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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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창당 60주년[1] 기념으로 내건 현수막[2][3]

1 개요

민주당계 정당은 한국의 정당 계열 중의 하나로, 보수정당에 대항적인 정통야당이라는 기치 아래에 지난 60여년간 이어져왔다. 다만 이건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 크고, 사실상 현 민주당계의 직접적 전신으론 90년대 창당한 민주당이나 새정치국민회의를 많이들 꼽는다.[4][5]

1945년 최초의 민주당인 한국민주당이 설립되었고, 민주국민당을 거쳐 오늘날의 민주당계 정당들이 스스로 뿌리라고 부르는 민주당이 1955년 창당되었다.[6] 민주당은 4.19 혁명 이후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장면을 내각 총리로 하는 제2공화국을 창출했다. 그러나, 윤보선의 구파와 장면의 신파로 분열된 이후에는 온갖 분열과 이합집산을 거쳐 신민당으로 통합되었다. 신민당은 12.12 군사반란 이후 출범한 제5공화국 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가, 1985년 신한민주당으로 다시 부활했다. 이후 또 다시 분열을 거쳐 현 민주당계의 실질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김대중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하였다. 2000년에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으로 재창당하였고, 2002년에는 노무현이 16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 재창출을 이루어냈다. 이후 민주당계 정당은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되었으나, 2008년에 통합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합쳐졌다.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어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까지 왔다. 여기서 다시 분열이 되어, 현재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이 민주당계 정당의 명맥을 잇고 있다.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은 보수라고 보기도 진보라고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굳이 정체성을 따지자면 민주당계란 이름에서 보이듯 민주/반독재 정도가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한민당 시절엔 도리어 강경보수계열로 평가받기도 했으나,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거치며 반독재 투쟁을 벌이면서 민주/중도적인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엔 DJ를 필두로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를 거치며 각계의 재야인사와 개혁적 인사들이 다수 합류하였고, 이로 인해 좀 더 진보적인 색채를 띄게 되어 오늘날에는 보수~중도진보가 뒤섞인 개혁세력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대중적인 표현과 달리 학술적으로 표현할 때나 스스로들이 칭할 때나 '진보'나 '좌파'라는 지칭은 거의 나오지 않고 '민주개혁' 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인다.[7] 굳이 나누자면 보수양당제 하의 진보 좌파로, 진보정당들이 장기집권하기도 하는 유럽정치 기준으로 보자면 오히려 중도우파로 평가받기도 한다. 북미권에 견주자면 미국 민주당과 비슷한 자유주의 중도우파 성향 정도로 분류. 참고로 열린우리당 당시 내세운 이념은 사회자유주의였다. 다만, 당원 각각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라 온건 보수와 온건 진보세력이 각각 계파를 이뤄 한솥밥을 먹는 구도라고 볼 수 있다.[8] 특히 현재 존속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은 각각 온건 진보와 온건 보수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9]

한국의 정당 특성상, 사분오열과 이합집산이 여러차례 반복되어 왔는데[10], 민주당계 정당들은 특히 더 심했던 편이다. 굳이 특징을 잡아보면 야당이었던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정당명에 민주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11] 한국의 현대사에서 민주라는 명칭이 붙은 정당의 역사는 아래에 기술한다. 또한 민주라는 명칭은 들어가지만, 실질적으로 민주당계와 관련이 없는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12], 민주노동당, 자유민주연합[13] 등은 제외한다. 더불어 역사적 의미가 옅은 군소정당들은 제외하고 원내정당이거나 특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위주로 서술한다.

1.1 당 색깔

당 색깔의 경우 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고른 초록색[14], 참여정부열린우리당에서 주로 사용한 노란색[15] 위주로 혼용해서 사용했으나, 2013년 민주통합당이 민주당으로 개명하고 난 후, 당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꾸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16][17] 그러나 여전히 초록색과 노란색은 보조적인 색으로 후보자 혹은 개개인별로 사용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의 빨강과 더민주의 파랑이라는 스펙트럼의 중간인 초록색을 선택했다.[18]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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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해방 이후부터 제2공화국 집권까지

2.1.1 한국민주당

8.15 광복 후 1945년 결성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정당. 약칭은 한민당. 이들은 광복 후 초기에 민중들로부터 지지기반이 매우 약했다. 지주, 자본가, 친일파들 위주의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들이 일제 말기 친일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민중들로부터 지지 기반이 약했고 지금도 거의 흑역사 취급을 당하고 있다.

김영삼·김대중의 초기 정치 뒷배가 한민당 출신 인사였고 그에 따라 지금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가끔씩 친일 논란이 일어나는 인물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이 보기에도 "엄청 보수적이라 말이 안 통한다"[19]라는 평을 할 정도로 보수정치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현재, 민주당계 정당들은 1955년에 결성된 민주당을 기점으로 하면서, 사실상 배제된 상태다.

2.1.2 민주국민당

항목 참조.

2.1.3 민주당 (1955년)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이자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 오늘날의 민주당계 정당들은 이 정당을 시조격으로 여긴다. 1955년 자유당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계기로 민주국민당자유당 탈당파[20], 흥사단 등의 범 야권 세력이 모여 호헌동지회를 결성한 뒤, 9월 18일 창당하였다.

그러나, 한민당-민주국민당 출신 구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 신파의 내부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1956년 대선 후보 선출 전 곽상훈의 중개로, 대통령 후보에 신익희, 부통령 후보에 장면을 내세워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안타깝게도 신익희 당시 후보는 선거 직전 사망했지만, 장면 당시 후보는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무너진 이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어[21] 윤보선대통령으로 장면국무총리로 하는 제2공화국을 창출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독재정권 타도에 목표를 두고 뭉쳐버린 탓에, 내부 분열로 혼란이 컸었다. 윤보선의 구파와 장면 신파의 갈등이 심했고, 결국 구파는 신민당으로 분당했다. 이후 남아있던 신파마저 다시 노장파와 소장파로 분열되었고, 5.16 군사정변 직후 군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2.1.4 신민당 (1960년)

민주당에서 윤보선 계열의 구파가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당초 민주당은 독재정권 종식이라는 목표 아래에 뭉쳤으나, 막상 승리가 확실시되자, 오늘날처럼 계파간의 갈등 양상은 점점 커져갔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각책임제 하에서 실권을 가진 총리를 자기 계파 출신으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의석 수에서 앞서야 했으므로 공천 과정에서부터 계파간의 싸움이 치열했다. 구파의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실권을 가진 총리가 신파의 장면이 되면서, 신파는 내각 구성에서 구파를 소외시켰다. 이에 1960년 8월 31일 구파는 ‘구파동지회’라는 이름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신파와의 결별을 고했다.

이후, 구파는 1960년 12월 14일 '신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창당했다. 창당 후 반년간 제1야당의 위치에 있었으나 별다른 정치활동을 벌이지도 못하고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체되었다. 분열을 상징하는 정당이자, 제2공화국이 단명으로 끝난 데 많은 책임이 있는 정당으로 평가되고 있다.

2.2 5.16 군사정변 이후 ~ 제4공화국

2.2.1 민정당

윤보선이 탈당을 통해 만들었던 수많은 민주당계 (2공화국기의 신정당과 이후의 신한당 포함) 정당 중 하나. 김병로[22] 등이 참여했다. 1963년 제6대 총선 당시 41석으로 제1야당.

2.2.2 재건민주당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민주당(1955년)민주당(1963년)민중당(1965년)

군정이 끝난 뒤 민정 체제로 이양되자 잔존한 민주당의 파벌(신파)이 다시 뭉친 이른바 재건된 민주당.

스스로를 제2공화국 시절의 민주당이라 자처하며 '재건 민주당이 아니라 그냥 민주당이다!' 라고 주장했지만 제2야당인데다가 2년 만에 민중당으로 흡수병합 되어버린다.

2.2.3 민중당

1965년 창당. 윤보선 + 박순천(민주당(1963년))의 통합 야당이었으나 윤보선이 계파에서 밀리면서 탈당한다.

2.2.4 신한당

윤보선이 민중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 항목 참조.

2.2.5 신민당

항목 참조.

2.2.6 민주통일당

약칭 통일당. 항목 참조.

2.3 제5공화국 ~ 노태우 정부

2.3.1 민주한국당

1981년 창당된 관제 야당. 약칭은 '민한당'.

2.3.2 민권당

1981년 창당된 관제 야당.

2.3.3 신한민주당

약칭 신민당. 1985년 1월 말 정치활동 금지가 풀리면서 창당된 범 민주정당.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기반으로 김영삼계와 김대중계 및 과거 보수야당계열 인사들이 1985년 1월 창당하였다. 창당 한달 만에 치뤄진 12대 총선에서 정권의 호구였던 2중대 민한당, 3소대 한국국민당을 제치고 단숨에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였다.

이후 민주화를 외치면서 제5공화국 정권과 투쟁하였으나, 이민우 구상의 후폭풍으로 당주류였던 김영삼계와 김대중계가 대거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면서 급격히 추락하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정당등록이 취소되서 사라졌다.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신한민주당 항목 참조.

2.3.4 민중민주당

신한민주당의 (민한당 출신) 의원 내각제주의자들은 1985년 8월 말 '신보수회'라는 서클을 만든 다음 이듬해인 1986년 8월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총재 유한열)을 창당하였다. 선관위에 약칭이 등록되어있지 않아 1987년 4월 창당한 통일민주당에 밀렸고, 한 달 뒤인 5월 다시 신한민주당 잔당과 합당하였다. 한편 총재였던 유한열 의원(당시 신민당 부총재)은 다시 11월 통일민주당에 합류했다.

2.3.5 통일민주당

  • 통일민주당 항목 참조. 약칭이 "통민당"이 아닌 "민주당"이었다. 1990년 민주정의당, 공화당과의 삼당합당으로 사라졌다.

2.3.6 평화민주당

  • 평화민주당 항목 참조. 약칭이 "평민당"이었고, 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맞아 이름을 신민주연합당으로 고쳐서 잠시 신민당이라고 했다.

2.3.7 민주당(1990년), 통칭 꼬마민주당

민주자유당으로의 3당 합당을 반대한 이들이 창당한 정당, 통일민주당의 직계라고 자처하며, 반년 버티고 신민주연합당(구 평화민주당)과 통합했다.

일년도 안되는 반항시기와 도로 민주당 밑으로 들어간 약력, 활동 당시 꾸준히 통일 민주당의 후예라고 우겨댄 게 꼬마 같다고 해서 꼬마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비꼬임 당하기도 했다. 노무현, 김정길, 이기택 같은 정치인이 여기 출신이다. 최동원도 이 정당 소속으로 광역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물론 낙선됐지만...

2.3.8 민주당(1991년)

항목 참조.

2.4 문민정부

2.4.1 새정치국민회의

민주당을 탈당하고 대선을 재도전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가 창당한 정당. 항목 참조.

2.4.2 통합민주당(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잔류한 민주당계 인원들이 홍성우, 장을병 등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개혁신당과 합당하여 1995년에 창당한 정당이다. 16대 총선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15명 당선에 그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고 제4당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15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당의 진로를 놓고 내부갈등이 심해졌다. 15대 대선 후보로 영입한 조순 서울시장이 점점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결정하자, 노무현, 김원기, 김정길 등은 이에 반발해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였다. 반면 이철, 제정구, 이부영, 김부겸 등 대다수 당주류 그룹은 한나라당에 합류한다.

자세한 내용은 통합민주당(1995년) 항목 참조. 2차 "꼬마민주당"으로 보기도 한다.

2.5 국민의 정부 ~ 참여정부

2.5.1 새천년민주당

2000년 새정치국민회의16대 총선에 대비해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변경하며 재창당.

이후 새천년민주당 내 개혁파들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나가버린 탓에 17대 총선에서 대패한다. 덕분에 2005년 당의 로고와 당명을 민주당(2005년)으로 갈아 우리가 정통 민주당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2.5.2 열린우리당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분열되면서 정치개혁과 대통령 수호를 내세우며 창당된 정당. 항목 참조.

2.5.3 대통합민주신당

열린우리당이 또 탈당쇼, 이른바 제2차 탈당쇼를 벌여 만들어진 정당. 2007년 8월 5일 창당.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보름만 공존하고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에 열린우리당이 흡수 합당되었다.[23][24] 결국 당원의 구성이나 형태가 열린우리당의 후계라고 할수 있는 위치다.

이 정당은 신한국당(2년)보다도 가장 단명한 여당(6개월)[25]으로 끝났다. 17대 대선에서 예상된 참패를 한 이후 1년 만에 새천년민주당과 통합을 선언, 폐당된다.

그런데 이 연속 탈당쇼로 인해 초대 한국 민주당의 계파가 부분적으로 2008년 통합민주당에 들어갔다. 족보상 한국 민주당의 계파를 이어받으려고 벌인 일이란 설이 있을 정도로 기이한 연속된 탈당쇼라고 한다.(꼬마 민주당건은 경우가 다르니 논외)

2.6 이명박 정부 ~ 박근혜정부

2.6.1 민주당(2008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2005년)이 합당한 정당. 18대 총선은 "통합민주당"이란 이름으로 치렀다. 항목 참조.

2.6.2 민주통합당

민주당(2008년)과 시민사회세력인 시민통합당, 그리고 한국노총 세력이 만든 정당. 항목 참조.

2.6.3 평화민주당

2010년 한화갑을 비롯해 호남, 동교동계 인물들이 민주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항목 참조.

2.6.4 정통민주당

19대 총선의 민주통합당의 공천과정에서 낙천된[26] 구 동교동계 출신들이 만든 정당. 항목 참조.

2.6.5 민주당(2013년)

18대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이 당명을 개정한 정당. 항목 참조.

2.6.6 새정치민주연합

민주당안철수새정치연합이 합쳐져 2014년 3월 26일에 창당한 정당이다. 당초 국민공모를 통해 정해진 명칭은 '새정치국민연합'이었다.[27] 야당에 유리한 이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는 그저 그런 성적표를 받았고, 이후 치뤄진 재보궐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서 당이 운영되다가 전임 대선후보인 문재인이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5년 하반기 재보궐에서 전패를 하고 말았고, 문재인을 필두로 하는 친노 주류와 안철수와 구 민주계를 필두로 하는 비노계 비주류간의 갈등이 커지게 되었다. 이후, 비주류들의 집단 탈당이 이어졌고, 그들이 모여 만든 정당은 국민의당으로 재편된다. 2015년 12월, 당명 개정에 착수했고[28] 같은 달 28일,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

  • 대표 :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 2014년 3월 26일 ~ 2014년 7월 31일),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2014년 8월 1일 ~ 2014년 9월 17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2014년 9월 17일 ~ 2015년 2월 8일), 문재인 (2015년 2월 8일 ~ 2015년 12월 28일)

2.6.7 민주당(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한 이후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쓰는 당이 없게 된 상태에서 2014년 9월 25일에 창당한 정당. 이후 2016년 9월 더불어민주당과 통합하기로 발표하였다.

2.7 현재

2.7.1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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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2015년 12월 28일 당명 개정한 정당이다. 약칭은 더민주. 단순 당명 개정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들이 탈당하고 난 뒤라 사실상 성격이 달라졌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역전을 이뤄내며 전국정당으로 도약했다. 123석을 확보하여 잠시뿐이긴 했지만, 제20대 국회 원내 1당으로 등극[29]하여 정세균국회의장으로 선출시키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당에게 그 동안 민주당계의 텃밭이라고 불렸던 호남을 모두 뺐겼다. 수도권 초압승과 영남권 선방이 선거 승리에 주효했다. 2016년 9월 18일 "민주당"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던 원외 민주당과 합당했다.

  • 대표 : 문재인 (2015년 12월 28일 ~ 2016년 1월 27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년 1월 27일 ~ 2016년 8월 27일), 추미애 (2016년 8월 27일 ~ 현재)

2.7.2 국민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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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비주류 세력을 주축으로 2016년 2월 2일 창당한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 정당이다. 2016년 3월 16일 19대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였으며 크게는 안철수계와 지역기반을 호남으로 하는 계파들이 양대축을 형성하였다. 이념적 성향은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의 중간인 것으로 보여진다. 합리적 개혁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융합하는 것을 목표라 밝히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8석을 확보하며 20년만에 양당체제가 깨지고, 국민의당이 원내3당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의당이 민주당계 정당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은 나뉘나, 인물이나 정책 이념 등에서 유사하여 포함시키는 편으로 이해되고 있다.[30]

  • 대표 : 안철수 (상임대표, 2016년 2월 2일 ~ 2016년 7월 6일), 천정배 (공동대표, 2016년 2월 2일 ~ 2016년 6월 29일),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2016년 7월 6일 ~ 현재)

3 역대 선거결과

3.1 대통령 선거

후보자연도대수정당득표수득표율결과
신익희1956년3대민주당유세기간 중 사망[31]
조병옥1960년4대[32]유세기간 중 사망[33]
윤보선1960년4대208인[34]당선
1963년5대민정당4,546,614표45.1%낙선
1967년6대신민당4,526,541표40.9%낙선
김대중1971년7대5,395,900표45.2%낙선
김영삼1987년13대통일민주당6,337,581표28.0%낙선
김대중평화민주당6,113,375표27.0%낙선
1992년14대민주당8,041,284표33.8%낙선
1997년15대새정치국민회의10,326,275표40.3%당선
노무현2002년16대새천년민주당12,014,277표48.9%당선
정동영2007년17대대통합민주신당6,174,681표26.1%낙선
문재인2012년18대민주통합당14,692,632표[35]48.0%낙선
미정2017년19대미정

3.2 국회의원 선거

연도대수정당전체 의석수지역구비례결과
2000년16대새천년민주당115 / 27396 / 22719 / 46 (35.9%)원내 2당, 선방
2004년17대9 / 2995 / 2434 / 56 (7.1%)원내 4당, 참패
열린우리당152 / 299129 / 24323 / 56 (38.3%)원내 1당, 압승
2008년18대통합민주당81 / 29966 / 24515 / 54 (25.2%)원내 2당, 참패
2012년19대민주통합당127 / 300106 / 24621 / 54 (36.4%)원내 2당, 패배
2016년20대더불어민주당123 / 300110 / 25313 / 47 (25.5%)원내 1당, 승리
국민의당38 / 30025 / 25313 / 47 (26.7%)원내 3당, 약진

3.3 지방선거

연도횟수정당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광역자치단체의회의원기초자치단체의회의원
1994년1회민주당4 / 1584 / 230353 / 875-
1998년2회새정치국민회의6 / 1684 / 232271 / 616-
2002년3회새천년민주당4 / 1644 / 232143 / 682-
2006년4회민주당2 / 1620 / 23080 / 733276 / 2888
열린우리당1 / 1619 / 23052 / 733630 / 2888
2010년5회민주당7 / 1692 / 228360 / 7611025 / 2888
2014년6회새정치민주연합9 / 1780 / 226349 / 7891157 / 2898

4 관련 항목

  1.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을 기점으로 한다.
  2. 당초 아래 사진으로 걸렸으나, (민주투사긴 하지만 어쨌든 보수정당으로 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앙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석에 가있다는 논란 때문에 윗 사진처럼 바뀌어 걸렸다.
  3. 이에 대한 해명으로 당시 현수막 제작을 담당한 손혜원 의원은 기자들이 사진 찍을때 두 대통령의 얼굴이 더 많이 찍히라고 밑에 배치한 것 뿐인데, 자기한테 개인적으로 말만 했어도 조용히 바꿀 수 있는 문젤 괜히 언론에 일을 키워 시끄럽게 만들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보이듯 민주당계 연혁의 실질적 시작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4. 이는 보수정당 연혁이 과거 독재계열 정당부터 이어져오지만, 실질적 뿌리는 1990년 3당합당으로 창당한 민주자유당으로 보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5. 물론 더 정확하겐 민주당계 정당이였던 통합민주당(1995년)신한국당과 합당해 1997년 보수정당 한나라당이 되는 분기점이 있지만, 통합민주당 규모가 1996년 15대 총선이 끝난 당시엔 이미 새정치국민회의에 밀려 당의 존속 자체가 위태했던 지경이었던지라 사실상 신한국당에 흡수된 셈이 되었다.
  6. 이 때문에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 60주년 행사를 하기도 했다.
  7. 그래서인지 학계에서는 민주당계의 뿌리를 사실상 새정치국민회의로 보고 있다.
  8. 다만, 미국 민주당처럼 빅텐트 정당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 왼쪽에 자리잡은 진보들이 미약하나마 제3세력으로 그동안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 다만 이말은 약간 어폐가 있는게 미국도 제3세력은 많다. 존재감이 없을 뿐.
  9. 다만, 이 말도 항상 맞진 않는게, 사드배치만 하더라도 국민의당은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취한 반면, 오히려 더민주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로 중립적 태도를 보였다.
  10. 일종의 여집합 정당이라서 더 그런 면이 있다.
  11. 사실 알고보면 한국의 보수주의 정당도 민주라는 용어를 꾸준히 사용했다.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이 있다. 독특한 이름 근래에 들어서 사용한 이름들이다.
  12. 이 정당들은 보수정당들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참고.
  13. 사실 여기는 1990년~2000년대 잠깐 민주당과 연대도 했었다. 하지만 사실 자민련은 군부출신인 김종필 전 총리 계통으로 이념상 정통적 정치성향에서 민주당과 거리가 멀었고, 결국엔 갈라섰다.
  14. 이 때문에 동교동계에선 초록색을 즐겨 사용한다.
  15.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친노에서 즐겨 사용한다.
  16. 과거 한나라당이 사용하던 색깔이라 파격적인 편이었다. 빨간색으로 바꾼 새누리당에 대응하는 의미도 있다.
  17. 이로써, 미국 민주당과 깔맞춤을 이루게 되었다. 공화당-새누리당도 마찬가지.
  18. 국민의당이 초록색을 선택했을 때, 호남을 타겟팅했다고 해석한 이들도 있었다.
  19. 미국 민주당도 잭슨시절에는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다가 노예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을때 남부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보수적으로 변모해오다가 우드로 윌슨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절을 거쳐서 진보적으로 변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왔다.
  20. 대표적인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
  21. 의원정수의 75.1%에 해당하는 175명이 당선되었다.
  22. 초대 대법원장이자 김종인 전 대표의 조부.
  23.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파(23명)가 07년 2월 탈당, 이후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원내 교섭단체)을 구성했다가, 4월 국민중심당 일파와 중도개혁통합신당 창당 후, 이인제를 받아들인 후 민주당과 함께 6월 말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을 만들었으나, 7월 말 김홍업 등이 탈당하고, 다시 8월 초에는 김한길파가 도로 탈당하면서 중도통합민주당은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그 직후, 즉 탈당 이틀 후인 8월 5일 열린우리당과 중도통합민주당의 탈당파, 손학규 세력 등이 결합한 것이 대통합민주신당이며 보름 후에 다시 열린우리당과 합당했다.
  24. 다만 이들도 돌고돌아 결국 다시 모이게 될걸 알고 이런거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바뀔 상황이 아니었기에...
  25. 사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공식 당적은 없었지만 경선 과정에는 명부가 넘어가면서 있다는게 드러났다. 당적 신상 퍼가요
  26. 정확하게 말하면 공천탈락.
  27. 그러나 새정치국민의당이 먼저 창당해서 선관위로부터 당명이 유사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하기로 했다고. 당초 안철수측은 '민주'라는 명칭을 빼기를 원했다고 한다.
  28.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에서 넘어온 "새정치"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뿐더러, 이름이 길다고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안 전 대표 탈당 이전부터) 줄곧 있어왔다.
  29. 새누리당 탈당파들의 복당 + 국회의장의 탈당으로 제1당 지위를 양보해야 했다.
  30. 기존의 민주당계가 아닌 이들이 섞여있기는 하나 대다수가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파이며, 지지층 역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등을 돌린 이들이다. 분당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 차후 향보에 따라 완전히 독자적인 계열로 평가받을 여지가 있다.
  31. 선거를 열흘 남기고 전주로 가기 위해 전라선 열차를 타던 중 호남선 구간인 함열역 부근에서 뇌일혈로 졸도했고 이리역에 급히 내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32. 3.15 부정선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33. 후보등록을 하고 나서 위병이 심해져서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으로 가서 복부수술을 받았는데 수술후유증으로 인한 심장발병증으로 사망했다. 이 쪽은 상태가 회복되다가 일어난 상태라 암살설이 퍼졌다.
  34. 간선제로 실시되어 민·참의원 합동투표로 이뤄졌다.
  35. 역대 최다득표수
  36. 90년대 3당합당으로 끝내 결별했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 없이 (특히 70~80년대)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를 설명하기도 어려운게 사실이다. 보수정당으로 가긴 했지만 거기서도 군부독재의 잔재 척결엔 가장 앞장서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