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클럽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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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Clubman

1 개요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인 미니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그리고 2008년부터 현재까지 판매하고 있는 소형차의 명칭이다. 처음에는 미니의 고급 버전이었던 라일리 엘프/울즐리 호넷의 후속 정도였지만, 2008년부터는 미니의 왜건 버전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2 역사

2.1 1세대 (1969~1982)

초대 클럽맨이 탄생한 계기는, 판매량이 거의 공기에 가까웠던 엘프/호넷의 후속차를 적은 비용으로 개발해달라는 요청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미니를 가지치기해서 판매하고 있었던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MC)은 파는 차량에 비해 수익이 별로 많지 않아 제정난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비용 절감을 위해서 이 분야에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영국 포드 출신의 인력들을 자사로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이때 BMC로 영입된 디자이너 중 하나가 2세대 포드 코티나의 디자이너였던 로이 해인즈(Roy Haynes)로, 1967년 10월 19일에 입사한 이후 BMC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불필요하게 많은 플랫폼 수를 줄이고, 당시 BMC 내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던 뱃지 엔지니어링을 서서히 철폐하는 방안을 떠올려 냈다. 이때 그가 작업하고 있던 디자인들은 비용 절감을 엄두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BMC에서 고급형 미니인 엘프/호넷의 후속을 디자인하라는 요청을 하자, 해인즈는 미니의 기본 차체를 가만히 두되 부분적인 디자인을 손질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미니의 차체를 두고 부분적으로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해인즈는 다양한 발상들을 떠올려 냈는데, 호주 및 남아공 시장용 미니의 문을 장착하고 세단 스타일의 트렁크나 포드 코티나와 비슷한 현대적인 앞모습을 부착하는 등, 기능성보다는 미적인 부분에 초점을 둔 디자인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다만 로이 해인즈와 그의 동료인 폴 휴(Paul Hughes)는 클럽맨의 디자인 과정에 대해 많이 밝히진 않아, 디자인 관련 내용은 밝혀진 내용이 그닥 많지는 않다. 대신 현대적인 앞모습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추가하는 발상은 현실화되었고, 기존 미니의 후속으로 클럽맨을 도입한 호주 시장에서는 기존의 호주 시장용 미니와 같은 문이 장착되었다. 서스펜션으로는 기존의 덜컹거리는 러버콘 고무 서스펜션 대신 알렉스 몰튼이 설계한 하이드로래스틱 유압 서스펜션이 채택되었다.

1969년에 미니 클럽맨이 출시되었을 때는 BMC와 레일랜드의 합병으로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성립된 때였고, 미니의 모든 라인업은 오스틴, 모리스, 라일리, 울즐리 등등의 여러 브랜드로 출시되는 대신 "미니"라는 단독 브랜드로 통합되어 있었으며, 클럽맨은 라일리와 울즐리 버전의 후속으로 출시되었다. 클럽맨 세단은 1리터나 1.1리터 엔진을 장착하고 고급스러운 마감이 더해졌으며, 오스틴과 모리스로 등장한 왜건 버전의 후속인 클럽맨 에스테이트(왜건)는 크롬을 두른 모조 우드그레인을 장착했고, 고성능 버전인 쿠퍼와 쿠퍼 S의 후속인 1275GT는 오스틴 1300의 1.3리터 59마력 엔진과 미니 최초의 타코미터, 10인치 로스타일(Rostyle) 휠캡을 장착했다.[1] 반면 클럽맨을 출고하기 전에는, 작업 공장이 카울리에서 롱브릿지로 이동하는 등의 여러 계획 변경들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출시 첫 해에 주문받은 차들이 1970년 초에야 고객들에게 인도되는 소동이 터지기도 했다.

1971년에는 하이드로래스틱 서스펜션이 승차감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존의 러버콘 서스펜션으로 환원되었으며, 1974년에는 1275GT에 12인치 스틸휠과 8.4인치 디스크브레이크를 기본 장착하고 기어비를 새로 세팅한 뒤, 던롭의 데노보(Denovo) 런플랫 타이어를 선택 옵션으로 제공했다. 일반 클럽맨에는 1973년까지 크로스플라이 타이어가 당시 주류였던 레이디얼 타이어 대신 장착되었고, 이후 타이어를 레이디얼 타이어로 교체했지만 기존 타이어도 가격을 인하해 주는 특별 주문 옵션으로 제공되었다. 1976년에는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해 그릴을 은색 페인트로 마감한 검은 플라스틱 그릴로 변경했으며, 왜건 버전의 우드그레인도 스트라이프 데칼로 대체했다. 1977년에는 런플랫 타이어가 1275GT의 기본 사양으로 적용되었으나, 핸들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너들에게 외면받았다.

초대 클럽맨과 1275GT는 미니를 고급화해 업데이트한 차로서 등장했지만, 르노 5피아트 127, 포드 피에스타로 대표되는 슈퍼미니급 소형차들의 물결에 휩쓸리자 시장에서 외면받기 시작했다.[2] 1978년과 1979년에는 리처드 롱맨(Richard Longman)과 알란 커누(Alan Curnow)가 1275GT를 타고 영국 투어링카 챔피언쉽(BTCC)에 출전해 2년 연속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브리티시 레일랜드에게는 큰 도움이 되어 주질 못했고, 1980년대 후속으로 오스틴 메트로가 도입되자 클럽맨 세단과 1275GT가 단종되었으며 웨건 버전만 1000HL이라는 이름으로 1982년까지 판매되었다. 단종 때까지 세단 275583대와 1275GT 110673대, 웨건 197606대가 생산되었다.

2.2 2세대 (2008~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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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지의 미니.

2008년에 미니의 웨건 버전으로 등장했으며, 미니 해치백과 컨버터블, 쿠퍼, 쿠퍼 S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던 미니 브랜드의 라인업에 다양성을 조금씩 더하는 데 기여했다. 디자인적으로는 오스틴과 모리스 브랜드로 출시된 왜건 버전인 컨트리맨/트래블러를 모티프 삼아 디자인했다.

기존 2도어 해치백형 미니의 길이를 240mm 늘려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넓힌 실용적인 파생 차종이다. 뒷좌석을 접지 않고도 680리터나 되는 트렁크 용량을 확보할 수 있는데, 트렁크도 트윈 스윙 도어를 달아 냉장고처럼 좌우로 열리기에 높은 짐도 쉽게 실을 수 있다. 좌우 개방형 수어사이드 타입 보조 도어가 달아 뒷좌석에 드나들기 쉽게 만들었는데, 특이하게도 오른쪽에만 달려 있다.벨로스터 : 나?

문제는 우핸들 국가에도 이 배치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팔아서 원성을 샀다는 것.베리타스? 핸들이 오른쪽에 달린 나라들은 왼쪽 인도에 내려야 하는데, 쪽문에 오른쪽에만 있으면 뒷좌석 탑승자는 내릴 때 매우 불편할 뿐더러 뒤에서 달려오는 차나 오토바이에 치일 위험이 늘어난다. 영국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미니 따로 설계하기 돈아까워서 그랬던 것 같은데 차라리 양쪽 전부 달아 버리지 그랬어

2도어 해치백형 미니보다 훨씬 실용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판매 실적은 매우 부진했다. 보조 도어가 한쪽에만 달려 있는 데다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 심지어 2도어 해치백형 미니보다 당연히 무거워서 운동 성능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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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형으로 뒷좌석을 제거한 상용밴인 클럽밴도 판매했는데, 소형 승용차 플랫폼 기반 설계의 한계로 유럽 현지의 상용밴들보다 적재 가능한 부피와 중량이 한없이 떨어졌으며, 가격까지 비쌌다. 결국 몇 대 팔리지도 못하고 조용히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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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세대 (2015~현재)

3세대 클럽맨은 미니다운 개성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두고 개발되었으며, 대칭형 구조로 바꾸어 6도어 타입으로 2015년 후반에 출시됐다. 동시에 수어사이드 도어를 없애고 양쪽에 뒷문을 달았다. 앞뒤 4개의 문짝에 트렁크가 여전히 좌우 개방형 트윈 스윙 도어[3]로 나올 것이기에 6도어가 되는 것이다.

  1. 다만 성능은 같은 엔진의 55마력 버전은 얹은 쿠퍼와 쿠퍼 S에 뒤지는 편이라, 회사 차원에서 전용 실린더 헤드, 추가로 장착되는 1.5인치 SU 카뷰레터, 흡기 매니폴드, 공기 필터와 배전기를 포함하는 C-AJJ 4082 튜닝키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2. 다만 왜건 버전은 디자인 완성도와 실용성 때문에 그나마 호흥을 얻을 수 있었다.
  3. 뒷문이 해치 게이트 방식이 아닌 아닌 양쪽으로 여닫는 방식. 대한민국에서는 1세대 스타렉스 밴에서 볼 수 있는데, 트윈스윙식 뒷도어가 옵션사양이었다. 쏠라티에는 트윈스윙 도어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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