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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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루카 복음서에서 등장하는 이야기.

2 원문

2.1 개역성경

(눅 10: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눅 10: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 10: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 10:29)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눅 10: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 10: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 10: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1] 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 10:33)어떤 사마리아[2]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눅 10: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눅 10:35)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 10: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2.2 가톨릭 성경

루카 복음서 제10장 25-37절: 가장 큰 계명(마태오 복음서 22,34-40 ; 마르코 복음서 12,28-34)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3 해설

예수가 가르침을 펼치고 있는데 어느 율법학자가 딴지를 건다. (성경에는 이 율법학자가 스스로 옳아보이려고 이 질문을 했다고 전한다.) 그 내용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이웃을 사랑하라 했는데, 이웃이 과연 누구냐"는 것. 이에 예수는 일화를 들어 설명한다.

어느 유대인 상인이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되어 알몸으로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사제가 길을 가다 이를 보고 피해가 버렸다. 뒤따라 레위인이 지나갔으나 역시 무시하고 지나가버렸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직자로써 거룩하게 자기 몸을 지켜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초주검인 이 상인을 돕다가, 상인이 죽어버리면 도운 자신들이 오히려 부정해져버려 성직자 입장에서 낭패를 입는다. 이는 유대교에서는 시체를 만지는 자는 부정해진다는 율법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진 결과, 결국 제사장과 레위인은 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멸시해 마지않던 사마리아인은, 길바닥의 상인을 보자 응급처치를 하고 여관에 돈을 내며 유대인을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한다. 심지어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는 이 셋 중 누가 강도 만난 상인의 이웃이냐 묻자 율법학자는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 대답하고[3], 예수"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처음 율법학자의 질문의 맥락까지 보면...최종 결론은 이렇게(사마리아인이 한 것과 같이) 행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4]이라는 결론이 나온다.[5] 이게 일단 가장 큰 핵심이며, 나머지 부분은 곁가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아시리아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후 유대인과 타민족의 혼혈로 생긴 종족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피를 더렵힌 존재라 멸시받고 박해받았으며, 그 반목은 매우 깊었다. [6]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사마리아인이라도 진정으로 자비를 베푸는 자는 이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라는 책에 의하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인물들은 랍비들의 예화에 나오는 단골인물들이다. 예수의 예화가 다른 점은, 마지막에 보통 이스라엘 사람[7] 대신에 사마리아인이 온다는 것. 우리나라 식으로 치면 양반와 선비, 농부 대신에 양반와 선비 그리고 조선족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후술되어 있듯이, 사제나 레위인은 사제 계급으로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지게 되지만 이들의 행동은 종교법상으로는 다시 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만 좀 걸릴 뿐 아무런 문제는 없다. 또한 보통 깔끔을 떨거나 율법을 방패로 선한 일을 하지 않는 역할이라서 예화에서 이들이 보인 행동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준. 이야기의 포인트는 마지막에 보통 이스라엘 사람 대신 사마리아인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이 이야기의 논점은 누가 이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보통 이스라엘 사람들도 사제 계급과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마리아인들이 더 낫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좀 더 깊은 교리적인 해석을 하는 신학자들도 있는데, 예루살렘은 천국, 예리코는 속세며 유대인 상인은 인간이고 강도는 악마에 대비해, 강도의 습격을 받은 상인은 천국을 향해 가려다 악마의 꾀에 빠져 곤경에 처한 인간을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이 해석대로라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러한 난처한 상황에 빠진 인간을 무시하고 직무유기를 하는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일치하며, 상인을 위험에서 구한 사마리아인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또한 예수의 시대에는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하고 거칠며 강도가 들끓기로 악명이 높았다. 사제와 레위인이 나쁜 놈이라 괜히 다친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간 게 아니라, 아직 강도가 숨어있을 확률이 높기에 빨리 도망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거기다 전술했듯이 사제나 레위인 같은 유대인 사제 계급은 시체같은 부정한 것을 만지면 그 날로 자격 박탈이므로, 다친 사람을 잘못 만지다가 죽거나 하면 자신들이 크게 곤란해 졌을 것이다. 어쨌든 안 도와준건 안 도와준 거지만 그보다 예화잖아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데 "아마 이래서 그랬을 것이다"라는 해석은 좀...

이 때문에 성서고고학자 김성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예수가 뭘 잘 몰랐다"라는 느낌의 디스를 시전했다. 아니 실제로 있던 일이 아니고 예화라니까 뭘 이해해. 그러나 이는 반론이 존재한다. 예수는 당시 상당히 급진적인 인물이었는데, 원래 유대인안식일에 일을 하면 안됐지만 예수는 이를 부정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했고, 율법만 지키던 바리사이들이 주요 적대세력으로 신약성경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예수는 그 사람이 어느 자리에 있던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던 분이었다. 또한 자기 희생을 동반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성경의 기본적인 모티브이기도 하다. 자, 이제 누가 '뭘 잘 모르는 사람'이지?

4 인용

근래에 사마리아인유대인의 역사가 많이 안 알려져서 함의가 좀 희석되었고 어째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남을 돕는, 자비심 많은 인간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경향이 있다.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병원 이름에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을 많이 쓴다. 영화 다이 하드 시리즈 3편에선 별 생각없이 맥클레인을 돕다가 같이 곤경에 휩쓸리게 된 흑인 상인 제우스을 두고 악당 사이먼이 시종일관 사마리아인(Samaritan)이라고 비꼬는데 이 장면 역시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히면 죄가 경감되거나, 자신이 위험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돕지 않은 경우에는 처벌받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개념도 여기서 나왔다.

교회성당에서는 흔히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주제로 설교를 준비하던 신학생들조차, 설교에 늦지 않기 위해서 실제로 복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가더라" 하는 내용의 예화가 돌기도 한다. 머리로는 그것이 옳다는 걸 알아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내용. 심지어 한 신학생은 급한 나머지 그 쓰러진 사람의 위로 뛰어넘어 가더라는(…) 시궁창스러운 뒷이야기도 따라붙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예화의 내용은 상당 부분이 실제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연구내용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8] 다친 사람을 뛰어넘는 신학생 이야기도 이 연구자들의 논문에 똑같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종교계에 돌고 있는 예화들의 거의 상당수가 출처 불명의 왜곡된 뜬소문 위주라는 것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
  1. 야곱의 열두 아들 중 3째 아들인 레위의 후손으로, 제사장 아래서 종교의식을 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2. 유대인 이지만 다른신을 섬기거나, 이교도와 결혼한 사람으로,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상당한 신분적 차별과 핍박을 받았다.하지만 많은 한국교회에서는 '이교도' 라는 내용은 빼고 설교한다.
  3. 사마리아인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했다. 아마도 율법학자는 차마 사마리아인이 자기 이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 대답한 것일 것이다.
  4. 또는 성경의 말씀을 자기만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지 말고, 사회의 한 일원으로써 주변 사람까지 고려하라.
  5. 여기서 추가로 구원이 특정한 혈통에 있지 않음도 같이 유추가 가능하다.
  6. 심지어는 이 이야기 조금 전인 루카 복음서 9:51-56에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를 반기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의 마을 이야기가 나온다. 야고보와 사도 요한은 화나서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라고 하지만, 예수는 그 둘을 꾸짖고 일행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간다.
  7. 제사장과 레위인을 면박주는 역할임은 동일
  8. Darley & Batson, 1973. 여기서 Batson이라는 인물은 위기 상황에서 타인을 돕는 것에 대한 연구분야의 권위자이며, 방관자 효과와 관련된 유명한 실험들에도 관여했던 석학이다. 이 실험은 시간적 압박의 여부가 이타성을 감소시킬지를 확인하기 위해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수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