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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에서의 현역 시절. 이분 다시 크보에 모셔 와봐라 고쳐야 할 애들이 너무 많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No.32 | |
마이클 크리스토퍼 "미키" 캘러웨이 (Michael Christopher "Mickey" Callaway) | |
생년월일 | 1975년 5월 13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테네시 주 멤피스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드래프트 7라운드 (TB) |
소속팀 |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1999~2001) 에너하임 에인절스 (2002~2003) 텍사스 레인저스 (2003~2004) 현대 유니콘스 (2005~2007) 퉁이 라이온즈 (2009) |
지도자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투수코치 (2013~)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4번 | |||||
클리프 브룸바(2003~2004) | → | 마이클 캘러웨이(2005~2006) | → | 클리프 브룸바(2007) |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3번 | |||||
래리 서튼(2005~2006) | → | 마이클 캘러웨이(2007) | → | 팀 해체 |
현대 유니콘스 최고의 외국인 투수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저승사자이자 현재 메이저리그의 떠오르는 최고의 투수코치, 재활공장장, 화타
1 소개
현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투수코치. 현역이었을 때 한국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 대만프로야구 퉁이 라이온즈에서 뛰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캘선생'으로도 불렸다.
2 선수 시절
2.1 데뷔 이전
야구 명문 '저먼타운 고교' 출신이다. 당시 155km의 강속구를 보유한 파이어볼러로 활약하면서 3년 간 21승 1패라는 먼치킨급 성적을 기록했다. 2학년 때 69이닝 동안 156개의 삼진을 잡은 기록도 있다고. 그러나 고교 졸업반 시절에 찾아온 팔꿈치 통증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지명을 포기하게 되었고 대신 미시시피 대학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팔꿈치 통증으로 결국 과거의 강속구를 포기했다. 대신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고 MLB 신생팀이었던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지명되었다.
2.2 메이저 리그 시절
1999년 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7라운드에서 지명하면서 프로에 입단했다. 같은 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으나 그후에 인상적인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1 시즌 후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02 시즌 후반기에는 애런 실리의 부상으로 땜빵 5선발로 뛰기도 했으며 6경기 나와서 2승 1패의 성적을 올렸다. 그해 에인절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도 손에 넣었다.
2003 시즌 후 방출되었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팀을 옮겼으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시즌을 날렸다. 이후 FA를 선언했으나 오퍼가 마이너 계약뿐이었기에 2004 시즌이 끝나고 아시아 무대를 밟는다. 여담으로 국내 야구의 희망이자 레전드 박찬호와 함께 한솥밥을 먹던 시기이기도 하다.
2.3 한국프로야구 시절
2005년 현대 유니콘스와 계약했다.
2004년 호투하던 정민태, 김수경, 오재영이 동반부진하던 2005 시즌 197 1/3이닝을 소화하면서 16승 9패로 다승 2위, ERA 3.97로 무너져가던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줬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2006 시즌에는 자신이 개발한 너클포크 등의 변화구를 새로이 장착했다. 166 1/3 이닝동안 14승 7패 2.87로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대의 마지막 가을잔치의 1등 공신이 되었고 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투수로도 등판했다. 2006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을 하면서 2007 시즌에도 한국에서 뜀이 확정되었다.
2007 시즌 전부터 잔부상으로 우려를 샀다. 예상대로 시즌 초부터 무너져내렸고 부상 탓에 선발 로테이션에서 자주 빠지기도 했다. 결국 부상 공백이 길어지자 8월 19일 임의탈퇴 형식을 통해 방출되었고 2승 6패 4.18의 성적을 남긴 채 한국 무대를 떠났다. 임의탈퇴 처리되면서 한국 무대에서 볼 일은 사실상 사라졌다.
2.4 대만 프로야구 시절
2009년 퉁이 라이온즈와 계약했다. 11경기동안 7승 3패 3.17을 기록하면서 호투했으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내 방출되었다. 그리고 대만에서의 활동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코치 시절
2009년 은퇴후 12월부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이너리그 클래스A 팀인 레이크 카운티 캡틴스의 투수코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3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MLB 중계를 보다 익숙한 이름을 보고 놀라는 팬들도 있을듯?
2013년 시즌 후반기부터 우발도 히메네즈를 살려내면서 좋은 코치라는 소리를 듣더니 2014년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코치로 불리고 있다. 투코로서의 활약상
그리고 캘러웨이의 최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리 클루버가 킹 펠릭스를 제치고 사이 영 상을 수상하면서 캘러웨이의 가치는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대니 살라자르라던가 트레버 바우어, 조시 톰린 등 어딘가 영 미덥지 않거나 설익은 투수들도 예전보다 나아지게 했으며, 2016년 월드 시리즈까지 팀이 진출했다.
4 여담
한국 음식에도 잘 적응했고, 특히 동태찌개를 중독 수준으로 즐겨먹었다. 본인은 동태탕으로 알고 있었다고. # 삭발에 동참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한국식 이름[1]을 정하는 등 한국 생활에 훌륭하게 적응하는 모범 용병 중 한명이었지만 끝은 좋지 못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재정 악화로 인한 연봉 지급 문제[2] 때문에 구단과의 마지막이 안 좋았다고. 팀 동료들과 구단 식구들에게 인사 없이 떠났다고 한다.
2005년과 2006년 KBO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2005년 올스타 행사중 열린 투수 최고 슬러거부문에 참가하여 1등을 차지했다.
취미는 사냥과 노래이다. 컴퓨터에 1000곡이 넘는 팝송을 갖고 다녔다고 하며 한국에 온 후에는 부인과 노래방을 종종 찾았다고 한다.
유독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에게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하지만 기나쌩보다는 삼나쌩 이미지가 훨씬 강한데 일단은 현대하면 가장 이를 가는 팬들이 삼성팬인데다. 통산 삼성전 8승0패! 이 정도면 삼성은 제대로 싹수 걸린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캘러웨이가 있던 3년간 기아는 848을 찍던 '꼴아 고양이즈(...)' 시절이라... 이 때문에 더스틴 니퍼트에게 계속 털릴때에도 삼성팬들은 그래도 캘러웨이때 보단 낫지 라고 자기위로를 할 정도였다.니퍼트는 논외로 이겨보기라도 한 적이 있지, 캘러웨이는 아예 한 번이라도 이겨보지 못했으니 근데 니퍼트는 하는 거 보니 한국 뜨려면 한참 남았다 요런 기사가 뜨기도 했다. 펠릭스 호세보다 더 무서울수도 있었던 용병 아니 그 분은 타자잖아
캘러웨이가 한창 잘나갈 때, 동명의 골프용품 업체 캘러웨이의 실적이 올라갔다는 말이 있다. 캘러웨이를 자사 모델로 섭외하려다 불발되었다고 한다.
강정호가 신인일 때, 캘러웨이와 한솥밥을 먹은 인연으로 미국에서 따로 만남을 가진 듯 하다.[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2016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여 시카고 컵스와 3~5차전을 펼치러 리글리 필드에 왔을 때 현지 중계를 하러 정병문과 허구연이 갔는데, 허구연이 그에게 던진 질문에는 저게 뭔가 싶은 내용도 있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
2005 | 현대 유니콘스 | 32 | 197⅓ (2위) | 16 (2위) | 9 | 0 | 0 | 3.97 | 206 | 54 | 103 | |||
2006 | 27 | 166⅓ | 14 (2위) | 7 | 0 | 0 | 2.87 | 171 | 35 | 95 | ||||
2007 | 11 | 56 | 2 | 6 | 0 | 0 | 4.18 | 65 | 22 |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