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티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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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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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령관 마르코스#s-3

1 개요

공식 명칭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이며 약칭은 EZLN.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를 근거지로 하고 있는 반세계화 아나키즘 무장단체이다. 스키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이미지가 알려져 있으며, 부사령관 마르코스(Marcos)는 풍부한 언변과 호소력 깊은 문장으로 체 게바라를 이은 혁명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파티스타'라는 명칭의 연유는 멕시코 혁명에서 판초 비야와 연합군을 구성해서 싸웠던 아나키스트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이름에서 연유했다.

2 역사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통과되자 라칸돈 정글에서 멕시코에 선전포고를 하며 발흥했다.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서양 자본에 의해 수탈당하고 있다며 6개 도시를 점령하고 원주민의 해방을 선언하였다.

멕시코 혁명으로 발한 20세기 중남미 민중혁명의 끝물이라고 볼 수 있고, 실제로 멕시코 정부도 그렇게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헬기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진압한다. 실제로 멕시코 치아파스 주에서 있었던 해방군 무장 봉기 때도 몇년을 준비했던 해방군은 멕시코 정부군의 진압에 상당부분 힘을 못썻고 주 근거지인 치아파스 주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을 준비해 왔다는 사파티스타의 무장능력은 그리 출중하지 못했기에 무장혁명의 성과는 없었지만 이후 그들의 진정한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니었다.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즉각 자기들의 사상을 인터넷, 휴대폰 등에 담아 전 세계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집단에게 지원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자신들의 혁명법을 제정하여 세계에 알려 지지를 얻었다.[1][2]

무장집단이지만 폭력을 반대하는 이 특이한 집단은 꽤 많은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으며, 뉴욕 타임즈의 경우는 최초의 포스트모더니즘 혁명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2003년에는 근거지인 치아파스주 라칸돈 정글에서 나와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평화 행진을 시작, 별탈 없이 멕시코시티 까지 무장 소요 없이 도착하여 멕시코 국회의사당에서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연설까지 하고 근거지인 라칸돈 정글로 돌아갔다. 재미있는 사실 멕시코 정부측도 단순한 감시와 치안유지만 할뿐 반란군에 대해 체포나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

3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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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영토에 있습니다. 이곳에선 민중이 명령하고, 정부가 복속합니다.
러시아식 정부

사파티스타의 등장 배경은 상술한대로 멕시코 혁명에서 시발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촉발제는 누가 뭐래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로 인한 헌법 27조 12항의 삭제였다. 멕시코 원주민의 토지 보상을 명시한 이 헌법 조항의 삭제로 멕시코 원주민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으며, 값싼 미국산 농산물의 대량유입과 거대 식품업체의 경제적 잠식으로 멕시코의 농장경제는 급격히 몰락할 수 있었다.

이런 등장 배경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해 반대하여 일어난, 무장 언론단체라고 평할 수 있겠다.

또한 본거지인 치아파스 주의 낙후된 환경에서 기인한 인본주의적인 면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파시피스타와 헷갈리지 말자.
  1. 유명한 Rage Against The Machine 밴드도 이에 참여하였다. RATM은 알아주는 사파티스타 옹호자로 웬만한 라이브 공연엔 위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기와 비슷한 깃발을 달고 사파티스타의 근황을 관객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2. 실제로 인터넷 홈페이지와 SNS를 이용한 선전으로 멕시코 국내 및 해외 지지자들 상당수를 확보했다. 사파티스타의 유명 지지자 중 한 사람이 전직 축구 선수 하비에르 사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