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 『검신무(劍神舞)』에서 이야기만 전해지는 신주제파(神州諸派) 중 청성파(靑城派)의 전전대 장문인으로,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호구스러움으로 청성파가 몰락했다는 말이 나오게끔 한 호호도인(好好道人)의 직계제자이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가 장문인 자리를 이어받았을 때는 다 무너져가는 운리관을 하나하나 재건해야 했다고···. 그가 창안한 세 가지 절기인 적성검식(摘星劍式), 번운신법(飜雲身法), 비선표(飛旋鏢)가 삼절(三絶)로 유명하여 도호도 이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의 세 제자가 신풍검마(神風劍魔) 하후염, 선풍신검수(旋風神劍手) 안원령, 열풍검귀(熱風劍鬼) 정무령으로, 셋 다 모두 뛰어나고 유례가 없을 정도로 유별나 삼절도인의 삼절은 세 절기가 아니라 세 제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1]
삼절도인은 세 제자 중 대제자인 하후염에게 공을 들여 삼절을 전수하는데, 하후염은 괜한 것을 가르친다며 귀찮아하며 반항한다. 도대체 천운나월과 나려타곤을 왜 배워야 하느냐고 대놓고 사부가 다년간 단련하여 완성한 기예를 삼류무공이라 폄하한다. 이에 삼절도인은 약이 올랐지만, 세 제자 중 유일하게 삼절을 모두 이은 것이 하후염이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하후염의 주장을 수용하는 척하며 한 가지 약속을 받아낸다. 그 약속이란, 나중에라도 하후염이 제자를 거두면 반드시 그 '하찮은 삼절'을 가르친다는 다짐이었다. 그래서 하후염은 청성육검협(靑城六劍俠)과 도운연에 이르기까지 삼절을 모두 가르친다.
청성파를 재건하고 뛰어난 세 제자까지 키워낸 그였으나, 어릴 때는 굴욕도 당한다. 청성파가 되고자 했던 사천사마(四川四魔)가 그를 납치하여 호호도인에게 장문인 자리를 넘기라고 협박한 일이 있었다. 사천사마는 이미 몹쓸 짓을 많이 한 죽여도 될 놈들이어서 마음 편히 베어버렸으면 간단했을 일을 절대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사부와의 약속 때문에 장문인 자리를 넘기는 것도 할 수 없었던 호호도인은 그저 사천사마의 주변에서 맴돌 뿐이었다. 결국, 삼절도인은 사부가 아닌 이 사천사마를 잡으러 온 녹림왕(綠林王)에게 목숨을 구함 받는다. 그래서 백여 년 후인 『검신무』에서는 이 일을 빌미로 녹림의 세력다툼에서 방무한 무리에게 밀린 당유원 일당이 녹림삼보(綠林三寶) 중 단서철권(丹書鐵券)을 가져와 청성산에 머물며 청성파의 비호를 받게 되고, 이는 청성의 대회합에 녹림의 많은 무리가 모여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처럼 삼절도인의 이야기도 『검신무』에는 녹아있지만, 이미 죽은 뒤이기에 실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백여 년 전이 배경인 『녹림대제전(綠林大帝傳)』에서는 어린 삼절도인이 삼보란 이름으로 직접 등장한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사천사마에 납치당한 사건이 나오는데, 실로 허무하게 왕삼구가 떡하니 나타나 간단히 사천오흉(四川五凶)[2]을 쳐 죽이고 애늙은이 삼보를 구해준다.
2 무공
- 적성검식(摘星劍式) : "이름 그대로 별을 떨구는 검법이라고 하였을 때, 그 별이 사실은 누군가 만천화우(滿天花雨)로 뿌린 암기였다." 즉, 적성검식은 수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암기를 일일이 쳐내는 검법이고, 그 본질은 천운나월(穿雲拏月)이라는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검식이다. 그렇기에 삼절도인의 대제자인 하후염은 적성검식을 천운나월이라고 얕잡아 부른다. 하지만 오로지 삼절도인의 직계, 그중에서도 하후염의 문하제자들만 펼칠 수 있는 만인적(萬人敵)의 천운나월이기에 능히 절정(絶頂)의 기예(技藝)라 할 수 있다. 본 편에서는 도운연이 저대원의 질전보(疾電步)를 상대로 그 위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 번운신법(飜雲身法) : 허공에 보이지 않는 융단이라도 깔렸다는 듯이 구르는 신법으로, 땅에서 비상시에 구르는 나려타곤이 허공에서 펼쳐지는 것과 같다. 하후염은 나려타곤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들이 제대로 펼쳐지는 나려타곤을 보고 번운신법이라 부른다고··· 깔아뭉갠다.
- 비선표(飛旋鏢) : 하후염은 돌팔매질이라 하여 투석술이라 부른다. 그러나 절대 단순한 직선 궤도의 적만을 맞추기 위한 돌팔매질이 아니다. 던져내는 순간에 일 차 목표지점에 당도하고, 거기서 부딪히는 것이 없다면 이 차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뛰어난 비술이다. 본 편의 후반부에는 달리 비황석이라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