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쿠 덴노

(사이메이 천황에서 넘어옴)
일본의 역대 덴노
34대35대36대
조메이 덴노고교쿠 덴노코토쿠 덴노
36대37대38대
코토쿠 덴노사이메이 덴노덴지 덴노

皇極天皇

594 ~ 661년 (재위 : 642~645년, 655~661년)

비다츠 덴노[1]의 증손녀이자 조메이 덴노의 아내. 일본의 2번째 여자 덴노다. 조메이 덴노가 죽은 후 고교쿠(皇極)라는 이름으로 즉위했다.

소가 일족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던 도중 자신의 아들 나카노에 황자을사의 변으로 소가 일족을 멸문시켜버리자 이에 빡쳐서 덴노 자리를 하시히토 황후의 남편, 즉 자신의 남동생이자 사위인 코토쿠 덴노에게 떠넘기고 탈출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나카노에 황자가 다시 어머니한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빈 끝에 10년 후 어머니를 복위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 때 그녀는 사이메이(斉明)란 이름으로 즉위했다.

백제와의 연관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편으로 백제계 세력가인 소가와의 긴밀한 관계도 그렇고 백제 멸망즈음에 보인 태도도 근거로 제시된다.김유신을 필두로 한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맞붙어 백제가 패하고 더군다나 그렇게 믿었던 계백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어떻게든 백제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 전국에서 병력을 싹싹 긁어 모아서 3만명을 만들고 신라로 출진시켰다.[2][3] 그녀는 정말로 발벗고 나서서 백제 부흥군 지원을 준비했는데, 직접 노구를 이끌고 최전선인 츠쿠시(오늘날의 후쿠오카)까지 나왔을 정도. 결국 무리를 했던 모양인지 병력이 한반도에 도착할 때 즈음 그녀는 츠쿠시의 아사쿠라 궁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지극한 정성 속에 파병된 일본군은 백제 부흥군과 합세하여 서기 663년 8월, 나당연합군과 백강에서 전투를 벌였으나[4] 대패하여 깡그리 몰살당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연기와 불꽃이 하늘로 오르고 바닷물도 붉은 빛을 띠었다"고 한다. 일본은 전국의 병력의 절반 이상 잃고 패닉 상태가 됐다. 결국 이 결과물로 백제는 완전히 망했어요 그녀가 죽은 후 장남 나카노에 황자가 그 뒤를 잇는다.

진구황후의 실질적인 모델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즉, 백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이 신라와 당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게 되면서 큐슈에 대규모 축성을 하는등 신라와 당의 침공에 대응했는데 이 과정에서 진구황후라는 가공의 통치자의 프로파간다가 등장했다는것. 신라를 가상적국으로 삼으면서 내부적으로 진구황후가 삼한을 정벌했는데!라는 허언증을 퍼뜨리면서 신라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대적으로 발전해서 임나일본부설까지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작 백제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 그녀의 생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 사극에서는 대왕의 꿈에서 등장한다. 배우는 김민경.
  1. 쇼토쿠 태자가 섭정했을 때의 덴노인 스이코 덴노의 남편
  2. 일본인들은 이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편인데, 한편에서는 일본백제 간에 서로를 동족이나 형제국처럼 여겨 도왔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반면에 일본이 백제를 중요 식민지로 두어서 관리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3. 그녀 자신이 백제 의자왕과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던 백제 여성왕족이라는 설이 있으며 일본으로 시집간 의자왕의 여동생이라는 말도 있다. 이 설에 의하면, 백제에 군대를 파병한 것은 친정을 되살리려는 노력이었다는 것. 이 가설을 차용한 것이 최인호의 역사소설 잃어버린 왕국과 90년대 KBS 대하드라마인 삼국기이다.
  4. 일본에서는 '하쿠스키노에(白村江, 백촌강)의 전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