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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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피겨 스케이터.

보급형 한채영 국민요정


2000년대 중후반에 맹위를 떨친 일본의 간판 여자 피겨 스케이터. 일본 현지에서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미키티. 아사다 마오와 함께 일본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쌍두마차로 불렸지만 전적은 아사다에게 밀린다. 일본 피겨 스케이팅 계의 콩라인. 코치와의 염문, 괴상한 의상, 4회전 점프 등 프로그램보다 가십으로 유명한 선수이기도 하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후 퇴물 취급을 받으며, 그나마 주목 받을 때도 괴상한 코스튬 때문인 경우가 많아서 일본에선 이미 네타 캐릭터 취급을 받는다. 피겨 스케이터 워스트 드레서를 꼽을 때면 매번 상위권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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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코스튬이 역대 안도 미키의 의상 중 최고의 악명을 떨친, 속칭 거미키 코스튬. 사람 얼굴만한 거미 장식을 가슴에 부착해 악명을 떨쳤다. 단 한 번 방송 탄 후, 온갖 질타와 비난에 단 한 번만 사용된 한정판 코스튬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한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와서인지 한국 한정으로는 까방권을 얻은 분위기다. 김연아와도 덕담을 주고받는 등 친밀한 관계라고 전해지며,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애도를 밝히며 금액을 기부한 적도 있었다. 아사다 마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사실 본인 성격도 대표선수치고는 의사 표현이 자유로운 편인 것 같다.

1 스타일과 특징

경기보다 외적인 요인으로 주목받는 일이 많다. 피겨 스케이팅보다 노출이 있는 경기 의상이라든지, 스트레칭 장면이라든지 러시아인 코치와 동거설 등으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동양 피겨 스케이터치고는 큰 가슴 때문에 좋아하는 남성 팬들도 있는 듯. 연습 때도 다들 새까만 쫄쫄이 티 같은 거 입을 때 이런 복장이니… [1]

스케이팅 스타일은 점프에 올인한 점퍼란 단어로 요약이 가능하다. 모든 것을 점프로 귀결시키기에 취존중 호불호가 극심히 갈리며, 특히 이 스타일 때문에 운동선수로서는 우수하지만 피겨 스케이터로는 최악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평까지도 받는 선수이다.

미키티의 팬들은 "안도 미키가 점프를 연기와 조금이라도 어울리게 했다면 콩라인 타이틀이 아사다 마오에게 갔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애초에 전반적인 스케이팅 스킬에서 아사다 마오에게 엄청나게 밀린다. 아사다 마오와는 다른 의미로[2]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결코 빙상에서 점프만 뛰는 운동이 아니며, 일본이 죽어라 아사다 마오만 미는 이유도 애초에 피겨 스케이터로서의 평가에서 아사다 마오안도 미키보다 높기 때문이다.

특히 스케이팅 스킬로만 따진다면, 세계적인 피겨 스케이터의 수준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 스파이럴 도중 펜스에 몸통 박치기를 시전한 에피소드는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며, 심지어 2009 세계 선수권에서 미국의 해설가가 이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점프에 대해서도 영 좋지 못한 평을 받고 있다. 안도 미키가 점프로 고평가를 받았던 시기는 만14세~16세로, 이 시기의 점프들은 엄청난 비거리를 선보였다. 더블 악셀을 뛰어도 비거리와 높이가 좋아서, 해설자가 "트리플 악셀을 뛰는 것 같다"는 드립까지 날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전후로 체형 변화를 겪으면서, 높이와 비거리는 당연히 줄었고 점프 질이 전반적으로 구려졌다. 다만 쿼드 살코나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과 같은 고난도 점프들을 제외했을 때, 점프컨시가 매우 좋다. 이런 우수한 점프 성공률을 이용해서 2007년 세계 선수권에서 아사다 마오까지 제치고 시상대에 올라섰으며, 사실상 그녀가 탑싱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우수한 점프 컨시가 기여했다.

주니어 시절에도 유연성은 떨어졌으나 그럼에도 비엘만스핀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직전의 어깨 부상이 치명타가 되었는지, 이후 선수생활에서는 비엘만스핀을 못 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중시하는 북미 해설자들은 안도 미키의 경기에 대해 "예술성의 실종, 음악성의 결핍" 이란 혹평을 쏟아낸다. 캐나다 출신의 모 안무가 겸 해설가가 자주 그런다고는 말 못한다

2 경력

2.1 시니어 데뷔 전

아이치나고야에서 태어났으며 8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12세 이전에 트리플 5종을 마스터하였으며 일찌감치 일본 연맹의 주목을 받던 선수였다.

14세 때 참가한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여자 피겨 스케이터 최초로 4회전 점프인 쿼드 살코[3]를 성공시켰다. 그런데 이 때 성공시켜 안도 미키에게 천재 소녀라는 명성을 가져다 준 쿼드 살코는, 국제 대회에서 4회전으로 인정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점프가 되었다. 그럴 줄도 모르고 안도 미키는 점프에 올인하는 망한 트리를 탄다

쿼드 살코의 성공 후 안도 미키는 이토 미도리로부터 이어지는 일본 여싱의 계보를 잇는 점퍼로 주목을 받았으며, 아사다 마오가 시니어로 올라오기 이전까지는 단연 일본 여싱의 독보적인 후계자였다.

매스컴에서 '미키티' 라는 애칭으로 통했으며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기대주였다.[4]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벌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미키가 화면에 나오자 아이돌이 "우왓, 미키티다!" 라고 반색했을 정도.

어디서 많이 본 설명 같지 않은가? 그렇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도 미키아사다 마오의 선구자쯤 되는 행보를 보였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전까지는.

2.2 몰락

허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이 다가왔을 때 안도 미키는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신체 성장기가 시작되면 체중 변화로 점프나 기술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어깨 부상, 발가락 골절 미완치 등 신체적으로도 완벽하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그 당시 올림픽 출전 선수를 정하는 전일본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에서 안도는 4위인 온다 요시에, 5위 나카노 유카리보다 더 낮은 6위의 성적을 거두어, 일본 내에서도 안도를 보내야 하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5] 허나 당시 일본의 올림픽 선발 기준이 올림픽 전 두 시즌의 성적 합산이었기 때문에, 나가노 유카리와 온다 요시에를 누르고 올림픽에 출전할 수는 있었다.[6]

그리고 이 올림픽에서 안도 미키는 쇼트에서 3회전-3회전 점프를 다운그레이드 받으며, 프리에서는 쿼드 살코를 넘어지고, 그 후로도 2번 더 넘어져 15위에 마크한다. 단순히 점프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쇼트, 프리 모두 그야말로 OME급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훗날 이때의 경기들은 안티들에게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된다. 일본 언론은 즉각 응원에서 조롱조로 시선을 바꾸었고, 그동안의 거대한 관심은 그대로 비난이 되었다. 당시 안도의 쇼트 프로그램은 아버지에 대한 헌정사로서 제작된 것이었는데 그리고 고인드립급 경기를 보였다 언론은 아버지에 대한 헌정사 프로그램과 포디움 실패를 연관지어 입국 직후부터 어마어마한 매스컴 취재를 가했다. 일본은 개인에게 책임을 무는 것이 관습이므로 단순히 싸늘해진 정도가 아니었다. 입국 직후의 기자회견장에서 "아버지에게 헌정한 프로그램이 그 모양이었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안됐네" 라는 뉘앙스의 빈정거리는 질문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자, 그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대서특필하며 안도를 매도하기도 했다.

이때 일본24세의 노장이었던 아라카와 시즈카가 예상 이외의 성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해 여성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 보유 목적은 달성했다. 게다가 이 금메달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이 딴 유일한 메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카와에 대한 찬사보다는 미키에 대한 비난이나 가십이 더 많이 다루어질 정도로 당시의 비난은 혹독했다. 이런 언론에 대해 안도가 점차 움츠러들고 언론도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미키티' 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되기 시작했다.

다음 시즌 도쿄에서 열린 2007 세계 선수권에서는 김연아아사다 마오를 양쪽에 끼고 시상대 정상에 섰으나, 오히려 아사다 마오를 꺾었다고 욕을 먹었다. 다만 이 때 욕을 먹은 건, 쇼트에서는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프리에서는 아사다 마오가 1위를 하여 대회 이틀 동안 2명의 16세 소녀가 주인공이었지만, 정작 우승은 쇼트 2위/프리 2위였던 안도 미키가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즉 금메달은 안도 미키였지만, 세계 언론의 주목은 김연아아사다 마오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어부지리로 우승을 차지했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 무존재 월드챔피언

그 후에도 2009-2010 시즌까지 쿼드 살코를 성공시키겠다는 드립은, 안도 미키가 일본 언론에 언플하는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직후 시니어에 데뷔한 아사다 마오가 눈부신 결과를 내놓자, 언론은 미키티 독주 채제에서 아사다 마오를 붙여 '쿼드 살코의 미키티VS트리플 악셀의 미라클 마오' 라는 식으로 팔아먹기 시작한다. 일본 여싱의 두터운 선수층과 더불어 뛰어난 기량의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는 좋은 흥행 소재가 되어 이 두 선수의 언론 부채질은 한동안 계속되었으나 아사다 마오가 조금 더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김연아가 순식간에 뛰어올라왔다.

이후 일본의 언론은 '미키vs마오+한국의 김연아' 구도에서 점차 '표현력의 연아vs기술력의 마오'[7] 구도로 분위기를 바꾸었고 이에 따라 미키의 지면은 차츰 낮아졌다. 안도 미키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쿼드 살코마저 올림픽 실패 이후로 뛰지 않는 데다, 아사다 마오의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이 건재한 시점에서 안도는 다소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

선수로서의 자부심과 근성이 강한 터라 피나는 연습과 함께 시즌 하나를 버리면서 점프의 잘못된 에지 사용을 고쳤으나, 이 고치는 과정에서 시즌 성적이 부진하자 언론 주목도는 완전히 김연아아사다 마오 구도로 돌아섰다. 아사다 마오가 에지를 고치지 못해 지지부진하는 사이 아사다 마오를 제치는 시기도 몇 번 있었으나(아사다 마오가 대차게 말아먹은 그랑프리 등) 김연아까지 제치지는 못했기에 일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다시 아사다 마오에게 돌아갔다. 에지를 고쳐 이번 시즌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근성으로 한국 피겨 스케이팅 팬들 사이에서는 호감 받고 있었으나, 김연아 훈련 방해나 아이스 쇼에서 김연아의 의상과 묘하게 비슷한 의상을 입고 나온 일로 한국 팬이나 김연아 팬에게 이미지는 다 깎인 상태. 지금은 안도둑이라 불리며 까이고 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클린했으나 심심했던 연기 산드라 베직은 점프만 있지 안무는 없다고 대놓고 깠다 로 5위를 해 포디움에 들지는 못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사건 이후 언론에 직접 나서는 빈도가 확 줄었다. 대신 가십성 찌라시 언론들에 의해 코치인 모로조프와의 동거설이 보도되기도 했다. 모로조프는 3번 결혼했다 이혼한 전적이 있으며, 그 상대가 모두 여성 피겨 스케이터였다는 점에서 팬들은 도망쳐 미키티!!를 외치기도 했다고. 여담이지만 저 동거설은 코치와 같은 숙소에 묵고 있어서 생겨난 보도로, 찌라시에서 의도적으로 동거라며 왜곡한 것이다. 다만 후술되어 있는 결혼 발표를 보면 알겠지만, 둘이 사귀었던 건 사실이었다(…). 보도되기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모로조프와 안도 미키가 연인 관계라는 소문이 기정사실화되던 분위기였다.

3 재기의 꿈

3.1 출산미혼모 선언

2013년 4월 출산 후 병원 쪽에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함구령을 내렸고, 미혼모 선언으로 여겨지는 발언을 공개 방송의 인터뷰를 통해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일부 보도기관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캐물었으나, 후원회에서 간접적인 항의를 시작하여 일부 가십성 매체를 제외하곤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캐묻지 않고 있는 중이다. 또한 2014년 복귀를 위해 4월 출산산후조리와 동시에 5월부터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출산 직후의 무리한 훈련 재개로 인해 후원회와 안도 미키의 주변인들이 훈련을 강요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돌았는데, 안도 미키의 모친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전제로 출산을 허락했다는 말을 하여 출산 직후의 무리한 훈련 재개도 아기를 위한 것이라 여져겨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3.2 히마와리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안도 미키에 의해 알려진 딸의 이름이 히마와리(해바라기)인데, 이로 인해 아이의 아버지가 안도 미키의 전 코치인 니콜라이 모조로프라는 설이 돌았다. 러시아의 국화가 해바라기라는 점과 과거 동거하였고 연인관계라는 가십이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 쪽은 비공식 발언으로 아이가 혼혈이 아니라는 멘트를 했고, 방송에 몇 장면 나온 아이도 혼혈과는 거리가 멀었다. 4월~6월에 태어나는 아이에게 히마와리 등의 여름 이름을 붙이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며, 안도 미키의 보호자와 후원회의 개입으로 니콜라이 모조로프가 코치직에서 물러난 시기를 고려하면[8]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출산 시기를 생각하면, 히마와리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은 2013년 4월 말부터 출산을 마친 안도 미키를 자주 찾아갔고 일부 파파라치에 의해 동거사진 등이 보도된 전직 피겨 스케이터인 난리 야스하루라는 것이 정설이다.

2011년 은퇴한 후 프로 스케이터 데뷔에 실패한 무직 프리터로 보도된 난리 야스하루가 히마와리의 아버지라면, 주변의 눈치를 신경 쓰는 일본인 특유의 종특과 후원회의 항의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난리 야스하루 본인은 아버지 설을 부인하였다. 출생의 비밀

하지만 난리 야스하루가 아버지설을 부정한 것은, 다름아닌 안도 미키의 어머니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안도 미키의 어머니는 여자 혼자의 몸으로 힘들게 딸을 뒷바라지 했으며, 언젠가 미키가 피겨 스케이팅 세계의 여왕으로 우뚝서길 바랬다고 한다. 그런 엄마의 눈에 난리 야스하루 따위가 눈에 찰리 없었고 교제도 반대, 아버지란 걸 알고 난 후에도 딸 곁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정확히는 최소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접근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난리 야스하루의 측근 그리고 안도 미키의 측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난리 야스하루 또한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당당하게 아이의 아버지라 나설 수 없는 입장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현재는 밤늦게까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안도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라고 알려져있었으나 2014년 상반기에 일본의 한 주간지에서 소치 올림픽 4위였던 스페인의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와 키스를 하는듯한 사진을 올리며 열애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때 둘은 연인관계를 부인했으나 2014년 11월 26일 서로의 인스타그램결혼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포스팅[9]을 동시에 올려 열애를 본격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국제망신이다.” “쟤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대다수. 그렇잖아도 나빴던 이미지가 한도끝도없이 추락 중이다. 비밀리에 감추던 히마와리의 사진을 열애공개 이후 갑자기 공개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15년 2월 과거 연인이었던 니콜라이 모로조프가 일본잡지 프라이데이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안도가 과거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 낙태한 경험이 있음을 폭로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11년에 두사람은 결혼을 약속했고, 당일날 안도측에서 일방적으로 파혼을 했다고한다. 또한 난리 야스하루오의 인터뷰에서 히마와리가 난리의 아이가 아니라고 반복해 말한 점을 보아 히마와리의 친부가 스폰서 사장일가능성도 낮지 않다고한다. 한국에서는 시궁창 싸움이라는 반응 속에서도, 이미 다 지나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낙태를 한 사실을 밝혀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여성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모로조프에게 비난의 여론이 더욱 쏠리고있다. 이에 대한 일본내 반응은 “궁금하지도 않다.” “이 여자 얘기 좀 그만 꺼내라”(...)가 많아 일본내 안도의 이미지가 얼마나 시궁창인지를 증명했다

급기야는 2016년 4월에 일본의 여성정보사이트 VenusTap에서 조사한 "닮았다는 소리 들으면 충격인 여성 유명인" 앙케이트 조사에서 2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1위가 트랜스젠더인 하루나 아이 이므로 실질적으로 여성 1위.

4 스케이팅 프로그램

시즌쇼트 프로그램(SP)프리 스케이팅(FS)갈라(EX)
2002-2003아스투리아스라바야데르달빛
2003-2004Grande Polonaise brillante불새카르멘
2004-2005Gypsy SoulConcerto for Guitar and OrchestraMickey
2005-2006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런스My Funny ValentineAc-Cent-Tchu-Ate the Positive
2006-2007세헤라자데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 64I Believe
2007-2008삼손과 데릴라카르멘Hurt
2008-2009The Chairman's Waltz교향곡 3번 '오르간'볼레로
2009-2010레퀴엠클레오파트라레퀴엠
2010-2011넬라판타지아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A단조A Thousand winds
2013-2014My Way불새

4.1 주요 수상내역

2007년 ISU 피겨 세계 선수권 여자 싱글 1위
2009년 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2위
2009년 NHK 트로피 여자 싱글 1위
2009년 로스텔레콤 컵 여자 싱글 1위
2011년 ISU 피겨 세계 선수권 여자 싱글 1위

4.2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 프로그램: 67.98 (2007 세계 선수권)
프리 스케이팅: 134.76 (2011 4대륙 선수권)
총점: 201.34 (2011 4대륙 선수권)[10]

4.3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 프로그램 : 64.76점 (4위)
프리 스케이팅 : 124.10 (6위)
총점 : 188.86점 (5위)

4.4 2011년 시즌

2011년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김연아에겐 점수를 박하게 주고 안도 미키에겐 너무 점수를 줬다고[11]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녀의 우승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적은 편이다. 관중들이 박수를 안 쳐줬다 2007년에 이어 무존재 월드챔피언 시즌2

이것도 모자라서 도호쿠 대지진을 겪은 일본을 위로하기 위한 정치적 배려에 따른 우승[12]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일본의 반응 역시 전혀 뜨겁지 않다. 그런 사람 몰라요.

김연아를 제치고 1위를 한 탓인지,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과거 사진이 나돌았는데, 본래 피겨 스케이팅 팬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어서 놀랍지도 않은 사진들이었다(…). 그냥 이 세계 선수권 직후 안도 미키의 이름이 한국의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면서 과거 사진이 발굴되었을 뿐. 사실 일본 내에서도, 특히 마오타들에 의해서 반쯤은 네타 캐릭터 취급을 받는 터라 암울했던 과거 사진이나 영상들이 많이 나도는 편이다. 스파이럴하다가 펜스에 박는다거나 펜스에 박는다거나 박는다거나

하지만 일본 내에서마저 아사다 마오에 밀려서 완전히 쩌리 취급을 받으면서 와신상담한 끝에 얻어낸 1등이라 국내에 얼마 없는 일본에도 얼마 안 남은 안도 미키 팬들은 매우 기뻐하고 있다.

2012년 10월 10일, 코치 문제를 둘러싼 연습 부족을 이유로 한 시즌을 쉬겠다고 발표하였다.

10월 26일자로 언론에 공개된 모로조프 코치의 인터뷰에 의하면, 두 사람은 실제 연인 관계였고 안도 미키 측에서 먼저 이별을 통보했는데 자신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안도 미키 측에서는 연인 관계는 끝내더라도 코치와 선수로서의 관계는 지속하기를 희망했다고 하나, 모로조프로서는 도저히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없어 코치를 사퇴했으며, 관계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안도 미키를 사랑한다고 밝혔다.

4.5 2013 시즌

2012년 시즌을 내리 쉬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그저 은퇴 수순인 것으로 판단.

그런데 2013년 5월 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며, 현역 복귀 의사를 밝혔다. 관련 기사.

2시즌만의 복귀에 대해서는 해외 포럼이나 일본 현지나 시큰둥한 반응이다. 안도 미키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일본 내셔널 우승이 필수적인 상황인데,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요인 중 하나이다.

2013년 7월 2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4월에 딸을 출산하여 미혼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안도의 어머니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전제로 출산을 허락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제서야 안도가 무리한 복귀와 훈련을 강행한 이유가 밝혀진 셈. 그리고 위 기사도 자세히 보면 '소치에서 우승하는 것' 이 아니라 '소치에 출전하는 것' 이 목표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는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이 사정이 알려진 덕분에 국내외 피겨팬들 사이에 팽배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누그러들고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2013년 12월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에 출전해 김연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경기 후 김연아와 함께 찍은 셀카를 자신의 SNS에 올리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 후. 우승을 축하해 연아야. 같은 대회에서 너와 함께 경기를 치를 수 있었어서 좋았어. 앞으로도 행운이 있길"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 대회에서 알려진 또 하나의 일화로, 연기가 끝난 후 점수를 기다리며 안도 미키가 카메라를 향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보통은 모국어 혹은 대회가 열린 국가의 언어로 인사하는 게 보편적인데, 해당 기사에서는 일본 팬들에 비해 대한민국 팬들이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안도 미키를 응원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부정적인 여론은 거의 사라진 반면, 일본에서는 "응원을 위해 멀리까지 찾아간 자국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논란이 되고 있다.#넷 우익들은 늘 그랬듯 자이니치라며 까고 있다. 안미희(安美姬)라는 묘하게 그럴듯한 한국 이름까지 지어냈다.

이후 사이타마에서 열린 전일본 선수권에 참가했으나, 7위에 그쳐 결국 3위까지 부여되는 소치행 티켓을 완전히 날렸다. 대회가 끝난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1. 이러한 의상, 사생활 등으로 인해 일본 내에서 악녀 이미지가 강한 편
  2. 아사다 마오는 점프에서 기본기가 떨어진다
  3. 당시 구채점제였고 선수가 주니어여서 가능했던 점프였다.
  4. 당시 아사다 마오는 연령 제한일까지 87일이 모자라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5. 참고로 그 당시 내셔널 1위는 스구리 후미에, 2위는 아사다 마오, 3위가 아라카와 시즈카.
  6. 올림픽 대기순위 1위였던 나카노 유카리는 그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 3위에 오를 정도로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암전 대신 4대륙 선수권에 나가 2위를 차지했다. 온다 요시에 또한 올림픽 대신 4대륙 선수권에 선발되었으나, 경기를 할 컨디션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7. 사실 '표현력의 미셸 콴vs기술력의 이리나 슬루츠카야' 를 그대로 베껴 온 문구다.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은 점프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점프 중심주의에 언론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편인데 이게 다 이토 미도리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고난도 '점프' 를 뛰는 아사다 마오가 훨씬 더 천재적이고 대단한 선수이고 김연아는 기술적으로 더 떨어지는 선수라는 걸 강조하는 문구였다. 그러나 2008년 이후로 이 문구는 사장된다. 기술도 표현도 발끝에도 못 미친다
  8. 임신에서 출산까지 9개월 정도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9. 오늘은 우리에게 특별한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기때문이죠. 이 관계의 주요 포인트는 사랑과 행복한 가정입니다. 모두의 따뜻한 시선을 바라요. 사랑을 담아 미키와 하비에르가
  10. 신체점제 도입 이후 여자 선수 중 ISU 공인 대회에서 쇼트, 프리 점수 합계 200점을 넘긴 4번째 선수이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2위인 김연아와 1점 차.
  12.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의외로 피겨 스케이팅 계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당장 9.11 테러 직후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여자싱글 금메달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