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카즈미어

로스엔젤레스 다저스 No.29
스캇 카즈미어 (Scott Edward Kazmir)
생년월일1984년 1월 24일
국적미국
출신지텍사스휴스턴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2002년 드래프트 뉴욕 메츠 1라운드(전체 15 순위) 지명
소속팀탬파베이 데블레이스/탬파베이 레이스(2004~2009)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2009~201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201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2014~2015)
휴스턴 애스트로스(2015)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16~ )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시절에 불과 20대 초반에 팀의 투구 관련 기록을 죄다 갈아치우기도 했던[1], 고독했던 에이스.

2 선수 생활

고교 시절에 야구와 미식축구를 했다. 특히 3학년 때는 75이닝 동안 172삼진에 0.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탑 유망주였으며 B.J. 업튼과 함께 2002 드래프트의 몇 안되는 수퍼스타감 재목으로 꼽혔다.[2] 이러한 활약으로 2002년 드래프트에서 뉴욕 메츠에 1라운드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입단하자마자 마이너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메츠의 유망주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카즈미어 작은 체구로 인해 그를 불안하게 본 메츠는 2004년 7월 30일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빅터 잠브라노와 마이너리거 바르톨로메 포르투나토와 트레이드해버렸다.[3] 그러나 당시 팔꿈치 통증을 안고 있던 잠브라노는 그대로 폭망해버리고 카즈미어는 팀의 에이스로 거듭나게 되었다.

2.1 데블레이스 시절 : 약팀의 에이스로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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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3일, 카즈미어는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졌고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시즌 최종적으로 2승 3패 5.6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9이닝당 탈삼진이 11.07개로 뛰어난 구위를 갖고 있음을 증명했다.

2005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는데, 2005년에는 10승 9패 3.7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첫 시즌치고는 좋은 시즌을 보냈지만 100개의 볼넷으로 볼넷 부문 1위에 오른 게 옥의 티였다.

2006년에는 개막전 선발로 낙점받았는데 당시 카즈미어 나이는 22세 2개월 10일로, 1986년 뉴욕 메츠드와이트 구든 이후 가장 어린 개막전 선발투수가 되었다. 이 해 카즈미어가 상대해 이긴 선수들로는 로이 할러데이, 제이미 모이어, 돈트렐 윌리스, 커트 실링, 조시 베켓, 팀 웨이크필드 등 다들 팀의 주축 선수들이었다. 올스타에도 선정되어 1이닝을 퍼펙트로 막기도 하고, 8월 22일에는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삼진 8개를 잡으며 데블레이스 선수 중 통산 최다 삼진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즌 중 부상으로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144이닝 동안 10승 8패 3.2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고질적인 제구력 문제가 어느정도 개선되서 볼넷삼진 비율이 지난해 1.74에서 3.13까지 치솟았다.

2007년은 카즈미어의 리즈 시절로, 아메리칸리그 삼진 1위(239개), 선발등판 1위(34경기)에 개인 한 시즌 최다승(13승)을 기록한 해였다. "앞으로도 건강하기만 하다면 아메리칸리그의 최고 투수가 될 수 있다"란 평가를 들었다.

2.2 레이스 시절 : 몰락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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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데블레이스는 레이스로 팀명을 바꾸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지만, 카즈미어는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면서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심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레이스에서는 팀의 에이스를 보호하기 위해 5월달에야 카즈미어를 메이저리그로 올렸다.

뒤늦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생애 두번째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레이스에서는 가능한 한 카즈미어가 등판하지 않고 쉬기를 바랐지만, 경기가 15회까지 진행되자 결국 카즈미어가 등판할 수밖에 없었고, 카즈미어가 등판해 무실점을 기록하고 다음 회 AL 올스타팀이 득점하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한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점이 없었으나, 타석당 평균투구수가 4.28개로 메이저리그 투수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 때문에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고 투구수는 100개를 가까이 채웠는데, 이제 5회 진행 중일 때가 많았다. 때문에 오쓰자카와 비견되는 오즈미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래도 시즌 중 4년 계약을 맺었다.

2009년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생겼다. 4월달에 팔꿈치 통증으로, 5월달에는 투구폼에 문제를 보이며 다리 부상까지 왔다. 6월 말에 복귀했지만 이미 그동안 망가질대로 망가져 8월말까지 8승 7패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평균자책점은 예년에 비해 급등한 5.92를 기록했다.

2.3 에인절스 시절 :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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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부진을 면치 못하다 2009년 8월 28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의 유틸리티 내야수 션 로드리게스와 마이너리거 알렉산더 토레스, 맷 스위니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

에인절스 이적 후 첫 경기였던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6⅓이닝 동안 8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에인절스에서는 2승 2패 1.7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카즈미어 본인 또한 절치부심하며 재기를 꿈꿨다.

2010년 시즌을 앞두고 카즈미어는 근력 및 유연성 강화에 중점을 뒀으나 시즌 시작을 앞두고 햄스트링과 어깨 문제로 다소 늦게 시즌을 시작했다. 점점 구속이 하락하며 그만큼 타자들에게 치기 쉬운 공을 던지며 시즌 최종적으로 9승 15패 5.9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5.94의 평균자책점은 이 해 14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중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이었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에서도 여전히 부진하자 결국에는 투구폼부터 재조정하기로 하며 트리플A로 강등되었고, 계투 전향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다. 그러나 트리플A에서도 17.0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결국 2011년 6월 15일 에인절스는 남은 연봉 1천4백만 달러의 지급을 감수하면서 카즈미어를 방출했다. 불과 27세에 퇴물로 전락해 버린 것.

2.4 방출 후

2011년 12월 도미니칸 리그에서 재기를 꿈꿨으나 이마저도 부진했다. 2012년 계속해서 스카우트들 앞에서 불펜세션을 가지면서 메이저리그 복귀를 꾀했지만 실패했다. 2012년 7월 고향 휴스턴에 있는 독립리그 팀에 입단했으나 3승 6패 5.34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푸에르토리코 리그의 히간테스 데 카롤리나와 계약했다. 평균자책점은 4.37로 여전히 안 좋았지만 속구가 최고 95마일을 찍을 정도로 빨라졌고 23이닝 동안 27개의 탈삼진을 잡는 등 어느 정도 구위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즈미어는 슬라이더를 주 변화구로 던지는 작은 키[4]의 파워피처로, 현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이 꺼려하는 투수들로서 모든 점을 갖춘 투수였다. 그래서 카즈미어가 몰락한 것도 당연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여하튼 카즈미어의 성공과 실패는 탬파베이 레이스에 큰 교훈을 줬다. 재능이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잘할 수 있지만, 레이스가 속한 지구가 순위 경쟁이 치열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인 이상 재능이 있는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기량을 갈고 닦기란 어렵다는 것이 바로 그것. 실제로 이 당시 AL 동부는 구장성향과 각 팀의 강타선이 맞물려 대부분의 구장 파크팩터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이후 레이스는 투수 유망주를 최대한 마이너에서 갈고 닦게 한 후에 메이저리그로 올리고 있다.

2.5 인디언스 시절 : 부활

캘러웨이 매직의 수혜자

2012년 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빅리그 재도전을 선언했다. 그렇게 재도전이 성공하여 개막 로스터에 들면서 5선발로 낙점받았다. 그러나 등판하기도 전에 복부 통증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었고, 그 자리는 트레버 바우어가 가져갔으나 볼질로 유명한 우발도보다 더한 볼질을 보여주며 다시 마이너로 내려갔고, 부상에서 복귀하며 다시 합류.

시즌 초반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가 한동안 많은 이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인지, 후반기 들어서 털리기 시작했지만 결국 인디언스의 로또는 성공을 거두었다. 9월 6일 뉴욕 메츠를 상대로 노볼넷 12삼진을 잡아내기도 했다. 9월 28일 미네소타 트윈스 원정에서 6이닝 1실점 2볼넷 11삼진의 기록으로 시즌 10승을 달성하며 2013년 시즌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정규시즌 성적은 158이닝 ERA 4.04 10승 9패. 오즈미어 시절과 다르게 높은 탈삼진율을 유지하면서 9이닝당 볼넷허용률을 2.7개까지 낮췄다는게 주효했다.

2013년 인디언스와 단년 계약을 했기 때문에 시즌 종료 후 FA로 풀리게 되는데, 카즈미어 본인은 인디언스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2년 22M 계약을 맺고 인디언스를 떠나게 되었다.

2.6 애슬레틱스 시절: 각성

2013년의 부활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2014년 7월 8일 현재 18경기 10승 3패 방어율 2.53 탈삼진 99개를 기록 중이다. 이닝도 110.1이닝으로 평균 6이닝씩 소화해 주고 있고 WHIP도 1.01로 현재까지는 선수 생활 역대 최고 성적. 숨막히는 선발진을 가지고 있는 오클랜드 속에서도 빛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올스타전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후반기 부진으로 오클랜드의 하락세에 일조하면서 부진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쳤다. 최종성적은 32경기 선발등판 190과 ⅓이닝동안 3.55의 방어율과 15승 9패를 수확하며 전체적으로 풀타임 선발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후반기 부진으로 성적이 떨어진것이 좋지않은 요인인 시즌을 보냈다.

2015년에는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18경기에 나서 5승 5패 2.38 ERA의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보다 낮아진 WHIP을 기록하는 등 나름 선전했지만 팀 성적은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는데..

2.7 애스트로스 시절 : 고향으로 돌아오다

2015년 7월 23일 같은 지구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됐다. 마이너리거 우완 선발 대니얼 멩덴, 그리고 포수와 1루수를 볼 수 있는 제이콥 노팅엄이 오클랜드로 가게 됐다. 카즈미어는 팀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떠난다면서 작별인사를 남겼다.고향팀으로 돌아온 카즈미어

지구우승을 노리는 팀의 선발진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카즈미어의 이적 후 성적은 좋지 않았다. 첫 경기 로열스 원정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이적하자마자 첫 승을 따내고, 에인절스와의 홈 경기에서 7.2이닝 무실점(노디시전)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그 이후 11경기에서 1승 6패 5.22를 기록했다. 이 동안 QS는 단 3회에 불과했다. 후반기 최종 성적은 13경기 73.1이닝을 던지며 2승 6패 4.17의 평균자책점. 전반기와는 딴사람이 된 듯, 1.39에 육박하는 WHIP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디비전 시리즈 2차전 캔자스시티와의 원정경기에 나서 5.1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

2.8 다저스 시절

글라스볼 1호기
다저스판 돈 내놔라 먹튀야 1호, 귀신같이 승은 잘 먹은 시즌

2016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3년 48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첫 시즌을 마치면 바로 옵트아웃이 가능하다는 옵션이 있다.

4월 6일(현지시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 선발 출장하여 6이닝 무실점 퀄리티 스타트를 달성했으며 팀도 3:0으로 승리하여 다저스 입단후 첫 승리를 따냈다

그 후 부상으로 골골 거리면서 팀에 민폐를 끼치는 중인데...팀이 워낙 잘 나가는지라 이젠 존재감이 공기가 되어버린 수준. 시즌 내내 롤러코스터급 피칭을 하고도 10승이나 챙긴 걸 생각하면 정말 승운은 더럽게 좋았던 시즌이 되었다. 프리드먼의 글래스볼이라는 큰그림이라고 합니다 [5]

3 피칭 스타일

주로 90마일 중후반대의 포심과 슬라이더만 던졌다. 투 피치 투수임에도 커맨드가 좋아 전성기 시절에는 삼진을 대거 잡을 수 있었다. 나중에 팀 동료인 제임스 실즈에게서 체인지업을 배워 이를 추가했는데, 2014년 이후 체인지업을 우타자 상대 시 결정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저런 부상으로 점점 구속이 하락하면서 2011년에는 80마일 중반대까지 떨어졌고 슬라이더도 예년의 날카로운 각을 잃어버렸다. 2013년도에는 구속이 돌아왔는데, 95마일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1. 제임스 실즈데이빗 프라이스가 성장하게 되면서 곧 경신당했다.
  2. 그러나 2002년 드래프트는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꽤 풍성한 드래프트로 드러났다.
  3.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시 메츠의 투수코치인 릭 피터슨이 잠브라노를 '10분이면 고칠 수 있다'고 평한 반면, 카즈미어는 메이저리그급 투수가 되려면 3년은 필요하다는 발언을 했고, 이것이 트레이드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정작 이 트레이드는 메츠 팬들에게 흑역사로 기억되지만, 카즈미어의 몰락을 생각해본다면 피터슨의 저 예언은 절반은 맞아 떨어진 셈.
  4. 프로필상 6피트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작다고.
  5. 이상하게도 카즈미어의 등판일만 되면 타선이 터져서 이기는 경기가 정말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