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오서

Brian Orser. 한뚝배기 하실래예가 아니다

"미스터 트리플 악셀", "GREAT ORSER".

출생 : 1961년 12월 18일 (캐나다)
신체 : 168cm
수상 :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트 남자싱글 준우승 / 1987년 세계피겨스케이팅챔피언십 남자싱글 우승 / 1984, 1988 올림픽 은메달
경력 : 2009.03 세계피겨스케이팅 명예의 전당(WHOF) 헌액 / 2006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전담 코치

캐나다 출신 前 피겨 스케이트 선수이자 피겨 스케이팅 코치. 국내에서는 김연아를 맡았던 코치로 유명했다. 현재는 차준환 선수 코치[1].

1 선수 시절

우아하고 아름다운 점프와 주특기인 트리플 악셀로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캐나다의 피겨 국민영웅으로 내셔널 타이틀을 7번 연속 거머쥐었으며 86년 올림픽 이전 다섯개의 대회에서 우승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세계 탑싱어였으나 올림픽과는 묘하게 인연이 없어 84년, 88년 두번에 걸친 올림픽 출장에서 모두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이 중에서도 브라이언 보이타노와 경쟁했던 88년의 올림픽은 이른바 "브라이언 전쟁" 으로 불리는 세기의 명승부로 남았다. 대회 직전까지 라이벌인 브라이언 보이타노와의 전적은 올림픽 전까지 5승 1패로 오서가 우세하였으나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우승한 것은 브라이언 보이타노였다. 당시 이 둘의 점수차는 0.1점 차이로 피겨사에서 가장 작은 점수차로 금과 은이 갈린 상황이었다. 나중에 오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일본 심판이 나에게 0.1점만 더 주었더라도" 라고 웃으며 이때를 회상했다.

1.1 크레이그 리스크 사건

참고로 동성애자. 98년 애인 크레이그 리스크(Craig Leask)가 이혼소송 비슷한 것[2]을 거는 바람에 동성애자라는 게 알려졌다. 아웃팅을 우려한 그는 어떤 스케이터도 아웃팅을 반겨하지는 않는다며 소송을 비공개로 진행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언론에 이미 공개가 된 후였다. 다행히도 '브라이언 대결' 로 유명한 미스터 트리플 악셀을 바라보는 캐나다 언론의 시선은 호의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개인적인 프라이빗을 받아들이고 옹호해주었다. 그는 나중에 당시 불안감을 표명했던 게 지나친 걱정이었다며 "지난 며칠간 나는 많은 지지를 받았고 그것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라며 공개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

하지만 크레이그 리스크가 결혼 전 혼전합의서를 작성하자고 요청했을 때 사랑한다는 이유로 작성하지 않았고 나중에 자신이 바람을 피우는 사실이 들통나자 연인을 내쫓고 자기 재산은 그대로 가지면서 상대방의 개 2마리를 죽였다는 말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유명한 사건인데 당시 오서는 자신의 명예를 생각해서 비공개재판을 요청했지만 판사는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공개재판으로 했고 이때 오서가 게이라는 것도 함께 알려졌다.[3] 흥미롭게도 이 사건은 김연아와의 관계와도 일치하는데 당시 김연아 측에서 계약서를 쓰려고 할 때 계약기간이 끝나도 스승과 제자로 영원히 남아있고 싶다며 계약서 쓰길 거부했다고 한다.

[1][2]

참고로 저 사건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느니 스폰서가 끊겼다느니 하는 건 다 구라다. 이런 상태에서 김연아와 만났다는 것은 더더욱 구라. 애초에 김연아와 함께 일한 시기는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후다. 오서에게는 김연아 이전에도 많은 제자들이 있었고 처음 그가 전담코치 자리를 거절했던 것도 그 제자들을 고려해서였다.

2015년 5월 시점에서 그의 성적 취향에 대해 신경 쓰는 한국인은 거의 없으며, 사실 모르는 사람도 은근히 많다.[4] 홍석천이 커밍아웃하고 받은 대접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여담으로 브라이언 전쟁의 당사자인 브라이언 보이타노도 2013년 12월 커밍아웃했다.

2 코치로서의 행보

현역 은퇴 이후로는 프로+코치로 전환하여 아이스쇼에 출연하는 한편 각지의 선수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토론토 크리켓 클럽의 메인 코치를 역임하고 있다.

2.1 김연아 (2006~2010)

전환 후에 전담하는 선수는 없었고 처음 김연아를 만난 06년에도 전담 코치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캐나다 클럽 소속이었고 한국 소속이었던 김연아가 해외까지 오는 것은 힘들어보였고 그가 한국으로 갈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김연아 측은 토론토 클럽으로 해외원정을 오면서까지 오서가 코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그녀와 만난 후 그 능력을 알아본 오서는 헤드 코치로서의 자리를 승낙했다. 동양인 소녀의 헤드 코치 자리를 맡는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으나 그 모험은 성공했다. 그 후 그녀와 함께 한 4년에 대해 오서는 "마법 같은 4년이었다" 라고 평했다.

시니어 무대에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의 콤비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오서는 김연아에게 감정을 연기하는 법[5]을 가르친 코치였으며 그는 이를 "우리는 그녀가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도록 노력했다" 라고 말했다. 결과 시니어 무대에서 김연아는 화려한 데뷔를 이룩했고 이후의 성과는 보는 바대로. 해외 언론은 김연아를 "오서의 금메달 꿈을 이루어줄 제자" 로 평하며 이 둘의 친밀한 관계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김연아는 결국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 이루지 못했던 금메달까지 이루어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받은 금메달은 오서에게도 무척 특별했던 듯하다.

5종 점프를 구사할 수 있는 김연아에게 트리플 악셀로 유명한 오서가 붙음으로서 모든 점프를 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 가지는 못했다. 트리플 악셀 자체가 여성이 뛰기에 쉬운 점프는 아니다. 09시즌 올림픽 이후에 오서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트리플 악셀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이는 반영되지 않았다. 사실 전체적으로 08-09시즌에 있어 김연아 측이 올림픽을 위한 안정노선을 추구한 것과 달리 오서는 선수 기량을 위한 도전적인 안을 제시하는 편이었다. 트리플 룹으로 컴피를 변경한 사안의 경우 오서는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사후 통보를 받았을 정도였다.

2010년 4월에 있었던 KCC 스위첸 페스타 온 아이스쇼에서 본드걸 컨셉인 김연아에 맞춰 제임스 본드 컨셉으로 공연해 피겨 팬들을 놀래켰다. 이건 2009년 아이스쇼에서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으면 자신이 뭔가를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거라고 한다.

김연아의 코치를 맡던 당시에오서 코치는 한국 국민들, 특히 김연아빠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는 "아빠 미소" 로 대표되는 김연아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이기도 하였는데. 김연아가 점프하면 본인도 점프하고 김연아의 경기를 온 몸으로 따라하면서 응원하는 제스처 또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 김연아와의 시간이 "매우 특별한 시간" 이며 김연아에게서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같은 기품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 8월 24일, 브라이언 오서가 '올댓스포츠의 박미희 대표[6]로부터 일방적인 결별 통보를 받았다' 고 오서의 매니지먼트사 IMG가 밝혀서 논란이 일었으며 오서는 김연아와 결별하게 되었다.[7] 자세한 사정은 김연아 항목에도 길게 설명되어 있어 김연아 브라이언 오서 결별 사건으로 옮긴다.

해외에서는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가 헤어진 후 그를 설명할 때 더 이상 '올림픽 금메달 코치' 라고 말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어느 미국 피겨팬은 "오서는 김연아가 그를 떠날 때 그가 김연아에게 했던 짓을 기억하기 전까지는 쿨해 보였다. 브라이언 전쟁이 끝난 지 3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보이타노[8]가 이기고 있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2.2 아담 리폰 (2010~2011), 크리스티나 가오

김연아와 결별한 오서는 아담 리폰과 크리스티나 가오의 담당 코치가 되었는데, 아담 리폰은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지 못했고 미국 내셔널 5위로 세계선수권에 나올 수 없어 대만에서 열리는 4대륙에 진출해야 했으며, 크리스티나 가오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선 6위[9], 미국 내셔널 5위로 시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않고 주니어 선수권에 나가면서 둘 다 자신보다 어린 선수들이 시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걸 감안하면 더더욱 미래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후 2011년 4월 1일, 브라이언 오서의 남은 제자 중 한 명인 아담 리폰이 메인코치를 브라이언 오서에서 지슬란 브라이어드로 변경했다. 지슬란 브라이어드는 오서와 같이 크리켓 클럽에 있었으며 아담 리폰의 보조코치였다. 즉 아담 리폰은 보조 코치를 자신의 메인코치로 기용함과 동시에 메인 코치였던 브라이언 오서를 해고해 졸지에 브라이언 오서는 보조 코치에게도 밀려난 신세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김연아와는 다르게 아담 리폰은 브라이언 오서와 계약기간이 끝난 것도 아니었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2.3 하뉴 유즈루,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13년에는 하뉴 유즈루(일본)와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스페인)의 코치를 맡았다. 하뉴 유즈루는 2012년 세계선수권 동메달, 하비에르 페르난데스는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 스페인 선수 최초로 동메달을 딴 유망주이다. 그리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하뉴 유즈루가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김연아에 이어 두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코치라는 명예를 얻었다.[10] 또한 하비에르 페르난데스도 4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015년 세계선수권에서 이번에는 하비에르 페르난데스가 우승했고, 2016년에 2연패를 달성했다.

  1. 이 선수가 ISU 주니어그랑프리 3차대회 요코하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 동거하는 동안 연인에게 충실하지 못했다며 이별 후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었다.
  3. 물론 게이라고 차별받은 적은 없다.
  4. 코치와의 결혼설이 돌았던 안도 미키를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5.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 편이다. 애초에 김연아가 브라이언 오서를 선택한 건 트리플 악셀을 배우기 위해서였고 브라이언 오서는 기술 부분을 전담하는 코치였다. 표현력과 연기력을 가르친 건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이라고 봐야 맞다.
  6.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이다.
  7. 김연아는 이후 미셸 콴의 제부인 피터 오피가드와 코치 계약을 맺고 10-11시즌에 참가해 2011년 4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2위를 기록했다.
  8.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브라이언 보이타노
  9. 출전한 미국 선수들 중에선 제일 잘하긴 했다. 다른 미국 선수들은 각각 7위, 8위를 했다.
  10. 김연아나 하뉴 유즈루 모두 오서에게 가기 이전부터 주목 받던 선수였다.(김연아의 경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고 2006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한 후 오서의 코칭을 받았다.) 오서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선수를 고르는 운도 좋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