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서철권

丹書鐵券
DancerTekken이 아니다

단품합체하면 이런 모양이 된다.

금서철계(金書鐵契), 금서철권(金書鐵券), 단서철권(丹書鐵券), 단서철계(丹書鐵契) 또는 간단히 철권(鐵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중국쪽 영향을 받은 문화권에 등장하는 아이템.

철권鐵券은 남코의 대전액션게임이 아니라 철로 만든 기와장을 말한다. 이 단서철권은 적어도 전한 한고조 유방의 건국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시기에는 철로 만든 기와장에 단사라고도 부르는 주사로 글을 써서 완성했기 때문에 단서철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주사로 쓴 글은 생각보다 잘 날아갔기 때문[1]에 남북조시기의 국가인 나라에서는 은을 주입해서 은권(銀卷)이 되었고,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 때부터는 금으로 글을 새겨넣으면서 금권(金券) 또는 금서(金書)라고 불렸다. 금서철권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 때문이다.

옥새를 찍어 반으로 갈라 하나는 종묘에 보관해두고 하나는 상대방에게 주었다. 궁극의 호신용 아이템이자 여벌 목숨

이나 황제가 내리는 일종의 국가유공자 자격증이라 할 수 있다. 원래 한고조 유방이 개국공신들에게 수여할 때까지만 해도 공신녹권에 가까웠다. 죄를 면제해준다거나 하는 의미는 없었고, 관직이나 봉토를 준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남북조시대가 되면서 북위효문제가 면죄부의 의미로 발급한 것을 비롯해서 면죄부로 흔히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게 수나라와 당나라 시기 정도 되면 완전히 제도화되기 시작했다[2]. 대충 '이 사람의 조상은 이런이런 공적이 있으니 잘못을 저질러도 목은 치지 말것'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아이템으로 면사패(免死牌)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수호전시진이 있다. 시진의 가문이 후주의 황족이었고, 송태조가 후주에 쿠데타를 일으킨 후 을 건국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에서 시씨 가문의 대를 잇게 해주고 후대에도 반역죄같이 큰 죄가 아닌 이상 웬만큼 사죄해달라는 의미에서 단서철권을 내려 그들을 보호해주었다. 수호전에서 각종 호걸범죄자들이 시진의 집에 모여드는 이유가 시진의 집이 단서철권으로 보호받는 일종의 치외법권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광윤도 시씨 가문의 후손들이 깽판을 칠 가능성을 감안해서 시종훈 본인과 그 후손 중에 가문의 수장에게만 적용하도록 하였다. 후일 포청천에서 시문의가 자기 아버지에게 자결을 종용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그에게는 단서철권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사대부들처럼 처결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패륜 아들도 아들이라고 결국 살리기 위해 진짜로 자결해 버렸고, 포청천은 그걸 무시하고 법대로 처결하려 했으나 황제의 명으로 풀어줘야 했다.

주원장도 명 건국 후 공신들에게 단서철권을 내렸다. 다만 공신들을 숙청하기 시작하면서 단서철권의 그 면사패 기능 따윈 뭉게버렸다(…). 공신들이 단서철권을 믿고 너무 횡포를 부리자 열받아서 잘못 저지른 것들을 꼬투리잡아 단서철권을 강제로 토해내게 했다는 서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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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이 서유에게 내린 단서철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흔적은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문무왕이 웅진성에서 당나라 장수 유인궤, 백제왕자 출신인 부여융과 만나서 신라와 백제 사이의 원한을 잊자고 하면서 단서철권을 만든 것이다. 등장인물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웅진도독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나당전쟁에서 알 수 있듯이 이후 단서철권은 휴짓장보다 가치가 없어졌다. 기록이 다소 부족한 고려시대에는 언급을 찾기 어렵지만, 조선시대에는 종종 수여되었다. 조선선조도 임란 후 1605년 25의사와 5열녀의 가문에 단서철권을 내려 그 공적을 치하했다는 내용이 실록에 나오고, 가끔 명가의 족보를 찾아보면 ~~년 왕이 우리 가문에 단서철권을 내리셨다하고 자랑하는 일도 가끔 있다. 다만 조선의 단서철권은 모든 죄를 면죄한다는 의미의 면죄부라기보다는 원래 한나라 시기처럼 공신녹권에 가깝고, 그 형태 역시 중국에서처럼 철판에 금입한 물건은 아니라 두루마리 문서 형태이다.

판관 포청천의 뇌정노 에피소드에서 이 아이템의 위력이 정말 제대로 표현된다. 설명하자면 가히 포청천 역사상 1, 2위를 다투는 천하의 개쌍놈이자 살인광[3] 시문의가 앞에 나온 후주 시씨 가문의 적장자라 정말 온갖 천하의 개쌍놈 짓을 다 하고 다녀도 제아무리 포청천도 어떻게 손을 못 쓴다. 그 와중에 시씨놈의 막장행각은 계속되고, 결국 사람을 엄청나게 죽인 뒤에야 체포한다. 그러나 처형은 못하고 감옥에 가두는게 고작인데, 단서철권 때문에 옥중에서도 호의호식을 한다(...). 결국 포청천은 자기 목이 날아가건 말건 그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걸 안 시문의가 아버지의 자결을 종용하여 왕위를 물려받는다. 빡친 포청천은 막판에 자기 목을 걸고[4] 시씨놈을 용작두로 썰어버리려고 하지만 때마침 나타난 포청천의 감초, 귀염둥이 악당 방태사가 시씨 가문의 면사패를 가져와 처형을 중단시킨다. 결국 단서철권을 무시하는 건 송태조의 유훈을 어기는 것이니 지금 송나라 황제를 천하의 불효자식으로 만드는 것이고 이건 포청천 본인은 물론 부하들까지 싸그리 목이 날아갈 대역죄라는 논리 앞에 결국 굴복해버린다.[5]

이 광경을 보고 빡친 의협 전조는 아예 관아에서 칼 뽑아 시씨놈을 썰어버리려고 하지만 역시 단서철권 씹으면 본인 뿐만 아니라 개봉부가 통째로 박살나는 상황에서는 답이 없고 시씨놈은 그냥 방면된다. 그 뒤 결말은....[6]
  1. 더 정확하게는 글을 알아보기 어렵다. 철은 산화철이 되면서 붉은 색으로 변하고, 주사도 황화수은이 불안정해서 검붉은 색으로변하기 때문에, 어두운 붉은 색 바탕에 어두운 붉은 색 글씨가 되어서 글을 알아볼 수가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2. 당시의 시대상과 기타 등등을 고려하면 강력한 귀족 및 호족 세력의 권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원장을 포함한 명나라나 청나라 시기 정도 되면 말 그대로 죽지만 않은 정도였다면, 호족들 권위가 강한 시기에는 무한 우대권 취급을 받았다.
  3. 그 포청천이 개봉부 내놓고 처형하겠다고 난리친 것도 바로 이 작자가 살인광이었기 때문이었다.
  4. 감투를 걸었다는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목을 걸었다.
  5. 문제는 대역죄 드립이 근거없는 협박이 아니라 진짜로 일이 그렇게 돌아갔다는 것. 실제로 포청천은 자기 관직을 여러 차례 내놓고 정의를 실현하려 한 바 있다. 오오 포청천 오오
  6. 뇌정노라는 제목 그대로 시씨놈은 벼락에 맞아 죽었다. 천벌을 받은 셈. 어이없는 결말에 화가 난 방태사가 그 책임을 무고한 사람에게 돌리면서 처형하라고 바락거렸는데 시씨놈이 벼락에 맞아 죽은 통에 시씨가문에 후계자가 없었고 이렇게 되면 사위가 가문을 잇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무고한 사람이 시씨가문의 사위인 양가보...단서철권을 사위 양가보가 승계하여 결국 방태사가 데꿀멍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