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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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켄 덴노 | 부레츠 덴노 | 케이타이 덴노 |
武烈天皇[1]
489년 ~ 507년 1월 7일
재위 : 498년 12월 ~ 507년 1월 7일
일본사 고대 최악의 폭군. 하지만 그 악행이라고 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고사기에는 없고 일본서기에만 기록되어 있어서 후대에 케이타이 덴노의 즉위를 정당화하려고 중국사에 등장하는 폭군들의 행적을 갖다붙여서 부레쓰 덴노를 폭군으로 묘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애
이름은 《일본서기》에서는 오하쓰세노와카사자키노 미코토(小泊瀬稚鷦鷯尊) 또는 오하쓰세노와카사자키노 스메라미코토(小泊瀬稚鷦鷯天皇), 《고사기》에는 오하쓰세노와카사자키노 미코토(小長谷若雀命)라 적혀 있다.
닌켄 덴노의 황자로 어머니는 유랴쿠 덴노의 딸 가스가노 오이라쓰메 히메미코(春日大郎皇女)이다. 황후는 《일본서기》에만 가스가노 이라쓰메(春日娘子)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태자 시절에는 모노노베노 아라카이(物部麁鹿火)의 딸인 가게히메(影媛)와 혼약을 맺으려 하였으나, 가게히메는 이미 오오미(大臣)인 헤구리노 마토리(平群真鳥)의 아들인 헤구리노 시비(平群鮪)와 맺어진 사이였다. 게다가 쓰바이치(海柘榴市)의 우타가키(歌垣)에서 벌어진 노래 시합에서 시비가 자신을 이기자, 분노해서 오오토모노 가나무라(大伴金村)를 시켜 시비를 나라 산(乃楽山)에서 죽이고, 같은 해 11월에는 그 아버지 마토리도 잡아 죽인 뒤 12월에 오키미로 즉위하였다. 오키미로 즉위한 뒤에는 오오토모노 가나무라를 오오무라지(大連)로 삼았다.
오키미로써 저질렀다는 악행이 어마어마하다.
2년(499년) 가을 9월, 임신한 부인의 배를 갈라서 그 태를 보았다. |
3년(500년) 겨울 10월, 사람의 생손톱을 뽑고, (그 손으로) 산마를 캐게 했다. |
4년(501년) 여름 4월,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고, 그 사람을 나무 위에 올라가게 하여, 나무 밑동을 베어 넘어뜨려서 (그 올라간 사람이) 떨어져 죽는 것을 보면서 즐겼다. |
5년(502년) 여름 6월, 연못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둑을 뚫어서 넣어둔 통 속으로 사람을 엎드리게 해서 들여보내고, 밖으로 흘러 나오는 것을 삼지창으로 찔러 죽이면서 즐겼다. |
7년(504년) 봄 2월, 사람을 나무 위에 올라가게 해서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웃었다. |
8년(505년) 봄 3월, 여자를 벌거 벗겨 판자 위에 앉히고, 말을 끌어다 검열삭제시켜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부분이 젖은 자는 죽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관의 노비로 삼으면서 즐겼다. |
이때에 이르러 연못을 파고 동산을 쌓고 새와 짐승을 가득 넣었다. 사냥을 좋아하여 개를 달리게 하고 말을 시험하기를 무시로 하였으며, 큰 바람과 폭우도 가리지 않았다. 옷은 따뜻하여 백성의 추위를 잊었고, 음식이 맛있음으로 하여 천하가 굶주리는 것도 잊었다. 난쟁이와 광대를 많이 끌어들여 음란한 노래와 춤을 하게 하고, 기괴한 놀이를 벌이면서 음란한 말을 마음대로 하였다. 밤낮으로 여인과 술에 빠졌고, 비단으로 방석을 지으니, 무늬 고운 비단과 가벼운 비단을 입은 자가 많았다. |
참고로 이 행동들이 모두 18세가 되기 전에 벌인 짓들이다. 사실이라면 빼도 박도 못할 사이코패스 인증인 셈.
재위 8년만인 12월 8일(507년 1월 7일), 후사 없이 사망하였다. 《부상략기》, 《미즈카가미(水鏡)》 등에는 사망 당시 그의 나이가 18세라고 적혀 있다. 젊은 나이(18세)에 죽어 자식이 없었다고 하며, 오오무라치였던 오오토모노 가나무라가 에치젠으로 가서 부레츠 덴노과 혈연관계가 옅은 오호도(케이타이 덴노)를 데려다 다음 덴노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동방영야초에 등장하는 카미시라사와 케이네의 이지 보스전 두 번째 스펠 카드 야부(野符) 「부레츠 크라이시스(武烈クライシス)」의 이름의 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