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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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志英
1916년 12월 13일 ~1989년 4월 24일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소설가, 정치인이다. 호는 우인(雨人)이다.
1916년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말기,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하였다. 중국 난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해 활동하다였다. 그러다가 1944년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하면서 풀려났다.
8.15 광복 후인 1946년 민세 안재홍의 한성일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이 때 문예지 백민에 젊은날의 노래를 발표하여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국제신문,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다. 한편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1961년 민족일보에 몸담다가 5.16 군사정변 후 혁명재판에서 조용수, 안신수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8년이 넘게 복역하면서 우수의 일월이라는 소설을 집필하였다. 결국 감형으로 1969년 풀려났다. 이후 조선일보에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 신군부가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했을 때 입법의원으로 참가해 언론기본법을 제정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제6번)으로 당선되었다. 1984년 한국방송공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