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 Piazza San Marco
영어 : St Mark's Square
프랑스어 : Place Saint-Marc
목차
1 개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광장. 베네치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으로, 보통의 광장은 네 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것이 일반적이지만 산 마르코 광장은 한쪽 면이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 광장을 보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찬탄했다는 그래놓고는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켰다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이며, 주위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카페 플로리안 등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갈매기의 비둘기 사냥모습도 볼수 있다....
2 역사
2.1 초기
처음에 아마세아의 성 테오도로를 수호성인으로 모셨던 베네치아는 지금의 산 마르코 대성당 부근에 테오도로에게 봉헌된 성당을 9세기 초에 지었으나, 이슬람 세력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매장되었던 성 마르코의 유해가 828년에 옮겨지면서 베네치아 도제는 테오도로를 대신해 마르코를 베네치아의 새로운 수호성인으로 선언했고, 이에 따라 성 마르코의 유해를 안장하기 위한 새로운 성당의 건축이 결정되었다.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사도 대성당을 모방해 지어진 산 마르코 대성당은 832년에 건설이 마무리되었으나 976년에 일어난 폭동으로 소실되고 978년에 재건된 후, 1063~1094년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어 도제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의 광장 자리에는 수녀원에 속한 과수원이 있었다.
2.2 전성기
지중해 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베네치아의 입지는 확고하게 굳어지고 재정이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자 베네치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 주변을 재정비하기로 해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까지 성지순례 가는 순례자를 위한 여관과 가옥 등을 정비하고 궁전을 개축했다. 현재 산 마르코 대성당을 장식하는 네 마리의 청동말 조각상도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다. 도제 관저인 두칼레 궁전은 15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걸쳐 화려하게 증축되어 베네치아 공화국의 부와 권위를 자랑했다.
2.3 쇠퇴기
1517년에는 화재가 발생했던 광장 남쪽의 건물이 재건되었다. 1527년 베네치아를 찾은 건축가 자코보 산소비노(Jacopo Sansovino, 1486.7.2~1570.11.27)는 2년 후 광장의 주변을 정비하는 책임자로 임명되어 산 마르코 도서관, 종탑(Campanile), 신 행정관 건물을 설계하고 산 마르코 대성당과 마주보는 반대편에 있었던 산 제미냐노 교회의 재건을 마무리지었다.
2.4 나폴레옹 점령기
1797년 5월 12일 베네치아 공화국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에 항복한 뒤 산 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 인근에 바다를 면해 세워진 두 개의 원기둥 중 두칼레 궁전쪽 기둥에 올려져 있던 날개 달린 사자는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교체되었고, 산 마르코 대성당의 외관을 장식하던 네 마리의 청동말도 프랑스 파리로 옮겨졌다가 같은해 12월에 돌아오는 수모를 당했다.
1798년 오스트리아와 캄포포르미오 조약을 체결한 나폴레옹은 1807년에 베네치아를 방문했으며, 산소비노가 설계했던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나폴레옹의 날개(Ala Napoleonica)'라는 길다란 주랑 건물을 1810~1813년에 걸쳐 세웠다. 나폴레옹이 패퇴한 뒤 알라 나폴레오니카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건물들을 원상복구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오랜 기간의 토론 끝에 현상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3 광장의 명소
광장의 평면은 건물로 둘러싸인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과 그 광장을 바다로 이어주는 '산 마르코 소광장(Piazzetta di San Marco)'[1]으로 이루어져 있다.
3.1 소광장(Piazzetta) 부분
3.1.1 두 개의 원기둥
피아체타에서 석호와 맞닿는 자리에는 1268년경에 세워진 거대한 화강암 원기둥 두 개가 있는데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에 있는 원기둥 위에는 베네치아의 첫 수호성인이었던 아마세아의 성 테오도로가 창을 들고 악어를 제압하는 청동상이 있고, 동쪽에 있는 원기둥 위에는 성 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청동 사자상이 놓여 있다.
3.1.2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베네치아 도제의 관저였던 두칼레 궁전은 813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몇 차례의 화재와 재건을 반복하다가 1309~1424년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1923년부터는 박물관으로 바뀌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3.2 광장(Piazza) 부분
3.2.1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
산 마르코 대성당 항목 참조.
3.2.2 종탑(Campanile di San Marco)
사진 | 설명 |
| 종탑(Campanile di San Marco) 산 마르코 대성당 앞에 있으며 벽돌을 쌓아 만든 한 변의 길이 12m, 높이 98.6m의 탑으로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처음 종탑이 세워진 9세기에는 선착장의 등대 역할을 목적으로 지었는데, 12세기에 건설이 끝난 후 종탑 아랫부분은 두칼레 궁전을 지키는 호위병의 막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1489년에 발생한 화재로 손상된 종탑은 151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추가 피해를 입게 되자 대대적으로 수리에 들어갔다. 이때 행해진 공사에서는 다섯 개의 종을 매다는 종가(鐘架)를 대리석으로 바꾸고 종가 위의 다락 벽면에 성 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와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여성을 대리석으로 조각해 장식했으며 다락 윗부분에 얹은 피라미드형 첨탑의 꼭대기에 금박을 입힌 대천사 가브리엘 목제 조각상을 올려놓았다. 이 공사는 1513년 7월 6일에 마무리되었으나 이후로도 여러 차례 화재 피해를 입어 1653년 보수공사를 했고, 1745년에는 화재로 금이 간 벽면의 석재 구조물이 쓰러지면서 사상자가 발생해 대규모로 보수했다. 1776년 피뢰침이 세워진 후 1820년 첨탑 꼭대기에 있던 가브리엘 조각상은 새 것으로 교체되었다. 건축한지 8백년 가까이 지나서 노후화된 종탑은 1902년 북쪽 벽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 같은해 7월 14일에 완전히 붕괴되어 먼지더미로 사라졌다. 종탑이 붕괴할 때 옆으로 쓰러지지 않고 똑바로 선 상태 그대로 내려앉은 덕분에 산 마르코 대성당은 종탑과 매우 가깝게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고 불행 중 다행으로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2]. 의회는 종탑이 무너진 당일 저녁에 재건을 위한 예산으로 50만 리라를 책정했고, 훗날 또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부 보강을 덧붙여서 복원공사에 들어가 1912년 4월 25일 성 마르코 축일에 개장했다. 최근에는 겨울마다 베네치아에서 일어나는 홍수 아쿠아 알타(Acqua Alta)로 인해 지반이 깎여나가 종탑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단부 주변의 토양을 두르는 티타늄 고리를 설치했다. 예전에는 종이 매달려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유료로 운영되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3] 한결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참고로 관광객이 구경하고 있는데도 종 칠 시간이 되면 얄짤없이 관광객들 머리 위에 매달린 거대한 종이 울리며 고막테러(…)를 한다. 여담으로 과거에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다섯개의 종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첫번째 종은 원로회를 위한 것이고, 두번째 종은 정오를 알리는데, 세번째 종은 일과시간의 시작과 끝, 네번째 종은 원로회의 소집을 알리며 마지막으로 다섯번째는 사형자의 처형(...)을 알렸다고 한다. |
3.2.3 시계탑(Torre dell'orologio[4])
사진 | 설명 |
| 시계탑(Torre dell'orologio) 광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24시간식이며 지구 주변을 달, 태양 그리고 온 우주가 도는 천동설을 채택한 천문 시계이다. 시계 숫자 문양은 황도 12궁과 로마 숫자로 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바늘시계 위의 패널에는 마치 오늘날의 디지털 시계처럼 시간을 로마 숫자로, 분을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해주는 아날로그 디스플레이 시계란 점이다. 한편 이 시계는 15세기 후반 한참 전성기를 누리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부강함을 뽑내기 위해 지어진 산물이다. 사진을 자세히보면 시계 바로 위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 동상이 있고 맨 위에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종을 치는 사람 동상이 있다. 참고로 매우 실용적인 시계였는데 당시 부둣가에 있던 어민들이 언제 출항해야 하는지와 물이 몰려오는 시간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시계탑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시계탑을 완성한 직후 높으신 분들이 시계 기술의 유출을 염려해 장인들의 눈을 멀게해서 장인들이 평생 탑을 돌보며 살도록 하게 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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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이곳 비둘기들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왠만한 닭둘기(...)들은 사람한테 가까이 다가오더라도 어느정도 거리는 유지하는데 이곳 닭둘기들은 사람이 먹이를 지니고 있으면 손으로 폴짝 뛰어오를 정도로 스스럼 없이 스킨쉽(...)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