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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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명성동고등학교
개교1906년
유형일반계 고등학교
성별남학교
운영형태자율형 공립
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신당5동 161
홈페이지

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5동 161번지에 위치한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정문은 신당시장 안쪽에 있으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성동01번과 241번이 다니는 후문으로 등하교한다. 성동구에는 남학생이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상당히 적은 편인데, 덕분에 이 학교는 성동구 남학생들이 상당히 많이 재학중이다. 부지가 그다지 큰 편은 아니라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본관은 ㅁ자 형식으로 되어 있고, 본관을 주변으로 정보관,체육관 등이 있다. 신당초등학교와 부지를 공유하고 있다.

1.1 교훈

정의, 실력, 단결

1.2 교가

위당 정인보 작사 / 김성태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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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2.1 연혁

  • 1906년 사립 황성기독교청년회관 설립
  • 1912년 사립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 개칭
  • 1916년 사립 조선중앙기독교청년학관 개칭
  • 1929년 사립 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개칭
  • 1939년 사립 경성영창학교 개칭
  • 1946년 사립 영창중학교 인가
  • 1949년 영창중학교를 관에서 인수, 신당동 제3여중[1] 부지에 성동공립중학교 설립.
  • 1951년 성동고등학교와 신당중학교로 분리
  • 1968년 성동고등학교와 성동중학교 재분리
  • 1980년 성동중학교 폐교 [2]

2.2 동명의 일인중학 성동중학교와의 관계

공식적으로 성동중학교 내지 성동고등학교라는 이름의 중등교육기관이 등장한 것은 해방 이후이다. 그러나 해방 이전에도 동명의 일인 중학 성동중학교가 존재하였고, 계통상 지금의 성동고등학교와 직결되지는 않으나 해방 후 성동중학교가 설립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인 중학인 성동중학교는 1936년 공립중학교로 설립되었다. 초기 계획에는 조선인, 일본인 공학으로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일인 위주의 중학교로 운영되었으며 1945년 해방을 맞게되자 경성중학교, 용산중학교, 아사히가오카중학교와 같은 타 일인 중학과 마찬가지로 임시폐교되었다.

해방과 함께, 일제 치하에서 억눌린 조선인들의 교육열이 외부로 표출됨에 따라 중학교 증설요구가 탄력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성동구에 위치한 유일한 중학이었던 성동중학교 역시 조선인 중학교로서 재개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경성중학교, 용산중학교, 아사히가오카중학교는 조선인 중학으로서 새롭게 출발하였다. 성동중학교 역시 재개교의 필요성이 컸으나, 구 성동중학이 자리한 왕십리 부지는 타 중학과 달리 미군진주로 즉시 사용이 불가능했고, 이후에는 경기사범학교 부지로 전용된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성동구 내 남자중학은 1949년까지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성동구 측에서는 미군이 나간 이후 지속적으로 성동중학교를 부활하고자 노력했으나, 이미 경기사범학교가 들어선 뒤이므로 마땅한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경기사범학교 외에도 한동안 적지 않은 중학교사를 미군이 진주하여 사용하고 있었는데, 구 경기고등여학교[3] 부지도 마찬가지였다. 미군철수에 따라 주인이 없게 된 구 경기고녀 부지를 타 학교에 배당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성동구 신당동에 자리한 제삼여자중학교 측에서 구 경기고녀 부지로 이전할 의사를 표명하였고, 성동구 측 역시 제삼여중 이전 후 당해 교사를 재건될 성동중학교 부지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와 별개의 통로를 통하여 영창중학교 측 역시 구 경기고녀 교사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부지를 원하는 제삼여중과 영창중학 측의 충돌이 빚어졌다.

결과적으로 양 교 간의 갈등은 다음과 같이 해결되었다. 우선, 제삼여중은 구 경기고녀 교사로 이전한다. 다음으로, 영창중학을 관에서 인수하여 구 제삼여중 교사에 성동중학교를 설립한다. 성동구 내 성동중학 재건요청과 양 교 간의 갈등을 단번에 해결한 묘책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이 성동고등학교가 종교사학으로 출발했으나, '성동'이라는 지역을 딴 이름의 공립중학교가 된 배경이다. 일인 중학인 성동중학 역시 법통상으로는 무관하나, 성동고등학교가 '성동'이라는 이름을 갖고, 해방 후에도 한동안 후기 명문고로서 명성을 유지하게 된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3 학교 수준 논쟁

동창생들의 회고에 따르면 1960~70년대에는 성동고등학교가 상당한 명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성동고등학교 동문 중에는 정계, 재계, 법조계, 학계 종사자가 적지 않으며, 그들은 입학식때 꼭 전부 모여서성동고등학교를 명문고등학교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느니..인서울 졸업생이 많다느니..그러나 이제 전부 옛날 얘기다. 2000년대 이후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타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점이 없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강북 인문계고의 전반적인 슬럼화 현상의 여파를 제대로 맞고 있는 셈. 자율형 공립고 지정 노력 등이 있으나 2010년대 들어와서도 가시적인 성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근 10여 년 간의 주요대학 진학 결과를 살펴보면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다.

3 학교 주변 정보

정문만 나서면 신당시장이 위치해 있으며, 조금만 좌측으로 가면 신당동중앙시장이 나온다. 시장의 복잡한 도로 특성상 골목에 모여서 흡연을 하는 학생들을 조금만 뒤져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애초에 그걸 발견하면 걔들이 튀겠지만

4 기타

  • 신당초등학교와 부지를 공유하고 있는데, 공유 수준이라기에는 성동고의 부지 차지가 너무나도 커서 그냥 성동고 옆에 남는 자리에 신당초등학교가 꼽사리(...)낀 정도로 보인다. 실제로 신당초등학교엔 운동장이 없으며, 성동고 운동장은 성동고 학생들이 전부 쓰기 때문에 신당초등학교 학생들은 성동고 별관 위층에 있는 강당만 사용 가능하다. 학교 크기 자체도 굉장히 작아서 안습.
  • 자율형 공립고등학교이기 때문에 여러 장비들이나 기품들을 제공받는 대신 1, 2학년에 한해서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3월에 학교에 입학한 1학년들은 교실 찾는 데에만 쉬는 시간을 다 보낸다. 심지어는 수업에 늦는 경우도 많다.하지만 몇개월만 지나면 1분만에 교실 이동하고 자거나 폰질한다
  • 최근에 학교를 대대적으로 공사를 해서 장비들이나 기품들이 상당히 말끔하게 바뀌었다. 전 교실에(과학실 등 특수교실은 제외)전자칠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학교 내부도 상당히 깔끔하다.

5 동문

  1. 현 창덕여고
  2. 하지만 송파중학교 연혁에서는 성동중학교의 후신이 송파중학교라고 나와 있다.
  3. 현 경기여자고등학교. 해방 직후 일인여자중학이었던 경성제일여중 교사로 이미 이전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