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다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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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이중키킹 투구폼이 잘 드러나 있는 동영상.[1]

요코하마 디앤에이 베이스타즈 No.18
미우라 다이스케 (三浦大輔)
생년월일1973년 12월 25일
국적일본
출신지나라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소속팀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1992~2016)
지도자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1군 투수코치 (2014~ )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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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의 영원번장. 동쪽의 기요하라 가즈히로, 서쪽의 가네모토 도모아키가 은퇴한 이후 2016 시즌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유일의 번장이다.

일본프로야구 선수.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유일한[2]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포지션은 투수이며 2013년 시즌 종료 후부터는 1군 투수코치도 겸임한다. 일본리그에서 과거 퍼시픽리그이와쿠마 히사시와 함께 센트럴리그에서 가장 대표적인 2중 키킹 투수였다. 2005년부터는 이것이 금지되어서 지금은 그 모션을 볼 수 없다.

상당히 임팩트있는 인상과 리젠트 헤어스타일, 팀 리더격 위치로 인해서 '하마의 번장(ハマの番長)'으로 불리기도 하는 선수. 끝이 보이지 않는 현재진행형 암흑기 속에서 팀을 떠받친 약체팀의 외로운 에이스. 요코하마 팬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대접을 받는다. LG 트윈스라뱅 그 이상이다.영구결번 99% 확정

2 데뷔 직후

입단당시만 해도 거의 잉여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을정도로 안습이었는데, 고교를 졸업하고 1991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꼴지순번인 6순위의 지명을 받았다. 과거에도 그렇지만 요즘의 일본프로야구에서도 4순위 밑의 지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나 또는 머릿수 채우기 수준의 지명인지라 당시에 미우라 다이스케가 얼마나 낮은 기대치에 있었는지를 알수 있는 대목이다.

프로 입단 첫해인 1992년에는 겨우 2이닝 던지고 줄곧 2군에만 머물러있었다. 그래도 이때 방어율 제로다! 이때까지만 해도 흔하디 흔하고 미미한 프로 2군 투수에 불과한 대접이었고 언제 다시 1군에 올라갈지 기약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미미한 풋내기 고졸 6순위 선수가 바로 다음해인 93년부터 생각외로 빨리 기회를 잡았고 땜빵선발로써 60.1이닝을 소화하고 1완투승까지 포함된 3승을 거두고 3.43의 준수한 방어율을 내었다. 그러나 94년에는 조금 정체가 되어서 47.2이닝에 4.34의 방어율에 그쳤다. 헌데 93시즌 방어율 & 94시즌 방어율에서 숫자만 바뀌었네 그러나 94년에는 자신의 프로 첫 완봉도 포함되어있어서 의미가 없다고만은 볼수없었다.

3 풀타임 선발

그리고 1995년, 드디어 풀타임 선발 하마의 번장이 탄생했다. 이때부터 그는 팀의 주축 투수로 발돋움했고 95년부터 2009년까지 단 한번도 100이닝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97년에는 승률왕에 올랐고, 1998년에는 12승 7패 3.14의 활약으로 사이토 타카시, 노무라 히로키, 카와무라 타케오, 토카노 히사시 등과 함께 로테이션의 주축을 이루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센트럴리그 우승,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3]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전성기가 조금 지났을 법도 한 나이인 32세 2005시즌에는 방어율왕과 탈삼진왕[4]을 동시에 획득하기도 했다. 이닝수도 214.2이닝이나 소화했다. 그 다음 해에는 216.2이닝으로 생애 최다이닝을 소화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혹사의 영향이 온 건지 커리어 첫 100이닝 이하를 기록했다. 방어율도 7점대까지 치솟았지만, 저반발 공인구로 교체된 2011년에 어느정도 재기에 성공한 상태다. 2012년 기준으로 39세의 대 배테랑이지만 여전히 요코하마에서 가장 믿을만한 투수다. 달리 말하면 아직까지도 미우라의 대체자를 찾지 못했을 정도로 안습한 요코하마의 선수층과 그동안 쓸만한 투수 하나를 못 키워낸 무능한 투수코치들의 탓이 크다. 2012년 최종 성적은 25경기 9승 9패 182.2이닝(4위) 107탈삼진/48볼넷 160피안타 6완투 1완봉 방어율 2.86(12위)의 호성적.

2013년에도 여전히 팀내 1선발. 시즌 중반까지 3점대의 평균자책점으로 좋은 모습이었고, 7월 13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통산 3000이닝을 달성했다. 그러나 올스타전 이후 체력문제인지 탈탈 털리기 시작했고 8월 20일 한신과의 경기에서 3이닝 7실점으로 털리며 4.18까지 방어율이 올라간 상태. 시즌 20경기 출장으로 7경기만 더 출장하면 통산 500번째 출장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10월 5일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 9이닝 3실점 7K 무사사구로 호투했지만 타선이 점수를 못 뽑으면서 결국 노디시전, 4시즌만의 10승 달성에 실패했다. 이 경기로 통산 500경기 출장 달성.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27경기(27선발) 9승 13패(1위) 175.2이닝(5위) 109탈삼진/33볼넷 181피안타(1위) 2완투 1완봉 방어율 3.94(리그 15위)로 시즌 중반에 불안함에 비해 변함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피홈런 26개로 2년 연속 리그 1위를 차지한 건 불안요소지만 40세의 선발투수 치고는 대단히 선방한 모습이다.

2014년부터는 1군 투수코치 겸임으로 뛰게 되었다.

2015년 5월 5일 야쿠르트전에서 승리투수가 되어, 23시즌 연속 승리 기록을 세웠다. 이는 쿠도 키미야스, 야마모토 마사와 타이를 이루는 일본프로야구 기록이며 우완 투수로서는 신기록이다. 시즌 최종 성적은 17경기(17선발) 6승 6패 98이닝 62탈삼진 25볼넷 103피안타 방어율 4.13.

2016년 5월 현재 2군에서 컨디션을 조율...중이나 방어율 5점대 후반으로 거하게 털리고 있다. 2군 선수 중에서도 소화 이닝은 많은 편이나 실점과 자책점이 가장 많고, 무엇보다 승리투수가 된 적이 한번도 없다. 상반기 콜업도 무리일 것이라 예상. 게다가 요코하마가 예상외로 5할 언저리에서 2~3위 싸움을 벌이면서 굳이 부진한 미우라를 콜업할 이유도 없는 상황이다.
더 추해지기 전에 빨리 투수 코치직이나 전념해야?

2016년 7월 11일 주니치전에서 드디어 그의 선발 등판이 예고되었다! 일정상 요코하마가 7월 5일부터 13일까지 9연전을 치뤄야하기 때문에 임시 선발이 등판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그 일환으로 미우라가 선발로 등판하게 되었다. 참고로 요코하마는 9일 경기에서도 임시 선발인 쿠니요시가 등판했었다. 그러나 등판하자마자 1회 초에 6실점으로 거하게 털리며 시작 결국 결과는 4이닝 6실점 패전투수. 그러나 타석에서는 안타를 때려내면서 24년 연속 안타라는 대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이 안타로 투수 연속 시즌 안타 기록에 올라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ㅎㄷㄷ

이대로 2016시즌을 마감하나 싶었는데 9월 16일 고시엔에서의 한신전에 선발 등판이 예고되었다! 에이스 야마구치 슌이 어깨통증으로 로테이션을 쉬게 되어 그 자리를 미우라가 채우게 되었다. 과연 24년 연속 승리 투수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결국 4.1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전 경기보다 훨씬 좋은 피칭 내용을 선보였지만 문제는 타선이 고작 1점만을 내버리는 바람에... 최종 스코어가 1-2로 끝났기 때문에 한 점만 더 냈으면 패전투수를 면할 수 있었지만 패전이 되었다. 아 맞다 원래 이런 팀이였지?

2016년 9월 20일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로써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스와 베이스타즈의 98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현역 선수가 0명이 되었다. 원래는 2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마지막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일정이 밀리면서 29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로 연기되었다.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는 6.1이닝 10실점 패전투수를 기록하며 결국 24년 연속 승리투수 신기록은 거두지 못하였다. 기록으로만 보면 최악의 피칭을 보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순위가 정해진 상황에서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요, 요코하마의 팬들은 미우라의 피칭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또 은퇴를 슬퍼했다. 타석에서도 안타를 때려냈고, 119구 8탈삼진 투혼에 마지막 타자를 삼구삼진으로 돌려 세우며[5]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며 하마의 영원한 번장 미우라 다이스케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 평균 140km/h 초반, 최고 148km/h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정통파 투수였지만 나이를 먹은 이후로는 평균 137km/h, 최고구속이 145km/h정도로 줄어들고 빠른 공 외에 컷 패스트볼, 슬라이더, 포크볼, 슈트, 슬로커브 등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로 변화했다. 통산 9이닝당 볼넷이 2.42개에 불과할 정도로 뛰어난 제구력을 가지고 있으며, 90km/h 안밖의 슬로 커브를 통한 완급조절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단 이러한 투구 스타일 때문에 피홈런은 항상 많은 편이었다.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 2중 키킹 투구동작을 했었으나, 2005년 이후 규정이 변화하면서 봉인했다. 이는 현재 시애틀 매리너스에 있는 이와쿠마 히사시도 마찬가지.

5 안습의 상징

통산 방어율도 준수하고 2009년까지 변함없이 훌륭한 피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기준으로 통산승수가 겨우 172승일 정도로 안습을 넘어 안폭의 통산승수를 기록하고 있다. 150승보다 150패를 먼저 기록했으며 승률도 4할8푼7리밖에 안된다.(181패 - 150패도 8회까지 단 1실점 완투) 이것은 전통적으로 약했던 팀전력과 물빠따들아 1점만 내라고! 그나마 팀전력이 좋았던 2000년 이전엔 포텐이 터지기 전이었고 포텐 터진후엔 팀타선이 시망이 되어버렸으니 제대로 안습이다.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던 2005년도의 승수가 12승이었는데 이때 그의 세부기록을 본다면 상위권팀일 경우 20승도 바라볼 수치였다. 물론 전체 커리어에서 12승이 최다승이었고(1998, 2005)...

그러나 미우라 다이스케가 워낙 구단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팀이 재정난과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성적임에도 이적하지 않고 버텼던 선수였던지라[6], 요코하마 팬들에게만큼은 신급의 대접을 받고 있는 선수이다. 과거의 주축 선수들은 차례차례 은퇴하고, 새롭게 팀을 떠받치던 우치카와 세이이치무라타 슈이치같은 우수한 선수들도 FA로 다 떠나고 휑해져버린 요코하마에서 거의 유일한 순수 요코하마제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게다가 이제 야구계에서도 유일했던 현역 1998년 우승 멤버[7]이자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 시절의 경험이 있는 유일한 선수였다. 그래서 적어도 7~8년 뒤에 가장 강력한 요코하마 감독 후보 1순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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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중??(...)
화보를 참 간지나게 찍는걸로 유명하기도 한데 이때 찍은 리젠트 머리가 반응이 좋아서 그때부터 하마의 번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젊은 시절에는 경기 중에도 왁스만 안 발랐다뿐이지 이 스타일을 유지했고, 비시즌일때도 항상 이런 머리를 한다. 등장곡의 이름도 '리젠트 블루스'[8]이며, 동명의 경주마를 소유한 마주이기도 하다. 이 헤어스타일은 본인이 옛날 일본의 락 스타였던 야자와 에이키치를 존경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외로 평범한 머리스타일일때는 그냥 덩치 좀 큰 평범남같은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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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가 셀카를 찍을 때는 항상 같은 각도에서 사진을 찍는데 이른바 '반쵸 프레임'이라고 한다. 왼 손으로 카메라를 들어 자신은 화면 한 쪽 구석에 있고 남은 공간에 배경이나 같이 찍는 사람이 나오도록 하는 것인데... 구석에 얼굴만 달랑 튀어나와 있는 게 꼭 합성 같지만 진짜다. 이런 재밌는 점 때문에 인터넷에선 네티즌들이 재미로 합성하기도 하고... 미우라의 블로그에는 진짜 반쵸 프레임의 사진들이 잔뜩 있다.

2012년 4월 12일에 메이지 진구구장에서 열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3회전 시합에서 4-0으로 승리, 거의 3년 만에 완봉승을 거두었다.2012.4.12 야쿠르트 대 DeNA 3회전 미우라 완봉 (일본어)[9]

에이스임인만큼 개막전 선발로 7경기나 등판하였으나 1999년, 2002년, 2004~2007년, 2009년 모두 패하여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본프로야구 기록이다.

2015년 시즌이 끝나고 야마모토 마사, 사이토 다카시등의 최고령 투수들이약속이라도 한듯줄줄이 은퇴함에 따라 일본 최고령 투수가 되었다... 단순히 최고령 투수가 아니라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2015 시즌이 시작하기 전 현역 선수 중 미우라 다이스케의 나이 순위는 무려 9위 였으나, 노인정 주니치 드래곤스야마모토 마사,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 노장들이 전부 은퇴한 것을 포함 앞의 8명이 싸그리 은퇴선언을 해서 미우라 다이스케가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10] 결론적으로 은퇴도 미우라가 먼저 하게 되었다.

프로레슬링 매니아이며 1990년대 신일본 프로레슬링투혼 삼총사 중 한명인 파괴왕 故하시모토 신야와 친분이 두텁기도 했다.[11]
  1. 요코하마의 마지막 우승시즌인 1998년 8월 15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메이지진구 구장 원정경기. 참고로 선두타자가 후루타 아츠야이다.
  2. 실제로 요코하마 DeNA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없기로 유명한 팀이다.
  3. 이는 타이요 훼일즈요코하마 스타디움으로 본거지를 옮긴 이래 첫 우승이기도 했다.
  4. 탈삼진 타이틀은 같은 팀의 카도쿠라 켄과 동시 수상.
  5. 이날 감독 알렉스 라미레즈는 미우라를 최대한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6회초 3실점을 허용하고 이닝을 마친 상황에서 다음 회 요코하마 공격에 투수 타석이 있었기에 팬들은 여기서 대타를 내리라고 예상했으나 라미레즈 감독은 그대로 미우라를 타자로 출전시켜서 마지막 타석에 들어서게 해줬고, 7회초에는 정말 교체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또 미우라를 마운드로 올려보내 한 타자를 더 상대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 타자를 삼구삼진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미우라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해준 것.
  6. 2008년에 미우라가 FA를 선언하자 한신 타이거스가 획득을 시도했지만, 구단과 팬들의 열성적인 만류로 요코하마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어 위키백과 참조.
  7. 2015년 기준으로 당시 요코하마 선수들 중 현역으로 남아있는 선수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 다니시게 모토노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사이토 다카시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2015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함에 따라 미우라가 현역 유일의 98년도 우승멤버가 되었다.
  8. 유비트 소서에 수록되었다.
  9. 또 이 시합은 2012년 시즌 개막 이래, 다시 말해서 DeNA 베이스타즈가 출범한 이래 팀이 처음으로 연승을 거둔 시합이다.(...)
  10. 여담으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스즈키 이치로가 일본프로야구에 복귀할 경우 바로 최고령 선수가 된다. 데뷔는 1992년에 같이 했지만 이치로의 생일이 더 빠르기 때문.
  11. 하시모토가 2005년 7월 11일 사망 후 2일 뒤인 13일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고 이 날 인터뷰에서 하늘에 있는 하시모토에게 승리를 바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