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토쿠 태자

聖徳太子 (성덕태자) [1]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활약한 일본정치가. 고대 일본의 정치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나 그의 업적이나 실존여부 등에 의혹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소수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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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동생 에구리 황자, 쇼토쿠 태자,
아들 야마시로 황자이다.
8세기 목판본을 복제한 그림이다.
탄생574년 2월 7일
사망622년 4월 8일

1 개요

쇼토쿠 태자는 요메이 덴노의 차남으로, 어릴 적에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우마야도(厩戸)라는 이름을 썼고 장성하고 나서부터는 토요사토미미 미코(豊聡耳 皇子)라고 불렸다. 흔히 불리우는 쇼토쿠 태자는 사후에 추증된 명칭이다.[3]

백제의 아좌태자를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많은 것을 배웠으며, 19세에는 고모인 스이코 덴노의 섭정으로 등극한다. 당시 상황은 소가씨의 대표이자 조정의 대신이었던 소가노 우마코가 외척으로써 강대한 권력을 휘둘렀었고, 그런 우마코가 자신의 조카딸인 스이코의 섭정으로 역시 자신의 조카 손자인 쇼토쿠를 임명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기야 뭐 원래 그의 아버지 역시 우마코의 조카고 어머니 역시 우마코의 조카에 아내도 우마코의 딸이니 이만하면 사실 그도 소가씨의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무튼 쇼토쿠 태자는 이후 많은 업적을 세우며, 외국으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여 국의 문화와 정치를 급속도로 성장시켜 아스카 시대를 연 걸로 유명하다. 소가씨의 뜻대로 불교를 부흥시켰으며, 그 결과 호류지(法隆寺, 법륭사)[4], 시텐노지 등을 비롯한 많은 절을 짓는다.[5]

그 외에도 중앙집권화 강화를 위해 17조 헌법과 관위 12계등을 만들었으며 전통적인 귀족가문의 수장인 모노노베노 모리야(物部守屋)가 일으킨 '정미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불교를 공인시켰고 그가 만든 정치 시스템은 이후의 다이카 개신 등을 거치며 약간씩 바뀌었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부분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정도. 관위 12계는 후에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646년에 시작된 정치개혁. 다이카(大化)는 효덕천황(孝徳天皇)의 연호로 646년은 다이카 2년이 된다.)이후 관위가 늘어나 최종적으로 26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즉, 후대의 정치 시스템의 기저(基底)를 마련하였다.[6] 중국으로 치자면 구품제와 같은 영향을 끼친 것. 유력한 차기 덴노였지만 스이코 천황보다 먼저 사망했다. 그의 아들 야마시로 황손은 다무라 황자 지지파에게 밀려서 천황이 되지 못했고 이후 소가노 우마코의 손자인 소가노 이루카의 음모로 일족이 자살하여 그의 혈통은 단절되었다.

말년에는 소가가문의 권력이 강해져 자신의 권한이 축소되자 속세에 허망함을 느끼고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이런말하기는 뭐하지만 위정자라는걸 감안하면 현실도피 죽기 직전에 아내에게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난다." 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정말로 죽어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쇼토쿠 태자가 자살했다는 설도 떠돌정도.[7] 근데 이게 훼이크라고 주장하는 게임이 나왔다. [8]

여담이지만, 과거 일본 지폐 고액 3종세트(1만엔, 5천엔, 1천엔)에는 모두 이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2 역사적 일화

일화로는 607년에 수양제[9]에게 보낸 "해가 뜨는 곳의 천자(덴노)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양제)에게"[10]란 사건이 유명하다. 이에 수양제는 기분이 안좋아 내쫓으려 했으나 신하의 만류로 겨우 참았다. 당시 사절이었던 오노노 이모코는 쇼토쿠 태자에게 양제가 허가하였다고 초특급 구라를 친다. 여기에 버프받은 쇼토쿠 태자는 다음 사절에도 오노노 이모코를 보내며 윗 내용을 천자만 천황이란 표현으로 바꿔 서신의 서문에 집어 넣는데 오노노 이모코는 양제에게 죽는게 두려워 도망쳤다(…).[11]

일본서기에 의하면, 600년과 602년, 신라를 치려고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600년에는 신라를 치려고 했다가 조공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받고 멈추었는데, 다시 602년에 신라를 치려고 츠쿠시에서 2만 5천의 병력을 모으고 동복형제인 쿠메 황자[12]를 장군으로 임명했지만, 쿠메 황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후임에 배다른 형제인 토모 황자가 임명되었지만 토모 황자는 아내의 죽음을 이유로 도성으로 귀환해 결국 신라원정은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당시의 신라의 왕은 진평왕이었다. 이 당시 신라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는데 진평왕대엔 전전대왕인 진흥왕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은 확장의 여파로[13] 한창 백제고구려에게 다구리를 맞아 힘겨운 방어전을 펼치고 있던 시기였다. 602년의 경우엔 백제가 아막성으로 침공해온 것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여러 장수를 잃기도 했던 걸 보면 이 때 왜가 원정을 감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수 없다.

물론 화랑도가 전성기를 맞이하여 총 7개의 화랑조직이 존재하는 등 신라의 군사 제도가 정점을 맞이한 시기이긴 했으나 당시 일본이 신라 원정을 감행했다면 신라는 백제-고구려-일본에 의해 삼면이 포위되는 형국이 되기 때문에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지는 상황이었음은 분명하다.

일본인의 정신으로 유명한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와 와(和)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소위 말하는 야마토 정신의 정신적 원류라고도 한다. 신불습합으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정말 신불습합이 일어난건 9세기부터니 쇼토쿠 태자와는 크게 무관한편.

3 전설

쇼토쿠 태자의 아명 우마야도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출생담에서 연유한 것이다.[14]

쇼토쿠 태자의 능력에 관한 일화 중에서 유명한 것은 "10명의 청원자가 동시에 꺼낸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적절한 답변을 했다"는 일화다. 이 때문에 쇼토쿠 태자는 토요사토미미(豊聡耳)라는 별명을 얻었다. 별다른 뜻은 없고 귀가 좋다는 뜻.

일본서기에 독특한 전설이 하나 있다. 그가 우연히 지방을 관찰하던중 초라한 행색으로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보자 그를 가엽게 여겨 음식을 주었는데 몇일 뒤 그 사람의 행방을 찾아보게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굶어죽어있었고 이에 쇼토쿠 태자는 그를 잘 묻어주게했다. 다시 시간이 몇일 지나고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라고 명령해 다시 무덤을 파내게 했는데 옷 한벌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에 태자는 "그는 어쩌면 진인(眞人:도교에서 일정한 수준에 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해 옷을 잘 공양하도록했고 이에 사람들은 "성인은 성인을 알아본다."라고 생각해 더욱 더 숭상했다고 한다.

4 대중문화 속의 모습

4.1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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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는 마에다 타케시, 국내방영판 성우는 이규석.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메인 캐릭터 중 한 명. 현실의 쇼토쿠 태자에게서 모티브를 땄기 때문에 여기서도 일단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섭정이란 지위를 맡고 있다.

오노노 이모코와 함께 에피소드를 이루며, 이 콤비는 팬들 사이에서 '견수사조' 혹은 '아스카조'로 불린다. 주로 쇼토쿠 태자는 보케 역을, 오노노 이모코츳코미 역이다.

외관은 매우 시대착오적인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흑발에 관모[15]를 쓴 다소 어정쩡하게 생긴 남성. 주 기믹은 아저씨에 노팬티(...). 생각이나 사고가 4차원적이며, 어쩐지 모자란 듯하기도 한 대사를 툭툭 내뱉는다. 본인도 왜국의 장래를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빈도수가 전혀 없어서 아무 생각없는 것처럼 보인다. 작은 것 하나에도 울고 웃는 상당히 아이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기도 하며, 가끔 보면 정말로 정신연령이 어린 것 같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이모코를 자주 짜증(난처)하게 만든다. 이모코에게서는 종종 '꼰대', '바보', '아저씨'라고 불린다.[16]

분명히 관위12계와 헌법17조 등을 만든 대단한 사람인데 지금은 그저 신분에 기대 놀 궁리만 하는 추리닝 꼰대일 뿐(...). 마츠오 바쇼는 정말 가끔이나마 제대로 된 하이쿠를 짓기도 하는데, 태자는 작중 제대로 되어먹은 일을 하는 것은 단 한 번도 없다. 딱 한번 수양제를 접견하기 직전 이모코가 "태자는 도대체 왜 우리가 중국에 온지 아십니까?"라고 질문하니 태자曰, "왜긴 왜야. 우리가 백제고구려신라보다 우위에 있고 독립국임을 에게 인정받고 싶어서지."라고 말하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개그의 일종인지라.

좋아하는 것은 카레[17], , 주먹밥[18], 네잎 클로버 정도가 있다. 특히, 카레를 너무 좋아해서 몸에서 항상 카레 냄새가 난다. 아니더라도 대체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코믹스 1권에선 조정내 설문조사에서 '냄새쩐다'라는 충격적 결과를 보고 좌절한다.

필살기는 아스카문화어택을 필두로 한 30가지 보디(body) 어택. 어째서인지 전 공격이 비슷한 위치로 날아오기 때문에 손만 내밀고 있어도 막을 수 있다.

말에서 떨어지고 거꾸로 땅에 발목까지 박히거나 가마 한쪽을 들어올리자 들어올린 쪽으로 떨어지는 등 물리법칙은 가볍게 무시하고 귀로 숨을 쉬거나 눈의 검은 자위만으로 웃을수 있는 괴물.

옷을 3미터쯤 늘인 것을 입었더니 자기 몸도 그만큼 늘어나거나 얼굴이 찌그러질 것 같다고 하자 정말로 두들겨 맞은 양철냄비처럼 찌그러지는 등 허약한 주제에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있다. 그걸 보고 이모코는 '이 꼰대, 익숙해지면 재미있을지도...'라고 생각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무섭다.

노래를 상당히 좋아하며, 본인이 즉흥적으로 지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취미이다. 기타도 배울 생각이었으나 그놈의 변덕이 죽을 끓어 때려 치운다고 했다가 다시 재개하는 등 어째 제멋대로다(...).

현재 애니메이션 ost에서의 수록곡은 '허브의 향기', '이모코와 참치는 사이좋게 tonight', '아스카시대니까' 세 곡 정도이다.

이래뵈도 일본에서는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캐릭터. 한국에서는 문화적 차이때문에 우사미쿠마키치에게 밀리지만 현지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얻는 캐릭터다. 그보다 한국으로 치자면 근초고왕이나 태종 무열왕, 심하게 말하면 세종대왕에다 츄리닝을 입혀놓고 맛이 간 캐릭터(...)로 만들어 놓은 격인데 한국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는 점도 한 몫한다.[19]

애초에 한국에서는 고인드립 등의 문제로 역사인물에 대한 개그가 사실상 터부시 되는 측면이 강하다. 굳이 따지자면 임화수[20]심영 정도가 개그물로 쓰이기는 하는데 애초에 멀쩡한 인물을 맛간 놈으로 만든 게 아닌 원래 막장인 놈인지라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타국의 경우를 보자면 사우스 파크, 심슨 가족 등에서 역사인물을 소재로 한 개그가 수도 없이 많다.

다만, 쇼토쿠 태자가 몇몇 행적이 허구라는 설이 도는 천수백년 전의 인물인데다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후손을 남겨 종친회까지 거느린 우리나라의 역사 인물과 비교하는 건 금물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이 첫 연재된 당시의 일본에서 역사 인물을 (정치 성향과 관계없는) 부조리 개그식 노답 캐릭터로 만들고 망가뜨리는 경우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도 감안을 해야 할 것이다.

4.1.1 대인 관계

  • 소가노 우마코: 정치적 라이벌. 하지만 실제로는 쇼토쿠태자의 담임선생님이나 아빠같은 역할. 태자도 이 사람에게만은 존댓말을 쓰고 있다.
  • 피쉬 타케나카: 머리가 인어인 훈남. 태자의 오래된 친구...라고 하지만 보모인듯 하다. 성우는 우에다 유우지.
  • 골렘 요시다: 온 몸이 바위처럼 단단한 태자의 친구. 그러나 피쉬 타케나카보다 등장수는 적다.
  • 오노노 이모코: 부하이자 츳코미.
  • 초시마루[21]: 코믹스 8권에 등장하는 병약마부. 하지만 만만치않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지만 별로 죄송하지 않은 듯.

4.1.2 입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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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마 브랜드로 피규어가 출시되었다.

제품에 들어있는『태자와 불상』이라는 그림책에 의하면 상당한 불상 오타쿠(...)로 앞니가 두개빠진 사람의 이빨 개수보다 많은 정도라고 한다.

4.2 동방 프로젝트

  1. 일본에서 태자라는 말은 차기 황위계승자라는 말로 직계 후손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사용된다.
  2. 다만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3. 비슷한 예로 조선 시대에도 우리가 아는 세종대왕 같은 호칭은 사후에 붙었다.
  4.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목조건축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5.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지금도 조금 오래된 절의 경우엔 대부분 '쇼토쿠 태자가 처음 창건했다'는 창건 이야기가 붙어 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그런거 없다로 쇼토쿠 태자의 유명세를 빌리기 위한 꼼수. 한국의 사찰들이 대부분 창건자를 원효대사나 의상대사, 자장율사로 설정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로 보면 된다.
  6. 예를 들자면, 현재 일본의 재무성(財務省)의 전신인 대장성(大蔵省)은 2001년까지 무려 약 1300년동안 불리워졌다.8세기 초 부터라고 해도 딱 701년 8월 ~ 2001년 1월이니. 실제로 부서 명칭 변경시 많은 공무원들이 반대했다 카더라. 공무원들이 보수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이정도면 끝판왕레벨
  7. 당시 수도에 전염병이 돌아서 사망했다고도 한다.
  8. 나름 설득력 있는데 쇼토쿠태자의 활동이 610년 이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기때문.
  9. 이 수양제라는 황제는 중국 역사상의 많고 많은 황제중에서도 손꼽히는 폭군이다(!)
  10. 일본서기日出處天子致書日沒處天子無恙云云, 수서 開皇二十年,倭王姓阿每,字多利思北孤,號阿輩雞彌,遣使詣闕。上令所司訪其風俗。使者言倭王以天為兄,以日為弟,天未明時出聽政,跏趺坐,日出便停理務,雲委我弟。高祖曰:『此太無義理。』於是訓令改之。」
  11. 그런데 얼마안가 몽땅 발각되어 귀양갔지만 다시 돌아왔다.
  12. 來目皇子くめのみこ
  13. 나제동맹을 이용해 고구려를 신나게 북쪽으로 쫓아내놓고는 곧바로 백제의 뒤통수를 후려 나눠가지기로 했던 한강유역을 독차지했다. 열받아서 역러쉬 들어갔던 백제 성왕까지 전사시켰으니...고구려도 고구려대로 이를 갈고 있었지만 백제 입장에서 신라는 안좋게 보였다.
  14. 초기 기독교의 예수 설화의 영향이라는 설이있지만 설득력 없다는걸로 거의 판명.
  15. 사실 관모가 아니라 머리카락이다!
  16. 근데 얘가 하는 짓들 중에는 정말 저런 소리 들을만한 짓들도 껴있긴 하다(…)
  17. 그런데 담당 성우인 마에다 타케시는 라디오에서 카레가 죽을 정도로 싫다고 발언했다.(...)
  18. 자신이 좋아하는 카레를 주먹밥 속에 넣어 카레 주먹밥이라는 환상의 아이템을 만들어서 먹기도 한다. 그런데 이모코는 그걸 넣은걸로 봤다.(...)
  19. 한국 문화 쪽에서는 조국의 유명한 위인들을 저렇게 망가뜨리는 걸 그다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거나 고인능욕 혹은 고인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서 개그만화 일화의 쇼토쿠 태자와 비슷한 포지션의 위인 캐릭터가 나오기가 어려운 편이다. 사실 쇼토쿠 태자 본인의 영혼이 이 항목의 쇼토쿠 태자를 봐도 땅바닥을 칠 법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자
  20. 사실 이 경우에도 임화수의 후손들이 야인시대의 제작진에게 조상 이미지를 망쳐놨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물론 임화수 항목 보면 알겠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21. 調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