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신년음악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설명하는 문서

1 개요

공식명칭은 Das Neujahrskonzert. (The New Year's Concert)

매년 1월 1일에 열리는 빈 필하모닉의 명물 음악회.

1월 1일 정오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등 빈 출신 작곡가들이 작곡한 왈츠폴카, 행진곡 등을 연주하는 가벼운 콘서트다. 하지만 공연 끝나고 며칠 지나 CD가, 1주 뒤에는 DVD가 제반니스러운 스피드로 음반 매장에 쫙 깔릴 정도의 대인기를 자랑하며, 입장권 구하기도 전세계의 클래식 음악회들 중 가장 어려운 퀘스트로 손꼽힌다. 때문에, 원래 전전날(30일)과 전날(31일) 진행하던 리허설을 조금 손봐서 각각 '프리뷰 콘서트'와 '이브 콘서트'로 격상하여 진행하지만, 이 티켓들도 구하기 어렵긴 마찬가지.

평소와는 다르게 빈 악우협회 황금홀을 수많은 꽃들로 장식하고, 일반 음악회에서는 보기 힘든 여러가지 기행이벤트(... 아래에 후술)가 있으며, 가벼운 레퍼토리들로 이루어져있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보통 음악회가 저녁시간에 있는 것에 비해 대낮에 열리는 음악회로서 꽃들과 함께 화사한 영상을 보여준다. 또한 TV중계시에는 공연전에 미리 촬영해놓은 빈 국립 발레단의 발레와 함께 볼 수 있고, 최근에는 그 발레 단원이 공연장으로 난입(...)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지만, 클래식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기임을 생각할 때 여전히 상업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상품임에는 틀림없다.

2 역사

1939년 송년음악회(12월 31일)로 시작되어 1941년부터 매년 1월 1일 열리고 있다.
나치 시절에 괴벨스가 주도하여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근거는 추가 바람.

초기에는 1939년 첫연주부터 1954년까지 빈 필의 마지막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던 클레멘스 크라우스가 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과 47년는 크라우스를 비록한 다수의 독일, 오스트리아의 지휘자들이 연주금지 당했기 때문에 요제프 크립스[1]가 지휘하기도 했다.

1954년 클레멘스 크라우스가 사망하자 빈 필은 후임지휘자로 놀랍게도 전문지휘자가 아닌 악단의 악장(콘서트 마스터)인 빌리 보스코프스키를 선정되었다. 보스코프스키는 생전에 슈트라우스가 했던 대로 지휘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지휘하던 모습을 재현했다. 보스코프스키는 오케스트라의 악장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1979년까지 매년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

보스코프스키가 은퇴한 후 1980년부터 86년까지는 당시 빈 국립 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선임되었던 로린 마젤이 지휘를 맡았다. 로린 마젤 역시 수준급의 바이올린 실력을 지녔기 때문에 지휘대에서 자주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지휘했다. 다만 보스코프스키처럼 항상 자신의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한 것이 아니라 주로 악장이 연주하던 바이올린을 빼았아서 연주했다.(...) 로린 마젤이 빈 국립 가극장 음악감독에서 물러나면서 빈 필 신년음악회 지휘자직도 함께 그만두었다.

마젤이 그만둔 이후는 매년 다른 지휘자를 초빙하고 있는데 그 첫번째 타자로 1987년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카라얀의 다음 타자는 로린 마젤의 후임으로 빈 국립가극장의 음악감독이 된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 그러나 아바도는 1991년 신년음악회의 전통을 무시하고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작품을 대거 신년음악회의 레퍼토리에 올렸다가 물의를 빚었고, 결국 이것은 아바도의 마지막 신년음악회가 되었다.

1992년에는 원래 레너드 번스타인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1990년 그의 사망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빈 필은 번스타인의 대타로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초빙했는데, 클라이버는 고액의 거런티에다가 선물로 아우디A8까지 요구했다.

이후 여러 지휘자가 등장했지만 90년대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는 마젤, 메타, 무티의 등판이 잦은 편이었다. 2000년대 초반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는데, 빈 출신으로 빈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원전음악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새로 빈 국립가극장의 음악감독인 된 세이지 오자와가 그들이다. 하지만 아르농쿠르는 지나치게 변덕스럽고 과격하고 실험적인 해석으로, 세이지 오자와는 지나치게 무겁고 둔중한 해석으로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이들의 출연은 단발성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2004년 이후에는 기존 3인방인 마젤, 메타, 무티가 다시 전면에 재등장하여 로테이션을 돌았다. 2000년대 후반에는 여기에 다니엘 바렌보임과 마리스 얀손스가 새로 합류했다. 조르주 프레트르도 등판했지만 다소 유연하지 못한 해석을 보이면서 단발성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바렌보임과 얀손스는 로테이션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빈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벨져-뫼스트가 새로 빈 국립가극장 음악감독에 취임하면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현재는 점점 벨져-뫼스트 + 말년병장(얀손스, 바렌보임, 메타) 체제로 가고 있다. 참고로, 프란츠 벨져-뫼스트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후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지휘자가 없어, 빈 악우협회가 밀어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실력은 뒤지지 않으나, 악단과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나 쇼맨십이 부족하다는 평이 있다.

2005년 신년음악회는 몇일 전에 일어난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인해 라데츠키 행진곡을 생략하였다.

2009년에는 새해인사을 건네는 타이밍에 바렌보임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기원하는 말을 덧붙였다.

2017년은 드디어 병장들 전역시키고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가 예정되어 있다.

3 특징

연주 중에 재밌는 이벤트가 많았는데, 이를 테면 지휘자가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한다거나 나팔(경적)을 분다거나, 단원들이 잠깐씩 합창을 한다거나, 각종 재밌는 타악기의 등장, 효과음으로 총 쏘기, 새해인사 후 꽃가루 폭죽과 함께 화환이 활짝 열리기도 했다. 이런 이벤트는 지휘자의 성향을 많이 타는데, 특히 잔뼈가 굵은 노장 지휘자들이 이런 이벤트를 많이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2000대 이후로 이벤트들이 전반적으로 점잖아(?)지고 있는 추세.

음악회의 마지막 앙코르는 거의 늘상 빠른 폴카 혹은 갈롭과 요한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요한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고정되어 있다.[2] 보통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연주하기 전에 지휘자가 새해인사를 하는데, 언제부턴가 지휘자가 장난스럽게그냥 도입부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관객들이 박수를 친다.뭐 잊은거 없니? 그러면 지휘자는 연주를 멈추고 새해인사를 전한다.

(지휘자)Die Wiener Philharmoniker und ich wünsche Ihnen, (다같이)Prosit Neujahr!

간혹 이 인사를 하는 시점에서 폭죽을 터뜨리기도 한다.

라데츠키 행진곡은 특정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관례가 있는데, 이 관례가 점점 퍼져서 우리나라나 다른 여러나라의 여러 악단들도 이 곡을 연주할 때면 박수를 유도하기도 하고 관객들도 곧 잘 따라 친다.

가끔 관객들 중에 유명인이 있기도 하고, 플라시도 도밍고가 관람한 적도 있다. 또한 기모노차림의 일본인이 적잖이 눈에 띄는 것도 특징. 2016년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관람하였다.

한편 TV중계는 발레인에게도 관심이 쏟아지는데, 그나마(...) 공중파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발레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 그리고 KBS가 중계를 안하게 되면(...) 빈 국립 발레단이 미리 찍어 놓은 영상을 TV중계시에 싱크하여 내보내는데,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 간혹 이 발레리나/발레리노 들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서 곡을 마무리 하기도 한다. 즉, 앞부분은 미리 찍어둔 영상을 틀어주고, 뒷부분에서는 찍어둔 영상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기다렸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 처음 접하면 그 자연스러운 연결 때문에 모든 장면이 라이브 처럼 느껴진다. 2009년에는 발렌티노 가바라니가 직접 디자인한 발레복을 발레리나들이 입고 나오기도 했다.

4 중계

생방송 중계는 오스트리아의 공영방송 ORF 주관으로 제작하여 유럽방송연맹 가맹국 중심으로 뿌린다. 대체로 독일 ZDF, 영국 BBC, 일본 NHK가 꼬박꼬박 중계를 해 주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 드문드문 하긴 했으나 1980년대부터 KBS에서 꾸준히 녹화중계 해주고 있다. 단, 방송을 그대로 내보내지 않고 중간중간 끊어서 음악인 1인과 아나운서 1인이 스튜디오에서 해설하는 장면을 내보내는데, 공중파라는 특성상 클래식 초보를 배려한 것이겠지만 클래식 애호가 입장에서는 현장감이 뚝뚝 끊어져서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혹은 제작비 절감 때문인지 최근에는 KBS에서 해설타임 없이 중계를 내보냈는데, 예전의 해설하는 포맷은 중국 CCTV에서 이어받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메가박스에서 생중계 해주고 있으며, 극장의 넓은 스크린으로 실시간 감상할 수 있다.

5 음반/영상물

실황이 아닌 음반은 클레멘스 크라우스나 빌리 보스코프스키에 의해 데카에서 여러 번 나왔다. 당시 여건상 실황음반의 녹음이 어려워 신년음악회 전후에 녹음된 경우가 많다.

최초의 실황음반은 1975년 음반이다. 두번째 실황 음반이자 보스코프스키의 마지막 신년음악회 앨범인 1979년 녹음은 유럽 최초의 디지털 녹음이었다. 이후 1984~1986년을 빼고는 꼬박꼬박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영상물도 1987년 카라얀 이후 거의 매년 나왔지만, 오래된 영상물은 절판되어 구하기가 힘들다. CD도 절판된 건 마찬가지로 구하기 힘들지만, 1980~90년대 영상물의 경우 적은 수요에 따라 적게 찍어내었고, 더군다나 지금은 안쓰이는 LD(!) 매체였기 때문에 더더욱 구하기가 힘들다. 걱정마.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잖아.

역대 음반 목록

6 역대 목록 [3]

  1. 크립스는 빈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시절 박해의 대상이었다.
  2. 다만 이 관례가 확립된 것은 1959년부터였고, 1967년에는 해당 왈츠가 앙코르가 아닌 공식 프로그램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중복을 막기 위해 생략되었다. 2005년에는 공연 바로 직전에 있었던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행진곡을 생략했다.
  3.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몰라도 독일 국적 지휘자가 단 한 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