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성우에 대해서는 김연아(성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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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연아(金姸兒)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 | 1990년 9월 5일, 경기도 부천시 |
본관 | 경주 김씨 |
신체 | 164cm, 47kg, O형 |
성좌/지지 | 처녀자리/말띠 |
가족 | 아버지 김현석, 어머니 박미희, 언니 김애라 |
학력 | 신흥초등학교 도장중학교 수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 학사 고려대학교대학원 체육학 |
소속사 | 올댓스포츠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스텔라) |
링크 | 공식 사이트 |
SNS | > > > width=24]] |
목차
1 개요
Long live the Queen![1]
세계 피겨 스케이팅 역사 상 최고의 선수들 중 한 명이자 대한민국이 배출한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중 한 사람
현 세계 피겨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가 경기를 마치자 미국 NBC방송의 해설진 가운데 한 명이었던 톰 해먼드(산드라 베직이 아니고)가 찬탄하며 했던 말이 생중계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김연아의 선수생활을 관통하는 짧고도 임팩트 있는 한 마디로 기록되었다. 외신 중계자들이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볼때 '퀸'이라는 호칭을 연달아 쓰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피겨 여왕', '피겨 여제', 'Queen Yuna'는 그 후 김연아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된다.
2 개인 신상 및 생애
2.1 개인 신상
한자로는 金姸兒. 일본에서는 キム ヨナ(키무 요나)라고 표기한다.
로마자 표기는 Yuna Kim을 사용하는데 해외에서는 이름의 발음 문제를 고려하여 그냥 사용한다. 방송을 보면 거의 대부분 '유나 킴'이라고 읽는다. 사실 원래는 Yun-a라고 쓰려고 했으나 여권 표기 실수로 인해 Yu-na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고 써놓고 보니 이쪽이 외국 사람들도 부르기 쉽고 본인도 좋아해서 그대로 쓰게 되었다.
본관은 경주이고, 종교는 천주교(세례명: 스텔라)이다. 출생지는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다닌 학교로 초등학교는 신흥초등학교, 중학교는 도장중학교, 고등학교는 수리고등학교(이상, 경기도 군포시 소재)이며, 대학교 학부는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학사 학위), 대학원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전공(석사 과정)이다. 별명은 피겨 퀸, Yuna Queen, 피겨 여제 등이 있다.
별명은 피겨 퀸[2] 그리고 로마자 표기인 Yuna Kim에서 비롯된 Yuna Queen[3]도 있다. 통산 커리어부터 점프와 예술적인 플레이까지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 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뒤에 보면 알겠지만 세계 신기록만 열 번 넘게 세우면서 여성 최초로 200점을 돌파했고, 동시대 스케이터들을 20점 이상의 점수차로 따돌리는 일도 빈번한 등 대단한 실력을 갖춘 덕에 타국에서조차 최고의 선수 및 스타로 대접받았다. 21세기 세계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2.2 생애
부상을 극복하고 한창 날아다니던 2009년과 그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타 현역 탑싱들을 제외하고 미셸 콴, 카타리나 비트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비견되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동시대 피겨스케이터들 중에서는 독보적 위치. 시대를 풍미한 스케이터로 평가받는다.
출전하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씹어먹으며 빙판 위를 제대로 쓸어버리는 진정한 여왕. 일단 출전해서 경기를 했다 하면 대부분의 대회에서 관객 전원의 기립박수를 받아내고 신기록 작성까지 해주시며 피겨계를 주름잡던 여왕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외의 유명 스포츠언론이나 해설진들은 그녀가 시니어 데뷔를 하고 은퇴하던 시즌까지의 대부분의 국제대회를 '김연아가 참가하는 대회or김연아가 참가하지 않는 대회'로 구분하기도 했다.[4]
그녀의 활약 이후로 수많은 피겨 유망주들이 생기고 있고, 국민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초등부 한정으로는 피겨 유망주들이 더 많을 정도. 또한 그녀가 대외적으로 밝힌 컴백 이유 중 하나가 '후배들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 피겨계에 금전적 지원 및 여러가지로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하다. 후에 한국 피겨계의 대모라고 불릴 가능성이 높다. 골프계에서의 박세리와 여러모로 위치가 비슷하다. 외국에서도 '그 전까지는 출전도 잘 못한 나라에서 어디서 이런 거물이 튀어나왔냐'고 신기해하는 말이 종종 나온다. 은퇴 이후 외국 대회에서는 김연아 키즈가 나올 때마다 '김연아가 이끌고 온', 또는 '물꼬를 튼' 선수라고 언급된다. 박소연, 김해진 등이 연아키즈로 등장했고, 현재는 유영이 포스트 김연아로 주목받고 있다.
3 선수 생활
3.1 선수 경력
김연아/선수 경력 문서로.
3.2 수상 기록
자세한 사항은 김연아/수상 기록 참조
4 평가
김연아는 앞으로 오랫동안 피겨 스케이팅을 지배할 것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직후 카타리나 비트[5]
김연아는 한국의 여왕에서 세계 모두의 여왕이 됐다.- 2010, 뉴스위크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경기는 사상 최고로 기억될 것이다.- 2010, AP통신
한국에서 온 살아 숨 쉬는 예술품. 타 선수들과는 다른 리그에 있다.- 2010, 밴쿠버 Sun
연아는 범접할 수 없는 프리마돈나.- 2010, 日 아사히 신문
시즌을 건너뛰고 고작 2∼3번째 실전 무대로 올림픽에 나서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선수는 김연아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직전 타라 리핀스키[6]
4.1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개척자, 그리고 불세출의 전설
피겨 여왕(은반의 여왕 이라고도 부른다)[7]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에 한국에서의 피겨는 존재조차 모르던 종목이었다. 한국은 그야말로 빙상 스포츠 중에서도 레이스에만 특화된[8] 나라였지, 피겨계에는 정부적 관심도, 국민적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도 국내 후원이나 투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주니어 시절 김연아가 한창 두각을 나타내던 때에 포털의 뉴스 댓글에는 '시니어에서 입상해야 진짜실력이지 설레발 치지 마라'는 악플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 국민들 입장에서는 김연아는 뭔지 모르겠지만 스포츠계에서는 갑툭튀한 인재였던 것이다. 당장, 김연아가 아니었다면 세계선수권 대회가 뭐고, 그링프리 대회가 뭐고, 트리플 점프가 뭔지 몰랐을 국민이 대다수다. 따라서 사실 김연아를 처음으로 주목한 것도 일본이었다. 김연아가 뜨기 시작할 적 반응도 "피겨? 뭐하는 건지 잘은 모르겠는 데 우리나라 선수가 나와서 못해도 은은 따네? 대단하다!!" 당연히 국제무대에서도 전통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던 유럽이나 미국,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피겨계에서는 겨우겨우 올림픽 출전권만 얻어서 그마저도 최하위권만 기록하는[9] 잉여였다.[10]
여기에서 한창 국민적 열기를 불어넣은 것이 아사다 마오와의 라이벌 관계이다. 특히, 그 둘은 국가에서의 위치, 여러가지 특성들이 비슷해 어떤 일이든 인기있는한일전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만 놓고 보자면 시니어 때의 경력은 사실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김연아가 우위를 점했다. 거기에다 한창의 전성기였던 2009-2010기간 동안은 거의 혼자서 모든 국제대회를 씹어먹고 다녔다. 나가는 대회 족족 신기록을 세우고 그 시즌 동안에는 2등을 10점 20점씩의 차이로 따돌리기도 했던 것. 특히 이 시즌에는 09년도 세계선수권부터 해서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모든 국제 대회를 다 쓸어버린 후 벤쿠버 올림픽에 진입했다. 이 때 라이벌이라 불리던 아사다 마오는 시즌 내내 그랑프리 시리즈를 모조리 말아먹으며 그야말로 선수인생 최저점을 찍고 있었고 일본 여론은 과연 아사다를 올림픽에 내보내도 될까(...) 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쉬다가 오랜만에 나온 메이저 국제 대회인 2013년 세계 선수권에서도 2년 동안 쉬었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역시 라이벌들을 20점 차로 압살해 버린다.[11] 그렇게 2009년 이후로는 김연아는 거의 대부분의 대회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인기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정리하자면, 전혀 익숙치 않은 분야에서의 인재 등장 + 한일전 떡밥 + 그리고 그 떡밥을 소화해낼만한 뛰어난 재능이 인기요인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인들에게 새겨진 김연아의 이미지는 동시대 피겨선수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며,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아도 그것을 압도적인 재능으로 극복하는 불세출의 천재로 정립된다.
또한 예술성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피겨스케이팅 특성 상 요정같이 날씬하고 예쁜 체형과 외모가 부각되며 대중에게 어필되었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열악한 지원 + 부상 + 타국과의 비교 + 연습방해 영상 등 + 피날레로 편파판정논란까지 해서 인간승리의 상징웬만한 영웅신화 뺨침 전형적인 영웅서사 일대기 이렇게 진부한 드라마를 누가 봐요? 드라마 아니고 현실입니다만 으로 여겨지며 한국에서는 단순한 스타 이상의 존재로 자리매김 했다. 스스로의 선행이나 끊임없는 기부도 많이 알려져 현재 와서의 김연아의 위치는 2000년대 등장한 스포츠 스타로서는 인지도와 인기면에서 최고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2009년 정도까진 피겨요정, 국민여동생 여러 타이틀로 불렸다. 밴쿠버 올림픽 때 금을 따면서 피겨요정보다는 피겨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고, 국민여동생 타이틀도 여왕이라는 타이틀의 위엄때문인지 사그라들고 연느로 대체되었다. 다른 국민여동생 타이틀은 자라거나, 인기가 떨어지면서 떨어지는 데에 비해 진화한 특이케이스. 실력이 제대로 피어난 2009-2010 때는 김연아가 광고한 제품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광고계를 휩쓸어 피겨 프로그램보면서 김연아를 보고 잠시 광고타임동안 김연아를 보고, 다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김연아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인기가 신기했는지 외신에서도 피겨스케이터가 아닌 록스타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 그것과는 별개로 꾸준히 한국 피겨계에 기여하는 인물이다. 일단, 국민적 관심도가 김연아를 계기로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것에 더해 김연아 본인 역시 잠정 은퇴수준이었던 공백기를 끊고 다시 돌아온 이유도 한국 피겨계를 위해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김연아 은퇴 이후에도 주목받는 후배 유망주들을 보도할 때 '포스트 김연아'라는 말이 항상 나오고, 인터뷰 질문에서 빠지지 않고 김연아가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사가 나기도 한다.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한 것도 그렇고 전국 피겨대회에서 수상자로 나서기도 하고, 유스 올림픽을 홍보하기도 하고, 빙상장 건설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이래저래 한국 체육계의 빈곤한 환경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자기가 직접 겪어 봤을 테니..
4.2 해외
현대 피겨계의 먼치킨급인 인물중 하나라 이에 대해서 논하면 빠지지 않는다. 김연아의 연기 스타일에는 북미 쪽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고 아예 김연아가 출전했던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는 그전까지 최대 판매량 2002의 티켓 판매량 28664장을 제치고 29477장을 팔아 최고 판매량을 세우기도 했다. 또 2010년 10월 2~3일에 미국 LA에서 개최한 아이스쇼는 1주일 뒤에 미국 방송국 NBC를 통하여 전국에 녹화중계되었다. 자국 선수인 에반 라이사첵의 아이스쇼조차 1년 후에 방송한다. 아이스쇼 표 역시 2일치가 전부 매진되기도 했다. 또한 NBC 여성피겨 방송을 들어보면 김연아에 대한 언급이 매우 자주 나오는 걸 알 수 있다.[12] 광고하려고 잠시 프로그램을 멈출 때에도 잠시 후에 김연아라고 하면서 시청자들을 붙들기도 하여 최고의 피겨 선수로 취급한다 보면된다. 당시 미국에서 마땅한 피겨선수가 배출되지 않은 점도 있고 또 분야 탑으로 취급되고 있어선지 항상 해설자들도 김연아의 무대에 기대감이 높다.
피겨자체가 한국에서 워낙 불모지였던 지라 국내에서 주목을 못 받았을 때 아사다 마오의 대항마로서 제일 먼저 김연아에 주목한 것도 일본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아사다 마오의 우승을 가로막는 포지션(...)이 포지션인지라 우호적이진 않지만 밴쿠버 프리 때를 비롯한 시니어기 많은 경기에서 아사다가 실력과 멘탈에서도 김연아에게 밀려 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김연아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다.[13] 일본 방송을 들어봐도 김연아를 여왕(죠오)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구도는 이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되었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라이벌 구도가 더욱 흥했고, 순정만화 유리가면에 빗대어 마야와 아유미로 VS놀이를 하면서 비교떡밥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언론보도 및 교양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사다마오를 학교 생활도 열심히하며 또래들과 해맑게 웃으며 행복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타고난 천재로, 김연아를 하루종일 연습만 하면서 친구도 없는 음울한 기계처럼 이미지메이킹을 시도도하며 예술(예쁘고 밝은)의 마오 vs 기술의 연아로 구도를 만든 바 있다.
그러다 시니어에 올라와서는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와 종달새의 비상으로 충격을 안기자 아사다 마오를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기술의 천재, 김연아를 표현력의 천재로, 기술의 마오 vs 예술의 연아로 새로운 구도를 만들었다. 엿장수 맘대로 그러나 실상은 아사다 마오는 플러츠와 온전하지 못한 트리플악셀로 기술에서조차 김연아를 따라가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바이두의 2010년 스포츠스타 검색어 순위 1위를(야오밍 2위) 기록하였다. 실제로 유튜브 들어가 보면 김연아 응원 댓글 중 중국어로 쓰여 있는 것도 꽤 많이 찾아 볼 수 있으며, 추천수도 상당히 달려 있다.
금메달 수상 이후 자신이 동경하던 피겨 선수 미셸 콴과 교류가 많다. 콴은 김연아의 아이스쇼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우정을 과시했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이후 훈련 장소를 콴의 훈련지인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적이 있으며 김연아의 새 코치였던 피터 오퍼가드는 콴의 언니인 캐런 콴의 남편이자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
미국의 어린이 대상으로 나오는 백과사전 2010년 판에서는 저스틴 비버와 나란히 표지를 장식했으며 힐러리 클린턴과 편지를 주고받은 적도 있다. 세계적인 할리우드의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와 가수 리애나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연아를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 구호단체 유니세프의 홍보대사로도 선정되는 한편 미국 뉴욕에 소재를 둔 '여성 스포츠 재단(Women's Sports Foundation)'[14] 에서 주는 '2010 올해의 여성 스포츠선수 상(2010 Sportswoman of the Year)' 을 수상했다. 이는 아시아인 여성 운동선수로서는 사상 최초이다.[15][16] 또 타임스(The Times)에서 뽑은 '2010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에 선정되기도했다.
또한 한국에서 2번재로 선정된 유니세프 굿월 대사다.(첫번째는 지휘자 정명훈.)#
유로스포츠 선정 가장 위대한 여성 선수 20인에 등재되었다. #
IOC 공식 페이스북에서 한국어로 김연아 생일을 축하하는 맨션을 올렸다. #
해외 피겨 선수 중에서는 미국의 그레이시 골드와 중국의 리쯔쥔이 공인된 김연아의 열성팬. 그 외 김연아가 호스트가 되어 주최한 아이스쇼에 참가했던 선수들 중에서도 관심과 호감을 표하는 선수들이 많다[17]. 그 외에도 발표하는 프로그램마다 관심을 모으고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피겨 선수들이 동작을 따라하는 경우가 잡히기도 한다.[18]
한국인 최초로 올타임 레전드 클럽에 가입되어 마이클 펠프스, 나디아 코마네치등과 함께 도하 골스 포럼에 참석하였다. #
5 선수 은퇴 후
IOC에 올라온 김연아의 인터뷰 중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관련 인터뷰가 왜곡되어 기재되어서 IOC가 욕을 먹고 있다. # 김연아는 그냥 "난 클린 연기로 그동안 준비해온 내 할 일을 다했고 심판의 판정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이라고 했을 뿐인데 이게 어느 새인가 "기술이 뛰어난 소트니코바가 잘해서 이기기 어려웠다" 로 왜곡된 것(...)외국산 기레기 물론 기술,기록으로 봐도 신빙성은..
해당 부분에 대한 항의를 받은 IOC는 영 리포터의 실수라면서 해당 부분을 삭제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상황인데 꼬리자르기는 만국 공통 영원히 고통받는 인턴
체육훈장 최고등급 기준이 올라갔는데 소트니코바에 금메달을 논란이 있는 판정으로 놓친 것 때문에 76점이 모자라 1500점이 되어야 받는 청룡장을 받지 못하게 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삾슶값 체육단체들 문제는 웬만한 세계구급 선수도 받기 힘들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 체육계는 기준 원복을 촉구하였다. 결국 체육분야 서품 기준이 지나치게 상향 조정됐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안전행정부가 기준을 재조정하겠다고 뜻을 밝힌 데 이어 문체부는 '체육분야 유공자 서훈 기준' 특례 조항 등을 적용해 김연아에게 청룡장 수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었으나, 당시 훈장을 못 받고 있던 박태환과 같이 묶여서 박태환은 안 주는데 왜 김연아만 특별규정으로 주느냐며 까였다. 그러나 이건 수영연맹이나 빙상연맹의 행정이 거지 같아 생긴 문제로 청룡장의 경우 해당 점수를 넘을 경우 연맹이 추천하면 100% 지급해왔다고 한다. 김연아는 점수를 상향조정하려는 걸 빙상연맹이 알고 있었고 2012년 이후부터 쭉 대상자였는데 2013년 세계선수권 우승 이후 추천했으면 명예롭게 받을 수도 있었는데도 일처리 안하는 빙상연맹 때문에 특별규정으로 받게 되어 특혜라며 욕 먹만먹고 아직 청룡장을 받지는 못하였다... 일 안하고 빈둥거리는 빙상연맹도 답이 없다.[19]
올 댓 스케이트 2014를 끝으로 공식 은퇴하였으며, 기념 주화가 한국조폐공사를 통해 발행되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합격하여 2014년 9월부터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후배 선수들도 도와주고 있다고 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6 릴레함메르 청소년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것도 유스올림픽 홍보를 위해서라고.
6 기부
아래는 김연아의 역대 기부 행적과 금액
- 2007년 1월, 피겨 꿈나무들에게 1천 2백만 원의 장학금 기부
- 2007년 5월, 피겨 꿈나무 김현정 선수에게 LG생활건강 광고모델 수익금의 일부인 장학금 1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
- 2007년 9월, 아이비클럽 CF출연료 중 1억 원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부
- 2007년 12월, 기름유출 사고로 시름에 잠긴 태안 지역 학생들에게 2천만 원 상당의 교복 100여 벌 기부
- 2008년 5월 14일 The Daishin Investment Forum, 2008 행사에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피겨 꿈나무 선수를 후원하기 위한 5천만 원 상당의 기부금 전달
- 2008년 5월, 매일우유와 협의, 4천만 원 상당의 유제품을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1년간 지원
- 2008년 5월, 1억 원 상당의 교복 기부
- 2008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팬들에게 받은 인형 1000여 개를 김연아 선수가 직접 선정한 곳에 기부(가톨릭대학교 여의도 성모병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국립암센터, 적십자병원, 동천의 집, 송죽원, 서울특별시 동부아동상담소, 이화여자대학교 해외건축봉사단, 거제도 애광원, 고려대 봉사단)
- 2008년 12월, 피겨 꿈나무 일일클리닉 행사를 마친 후 '피겨 꿈나무 장학금 전달식' 을 갖고 적립된 행복기부금을 유망주 1인당 5백만 원씩 총 5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
- 2008년 12월 24일,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 중 2009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에게 1억 원 상당의 동절기 교복 기부
- 2008년 12월 25일, 아이스쇼 Angels on ice를 개최. 공연 수익금 약 1억 4천만 원을 소아암 등 희귀병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전액 기부
- 김연아 어머니 박미희가 책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인세 불우이웃돕기 지원
- 김연아 아이비클럽 출연료 1억+아이비클럽 측 1억, 총 2억 상당의 금액 기부
- 김현정 선수 해외 전지훈련 비용 3천만 원 지원
- 어려운 주변환경에도 피겨의 꿈을 키워나가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매년 1인당 수천만 원을 지원
- '꿈을 키우라' 는 의미로 김연아의 의상 등을 무상 제공.
- 2009년 4월, 소년소녀가장들에게 1억 기부
- 16일 월드비전 성남종합사회복지관에소년소녀 가장들을 지원하기 위해 1억 원 상당의 유제품을 기부.
- 2009년 5월, 6일 오전, 국민은행 여의도본점 4층 강당에서 강정원 행장과 함께 만든 '아우인형' 과 후원금을 유니세프에 전달.
- 2010년 1월- 아이티에 1억 원 기부[20]
- 2010년 4월- 천안함 희생자 위로 성금 5천만 원 기부
- 2010년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식 개선 라디오 출연료 전액 기부 (4천만 원)
- 2010년 7월- 삼성하우젠 제로 피겨꿈나무 지원 2천만 원 기부
- 2010년 7월 26일- 연아사랑적금 백혈병어린이 후원금 1억 원 기부
- 2011년 5월 - 2위 은메달 상금을 유니세프에 기부하였다. 2만 7000달러(한화 약 2920만 원).
- 2011년 12월 - '바보의 나눔'에 1천만원 기부
- 2011년 12월 -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다문화가정 어린이 후원금 천만원 전달
- 2011년 12월 - 피터 유릭(Peter Jurik)이 그린 초상화의 로열티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기부
- 2012년 1월 - '얼음꽃’ 음원수익을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팀에 전달
- 2012년 2월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 5명에게 후원금 전달
- 2012년 4월 - KB국민은행 '피겨퀸 연아사랑 적금'으로 조성된 기부금 1억원을 한국 백혈병 어린이재단에 전달
- 2012년 6월 - 남수단 학교 건립을 위해 살레시오회에 7천만원 기부
- 2013년 1월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난치병 어린이 5명에게 후원금 전달
- 2013년 4월 -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2013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상금 전액 기부
- 2013년 11월 - 태풍 하이옌 피해를 입은 필리핀의 구호기금으로 유니세프에 10만달러 전달
- 2014년 4월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1억 원 기부
- 2015년 4월 - 지진 피해를 입은 네팔 어린들의 구호기금으로 유니세프에 10만달러 기부
- 2016년 2월 - 김연아 공식 팬카페에서 그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지 6주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지 2주년을 기념하여 유니세프에 기부를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하던 중 조용히 나타나 5천만원을 기부
- 유니세프를 통한 기부금은 총 20억 원. 유니세프 외 기부금은 총 20억 원. 합쳐서 40억 원이다.
7 기타
7.1 연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직후인 2014년 3월 6일. 디스패치에 의해 아이스하키 선수인 김원중과의 열애설이 보도되었다. 열애설 보도 기사.
디스패치에서는 빙상연맹 관계자의 제보를 통해 사진을 찍으러 근 6개월간 김연아를 몰래 쫓아다녔다고 한다. 파파라치 사진은 화보처럼 포장되어 공개되었다. 디스패치에서는 김연아가 소치 올림픽에 집중하도록 배려하여 공개를 늦추었다고 주장하지만 올림픽 전이나 진행 중 열애설을 터뜨렸을 때 국민들의 반응을 상상해보면 당연한 처세에 불과하다.
2014년 6월에 김연아의 남자친구 김원중이 국군체육부대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사건으로 화제가 되었으나, 보도 당시 김연아와는 이미 결별한 상태였다.
7.2 이야깃거리
- 2012년 에듀모아에서 초등학생 639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48%로 1위를 차지했다.[21]
- SBS 일요일이 좋다의 영웅호걸 후속 예능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서 메인 진행과 심사를 맡아 고정 출연했다. 1회와 4회에서 출연진들의 연기를 보기 전에 오프닝 공연으로 자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아이유와 함께 키스 앤 크라이의 주제가인 '얼음꽃'을 불러 화제가 되었다.
- 가창력이 준가수급이다. 방송이나 팬미팅에서 웬만한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는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 중저음이 풍부하고 고역도 잘 넘긴다.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실력이다. 얼음꽃은 정식 음원 발표까지 되었다.
- 연습한 곳 중 롯데월드 링크 빙질이 좋았다는 얘길 하였는데, 그 이유는 따뜻하기 때문이라고. 난방조차 제대로 안되는 국내 링크장의 사정을 보여주는 웃픈 이야기다.
- 다양한 분야에서 헌정을 받고 있다. 나이키에서 다이아몬드와 금이 들어간 골든자켓을 헌정받았다.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와 함께 받은 자켓이다. 루이비통에선 트렁크를 헌정받았다. 트렁크는 두개가 만들어져 하나는 경매에 올라 그 수익금이 기부에쓰였다. 미국에선 김연아를 위한 헌정시를 쓴 시인이나, 김연아가 제목인 교향곡을 만든 작곡가[24] 가 나오기도했다. --잘생긴 팬--의 헌정노래도 있다
- CF 출연이 많은 스포츠 스타다. 2009년 김연아가 벌어들인 수익은 무려 80억. 당시 전세계 여성 스포츠 스타 수입 5위에 올랐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2010년에는 105억을 벌어 여성 스포츠 스타 수입 8위였다. 2012년 900만 달러(약 102억)으로 7위를 기록. 2013년엔 1400만 달러(약 156억)로 6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선행과 꾸준한 기부로 자선활동 순위에 자주 오르기도한다. 2011년 TRACE Sport 선정 세계 탑 여성스포츠선수 자선활동 순위 5위, 2014년 美 포브스 선정 아시아 기부영웅 29인, 2015년 DoSomething.org 선정 자선활동을 많이 한 스포츠선수 4위에 이름을 올렸다.
- 건강 상태는 영 좋지 않다. 발은 심하게 혹사당했는지 하이힐을 신는 게 어려울 정도이다. 또한 각종 근육 질환에 시달리면서 말 그대로 온 몸 중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김연아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것이다.[25] 이 때문에 김연아는 은퇴하게 되면 그로부터 2~3년 동안은 선수 시절 혹사시킨 몸을 치료하는 데에 전념해야만 할 수밖에 없다.
- 2008년 12월엔 대회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에 산타복으로 원더걸스의 Nobody에 맞춰 피겨 댄스를 추고 태연의 들리나요를 불러 화제가 되었다. 이때의 노래부르는 영상을 미국 NBC에서 가져다 경기직전에 틀어주기도했다.
- 천주교인으로 영세도 받았다. 세례명은 스텔라. 대회에 출전하면 경기 시작 전에 항상 성호를 긋는다. 2008년 세계선수권 부상여파와 편파판정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때 종교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 2011년 12월 TV조선 개국기념 김연아가 9시 뉴스 '날' 에서 1일 앵커로 출연한다고 조선일보에서 홍보하여 공지영 등 진보적 인사, 누리꾼과 김연아 안티들의 설전이 있었으나 실제 방송분은 스튜디오에서 이뤄진 인터뷰성 출연으로 밝혀졌다.
-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시사저널 선정 '한국을 움직이는 10인' 에 가장 많이 선정된 여성 인물이다.
- 2015년에 조사한 광복 70년 이후 '非 정치인 최고의 인물' 부문에서 33.2%로 1위를 차지하였다.관련 기사.
-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요미우리 신문과 대한일보가 2010년 4월 공동발표한 한일공동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이 친밀감을 느끼는 한국인 1위가 김연아로, 50%가 김연아에게 친밀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 군포시 군포소방서 건너편 철쭉 동산 인공 폭포 옆에 시에서 만든 피겨스케이터 비스무리하게 생긴 동상이 있다. 이를 무단으로 김연아의 이름을 붙여 홍보해 논란이 인 바 있다. 심지어 건립을 둘러싼 비리 혐의까지 있다.
- 2016년 4월 1일(금)에 이 해 3월에 신규 개장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의 첫 KBO 리그 정규시즌 경기인 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 경기의 시구자로 나섰다.[26] 이전에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경기에서 몇 번의 시구를 한 적이 있다고.[27]
7.3 광고
- 자세한 사항은 김연아/광고 항목으로 분리
시니어 데뷔 후 그랑프리에서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한 후, 국민은행과 첫 CF 계약을 맺었다.
첫 시작이 어려웠을 뿐 좋은 성적과 스타성이 합쳐 이름가치가 올라 광고하는 제품마다 연아우유, 연아신발, 연아커피 등 '연아XXX라고 이름 붙여지며 긍정적인 이미지 효과를 보여줬다. 반대로 하이트 맥주 CF 출연은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28][29]
2009년, 2010년, 2013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발표한 소비자가 뽑은 최고의 광고 모델로 선정되었다.#
한참 광고 출연이 절정을 찍던 때엔 인터넷상에서 김연아를 "하라는 운동은 안 하고 광고만 찍는다"고 비판하던 부류도 있었고, 광고를 많이 찍는 이유를 돈벌이에 집착한다고 '돈연아'라고 음해했는데, 정작 본인은 무릎팍도사에서 기분은 나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고 쿨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무릎팍도사에서는 광고출연이 훈련비 때문만은 아니라며 쿨하게 말했지만, 한국 빙상종목 선수들의 실태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피겨 스케이트는 김연아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에 훨씬 못미치는 지원을 받고[30] 대회 상금도 명성에 비해 적다.[31] 김연아 선수는 본인 훈련비용 뿐만 아니라 피겨계 후원까지 본인이 직접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오래 보아온 국민들은 오히려 CF출연을 반기기도 한다. 그리고 김연아는 본인이 CF를 선택할 때 기업의 피겨 후원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 실제 김연아가 CF 모델로 출연하고 있는 KB국민은행, 잇츠스킨, 프로스펙스현재는 만료, 뉴발란스 등이 한국 피겨선수들 후원에 동참하고 있다.
8 관련 문서
- ↑ NBC에서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때 "대관식이 끝났습니다. 여왕 폐하 만세!(The coronation is complete. Long live the Queen!)" 라고한 멘트. 영상 쇼가 마무리 된 후 6분 부터 보면 된다. 이는 여왕의 지속적인 번영을 비는 영국의 미사어구로 "만수무강하세요 여왕님!" 이라는 직역으로 보통 "여왕 폐하 만세"로 쓰인다. 한편 이보다 앞서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가 세계최초로 200점을 돌파하자 3월 29일자 유니버설스포츠 지도 1면 헤드라인을 이 말로 뽑기도 했다. 캡쳐파일
- ↑ 그 전에 어릴 때부터 있었던 별명은 피겨요정. 팬미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둘 다 오글거리는데 자기는 항마력이 딸려서 싫단다. 하지만 이건 국제적인 별명이었다. 외국방송에서도 밴쿠버 대회를 대관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구글에서도 Yuna Queen이라 표현했으며, 일본에서도 피겨방송에서 여왕을 뜻하는 '죠오'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녀의 스케이팅 후에 한번은 서구 스포츠신문에 "Long Live the Queen!" 이라는 영자 헤드라인이 올라오기도 했을 정도.
- ↑ 2014년 동계올림픽 직후 구글에서 김연아를 검색할 경우 Yuna Kim 대신 Yuna Queen으로 표제어가 출력되었다.
- ↑ 김연아가 참가하면 해당 대회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해설부터 시작해서 김연아의 존재는 다른 선수들이 빡세게 훈련하게 되는 계기라는 해설 등 온갖 찬사란 찬사는 다 받았다. B급 대회도 김연아가 출전하면 해당 시즌에 한해 A급 승격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
- ↑ 독일의 전설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 1984년, 1988년 올림픽 금메달 2연패로 매우 유명하다.
- ↑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역대 최연소 올림픽 챔피언이다.
- ↑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통용되는 별명. 조금은 진정된 표현을 쓰는 지상파 뉴스에도 퀸이나 여왕이라는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하고 심지어 애용된다. 겨울왕국 유행 당시 엘사와 연관되어 많은 사진들이 인터넷 상에서 등장했다.
- ↑ 특히 김연아가 나타나기 직전에는 쇼트트랙 만이 메달 밭이었다.
- ↑ 1968년 이현주 및 김해경, 1972년 장명수, 1976년 윤효진, 1980년 신해숙, 1984년 김해성, 1988년 변성진, 1992년 이은희, 1994년 이윤정(한국계 미국인), 2002년 박빛나 등이 참가한 바는 있다.
- ↑ 사실상 전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통틀어봐도 김연아는 상당히 이레귤러이다. 우선 피겨라는 종목 자체가 지원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잘하던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스타급 선수가 배출되며 투자에 따라서도 성과가 많이 달라진다. 밴쿠버 부진 이후 갑자기 여싱 피겨강국으로 떠오른 러시아만 봐도.. 전통적 피겨스케이팅 강국이었던 미국이 심각한 침체기를 맞아 예정대로라면 2000년대 이후 떠오른 일본선수들과 유럽 선수들/북미선수들이 경합을 벌여야 할 자리에 미국은 명함을 내밀지도 못하고 김연아가 갑툭튀해버리면서 그 다음으로 잘하던 일본선수들과 함께 아시아권이 석권해버린 것. 그 전 까지는 올림픽 출전권도 못 땄고 투자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라가 다음 번에는 금메달을 따고 있으니 이레귤러도 이런 이레귤러가 없다.
- ↑ 사실 앞에서는 너무 당연한 듯 서술해서 그렇지 2년 동안 쉬다 나온 선수에 대해 세계에서도 국내에서도 제법 불안 또는 회의의 시선도 있었다. 일본 언론에서 대놓고 복귀 전에 외국 피겨 관계자들에게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 중 승리를 점쳐달라고 했는데,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가 반반으로 갈렸다
일단 그들이 인터뷰가 일본언론의 것임을 몰랐을 리 없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아사다 마오의 승리를 점친 이들은 공백기가 너무 길어 김연아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다고 답했을 정도. - ↑ 유망주들의 경기에 "어렸을 때의 김연아를 연상케 하는군요." 등의 언급도 쉽게 들을 수 있고(대한민국 선수는 거의 백프로, 타국 선수들마저도) 라이벌들이 경기할 때도 언급이 꽤 나오는 편.
- ↑ 물론 립서비스일 수는 있으나 이에 대해 비정상회담에서 테라다 타쿠야가 언급하기도 했었다.
- ↑ 라우레우스 재단과는 다르다.
- ↑ 개인스포츠 부문.
- ↑ 바로 다음년도에 대만의 청야니가 받았다.
- ↑ 2013년 세계선수권 페어 스케이팅 우승조의 남자 선수 막심 트란코프는 김연아의 2014년 종합선수권 우승 영상을 '걸작' 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트위터에 링크한 적이 있다.
-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즌 때는 쇼트 프로그램 007 메들리의 마지막 총 쏘는 동작을 일본 피겨 선수들이 따라하는 장면이 잡힌 적이 있다. 아사다 마오가 교사 노릇을 했다.
- ↑ 해당 기사를 보면 점수 충족시 연맹추천의 경우 거의 대부분 지급됨을 알 수 있다.
일 안하는 수영연맹 빙상연맹 - ↑ 참고로 대한민국 정부가 1천만 원을 기부했다.
- ↑ 2위는 유재석 19%, 3위는 반기문 14%.
- ↑ 선수용 스케이트화는 수제품이다. 스케이트 값만 해도 주니어용도 30여 만원, 성인용은 날만 70-100만원 이상한다. 그런데 피겨용은 부츠를 대부분 천연 가죽으로 만들기 때문에 얼마 못 쓴쓰며 유소년 선수들은 성장에 맞춰 발도 커가기 때문에 스케이트를 계속 바꾸어야 하는데, 중간 단계거나 맞는 사이즈를 구하지 못하면 쿠션을 넣거나 테이프를 감아 맞춰 가며 쓰는 일이 많다.
- ↑ 답변을 보면 '파라노말 액티비티' 문장 뒤에 느낌표가 9개나 붙어있다. 상당히 인상 깊게 본 것으로 보인다.
- ↑ 미국 텍사스 휴스턴 출신의 Arthur Ned Maxwell로, <Olympiad>라는 교향곡의 제1악장 제목이 Skater Yu-Na Kim이다
- ↑ 종목을 불문하고 프로스초프선수들은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온몸에 부상을 달고다니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피겨말고 거친 종목들은 탈골, 골절, 인대파열 등등 그냥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수준이 많고 수술이나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되는 부상들은 은퇴 후로 밀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역선수시에는 간단한 진통제나 교정으로 악화되지 않게만 관리만 받는다.
- ↑ 피겨 여왕 김연아, 역사적인 라이온즈 파크 첫 시구 (네이버 스포츠, '16.4.1.)
- ↑ 2011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SK:삼성 (@서울 잠실야구장) - 김연아 시구 (네이버 스포츠, '11.10.31), 2008 프로야구 섬성 라이온즈:LG 트윈스 (@서울 잠실야구장) - 김연아 시구 '피겨 요정의 강속구를 받아라' (연합뉴스, '08.4.1.), 김연아 시구장서 진땀 뺀 두 사람 (SBS, '08.4.2.)
- ↑ 한국 정신중독의학회는 김연아의 맥주 광고 출연이 청소년의 음주문화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
- ↑ 올댓스포츠는 김연아의 맥주 광고가 비난의 대상이 될 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학계의 조언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다.#
- ↑ 그나마 앞의 두 종목도 제대로 지원 못 받는다. 왜냐고? 연맹 이름을 다시 한번 보자.
- ↑ 실제로 다른 종목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대회상금이나 연봉금액과 비교할수없을정도로 낮다. 김연아가 한해 수익이 가장 높았었던 2014년 당시 포브스 기록을 보면 다른 선수들은 못해도 200만 달러씩은 대회상금으로 수익을 얻는데 비해 김연아는 대회상금 수익이 30만달러밖에 안됬고 그 외 수입이 대부분이었다. CF도 안찍으면 선수유지도 힘들었던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