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메르쉬

1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방첩부서 СМЕР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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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 발행된 스메르쉬의 신분증.

GUKR-NKO, 스메르쉬(SMERSH)란 이름은 "스파이에게 죽음을!"자비는 없다!(러시아어: СМЕРть Шпионам 스메르티 시피오남)의 준말이다. 스탈린이 직접 제안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전쟁기간 중 NKVD에서 독립되었다.

특이하게 공산당 소속이 아닌 소련군 소속으로써 엄청난 권한을 발휘했는데, 이유인즉 이 기관은 군 소속이면서 스탈린의 직속 기관이다. 즉, 시작부터 당 소속 정보기관에게서 독립되어 있으면서 군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가 가능하도록 창설된 기관이라는 소리.

일단은 당 서기인 스탈린이 독소전쟁 중반 당의 군에 대한 개입을 축소하면서 군에 재량권을 부여했다는 입장이 정설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에 대한 통제권을 놓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이 스메르쉬의 존재이다.

스메르쉬는 보통 군 방첩기관들이 하는 스파이 색출과 반게릴라 공작, 수집한 정보 평가는 물론이고, 군 시설물의 상태 점검, 무능한 지휘관 E처단, 사기 저하 및 탈영 방지, 암시장 적발, '해방된' 지역의 적 협력자 색출, 사상 검증 등의 기존의 정치장교들이 하던 일까지 일부 이어받기까지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포로가 되었던 자들을 심사해서, 독일군에 부역했는지의 여부를 알아내는게 주 임무였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무고하게 처형되거나 굴라그로 끌려갔다.

지나친 면이 없진 않지만, 당시 소련군 포로 중 나치 부역자로 전향한 안드레이 블라소프가 이끈 자유 러시아 군단에 입대한 자가 수만 명이 넘었으므로 이런 편집증적인 심사가 아주 이유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렇게 부역 혐의가 확실한 자들 외에 무고한 이들까지도 스메르쉬의 고문이나 유도심문에 많이 얽혔다는 것이다.

그 예로 여러 대의 적기를 격추시켜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까지 받은 어느 공군 에이스[1]의 기구한 일화가 있다. 그는 출격했다가 독일군에 격추된 후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소련군이 포로 수용소를 해방시키자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다고 기뻐했지만 스메르쉬가 심사과정에서 엉뚱한 트집을 잡아서 고향 대신 굴라그로 직행했다. 다행히 흐루쇼프 시절에 풀려나 영웅 칭호도 되받기는 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 더 이상 이런 업무가 불필요해지자, 1946년 이후에는 MGB(NKVD의 후신이며, KGB의 전신)에 흡수되었다.

NKVD, MGB, KGB 등의 소련의 공안-정보기관뿐만 아니라 경찰도 모두 군 계급과 동일한 계급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블라디미르 푸틴은 KGB 중령이었다), 이렇게 필요에 따라 조직을 군에서 합병하고 다시 분리하는 것이 의외로 수월했다.

소련판 코만도스 시리즈히트맨 시리즈Death to Spies는 스메르쉬 요원이 주인공이다.

1.1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영화 SMERSH

2소련-러시아의 다연장 로켓 BM-30별명을 잘못 적은 것

BM-30의 별칭 Smerchsh로 잘못 읽어서 나온 표기. 스메르치가 맞다.
  1. 이름, 소속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