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인물)
鮮于永彬(林[2], 1909년 ~ 1978년?)
1 생애
평안남도 대동군 출생. 일본 우익의 원조 도야마 미쓰루에게 발탁되어 겐요샤[3]에 들어가 사무라이가 되어 일본의 대륙침략을 위해 낭인들을 한반도, 만주, 중국 등에 보낼 때 한반도 대표로 다시 조선으로 건너와 메이지초(명동)에서 활동하면서 김두한과 대립했다.
그러나 도야마 같은 일본 제국주의적 성향이 아닌 사무라이를 중시했던 그는 김두한과 대립 당시 부하의 암수를 알게 된 그는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의 성씨 선우 종친회에게 지원하는 등에 다른 친일파들과 상반적 활동을 벌인다.
일본이 패망 당시에 그의 부하들만 보내고 그는 조선에 남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당시 1년 6개월을 받았고[4] 자책한 뒤 6.25 전쟁 이후 1953년부터 1963년까지 한국건설업회(대한건설협회 전신) 이사를 지냈고, 1968년부터 서울 지부장을 역임하고,# 1974년 서울 지하철 건설 공로로 철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았다고 한다. 1978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에도 같은 모티브의 인물이 등장하나 허구에 가깝다.
2 창작물에서
2.1 장군의 아들
해당항목 참조
2.2 야인시대
하야시(야인시대) 항목으로.
2.3 개그공화국 코너 죽거나 힘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