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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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douin. 아라비아 반도중동 지역에서 씨족 사회를 형성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 "베드윈"이라고도 표기한다. 아랍어로는 '사막의 거주민'이라는 의미의 '바다위(بدوي, badawiyy)'나 '바다위윤(بدويون, badawiyyūn)'이라 부른다. 베두인(Bedouin)이라는 어휘도 아랍어 '바다위윤'에서 온 것이다.베두 일반적으로 아랍인과 동일한 민족으로 보지만 아랍인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총칭하기 때문에 수단의 흑인계 아랍인도 있으며, 시리아의 백인계 아랍인도 있다. 베두인은 이 아랍인들 중 유목민, 특히 아라비아 사막에서 유목하는 씨족들을 일컫는다.

이 사람들은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며 씨족사회를 형성 중이다. 흔히 우리가 아는 중동 악습 중 반은 이 씨족의 관습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국가 성립 시기가 매우 늦고 동로마 제국사산 왕조 사이의 일종의 완충지대로써 국가가 없는 시기가 매우 오래 지속되었기에 베두인의 씨족사회끼리 서로 전쟁이나 거래를 하곤 했다. 간혹 어떤 씨족이 강성하게 되어 짧게나마 왕국이나 제국을 세우는 일은 있었지만 모두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 이슬람 탄생 전까지 씨족사회가 변함없이 지속되다가 이슬람의 성립과 함께 하나의 나라 아래 뭉치게 되고 베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확장되었으나 그 악습이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성 학대"와 같은 악습들이 살아남는다.

아랍 역사상 최강의 깡패 민족. 그러나 원래는 부족 제도의 특성에서 오는 분열성이 심하고 그 중심에는 씨족간 다툼이 그치지 않아 좀처럼 뭉치지 못하는 민족이었다. 오죽하면 이슬람의 위대함이란 이 베두인들을 한 지도자 아래 결집시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라고 하겠는가. 유목민족으로써 성격이 맹렬하고 싸움에 있어선 무자비했기 때문에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에 중추적인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후 군영도시의 주요 구성원들. 누가 찾아와서 의탁하더라도 하루에 차 한잔씩 주며 삼일은 무조건 보호해주는 규칙[1][2]

국가 이전의 부족 사회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인이나 개성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며 씨족/가족 등 혈연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직도 많은 베두인들이 과거의 삶의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기에, 씨족 개개인의 모독을 씨족 전체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요르단, 이스라엘, 레바논 등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은 자신의 조상이 베두인이라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베두인의 후손들은 확실히 가족소개를 들어보면 적어도 자기 6~7대 조부 이름까지는 줄줄이 외운다.

중동 깡패 나라 넘버원이라는 이스라엘조차도 이들이 꽤 많이 사는 시나이 지역을 지배할 당시, 이들에게 막대한 지원과 혜택을 부여하면서 (팔레스타인에 견주면!) 너무나도 얌전하게 대했다. 사실 이스라엘로서도 어쩔 수 없던 게 본토 땅 3배에 달하는 시나이 지역에서 추정으로만 해도 100~200만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인구와 맞먹고, 먹고 사는거 자체가 전쟁이라 남자마다 전사로 자라는 전투 민족 시나이 베두인들을 막 대하다 게릴라전을 당하면 본토에 있는 군대를 더 많이 동원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게다가 사막 기후이면서 사람 살만한 도시가 정말 적어서 군 및 민간인 거주지로서도 어려움이 많은 터에 이들을 적으로 돌리면... 그래서 이들에게 아예 거의 자치령처럼 치안까지 맡기고 돈이나 생필품까지 줘가면서 최대한 갈등을 피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결국 여길 포기하고 이집트에게 돌려주면서 이집트에겐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중동판 폭탄돌리기?!

2012년 시나이 반도 지역 베두인과 이집트와 충돌이 더더욱 심해져서 중국인들을 납치하여 수감된 동료 석방을 요구하는가 했더니 2012년 2월에는 한국인 관광객 3명이 베두인들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29시간만에 석방되었는데 납치에 대한 걸 사과도 하고 먹을 것도 잘 대하고 꽤 대우는 좋았다고 한다. 외국인 납치를 자주 벌이긴 하지만 이들을 학대하지 않고 모두 무사히 석방시키기에 탈레반과 역시 차원이 다름을 보여주었다. 그러다보니 서구권에서도 베두인들을 테러집단으로 정하지 않는다.

요르단에서는 베두인이 국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인구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게 쫓겨나 이주해온 팔레스타인인이 더 많지만, 원래 건국 자체가 베두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베두인으로 이루어진 요르단군은 아랍권의 최정예 군대라고 한다. 이스라엘군에도 베두인들로 구성된 경보병 특수부대가 4차 중동전쟁 때까지도 있었고 해당 부대의 지휘관(당연히 베두인)이 2차와 3차 중동전에서의 공훈으로 이스라엘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이나[3] 현재는 폐지되고 없다. 그래도 베두인 병사의 지원 복무는 계속되고 있어서[4] 수백 명 단위의 베두인들이 이스라엘군에서 복무하고 있다. 물론 동족과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배신자 취급을 당하지만.

하지만 이스라엘이라고 베두인을 다 우대하는 게 아니다.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을 봐도 가자 지구에서 유태인 정착촌에서 탄압받아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하고 귀중한 재산인 당나귀를 그냥 사살당해도 하소연도 못하며, 아이들이 학교에 갈때도 유태인 아이들에게 온갖 구타와 학대를 당해 학교도 못가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베두인이 나온다. 게다가 베두인들은 대부분이 가난에 시달리며 이스라엘의 빈곤층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극우 유대인들은 이들도 팔레스타인, 아랍인, 흑인들과 동급의 야만인으로 간주해 그들한테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최근엔 이스라엘 정부가 베두인 거주지를 파괴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반이스라엘 감정이 폭발했다. 2013년에는 수천명이 거주지 파괴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여 놀란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달래려고 베두인 강제이주 계획을 취소한다고 밯표할 정도.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과 한편이 되어 그들 무장단체에 들어가 이스라엘 타도에 앞장선 사람들이 많다.

베두인들은 추적의 달인으로, 발자국만 보고도 남자가 걸어갔는지, 여자가 걸어갔는지, 임산부가 걸어갔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사막에 거주하는 토착 베두인들은 걸음걸이가 불규칙적이다. 과거에 베두인들은 신발을 신지 않거나 샌들을 신었는데, 발을 끌거나 걸음걸이를 불규칙적으로 만들어서 (중간에 몇 걸음은 뒤로 걷기도 한다) 모래바닥에 찍힌 발자국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게 만드는 식이다. 본격 훼이크의 달인

베두인들은 음주가무로도 유명하다. (술은 종교상 못마시므로 예외) 사막의 밤은 특히 컴컴하기때문에 베두인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서 잠이 들때까지 대화하는것을 즐겼는데, 특히 부족의 시인들은 우드(류트의 조상이 되는 현악기)나 라바바(바이올린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를 연주하면서 시를 읊었다. 이들은 시는 주로 전쟁과 사랑을 노래한 것이 많으며, 베두인들의 시는 꾸란의 운율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사막에서 만나는 손님에 친절하고 관대하다.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도 손님이면 지극정성으로 대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로코에서 벌어지는 사하라 마라톤 레이스에선 베두인들이 고용되어 봉사자로 일한다. 이들이 참가자를 위하여 지은 천막을 보면 그야말로 허술하게 겨우 나뭇가지로 검은 천막에 양탄자를 깔고 겉으로 보면 무척 약하게 짓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수천년을 여기서 살아온 이들의 산전수전 다 겪은 기술로, 정말 모래폭풍급 바람이 불어도 이것들은 끄떡도 안 한다고 한다. 되려 훨씬 비싼 서구제 천막들은 무섭게 날아가는 거와 대조적. 다만 이들 천막의 단점은 곳곳에 구멍을 뚫어놓기 때문에 밤에는 무진장 추워서 침낭을 준비해야 한다.

SF 소설 프레멘족의 모티프가 된 것 같다.[5]

사하라의 투아레그족 전혀 상관없다.

문명 5 오프닝에 등장하는 이들은 이 민족일 가능성이 크다.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이 부족을 잘 다루었다.

2015년 4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고3 세계지리 2번 문제에 베두인에 대한 지문이 나왔다. 문제에 따르면 베두인은 통념과 달리 검은색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하며, 검은색의 통풍 잘 되는 옷을 입으면 옷 안에서 데워진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고 외부 공기가 유입되면서 땀을 증발시켜 시원하게 해준다고. 근데 정작 이 문서 맨 위의 짤방에서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온 것으로 보아 케바케인 듯. 참고로 문제 자체는 쉬웠던 게, '지도에서 관련 있는 지역 찾기' 문제였다. 그러니까 아라비아 찾으면 정답(...).

  1. 다만, 이집트 쪽에서 사는 베두인들은 다른데,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가 이집트에 사는 이들을 취재하러 갈때는 사람들이 보이는 즉시 돌을 던지는 통에 얼른 달아나야 했다. 이집트 지역에서 차별과 탄압으로 인하여 극도로 어렵게 생활하면서 그들의 손님을 맞이하던 전통도 사라졌던 것. 하지만 여전히 부유한 나라들 - 가령 이스라엘, 요르단 등 - 에 거주하는 베두인들은 친절하고 손님에게 정중하기로 유명하다. 운이 좋다면 베두인 부족의 천막에서 공짜로 생활하는 행운을 누려볼 수도 있다고.
  2. 몽골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다른 유목민 문화권도 갑자기 천막에 찾아온 여행자에게도 식사와 잠자리를 군말 없이 제공하는 비슷한 손님 환대 문화가 있다. [ 정확히 말하면, 가능하면 손님을 환대하고, 썩 환대할만한 손님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손님인 이상 일정 수준까지는 보호와 접대를 제공하며, 무엇보다도 '손님을 공격하는 행위'를 지극히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이런 환대문화는 씨족/부족 사회 전반에서 발견되는 풍습이다. 폐쇄적이고 고립적이기 쉬운 부족 사회에서 외부의 손님은 바깥의 소식이나 문불 등 긍정적인 자극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안 그래도 주변 씨족/부족과 적대적이기 쉬운 환경에서 위협이 되지 않는 손님까지 공격해대기 시작하면? 그 때는 답이 없어지는 거다. 다수의 무장병력과 함께가 아니면 씨족/부족의 영역 바깥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지극히 위험해지면서 교류가 불가능해지고, 결국 레알 사회가 완전히 붕괴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유목민 사회에 있어서 이런 특성이 강한데, 기본적으로 씨족/부족 사회는 외부에 대해 지극히 배타적이고 적대적이기 쉽기에(예를 들어, 외부인이 손님으로 방문하여 환대를 받기는 쉽지만, 씨족/부족의 공간 내부나 근처에 정착하려 한다거나, 그들을 상대로 어떤 거래나 행동을 하려 한다면 신뢰를 얻어내기가 지극히 어렵다. 그리고, 같은 씨족/부족의 구성원 사이는 기본적으로 '우리' 로써 상호 부조의 책임을 강하게 지지만, 외부인에 대해서는 이런 책임이 전혀 없다.) 그 반작용으로 외부인에 대하여 일정 영역까지는 무조건 환대하고, 적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안전정치가 형성되었다고 보면 쉽다.]이 있으며 4일 이상 머물려고 하면 합당한 이유를 대거나 3일 후엔 돌아가야 한다.
  3. 사실 유대인 편에 서서 싸운 베두인은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있었다. 시오니즘 무장단체였던 하가나와 동맹관계인 베두인 무장단체(팔 하이브)가 있었으며, 이들은 1936년부터 1948년 이스라엘 독립 때까지 하가나와 손을 잡고 유대인 정착촌을 공격하는 아랍 민족주의자들과 싸웠고, 독립 이후에는 이스라엘군에 자진 편입했다. "쿠란에서도 유대인은 무슬림의 형제라고 하지 않았는가?"라는 게 그들이 이스라엘군에 편입한 이유였다.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에선 베두인도 차별받는 상황이니...
  4. 이스라엘군에는 지원자에 한해서 아랍인 장병(1명 뿐이지만 장군도 배출했다!)이 1,500명 정도 복무하고 있다. 지원 자격은 1948년 독립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정착한 팔레스타인인, 베두인, 드루즈족으로, 종교 제한은 없다. 이중 절반 이상은 기독교도 드루즈족이고, 팔레스타인인 지원자도 다수가 기독교도다. 따라서 무슬림으로서 이스라엘군에 지원하는 아랍인의 상당수는 베두인이나 드루즈족라고 보면 된다.
  5. 씨족 단위로 구성된 사회구조가 비슷하고, 프레멘들은 사막에서 샤이 훌루드를 자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불규칙하게 걷는다는 설정이 있다. 또한 프레멘족은 듄 세계관에서 우주구급 전투민족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