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世祖大王輦. 조선의 7대 왕 세조가 타고 다니던 가마.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4호이다. 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의 마곡사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세조가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러 마곡사에 타고 왔다가 두고 간 것이다. 김시습은 충직하고 강건한 인물로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책을 모두 불사른 후 승려가 된 인물이었는데 세조는 어떻게든 김시습을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세조 3년 1457년에 김시습은 계룡산 동학사에서 조상치, 이축, 조려 등과 더불어 삼은단(三隱壇)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다음해인 1458년에 세조가 동학사를 지나던 중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그 행동에 크게 감탄하여 단종을 비롯한 정순왕후 송씨, 안평대군, 금성대군, 김종서, 황보인, 정분 등과, 사육신, 그리고 자신의 왕위 찬탈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280여 명의 이름을 직접 비단에 써서 주며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는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단종의 명복을 비는 초혼각(招魂閣, 현재의 숙모전)을 짓게 했다. 그리고 동학사에 동(銅)으로 만든 세조의 인신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직접 친필로 동학사라고 사액한 다음 절의 스님과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이때 세조가 정말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서 그런 건지, 아니면 김시습을 회유해보고자 한 것인지는 세조 본인만이 알겠지만 어쨌든 김시습은 단종에 대한 자신의 충심을 굽히지 않았고 세조를 피해 동학사에서 도망쳐 버렸다. 이후에도 세조는 김시습에게 반해(?) 수차례 천거하여 벼슬을 내리거나 각종 재물을 하사하였지만 모두 거부하였고, 세조 또한 성격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나중엔 열이 올라 협박까지 했지만 끝내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밀고 당기던 중 마곡사에 매월당 김시습이 은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또다시 세조가 그를 회유하고자 마곡사에 직접 행차하였는데, 김시습은 세조가 마곡사로 온다는 소식을 미리 접하고 몰래 떠나버렸다. 세조는 기껏 마곡사까지 도착했는데 또다시 김시습이 떠난 사실을 알게 되자 크게 상심하여 마곡사에 영산전(靈山殿)이라는 3자를 손수 써서 사액한 후 "김시습이 나를 버리니 이젠 가마를 타고 갈 수 없다" 라고 하며 타고 왔던 가마를 절에 내버려 둔 채 한양 궁성까지 소를 타고 돌아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600여년 전 왕이 직접 애용하던 가마로 역사적, 문화적으로 의미가 큰 문화재이다. 다만 보관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채색이 희미하고 파손된 부분도 있다. 현재도 관리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