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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서형수 (徐炯洙) |
출생일 | 1957년 4월 5일 |
출생지 |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 |
최종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
소속 정당 | 더불어민주당 |
지역구 | 경남 양산시 을 |
의원 선수 | 1 |
의원 대수 | 20 |
소속 위원회 |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
현직 | 제20대 국회의원 |
약력 |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사장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장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사장 풀뿌리사회적기업가학교 교장 |
외부 링크 | 블로그 |
1 개요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웅상)[1] 출신의 언론인, 정치인.
2 생애
2.1 학창 시절
1957년생으로 개운중학교, 부산광역시 동래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출신. 학창시절에는 양산의 수재로 명성을 날렸던 인물이라고 한다. 개운중 수석 졸업, 동래고 수석 졸업, 부산경남지역 학력고사 1등 등, 공부로는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인물이라고.
2.2 한겨레 신문
1983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해 기획실에서 일하고 있다가 직장 상사인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 조영호의 권유로 1988년 새신문 창간 운동에 가담하면서 언론계에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5월 한겨레신문이 공식 창간하자, 기획국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언론계에 투신했다. 이 후, 판매국장, 뉴미디어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겨레신문의 살림과 경영에 깊숙히 관련을 맺었다. 언론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자 출신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기자 일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순수 경영지원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2003년 한겨레 신문의 자회사인 인터넷한겨레 대표를 역임, 2004년 유기농판매점인 초록마을을 운영하는 한겨레의 자회사 한겨레플러스 대표를 역임했다. 2005년 한겨레신문의 사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한겨레 경영총괄 전무가 되는 것을 끝으로 잠시 신문사를 떠나 고문으로 있었고, 이대로면 한겨레 신문의 경력이 끝나는 것이었는데, 2007년 사장이 되는 계기가 생겼다.
한겨레신문이 금속노조의 의견광고 개제를 거부하는 것으로 촉발된 젊은 기자와 중년 편집국 간의 갈등, 여기에 당사 정태기 사장의 편집국장 해임과 후속 편집국장에 대한 직원의 비토, 이로 인한 정태기 사장의 사퇴로 인해 불거진 한겨레신문의 혼란 속에서 사장 후보에 출마했다가 사장으로 합의추대된 것. 임기는 정태기 사장의 잔여 임기 1년만 재직하는 것으로 취임해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한겨레신문의 혼란을 수습하는 선에서 사장 직을 마무리했다. 사실 임기 중에 한겨레신문의 사원주주 대표 직선제가 신문사 내부의 파벌을 불러온다고 판단하여 이를 개선하고자 했지만,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2016년 현재도 사원주주 대표 직선제는 유지되고 있다.
2.3 한겨레신문 이후
2008년 약속대로 1년만 임기를 채운 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장 직에서 물러나 상임고문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2009년 경남도민일보의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다시 언론계 일선으로 복귀했다. 일종의 지역독립언론 격인 경남도민일보 사장으로 재직된 것은 당시 경영 문제로 지역 자본의 유입을 두고 갈등이 있었던 경남도민일보에서 중앙일간지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서형수를 데리고 와서 해결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0년 2월 신임 편집국장으로 임명한 김주완 기자가 조직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사임했다. 김주완 기자가 다소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부결된 것도 컸고, 서형수 사장이 외부인으로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던 것에 대한 반발의 표현이라고 한다. 서형수 사장이 시도했던 개혁은 지역광고의 1%를 광고국장이 가져가는 관행의 타파, 광고영업사원의 인센티브 정리 등 경영의 방만함에 대한 개선이었다고 한다. 막상 사퇴를 선언하자 구성원들이 만류했지만, 결심을 되돌리지 않고 2010년 2월을 끝으로 사임했다.[2]
이후 2011년부터 풀뿌리사회적기업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사회적 기업 운동 쪽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1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표의 권유를 받아 영남지역 인재영입 1호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당시 더민주 측은 "정론직필로 부당한 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서민의 고통을 세상에 알려온 서 전 사장이 정치개혁과 민생복지를 이룰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2.4 정치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전략공천받아 고향 웅상이 포함된 신설선거구 양산을에 출마했고 40.33%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선거 초반 여론조사가 좋지 않았고 상대 후보 지지층이 국민의례 중의 사진을 악의적으로 캡쳐해서 종북몰이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당의 표가 분산이 되었고, 반대로 국민의당 후보가 출마를 포기하면서 사실상 야권의 단일 후보가 되었던 점, 고향인 웅상 지구의 신도시 표심을 확고하게 잡는데 성공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당선에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의 PK 지역 약진에 한 몫 거들었던 것.
당선되고 나서 다음날 바로 김해갑에서 당선된 민홍철 당선자, 김해을에서 당선된 김경수 당선자, 김해시장 재선거 당선자인 허성곤 시장, 김종근 김해시의원 보궐선거 당선자[3]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함께 참배했다고.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양산시 을) | 더불어민주당 | 26,829 (40.3%) | 당선 (1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