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補身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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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요리. 개고기를 사용해 끓이는 탕이다. 원래 보신탕은 개장국을 돌려서 표현하는 말로 영양탕, 사철탕 등의 명칭도 쓴다. 북한에서는 단고기라고 하며, 외국 손님에게까지 공식적으로 대접했다고 한다.

삼계탕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 보양식

육개장은 개장국에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은 음식이다. 따라서 '육장'은 틀린 말. 닭개장 역시 개고기 대신 닭고기를 쓴 음식이다.계개장 원래 조선에서는 복날에 서민은 개고기를 넣은 개장국을, 양반들은 주로 소고기를 넣은 육개장을 먹었다고 한다.기사. 이후 복날 음식이 삼계탕으로 대체된 것. 단, 삼계탕의 원조격인 닭백숙은 조선시대에도 엄연히 존재했으며 고기가 귀했던 시절 가정에서 그나마 자주 해먹었던 고기요리중 하나였다.

위의 근거로 든 기사는 사실과는 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개장국은 궁중 요리로 활용될 정도로 신분에 관계없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조선 시대의 쇠고기는 제물로 사용되는 것 이외의 일반적인 식용은 불가하다시피 했으며 아무리 지체높은 양반이라도 공개적으로 쇠고기를 먹을 수는 없었다.

다만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제한적으로 쇠고기를 사용한 레시피가 존재한 것인데 그 레시피 조차도 대체로는 조선 후기에나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육개장은 전국적으로 흔히 즐기던 음식이 아니라 "대구"의 전통 음식이다. 육개장의 옛 이름이 대구탕반이다.

2 역사

옛부터 는 인간의 믿음직한 동료이자 충직한 하인이었지만, 더불어 몇몇 민족에게 개는 훌륭한 비상식량이기도 했다. 개를 먹는 민족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마야의 기록에도 남아있는 등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서구권인 프랑스도 20년대 초에 찍힌 개고기집 사진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도 먹는 문화로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과거부터 여러 형태로 길러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는 주로 식용견이나 부정적으로 쓰이는 구(狗)와 긍정적으로 쓰였던 견(犬)을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개고기는 조선시대의 평민들이 자주먹던 고기였으며, 어느 푸줏간에서나 개고기를 볼 수 있었다. 조선의 왕 정조도 보신탕을 즐겼는데, 영의정이었던 김상철도 이를 찬성했다고 한다. 즉 서민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였던 셈.

특히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등 먹을 것이 극히 귀했을 때 많이 먹었으며, 게다가 여름처럼 더워서 체력소모가 많은 계절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단백질원이 필요했는데, 는 농사일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애초에 조선시대에는 먹기 위해서 소를 잡는 것이 불법이었고[1], 돼지는 잔칫날에나 잡는 귀한 동물이었다. 그러니 특히 서민들이 고기로 먹을 수 있는 만만한 것은 이었다. 특히 탕으로 먹는[2] 대표적인 것이 개였기 때문에, 개장, 혹은 개장국은 곧 을 대신할 정도로 흔하게 쓰였다. 육개장이 소고기(육)로 꿇은 개장이고, 닭개장이 닭으로 끓인 개장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보신탕은 한국의 여름철 보양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도 고단백 영양식이며, 개복수술후 추천받는 음식일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는 추천하지 않는데 이는 축산법에서 개고기를 관리 하지 않고 있는데다가 보신탕집의 대부분이 기본적인 위생점검을 수십년동안 받지 않기 때문이다. 축산법과 식품위생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보신탕은 흠좀무한 유통과정에 흠좀무한 도축 과정과 흠좀무한 조리과정을 거쳐 나올 가능성#[3] 을 배제 하지 못하며 이러한 것은 환자가 먹을 게 못된다.

의외로 천주교에서 잔치음식 등으로 꽤 먹는데, 조선시대 박해 받으며 순교자가 속출할 때 숨어사는 공동체들이 영양식으로 먹었던 것이 유래라고 한다. 지리적 인연도 있다. 조선에서 개장국을 최초로 장에서 판 것이 1770년 충남 서천군 판교면의 백중장[4]인데, 공교롭게도 30여년 뒤부터 판교면 금덕리 산막굴 '띠안말', '작은재' 등에 천주교 은거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직도 가톨릭 신학교에서는 시험기간이 되면 신학생들의 기를 보하기 위해 개장을 먹이는 전통이 남아 있다. 서양에 조선의 개고기 식문화가 알려지게 된 계기도 천주교다. 개고기 항목 참조.

3

맛이 상당히 부드럽다. 맵지 않고 자극적이진 않게 향신료를 듬뿍친 보신탕의 맛은 한국요리중에서 꽤나 특별한 축에 속한다. 익숙한 음식과 굳이 비교하자면 뼈다귀해장국과 비슷한데 훨씬 진하고 부드럽다고나할까. 다만 향신료 맛은 조금 더 강한 편이다. 특히 깻잎향과 후추향이 진하다. 보신탕을 시키면 개고기를 찍어먹는 장을 주는데, 개고기와 함께 어울려지는 이 장의 맛을 좋아해서 보신탕을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고기의 경우, 오랫동안 푹 익히기 때문에 살이 상당히 부드럽다는 것이 장점. 우리 나라 개고기 요리는 들깨 깻잎 마늘 개고기와 마늘은 상극이다!상극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여튼 주는집들은 마늘도 준다 등 향신료와 냄새를 흡수해 주는 된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동남아와 중국의 개고기 요리에 비하면 누린내가 거의 안 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5] 만약 보신탕에서 누린내가 심하게 난다면 향신료를 사용한 보신탕을 제대로 못끓이는 집인 것.

다른 음식들이 다 그러하듯 보신탕 역시 지역별로 차이가 꽤나 있다.

경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개고기를 잡은 다음 토장 또는 된장독에 파묻어 며칠동안 숙성시킨 다음 탕으로 끓여낸다. 이렇게하면 향신료를 적게 쓰고도 냄새를 쉬이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맛이 잘 배여 고기가 연하다고 한다.

그외에도 피를 넣는 집, 살을 발라내지 않고 뼈째 내는 집, 고추장을 쓰는 집, 된장을 적게 또는 아예 쓰지 않고 젓갈로 맛을 내는 집 등등 아주 다양하다. 보신탕이라는 것 자체가 확정된 하나의 레시피가 없는 음식이니, 다른 지역에 갈 일이 생겼다면 다양한 보신탕을 맛보는 것도 좋다.

4 논란

개고기 항목의 논란 참조.

5 트리비아

만화 코바토에 등장하는 개 이오료기도 보신탕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디시인사이드의 고전 필수요소였던 개벽이는 어느 해 복날에,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친척 어르신의 손에 보신탕이 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개벽이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는 개벽이의 유명세를 알게 된 주인이 합필갤에 개벽이에 대한 장문의 글을 씀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1. 공식적으로는 일하다가 자연사한 소만 먹을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큰제사용과 궁중 뿐이었다. 물론 암암리에 잡아먹은 것으로 보이지만, 불법이 합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2. 닭을 포함한 날짐승은 구이라는 다른 대안이 있었지만, 개 같은 길짐승의 경우는 구워먹기 보다는 탕으로 만들어먹기 마련이었다. 이것은 개고기가 노린내가 많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워먹는 것보다는 탕으로 끓여먹는 것이 보다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던 까닭이기도 하다.
  3. 광견병에 걸렸을 지도 모를 개가 식용으로 도축된 채 경찰에 발견됐다. 도시전설로 동물병원에서 나오는 개 시체를 수거해 보신탕으로 끓인다는 이야기도 한참 돌았다.알다시피 개고기를 정식으로 합법화자고 하면 개빠 단체 동물보호단체가 발악하듯이 반대하기에 늘 이렇게 된다. 다만 개고기만 이랬던 게 아니라서 80년대 불법도축 및 개인 도축이 일부 허용되던 시절만 해도 뉴스로 물먹인 소 도축이라든지 닭이나 돼지고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비위생적인 도축 환경에서 도축한 일이 자주 적발되고 보도됐다. 그리고...2010년대인 지금도 종종 품질이 엉망인 고기나 비위생적인 곳에 보관한 고기를 속여 파는 경우가 적발되기에...
  4. 음력 7월 15일 백중에 열린다고 백중장인데 벼농사가 거진 끝난 주변의 머슴들이 많이 몰려왔다고.
  5. 이 점은 맛의 달인의 작가 카리야 테츠도 인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