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치 드래곤즈 NO.82 |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小笠原道大) | |
생년월일 | 1973년 10월 25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치바 현 치바 시 |
출신학교 | 교세이고쿠사이 고교 (치바) |
포지션 | 1루수, 3루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1996년 드래프트 3위 |
소속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997~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2013) 주니치 드래곤즈 (2014~2015) |
지도자 | 주니치 드래곤즈 2군감독 (2015~) |
2006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 |||||
스기우치 도시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 | 다르빗슈 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2007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 |||||
후쿠도메 고스케 (주니치 드래곤즈) | →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
1 개요
무사
다이아몬드의 상남자
일본의 전 야구 선수. 현재 주니치 드래곤즈 2군감독.
준비자세에서 검객처럼 무사가 칼을 뽑듯 배트를 쭉 뻗어주는 특유의 타격 준비자세와 호쾌한 스윙, 거기에 수염을 휘날리던 외모까지 합쳐져 별명은 '무사' 혹은 '미스터 풀스윙'. 일본에서는 '갓츠'(Guts)로 불리는 근성넘치는 플레이로도 명성이 높았다.일본 넷상에서는 잘하면 갓츠, 못하면 캇스라고 부른다더라
일본인 타자치고는 스윙이 큰 편인데, 나쁜 볼을 잡아당겨 장타를 만들어내는 배트 컨트롤과 파워가 일품이다. 이 때문에 일본프로야구계의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로 분류되지만, 나쁜 공을 칠 수 있음에도 선구안과 타석에서의 참을성이 상당히 뛰어나서 통산 출루율이 .390에 달한다.
등번호는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부터 2번. 하지만 주니치 이적 후 36번을 달게 되었다.
2 선수 경력
2.1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1997년 당시 도쿄돔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던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하였다. 처음엔 포수로 활동하다가, 1999년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1루수로 전향한다. 1999~2000년에는 2번 타자로, 2001년에는 1~3번을 오가며 최다 안타 1위(2000~2001년)와 20-20(2000년) 등을 달성한다.
2002년 주전 3루수였던 가타오카 아츠시가 FA로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면서 오가사와라는 3번 타순에 정착하여 타율 0.340로 수위타자에 오른다. 3루수로 전향한 2003년, 타율 0.360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는 동시에 골든글러브를 수상.
팀이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긴 2004년에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6년에는 홈런왕, 타점왕, 리그 MVP까지 차지하면서, 팀에 44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1]을 안겨주었다.
2.2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
도쿄돔 시절의 닛폰햄 파이터즈가 초안습 수준의 비인기팀인 탓에 오가사와라 역시 그 시절까지는 성적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연고지 이전 후 팀을 우승에 올려놓았던 2006년의 맹활약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며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인기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다.
요미우리에 입단하면서 수염도 깔끔하게 외모 상향 면도를 하게 되는데, 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선수는 수염을 기를수 없다'는 구단의 규정 때문. 사실 당시 오가사와라를 애타게 원하던 요미우리는 "너님은 특별 케이스로 수염 안 깎아도 좋으니 제발 오셈" 이라고 했으나, 오가사와라는 이왕 요미우리의 일원이 된 이상 자신이 팀에 맞추어야 한다면서 구단입장에선 기특하게도 스스로 면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 팀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적 첫 해인 2007년,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자신은 MVP를 수상한다. 이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양리그에서 MVP를 차지한 역대 두 번째 선수.[2]
2008~2010년에도 3할-30홈런을 기록하며 2009년 요미우리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주로 3루수를 맡았지만 1루수로도 자주 기용됐다. 3루 405경기, 1루 206경기.
2.3 2011년 이후
2011년부터는 붙박이 1루수로 확정되었다. 오가사와라의 수비부담도 덜어주는 한편 고졸 3년차 거포 유망주 오타 다이시의 3루 주전 정착을 위한 포석. 헌데 오타는 2군에서도 삼진머신인데 그러나 오가사와라는 부진에 빠지며 6번, 7번, 8번 타순에 배치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8월에 들어선 그나마 타격감을 올리며 3번 타순을 되찾기도 했지만, 최종 성적은 타율 0.242, 5홈런. 부진 속에서 명구회 가입 기준이 되는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부상으로 제대로 출장도 못하면서 타율 0.152, 0홈런의 초라한 성적을 거둔다. 나이도 39세에 2년 계약 종료시점이라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이지만 본인은 선수생활 연장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2013년 6월에는 깜짝 기용으로 굿바이 쓰리런 홈런을 쳐내기도 했다.[3] 하지만 이 홈런 이후로 다시 침체기에 빠져들었으며, 이 홈런이 그의 2013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홈런이 되고 말았다. 이후 FA를 선언했는데, 출전 기회가 적어진 요미우리를 떠나 새 팀을 찾는다고. 다만 이제 40줄이라 받아줄 팀이 있을지는 의문. 일단 기사에 따르면 주니치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는 한다.
2013년 11월 26일 계약기간 1년 연봉 3000만엔에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했다. 주니치와 계약하자마자 수염을 다시 길렀다. 그리고 2014년에는 나이 때문에 선발출장보다는 주로 대타나 경기 도중 교체 식으로 출장하며 83타석에서 타율 0.301를 기록했다. 비록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고 작년에 이어 1년에 홈런이 1개밖에 안 나오는 등 대형사와라 노쇠화로 인해 장타력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일본프로야구의 무시무시한 투고타저에도 불구하고 4년만에 3할에 복귀하며 대타요원으로 그럭저럭 쏠쏠한 활약을 해 2015년 재계약에 청신호를 켰다.
2015년에도 대타요원으로서 활약. 시즌초 타율이 3할 9푼(!)까지 이르는 등 비록 장타력은 없어지다시피 했지만, 교진 말년에 비하면 부활이라 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으로 그야말로 말년을 불태우는 왕년의 슈퍼스타. 그리고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5년 9월 21일 요미우리전에서 현역 은퇴경기를 치뤘다. 4회 내야안타로 마지막 안타를 쳤고, 7회 프로 마지막 타석에서 좌익수 플라이 아웃. 그리고 경기 종료 후 친정팀인 요미우리와 현 소속팀 주니치 양팀 선수단 모두에게 헹가레를 받는 인상적인 은퇴식을 끝으로 현역생활에서 퇴장했다. 여담으로 본인의 프로 데뷔 첫 안타가 내야안타였는데 마지막 안타도 내야안타로 기록하게 되어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프로 통산 성적은 1992경기 6828타수 2120안타 378홈런 1169타점 타율 3할1푼.
굿바이, 미스터 풀스윙.
3 이모저모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으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한국 투수들에게는 호구잡히는 인상.
WBC 경기 하이라이트나 다큐 영상에서 일본타자가 헛스윙 삼진 잡히는 장면에서는 십중팔구 오가사와라를 볼 수 있다 - 클로저 이상용에 나오는 남승우가 리즈시절 오가사와라를 모델로 삼았다.
- 타격폼이 의외로 신기하다. 이걸 모티브로 시로바코의 오가사와라 린코가 배팅센터에서 미치히로를 본딴 타격폼으로 연달아 쳐낸다.
- 원래 조선적을 유지하던 재일교포라는 설이 있으나 명확히 밝혀진것은 없다.
- 현재는 2군감독으로 재직중이나 2017시즌부터 차기감독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모리 시게카즈 감독 대행의 정식 감독 승격으로 없던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