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빈 업튼 주니어

(B.J. 업튼에서 넘어옴)

토론토 블루제이스 No.7
멜빈 엠마누엘 업튼 주니어 (Melvin Emanuel Upton, Jr.)
생년월일1984년 8월 21일
국적미국
출신지버지니아 주 노포크
포지션중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2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지명
소속팀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2004~201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3~201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15~2016.7.26)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6.7.26~)

1 개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외야수. 뛰어난 툴과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메이저리그 경력 내내 그런 재능이 만개한 적은 극히 드문 선수이기도 하다. 동생인 저스틴 업튼과 함께 형제 선수로 유명하다.

2014 시즌까지 B.J. 업튼이라는 등록명으로 알려졌다. 이름은 멜빈 이매뉴얼(Melvin Emanuel)인데, B.J.로 불리는 이유는 그의 아버지의 별명이 보스먼(Bossman)이고, 그가 보스먼 주니어(Bossman Junior)라서 약칭 B.J.가 되기 때문이다. ㅂㅈ 업튼, 봉지 업튼, 범종 업튼이라는 별명은 덤 아주 못할 때 별명은 ㅂㅅ이라는 의미와 없어도 그만이라는 의미로 없튼. 그리고 2015시즌부터 등록명을 바꿔 멜빈 업튼 주니어로서 뛰게 되었다. 그래봤자 없튼

2 선수 생활

2.1 커리어의 시작

아마추어 시절부터 버지니아를 대표하는 야구 유망주중 1명이었으며 라이언 짐머맨, 데이비드 라이트, 동생 저스틴 업튼과 같은 고등학교 선발 야구팀에서 뛰었다. 일명 타이드워터 오리올스 멤버[1]로 동네 친구인 마크 레이놀즈와 함께 지금도 친목질을 하고 있을 정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200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으로 지명되었다.[2] 당시 포지션은 유격수로 만년 꼴찌였던 탬파베이는 업튼을 통해 팀 내야진의 재편을 꿈꾸고 있었다. 성장 속도도 제법 빠른 편이라서 2003년 더블A(AA)까지 진출했고, 2004년에는 만 19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무대까지 밟기에 이른다. 다만 이는 완성되기도 전에 너무 조급하게 진출시킨 것이라서 이 때 프로로서의 마인드나 기량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장에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2.2 탬파베이 레이스 시절

tumblr_nsienypP141uckof9o4_500.jpg
2005년은 내내 마이너리그에서 보냈고, 2006년 다시 메이저리그로 올라왔지만, 유망한 재능에 비해서 멘탈 문제에 대한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음주운전으로 걸린 적도 있었을 정도. 또한 포지션 문제도 특히 문제였다. 유격수로서의 수비에 대한 믿음이 없었는지, 다시 메이저로 올라온 2006년에는 3루수로 포지션을 옮겼다가, 이듬해에는 2루수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때 2루수를 보며 이런저런 잔부상을 얻은데다 부상으로 DL에 오르기 전 48경기 동안 12개의 실책을 기록할 정도로 다수의 실책을 기록하기도 했다. 어쨌든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중견수로 자리를 옮기며 결론적으로 2007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기에 이르렀지만 그전까지 성장 정책에 대한 일관성이 부족했다. 이에 대한 피해는 결국 업튼 자신이 받게 되었지만, 구단에서도 업튼의 성장 실패에 책임을 느꼈는지 업튼 이후로는 웬만한 유망주들가 잘한다고 바로 메이저리그로 올리지 않고 마이너리그를 단계별로 차근차근 밟게 해 실력을 확실하게 다지도록 하고 메이저로 올리고 있다.

아무튼 이러니저러니 해도 재능은 확실히 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 정착한 후에는 그럭저럭 볼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2007년 첫 풀타임 시즌에 0.300의 타율에 24홈런 22도루를 성공시키면서 신인이 3할 20-20을 달성한 것. 이대로만 성장하면, 빠른 발과 준수한 장타력을 가진 리드오프의 출현, 아니면 중심 타선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타자로 성장이 기대되었지만...

이게 탬파베이에서의 커리어 하이였다. 전체 커리어 하이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2008년 탬파베이 역사상 첫 PO에서 맹활약하면서 팀을 월드시리즈에 올려놓는데 1등공신이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3홈런 4타점,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 4홈런 11타점을 기록하는 등, 전반적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친 것. 탬파베이의 젊은 타자들이 침묵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4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앞선만큼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활약은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규시즌. 데뷔 첫 해에도 삼진과 볼넷 비율이 좋지 않아서 고전했는데, 이 문제는 2008년 일단 개선되는 조짐은 보였다. 어깨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볼넷 숫자가 늘면서 출루율이 증가한 것. 하지만 2009년부터는 컨택도 무너지고, 선구안도 같이 좋지 못하면서 타율은 2할대 초중반, 출루율도 3할대 초중반을 기록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어깨가 좋지 않아서 발은 빠르지만 강견도 아니고 따라서 수비력도 평범한 수준. 남은 것은 40개 정도 기록한 도루지만, 도루 실패가 2008년부터 16개, 14개, 9개니 팀에 도움되는 도루라고 보기도 어렵다. 2010년에는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삼진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진짜 문제는 멘탈. 마이너에서 이끌어주던 선수가 없이 야구를 배웠고, 너무 일찍 프로에 데뷔한 탓인지 멘탈에서 종종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2008년에 두 차례나 무성의하게 뛰면서 조 매든 감독에게 지적당한 바 있고, 2010년에는 2루타 코스를 성의껏 수비하지 않다가 3루타로 만들어주면서 에반 롱고리아에게 지적을 당했다. 그런데 2008년에는 감독이라 별 충돌은 없었지만, 2010년에는 팀 동료가 말리기 전까지 롱고리아와 다툰 것.

느린 성장세와 기대 이하의 플레이 때문에 실망한 탓인지, 또 유망주의 천국인 팀 특성 때문에 2011년 탬파베이에서 시즌 중반 데즈먼드 제닝스의 서비스 타임 조절 이후부터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았다. 그러나 관심을 보이는 팀은 있었지만, 실제 제대로 트레이드가 성사되지는 못했다.


2012년에도 비록 홈런수는 늘어났지만 전과 같은 2% 부족한 활약을 펼쳤다. 팜에는 (비록 무릎 부상을 당했지만) 브랜든 가이어도 버티고 있어 업튼이 탬파베이에 잔류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대주자로 교체돼 덕아웃으로 들어오자마자 레이스와의 결별을 직감했는지 선수들, 매든 감독과 포옹하기도 했다. 불성실한 태도와 아쉬운 성적 때문에 이래저래 욕먹었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정든 팀을 떠난다는 게 못내 아쉬웠는지 벤치에 앉아서 눈물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여담으로 2012년 8월 3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홈경기에서 통산 100홈런째를 갈겼는데, 정확히 44분 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필라델피아 필리스 경기에서 동생 저스틴 업튼의 통산 100호 홈런이 나왔다. 형제가 통산 100호 홈런을 같은 날에 기록한 것은 역대 유일의 기록이라고.[3]

2.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

B+J+Upton+San+Francisco+Giants+v+Atlanta+Braves+V7bn_wDLAJQl.jpg
애틀랜타 팬 여러분, 최고의 외야수를 영입했습니다.

2012 시즌 종료 후에 FA로 풀렸는데, 애당초 잡을 생각도, 잡을 돈도 없던 레이스는 예상대로 드래프트 픽을 얻기 위한 퀄리파잉 오퍼만 제시할 뿐 그를 잡으려 하지 않았고, 결국 애틀랜타와 5년간 7,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그런데 2013년 1월 24일(현지시각) 동생 저스틴 업튼이 트레이드로 애틀랜타로 이적하면서 형제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4월 6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형이 9회말 동점 홈런을 치고 동생이 끝내기 홈런을 날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초반부터 타격에서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있다. 시즌 초반 홈런을 뻥뻥 날려대던 동생인 저스틴 업튼과 비교되면서 형은 그 반도 못 따라가는 민폐로 자리잡으며 동생 만도 못한 형이 되어버렸다.하지만 동생도 4월의 50홈런 칠 기세가 5월 들어서면서 똑딱이나 간신히 하면 다행일 정도로 삽질해서 형제의 우애가 깊다고 같이 까였다 결국 저스틴 업튼은 그래도 27홈런을 때려내며 팀의 장타력공갈성 을 강화한 방면, B.J.업튼은 시즌이 끝나도록 2할을 넘어갈 기미를 보이지 못하다 결국 0.184에 9홈런 26타점 12도루(5실패) OPS 0.557로 데뷔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낸 뒤 먹튀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게 되었다.

결국 포스트시즌에서는 대수비 및 대주자 요원으로 간신히 이름을 올렸으며, 타석에 몇 번 나와 삼진만 조공. 팀은 LA 다저스에게 3:1로 디비전 시리즈를 내주며 그의 이번 시즌은 팀과 함께 비극을 맞이했다.

2013년 최악의 성적을 찍었기에 적어도 2014년에는 반등을 하지 않을까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정규 시즌 시작부터 4경기 연속 멀티 삼진이라는 안좋은 의미의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2014년 시즌 전반기에만 해도 작년보다 더 밑을 보여준다라는 온갖 설레발들이 난무했으나, 작년보다는 잘해주며(?) .208 .287 .333 WAR 0.4의 성적을 남겼다. 그래봤자 13시즌에 이어 14시즌에도 2년 연속으로 ESPN 선정 LVP(least valuable player)에 뽑혔다.

2015년에는 등록명을 바꾸면서 분위기 쇄신을 노리는 듯 했으나 정규시즌 시작 전에 발 염증이 생기면서 빨라도 4월 초에야 복귀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개막전까지도 트레이드가 없어서 이대로 2015 시즌에도 애틀란타 소속으로 뛰는가 했으나...

2.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

시즌 개막전 당일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것도 팀의 마무리랑 같이 참고로 연봉보조는 없다... 이로 인해 형제는 팀을 옮겨 다시 재회했는데 동생은 주전 좌익수지만 형은 마이너 좌천.

중반 콜업된 후에는 대수비나 대주자, 좌완상대로 가끔 플래툰 정도로만 나오고 있다. 그나마 브레이브스 시절(13년 -0.6, 14년 0.3)보다는 조금은 나아져서 fwar 1.7을 찍었고 타율도 2할 5푼 가량은 달성하였다.

9월 12일 경기에서는 8회 2아웃까지 퍼팩트 경기를 이어가던 매디슨 범가너를 상대로 안타를 쳐 퍼팩트를 저지시키는 위엄을 보였다.

10월 4일 클레이튼 커쇼300K 달성 희생양이 되었다(...) 사실 바로 전날인 3일 경기에서도 잭 그레인키 상대로 3번이나 삼진을 당하며 그레인키의 200k 달성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2015년 최종성적은 87경기에 나와서 .259 .327 .429 5홈런 17타점 23득점을 기록했다. fWAR는 무려 1.6. 이건 2015년 샌디에고 파드리스의 전문 외야수 중에서 저스틴 업튼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4]

2016년에는 전반기동안 87경기에 나와서 .262 .311 .454 16홈런 44타점 20도루 fWAR 1.7을 기록하고 있다. 홈런은 맷 켐프와 팀내 공동 2위, 도루는 팀내 1위이다.

7월 26일 토론토와 인터리그 경기 중 토론토로 트레이드 되었다! 쟤 우리상대로 잘하는데? 사버리지 뭐
  1. 선배중에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외야수 마이클 커다이어가 있다. 디백스의 신인 투수 대니얼 허드슨은 저스틴 업튼과 동갑 친구.
  2. 이 해의 드래프트가 바로 머니볼에서 빌리 빈이 말한 새로운 드래프트였다. 참고로 이 때 등장한 선수가 잭 그레인키, 프린스 필더, 콜 해멀스, 닉 스위셔, 조 블랜튼.
  3. 이 둘은 99호 홈런도 각각 7월 20일에 기록했다.
  4. 윌 베나블(1.1)보다 높고, 윌 마이어스(0.6)에 맷 켐프(0.4)는 둘을 더해도 안된다. 코리 스팬젠버그는 전체 93경기중에서 89경기를 내야수로 출장했으니 제외.