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 색상 | 내용 |
가자 지구와 웨스트뱅크(팔레스타인) 지역 | |
이스라엘 | |
아랍국가 | |
이스라엘과 전쟁을 한 국가 |
교전국 | |
아랍연맹[1] |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집트, 예멘, 이라크, 요르단, |
이스라엘 측 | 이스라엘, 영국[3], 프랑스[4], |
목차
1 상세
규모면에서 크며 시기적으로도 전쟁기간과 평화기간이 나누어지는 4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단, 평화기간이라고 해도 국경선에서의 교전 같은 작은 전투는 항시 있었다. 각각 항목 참조.
1.1 제1차 중동전쟁(1948년 5월 14일~1949년 3월, 이스라엘 건국 전쟁)
해당 문서 참조.
1.2 제2차 중동전쟁(1956년 10월 29일 ~ 1956년 11월 7일, 수에즈 전쟁, 수에즈 위기)
1.3 제3차 중동전쟁(1967년 6월 5일 ~ 1967년 6월 10일, 6일 전쟁)
해당 문서 참조.
1.4 막간 : 아랍/이스라엘 분쟁 (1970년)
War of Attrition. '소모전' 이란 뜻으로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이집트와 PLO가 함께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한 전투를 벌였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1.5 제4차 중동전쟁(1973년 10월 6일 ~ 1973년 10월 26일, 욤 키푸르 전쟁,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
해당 문서 참조.
2 1980년대 이후
사실상 거의 매일 포탄과 미사일을 쏴대는 게 현실인지라 이후 중동전쟁사는 1~4차 중동전쟁처럼 딱딱 끊어서 정리하기란 매우 애매함을 염두에 두자. 사실상 1982년 이래 계속 전쟁이잖아
- 1982년: 레바논 침공(Lebanon War)
- 1987년-1993년: 1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First Intifada)
- 1982년 이래 2000년까지 : 2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South Lebanon conflict)
- 2000년~2007년: 2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Second Intifada, al-Aqsa Intifada)
- 2006년: 2차 이스라엘-레바논 전쟁(Lebanon War)
- 2008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Gaza war)
그 밖에 이스라엘의 선제 공습도 많이 있다. 1981년 이라크 공습을 비롯하여 가장 최근으론 2010년 시리아 공습이 있었다.
2.1 1982년 레바논 침공(1982.06.06~1982.09)
(First) Lebanon War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서 시작된 전쟁이지만 사실상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리아와 레바논 이외의 다른 아랍 국가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기독교계 민병대인 팔랑헤당이 이스라엘군과 협력해 대학살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 학살사건 이라고 부른다. 이미 남자들은 대피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팔랑헤 무장병력 150여명이 침입해서 출입을 완전히 봉쇄하고 3일 동안에 걸쳐서 마을 전체를 학살했다. 당연히 희생자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은 조명탄을 쏴주면서 이 학살을 부추겼다. 이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스라엘 국내에서만 30만명이 책임자 처벌을 외칠 정도로 전세계적인 비난을 받았고, 이로 인해서 책임자인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이 퇴임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물가상승률은 크게 치솟아서 1983년에 191%, 1984년에 445%를 기록할 정도의 대타격을 입는다. 즉, 한마디로 얻은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에 잘 표현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9.11 테러의 도화선이다. 빈 라덴이 이스라엘의 침공을 보고 격분해서 9.11 테러를 기획한 것이라고.
여담이긴 하지만 블랙라군에서도 이에 관한 내용이 비슷하게나마 나오는데, 이때는 12화에 1987년 베이루트라 언급함으로써, 연도와 지역이 바뀌었고, 적십자 캠프라 나오긴 했지만 이를 통해서도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 학살사건의 오마주임을 알 수 있다.
2.2 2차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Second Lebanon War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이라고도 한다.
2006년 레바논 국경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이 헤즈볼라에게 납치되자 이스라엘은 자국군인 구출이란 명분으로 레바논에 침공을 개시했다. 하지만 헤즈볼라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고전했고 이에 대한 분풀이로 백린탄을 비롯한 마구잡이 포격을 감행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적어도 레바논 전체의 분노 어린 반격을 우려하여 시아파 구역만 공습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 덕분에 순니파 및 마론 기독교도 같은 다른 레바논 종교 구역이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목적이던 군인 2명을 구출하지도 못했고 국제적으로 비난을 들어야 했고 알 자지라를 비롯한 언론의 보도로 레바논 민간인들 피해 상황이 보도되면서 이스라엘은 알 자지라 중계팀을 공습하여 분노 어린 알 자지라의 비난 보도로 더 매스미디어에서 완패했다. 열심히 미국 방송들이 실드를 쳐줬지만 결국 중립을 지키던 레바논 다른 종파 구역들도 이스라엘의 백린탄 및 여러 무기를 문제삼으면서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스라엘은 결국 150명이 넘는 전사자 및 다수의 피해를 입으며 굴욕적으로 철수해야 했다. 헤즈볼라에게 이렇게 두들겨 맞고 물러선 전쟁이라 이스라엘에겐 패배나 다를 바 없는 굴욕으로 남게 된다.
되려 헤즈볼라는 이 전쟁으로 일약 영웅이 되었고 선거에서 승리하여 레바논 집권여당이 되고 만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선거 승리에 기여한 공로자라는 비아냥을 듣고 말았으며 납치된 군인 2명도 모두 사망한 상태라 협상 끝에 시체만 겨우 돌려받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전쟁 패배 책임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자국 군인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아미르 페레츠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단 할루츠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2.3 제1차 가자전쟁
- 2008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참조.
2.4 이란 핵발전소 공습 계획
2011년 11월,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발전소 공습 계획을 밝혔으나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고 이란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려는 엄포 등으로 분석되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건 어렵다고 하여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 핵개발 의혹이 있던 오시라크 발전소를 공습해 성공한 적이 있지만 발전소를 완전히 파괴하진 못했다. 사담 후세인이 이 발전소를 재건한다 뭐다 이스라엘은 노심초사했는데 결국 오시라크 발전소는 걸프 전쟁 때 미군이 스텔스 전투기와 여러 폭격기, 호위기를 엄청나게 동원한 끝에 비로소 아주 박살을 내버렸다.
그러나 이란은 이라크와 차원이 다른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당장 면적만 이라크의 5배에 달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 면적을 합쳐도 이란은 그 2배를 웃돈다. 덤으로 평야지대가 아닌 산악지대가 많다. 여기에 더해서 오시라크 공습을 교훈삼아서 전역에 위장용 시설로 핵발전소 가짜를 만들어 인공위성으로 봐도 잘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지하 곳곳에 시설을 장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지대공 미사일을 사와서 대공망을 갖춰 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 많은 시설을 한 번에 폭격하자면 공중급유기도 엄청 필요하며 엄청난 장비와 여러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습계획과 때를 같이하여 이란에서 핵관련 과학자 몇몇이 의문사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란에선 이스라엘 모사드나 반이란 세력이 손 잡고 배후공작을 꾸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죽은 과학자들은 대다수가 30대 초반 과학자들이고 핵심 두뇌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작전(?)이 실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이란 핵연구의 핵심 과학자들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2.5 제2차 가자전쟁
- 2012년 11월 가자지구 폭격을 참고.
2.6 관련 문서
- ↑ 교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과 싸우는 교전국에 의용병을 보내거나 물자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등 노골적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무늬만 비교전국인 국가가 많다.
- ↑ 군사고문관 파견 및 다량의 군수물자 제공.
- ↑ 제2차 중동전쟁에만 참전. 게다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일으키면서 중동전쟁 및 중동 지역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 악의 축. 1915년 맥마흔 선언으로 아랍의 독립을 보장한 영국은 단 2년 만에 밸푸어 선언으로 말을 바꾸며 이스라엘의 독립을 지지했다. 사실상 중동 전쟁에 가장 큰 책임을 지니고 있다. 참고로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의 속령이었다.
- ↑ 제2차 중동전쟁에만 참전.
- ↑ 직접 군대를 개입시키는 것 빼고 나머지 지원을 모두 해줌. 제4차 중동전쟁만 따져봐도 현용 미군 장비를 포함한 막대한 군수물자 원조를 이스라엘측에 일방적으로 했으며 해당 지원이 승패를 가를 수준이었다.
- ↑ 그러나 미국은 제1,2차 중동전 당시에만 해도 지금처럼 아랍과 이스라엘이 싸우면 이스라엘 편들듯이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않았다..돈 주고 사겠다는 무기도 팔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였던지라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오히려 제2차 중동전때 이집트를 공격한 이스라엘을 비난하기도 했었고 냉전 초기에는 거의 대부분 중립을 고수했다.그러나 제1,2차 중동전 이후 중동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잃고 냉전시대때 중동에서 소련이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아랍국가들에 영향력을 키우게 되면서 제3,4차 중동전쟁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게 되었다.그것뿐만이 아니라 소련제 장비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데 자기들 피대신 이스라엘이 피보니 돈도벌고 자료도얻고 미국으로선 일석이조의 효과인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