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적 자유

Romanesque liberte. 프랑스의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주창한 개념. 작가에 의해 창조된 세계라 하더라도, 이미 만들어진 이상 그곳은 독자적인 세계로서 제 아무리 창조주라 하더라도 '에이 마음에 안 들어 다 뒤집어 엎자' 등의 무분별한 개입은 있어선 안된다는 개념이다. 여러모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대립점에 있다 할 수 있다. 이것을 무시한 작가의 소설 세계관은 자위수단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개연성은 중요하며 최소한 인과율은 지켜야 한다. 예를 들어 타임머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설정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타임 패러독스문제는 매우 골치아픈 문제이며 깊게 파고들면 모순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소설적 자유로 허용된다.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시리즈와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는 똑같이 시간이동을 다루지만 한쪽은 평행우주 개념이고 다른 쪽은 독자적인 우주관을 사용한다. 두 세계의 물리법칙은 결코 양립할 수 없지만 두 작품 모두 작품성에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작가가 애초에 그렇게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시로, 작가가 좀비를 설정해 작품에 도입했다면, 기관총에 수십발 얻어맞은 사람이 멀쩡히 걸어다니는 건 충분히 허용된다. 하지만 그냥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에서 범인이 총을 맞고도 멀쩡히 돌아다닌다면 그것은 개연성을 파괴하며 작품의 질을 해치게 된다. 나중에 범인이 방탄복을 입고있었다는 추가 설명이 들어가면 다시 개연성을 획득하겠지만 만약 범인이 피격당할 당시에 웃통을 벗고 있었다고 서술돼있었다면? 범인이 로봇이라고 설정해서 변명하든지(미래 배경의 범죄 스릴러라면 가능하다) 사실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었다든지 변명해서 어떻게든 다시 개연성을 회복할 추가 설명을 깔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막무가내로 작품을 진행하면 작가 입장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소설의 소비자층인 독자가 떠나버린다.

소설은 현실을 모사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은 현실을 모사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건 소설은 현실성을 추구하는 허구라는 것인데 섬이 하늘에 떠다니는 세계든 자동차가 말을 하는 세계든 작가가 처음에 그렇다고 설정하면 그런 것이다. 이것이 소설의 허구성이다. 그러나 초능력 따위가 없는 세계관에서 눈이 먼 사람이 저격소총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소설적 자유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자신이 만든 세계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으므로, TRPG의 마스터도 소설가도 게임 제작자도 모두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이론.

양판소 작가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