되었다.

또한 멸망 당한 나라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멸족 당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케이스로는 조선 건국 이후 태조의 왕씨 척살령에 따라 왕씨들을 모아 강화도 앞바다에 수장 시킨 것이 대표적이다.[2] 자세한 내용은 왕씨 몰살 항목 참조

흔히 말하는 삼족이나 구족을 멸한다는 대사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사극에서 많이 써먹히는 케이스.(연좌제에서는 10족으로 업그레이드. 영락제 때의 방효유처럼.)

중국에서는 고대 춘추전국시대부터 원수의 일가를 치더라도 최소 하나는 남겨줘서 멸족하지 않고 핏줄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해주는것이 최소한의 도리로 여겨졌고, 진짜로 멸족시켜 상대의 핏줄을 끊어버리는건 패륜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통했다.

더군다나 문제는 이러한 형법을 쓰고 있는 나라가 아직도 현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네의 경우 정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친척인척촌수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지 않고 남녀노소 씨를 말린다는 점이다.

명예살인도 비슷한 명목이라고 할 수 있다.
  1. 삼국지연의에서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몰살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것도 이때문이다. 심지어 이미 다른 가문에 시집간 여자들까지 모두 색출해 죽였는데 그나마 관구검의 난 이후 하증의 건의로 시집간 여자는 친정집의 사건에 연루되지 않는다는 규정으로 바뀌었다.
  2. 용케 살아남은 왕씨들은 성을 바꾸거나 은둔하면서 명맥을 잇다가 정조 시대가 되어서야 개성 왕씨로 복원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