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

1 후한 말의 인물

동오의 추존 황제
효의왕 손종시조 무열황제 손견장사환왕 손책소헌문황제 손화

孫鐘

생몰년도 미상

손견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로 손견의 집안은 대대로 오군에서 벼슬살이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오군에서 벼슬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손견전에서도 자세한 내용은 얼버무리며 이름조차 안 나온다. 손견이 전당에서 해적을 공격할 때 말리는 것이 그 유일한 등장. 지괴소설인 『유명록』이나 여러 전설까지 삽입해놓은 『건강실록』에는 이름과 함께 다음과 비슷한 기록이 있다.

손종의 집이 부춘에 있었지만 일찍 아버지를 잃고 어려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며,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고 오이를 심어 생업으로 삼았다. 어느 날 옷을 잘 차려입은 세 명의 젊은 사람들이 손종에게 찾아와서 오이를 구걸했다.

이에 손종은 자신이 사는 집으로 이 세 사람을 데리고 가서 밥을 정성껏 대접한 뒤에 오이를 선물로 주었으며, 이에 감동한 세 사람은 뜬금없이 손종에게 질문을 했다. "저희같은 사람들에게 후한 대우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대대로 제후가 되는 것과 몇 대만 황제가 되는것 중에 뭘 택하시겠습니까?"

손종은 이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아 비범한 사람이라 판단하고 그들에게 절을 올린 뒤에 "황제가 좋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세 사람은 손종에게 묘자리를 알려준 뒤 떠나면서 다시 말했다.

"우리는 사명(司命 :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이오. 좋은 묏자리가 있으니 그곳으로 내려가되 백 보를 걸을 동안 뒤돌아보지 마시오."

손종은 60보 만에 하산해 뒤를 돌아보니 그들은 학으로 변신한 후에 날아가고 있었다. 그곳에 자신 혹은 어머니를 묻었다. 손종은 훗날 손견을 낳았고, 손견은 손권을 낳았으며, 손권은 손량을 낳았고, 손량은 손휴를 낳았고, 손휴는 손화를 낳았고, 손화는 손호를 낳았다. 진이 토벌에 나서자, 손호는 항복하여 귀명후에 봉해졌다.

근데 자세히 보면 저 설화 족보가 좀 이상하게 꼬여있다. 손량, 손휴, 손화 모두 손권의 자식이다. 거기다가 손화는 황태자였긴 한데 손권이 말년에 깽판을 치는 바람에 황제가 되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다. 아무래도 설화 지은 사람이 오나라 족보를 좀 괴상하게 알고 있었던 모양.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손견전의 기록은 그대로 차용해 손견이 전당강 아래에 해적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하자 이를 말렸지만 손견이 나서서 그 해적들을 죽이고 달아나게 만들었다.

2 삼국시대 공손연의 수하의 인물

孫綜
(? ~ 238?)

공손연 휘하에서 낭중령을 지냈고 숙서와 함께 사신으로 파견되어 오나라의 번국이 될 것을 요청했으며, 233년 3월에 숙서와 함께 요동으로 귀환했다.

손권이 사신을 보내 여러 보물을 주면서 연왕에 책봉했고 손종은 숙서와 함께 말을 통해 오나라의 사신들을 답진까지 유인했다.

공손연이 위군의 공격으로 멸망하자 공손연이 임명한 가짜 관원들을 사마의가 모두 처형했기에 만약 이 때까지 살아있었다면 238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2.1 창작물에서

진삼국무쌍6에서는 공손연의 난에서 등장해 공손연군의 서쪽의 작은 진채 바깥의 북쪽에 위치하며, 남서쪽 요충지 3곳 중에 한 곳의 장수라도 격파하면 곽흔, 왕찬과 함께 위군을 격파하기 위해 남하한다.

진삼국무쌍7에서는 양평의 전투에서 등장해 곽흔, 가범, 윤직과 함께 남동쪽의 위군 본진을 공격하는 장수 중 한 명으로 윤직과 함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