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의 등장 인물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사마리아인(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언어별 명칭 | |
사마리아 히브리어 | שוֹמְרִים |
유대 히브리어 | שומרונים |
아랍어 | السامريون |
영어 | Samaritans |
1 개요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인, 혹은 히브리인들로부터 기원한 민족. 연합 왕국이 분열된 이후 형성된 북이스라엘 왕국의 주민들의 후손이다.
놀랍게도 2016년 시점에서도 독자적인 민족집단으로 존속하고 있다.
2 유대인과의 관계
상기했듯,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기 전 까지 한 나라였던 동족들이다. 그러나 나라가 분열되자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에 점령되고, 남유다 왕국은 좀 더 뒤에 신 바빌로니아 왕국에게 점령 당하며 유다인들은 바빌론에 끌려가는 바빌론 유수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흘러 유다인들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해방되어서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며, 자기네들이 고대 이스라엘의 정통 후손이며 팔레스타인에 그대로 남아있던 북이스라엘인들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며 이민족처럼 여기며 차별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하스모니안 왕조 시기에 유다 왕국을 재건한 뒤 사마리아를 침략하여 지배하게 된 뒤부터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탄압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취급되는 건 어이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유다 왕국 역시 한 번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해서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끌려갔다 왔기 때문에,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유대인들도 순수한 히브리인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실제로 바빌론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을 다룬 구약 성경의 에즈라에도, 유대인들이 이방 민족과 혼인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유하자면, 해외에서 외국물 잔뜩 먹고 들어온 한국계 외국인들이 멀쩡히 한반도에 남아 있었던 한국인들을 순수함을 잃었다고 비난하며 자신들만이 진정한 한민족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셈.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자기네들보다 전에 아시리아에게 점령 당한 이후로 다른 민족들과 피가 많이 섞이고 이교도의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혈통문제는 상기했듯 유다인들쪽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유대의 관습으로 혈통보다는 유대 신앙을 받아들였느냐를 기준으로 유대인을 구분하는 우선하는 관습이 있긴한데, 이 관습 자체가 유다인들이 바빌론이랑 페르시아에 있는 동안 유대교를 정립하면서 새로 생긴 것이다.
혹여나 유다인이 혈통적으로 정말 순수성을 유지했다고 치고 본다고 하더라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역에서 이탈했다가 돌아와서는 자신들이 비록 혈통적으로는 타 민족과 섞였을지라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역을 계속 유지하고 지켜왔는데 정작 이러한 자신들을 더럽혀진 민족이랍시고 멸시받는다면 이것도 쉽게 납득이 될까? 사마리아인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종교나 문화는 수천년 이상 자기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사마리아인에게 유대인은 오래 전에 분열되어 다른 나라를 이루고 산 다른 지파들의 후손일 뿐이다.
다만 유대인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보자면, 이야기가 또 다를 수 있다. 사실 사마리아인에 대한 유대인의 비판은 혼혈 그 자체보다는 이방 종교와의 혼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문제를 간단하게 축약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말해서 헬레니즘 제국의 영향 때 사마리아 쪽은 헬레니즘을 적극 수용하여서, 유대 지역과는 다른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또한 안티오코스 4세에게는 세금 면제를 탄원했으며, 성전의 이름을 '제우스 헬레니오스'로 바꾸었다.[1] 당연히 마카베오 전쟁 등으로 헬레니즘 제국에 강렬히 저항하던 유대인들 입장에선 피꺼솟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관계를 보는 것 같다 물론 당시 유대인들 역시도 그리스식 이름이 퍼지고 경전을 그리스어로 서술하는 등 헬레니즘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지만, 성전 이름에 제우스를 박아놓을 정도로 막나가지는 않았다.
3 문화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유대교의 많은 교리들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사마리아인이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와 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건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고, 고대 바알 신앙 등 사마리아인들이 믿었던 종교가 가나안 지방의 토속 신앙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고대 이스라엘이 믿었던 야훼 신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2] 하지만 이것도 B.C 400년 이후에는 없어지고,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 토라를 중심으로 한 다른 유대교와는 약간 다른 야훼 신앙을 믿었다.
사마리아인들은 게리짐 산에 성소를 세웠다. 신학적으로도 그들은 사마리아 토라만을 믿었으므로, 당연히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 성소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이 성소 분리는 이스라엘-유대 왕국의 분열에서 이미 기원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B.C 108년에 마카베오 반란으로 세워진 하스모니안 왕조는 게리짐 산 성소를 파괴하는 등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계속해서 탄압했다.
그리스도교 시대가 되자 로마 제국은 사마리아인을 박해하기 시작하여, 교회를 짓기 위해 그들의 성소가 있던 게리짐 산을 점령하고 사마리아인을 학살했다.
4 기독교에서의 사마리아인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예수는 그들을 박해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요한 4,1)를 보면 유대인들에 대한 당시 사마리아인들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이 당시 사마리아인을 취급하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선한 사람의 예시로 들기도 하였다.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마리아인도 많이 나온다.
5 현대의 사마리아인
사마리아인 출신의 이스라엘 배우 소피 차다카
현대에는 겨우 800명 남짓한 소집단이지만 여전히 사마리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성서시대 이래 그들의 성지였던 게리짐 산에 있는 키랴트 루자라는 마을에 인구의 약 절반이 모여 산다.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 지역인 나블루스 시와 가까우며,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노력하는 등 잘 지내는 편이다. 그 밖에 텔아비브 시 외곽에 인접한 홀론 시에도 모여 산다. 민족집단으로서 존속이 어려운 800명이라는 소수만 남아있고, 종교적인 이유에서 외부인의 진입이 쉽지 않아 유전병이 염려되는 수준이다. 소수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결혼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사마리아인들은 종교경전의 언어로서 유대인들이 쓰는 것과 다른 사마리아어(또는 사마리아 히브리어)를 유지하고 있지만(문자부터가 다르다) 현재 사용언어는 히브리어 또는 아랍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